#. 오래전 어느날 하버드 대학교의 교내 채플 (Memorial Church)에서 하나의 장레식이 거행되었다. 한데 그 장례식에 하버드의 교수들뿐 아니라, 당시 유명 정치인들, 장관, 노벨상수상 학자 등 수많은 사회적 저명인사들이 참석하였다. 자리가 모자라 일부 조객들은 교회 문 밖에 서 있기도 했다.

그때 보스턴 대에 유학중인 박대선 학생(추후, 감신대 교수 및 연세대학교 총장 역임)은 그날 그 채플 앞을 지나가다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 죽었기에 이렇게 수많은 조객들이 몰려왔는가?“하는 호기심이 생겨 잠간 참관해 보았다. 그 장례식의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하버드의 유명한 교수도 아니었다. 그 학교에서 잡일을 하다가 죽은 한 ‘관리인(custodian)‘ 의 장레식이었다.

‘샘’(Sam)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이 관리인은 10대 후반 나이에 이 학교에 들어와서 청소일을 했었다. 그후 ‘관리인’(custodian)’ 직을 얻게 되어, 부서진 의자를 수리하는 것 같은 여러 가지 잡다 한 일들을 처리하고, 때로는 경비하는 일도 하는 등 거의 평생을 하버드 캠퍼스에서 보냈다.

쌤은 항상 명랑하고 유쾌한 얼굴로 일했다. 학생들이나 교수들 모두 쌤을 좋아했다. 일하다가 학생이나 교수를 만나게 되면 뭐 자기가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하며 친절히 대했다.방학이 끝나 학생들이 캠퍼스로 돌아오면 기숙사에 짐을 날라다주기도 하고, 신입생들에게는 학교 생활에 대해 필요한것들을 자세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래서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뭔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쌤에게 부탁했고 쌤은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아주 기쁘게 도와주었다, 나이가 들자 그는 학생들의 인생 상담자기 되었다. 학생들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쌤과 의론하고 그의 조언을 기쁘게 들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에는,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하버드 출신 저명인사들이 참석했던 것이다.

#. 내가 쌘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선생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미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을때다.

2005년 10월 8일, 나의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이름은 타미(Tommy)인데, 어머니 ‘도라 김이 오늘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집례를 부탁한다“ 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말은 못하고, 영어로만 얘기했다. 도라 김(Dora Kim)이 누구인가? 쌘프란시스코에서 오래 산 한인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도라 김은 1921년, 철도 노동자의 딸로 태어난, 초기의 한인 2세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들을 위한 희생 봉사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다.

학교 졸업후 그는 캘리포니아 주 고용국(Dept. of Employment)에서 근무하면서 새로 미국땅에 온, 한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했다, 그후 인종차별과 언어문제로 고통당하는 한인들을 위해 ‘상항 한인봉사 쎈터’Korean Community Service Center)를 설립하고(1976년), 본격적으로 한인들을 위한 봉사에 나섰다. 통역, 상담, 직업훈련 및 직장 알선, 자녀들의 입학을 돕고, 병원 및 공공 기관 이용 안내, 청소년 선도, 노인 급식 프로그램, 한인들의 이민 정착을 도와주는 일, 특히 영어를 잘하는 그는 한인사회의 대변인 역할도 하는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인들을 도와주는 일에 헌신하였다,

특히 유학생들을 위해서는 자기 동생이나 자녀같은 마음으로 도움을 주었다. 1953년부터 80년대까지 30여년간 쌘프란시스콩에 새로 온 한인 이민자들, 유학생들중 도라김의 도움과 신세를 안진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도라 김은 은퇴 후 한인사회와 거의 단절된 삶을 살았고, 그래서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2005년 10월 15일, 싸이프러스 공원묘지 채플에서 나는 그의 장례식을 집전하였다. 나는 그날 장례식에 수많은 조객들이 올 것을 기대했었다. 한데 그날 장례식장에는 유가족들 외에 외부 조객은 10명도 안되는, 극히 적은수만 참석했다. 한인 신문들에 ‘부고’ 광고를 실었는데도.

우리는 한국인들은 너무 빨리 받은 은혜를 망각하는 것일까? 이제는 더이 상 나와 관계가 없어진 과거의 사람, 내게 현재 무슨 도움이 안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자기중심’적 태도를 갖는 사람이 많아서인 것인가? 혹은 우리한국 속담대로,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이기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도라 김이 은퇴후 한인사회와 관계를 끊고 살아서 사람들이 그를 잊어서인가?

나는 그날, 도라 김의 그 쓸쓸했던 장례식을 마치고 나올때 문득 오래전, 은사인 박대선 박사로부터 들은, 하버드 대의 한 이름없는 관리인 장례식 얘기가 머리에 떠올라 종 우울한 심정이 되어 ‘싸이프러스 공원묘지’를 떠났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의 장례식에는 과연 몇 사람이나 참석할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