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차단자(遮斷者)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 두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10:25)라는 말씀을 들어 가며 ‘모이기를 힘쓰라’ 했으니 많이 모일수록 좋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성경뿐 아니라 모든 글은 문맥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아직 성경의 어떤 한 구절만을 잘라내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이단들도 그리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당시의 유대인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전통적인 유대인 집회 외에는 모이는 것을 폐하려 했다. 방금 인용한 말씀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 말씀을 ‘모이기를 힘쓰라’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읽어 보면 모임의 중심에 전절인 24절에서 권면한 ‘사랑과 선행’의 ‘격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회칠한 무덤을 떠올리게 하는 사례들도 없지 않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승려와 다른들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앞에서도 좀 비쳤는데, ‘모이기를 힘쓰’는 걸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다다익선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그래도 되는가.

주일 대예배와 오후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철야 기도회, 찬양연습, 성경공부, 각 부서의 모임 등 교회에 마련되어 있는 모임(집회)에 가급적으로라도 참석하려 한다면 한 주간에 며칠이나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날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고도 가정생활이며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있겠는가.

교회생활은 영적생활이고 일상생활은 육적생활이라는 사람이 있고, 교회봉사나 전도 같은 건 하나님의 일이고 생업을 위한 일은 육에 속한 것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신앙을 그릇되게 한다.

성경은 일상생활이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고, 생업이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접적으로 그리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의 전체적 정신은 그리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일을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고 행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고, 그로 인해 기독교의 기독교다음을 잃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고 있기도 하다.

교회 내에서조차 불목과 비리가 판을 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예배 때만은 ‘아멘’을 연발하며 자못 크리스천인척이라도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조차도 교회 문만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카멜레온이 되어 교회 밖 세상의 보호색옷 입기를 주저치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 하시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4)라 하신 말씀의 의미를 모르지 않는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라는 말씀을 보면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산제사, 즉 예배가 의미하는 건 일상의 삶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상생활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몸을 제물로 해서 드리는 예배란 어떤 것일까. 그건 빛과 향기와 소금으로서의 삶이 아닐까 한다.

필자의 기도는 거의가 빛과 향기를 내며 소금으로 녹아지는 삶을 살게 해 주시라는 게 주된 제목이 되고 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도 항상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가슴 한 귀퉁이에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리하고 있어 개운한 기분이 되지 못했다. 빛과 향기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스스로 빛을 내고 향기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고 향기를 받아 다시 풍긴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으나 어딘지 억지스러워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께서 내 안에 계셔 빛과 향기를 내신다는 걸 간과해 왔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안에나 예수께서 살아 계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당신의 빛을 발하시고 향기를 내신다. 그런데 우리 각자가 그 빛과 향기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빛과 향기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지만 않으면 된다.

이 사실을 깨닫자 필자는 자신이 빛의 차단자였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아집과 욕심이 자신을 빛 한 가닥 바람 한 점 통할 수 없는 검은 비닐주머니 같은 차단막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함량이 미달된 자신의 인격이 자기 안의 예수께서 내시는 빛과 향기의 확산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필자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등경 아닌 말(斗)이 되어 등불을 가리고 있었다니 어찌 우울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내시는 빛을 가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 안의 그분께서 내시는 빛을 막고 있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어리석음도 정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에 울고 싶기까지 했다.

모이지 않는 게 교인들만의 탓인가

‘모이기를 힘쓰라’ 강조는 하지만, 그 모이는 내용이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건 전술한 대로이다. 사실 애써 모인 자리에 “서로 돌보아 사랑과 선행과 격려‘한다고 하는 알맹이는 없고 세속으로 오염된 조류만 있다면 아무리 많이 모인다 해도 그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인데, 모임의 내용이어야 할 ‘사랑과 선행’은 앞에서도 언급한 ‘빛’과 ‘향기’와 ‘소금’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여기에 부언해 두고 싶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모이는 게 신통치 않으면 그 이유를 교인들에게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복음의 참맛을 알게 하는 데는 게을리 하며 이권을 위한 수판알만 퉁기는데 누군들 교회에 가는 게 즐겁겠는가. 이제 교회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불법과 비리는 나열하기도 지겨울 정도가 되었다. 이를 읽고 듣는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교회의 현실이 그러한데 목회자들은 모이는 게 여의치 않으면 그 책임을 교인들에게 돌리고 만다. 설교라는 것도 그렇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할 뿐 아니라, 그마저 들어줄만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하품이 나게 해 놓고는 교인들이 졸면 그런다고 호통을 친다.

그렇다고 귀만 즐겁게 하는 그런 설교를 하라는 건 아니다.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말로 청중을 웃겨 놓고는 우쭐한다면, TV의 익살스러운 연예 프로는 명 설교와 동류가 될 것이다. 기복신앙을 자극하는 설교가 교인들의 신앙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아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그 같은 설교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의 선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데도 모이기만 힘쓰면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모이기를 폐하라는 것도, 그에 힘쓰지 말라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다익선 식으로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고, 목적에 맞는 모임을 가지라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모이는 것이 중요하듯 흩어지는 것도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내보내어 전도케 하셨다. 물론 교회들도 이 점은 게을리 하고 있지 않다. 지나치도록 강조하는 교회도 없지 않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빛이다. 빛인 이상 교회라는 말로 덮어 두어서는 안 된다. 등경 위에 두어 교회 밖으로 비춰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라 하신다. 그러나 어떤 목회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모이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장애인 시설 같은 곳의 봉사도 안 된다 한다. 이도 모이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저변에 깔고 있기에 가능한 처사다.

시대가 변했고 세상도 이전과는 같지 않다. 옛날에는 ‘예수 천당’이라는 말 한 마디로 전도가 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말보다는 삶으로 하는 전도가 더 효과적인 세상이 되었다.

교회를 무슨 비리나 불법의 온상처럼 여겨 기독교도 목사도 듣기 민망할 정도의 말로 불리는 것이 현실인데, 말로 하는 전도가 얼마나 힘을 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런 전도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전도자 안의 그리스도가 발한 빛이 그대로 퍼져 나갈 때 전도의 효과는 극대화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일 뿐이다.

모이는 것을 다다익선 식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신앙생활이 교회중심, 예배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사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일상생활이 되지 많으면 안 되고, 예배 또한 일상의 삶을 통해 드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성경 정신으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