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현충일에 우리교회의 국내 순교유적지 답사팀에 끼어서 경남의 순교유적지를 찾았다. 함안에 있는 손양원 목사 생가와 기념관을 거쳐서 마산에 있는 문창교회와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을 보고 그 다음에는 진해에 가서 주기철 목사 순교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들었지만, 그분들의 신앙적 용기를 대할 때마다 감동적이다. 손양원 목사의 나환자들에 대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아들들을 살해한 젊은이를 용서한 일은 여러 번 들어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특히 이번 답사 여행을 통해서 두 분 모두 장로인 아버지에게서 신앙교육을 받았다는 점과 그들이 모두 그 시대의 엘리트들이었다는 점을 알았다. 그분들의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했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별히 이번에 나는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에 가서 호주 출신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Rev. Joseph Henry Davies, 1856-1890)를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 공부하느라고 호주에 가서 여러 해 지낸 일이 있어서, 나는 호주에 대해서 그리고 호주와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호주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그동안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무심했단 말인가. 그들의 헌신을 접하면서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데이비스 목사의 순교와 호주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 땅에 묻힌 최초의 호주 선교사였다. 그의 뒤를 이어서 호주 선교사 126명이 한국에 와서 헌신하게 되었고 경남 지역이 호주 장로교 선교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경남 지방에 병원과 학교들을 세워서 우리나라를 선진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 일이 데이비스 목사로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는 진정 한국 땅에 묻힌 밀알이었다.

▲ 호주장로교회의 첫 한국선교사인 조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Rev. Joseph Henry Davies)와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Miss Mary Davies) 출처: http://hojuilbo.tistory.com/1179 [호주일보]

데이비스 목사는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와 함께 1889년 10월 2일 부산에 도착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설흔셋이었다. 그는 호주 멜번 대학을 졸업하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호주 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에 와서 부산에 머물지 않고 바로 배편으로 제물포를 거쳐서 서울로 가서 5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데이비스 목사가 한국어 공부 과정을 마쳤을 때, 그의 열정과 어학 능력을 인정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그에게 같이 성경번역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제의를 거절하고 현장 선교를 위해서 부산으로 향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부산 선교를 계획했던 것 같고, 서울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아니더라도 성경번역에는 지장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스 목사는 그의 누이 메리를 서울에 남겨두고 한국어 선생과 수행원을 데리고 부산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는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갈 수도 있었는데, 그가 도보를 택한 것은 그가 몸 바쳐 일할 한국을 잘 알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1890년 3월 14일 서울을 출발해서 수원, 천안, 공주, 남원, 하동, 함안을 거쳐서 20일 후에 부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쌀쌀한 날씨,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비위생적인 잠자리, 겹친 피로 등으로 그는 도중에 폐렴을 앓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천연두에 감염되어서 부산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원래 건강 체질이 아니었다. 한때 그는 인도에 선교사로 나갔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호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약한 체질을 감안해서 힘든 도보 여행보다는 서울에 갈 때처럼 배편으로 부산에 돌아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는 의욕과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의 건강 상태와 낯선 땅에서의 도보 여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감안하지 않았다. 그가 죽을 목적으로 도보여행을 택하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은 무모했고, 그의 죽음은 피할 수도 있었다는 면에서 더욱 애석한 일이다.

어떻든 그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비보를 접한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서는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로 결의하고 선교단을 부산에 파견했다. 그래서 데이비스 선교사가 사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1891년 10월에 맥케이 부부를 비롯해서 5명의 호주 선교사들이 부산에 도착했다. 그들에 이어서 해방 전에 모두 78명의 호주 선교사가 부산에 왔고 해방 후에 다시 48명이 와서 도합 126명의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를 위해서 헌신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데이비스를 포함한 8명의 호주 선교사가 순교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데이비스 목사에게는 호주에서 안정된 직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나와서도 언더우드 목사와 함께 성경을 번역하면서 서울에서 별 어려움 없이 선교사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정된 삶을 모두 버리고 한국에 왔고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그의 눈에 미개인들로 보였을 한국인들을 위해서 그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리를 위한 그의 희생정신이 감동을 준다.

그는 진정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는 한국인을 뜨겁게 사랑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데이비스 목사는 우리 한국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데이비스 목사의 선교사로서의 삶은 나에게 안타까움과 더불어 감동을 주었다. 그가 선교사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 땅에 묻혔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그가 열어놓은 선교의 길을 따라서 호주 선교사들이 대거 한국에 오게 되었으니 그는 한국 땅에 묻힌 호주의 밀알이었다.

부흥회에서 듣는 산 사람의 복음 선포보다 순교유적지에서 보고 듣는 죽은 사람의 선포가 훨씬 더 힘 있다. 순교자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 행동하는 순교자들의 삶이 우리의 나태한 정신을 흔들어 깨운다.

순교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순교자들의 삶에 고무되어서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로마에는 원로원이 있어서 나이든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했던 모양인데, 교회가 돌아가는 것이 답답해서 조언을 해보지만 젊은이들이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당당뉴스에 글을 올리는데, ‘당신도 기독교인인가?’라고 묻는 댓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내가 여러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글을 써야 할까? 오늘 만난 순교자들은 뜻을 굽히지 말라고 조언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아직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내가 앉았던 찬양대의 자리가 비어 있다면서 자리를 채우라고 한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그것이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해도, 땅에 묻어두지 말고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고 했으니 그리고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기를 좋아하신다고 했으니, 대원들과 함께 찬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