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잘 지내셨습니까? 진부령은 다시 우박이 내리고 기온이 내려갔습니다. 주일 예배에 온 한 성도님은 다시 내복을 꺼내 입으셨다고 합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오르락내리락 하는 날씨에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집 안의 오래된 물건들이 하나씩 고장이 나거나 수리를 요합니다. 결혼을 하면서 산 냉장고와 세탁기는 이미 한두 번씩 수리를 받았습니다. 십년 된 컴퓨터도 수많은 수리와 부품 교체를 거치면서 남편이 그때그때 관리를 잘 해서 문서 작업을 하고 아이들이 동영상을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 달 전부터 제가 칼럼을 쓸 때 사용하는 노트북도 자판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키보드를 꾹꾹 눌러가면서 쓰고 있는데 자판을 수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트북은 제가 남편과 결혼하고 큰 아이를 낳은 후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구매한 것입니다. 아이를 기르며 대학원을 다니던 때여서 학업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저를 위해 수업시간에 강의 내용을 바로 받아쓰고  과제를 어디에서나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남편이 어렵게 마련해 준 당시로서는 최신식 노트북입니다. 졸업을 한 후에는 그다지 많이 쓸 일 없이 서랍 속에 넣어 두었는데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꺼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의 노트북이 있기에 늦은 저녁에도 거실에서 혼자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오래 된 노트북이라 요즘 최신 노트북과 비교하면 사양이 좋지 아니지만 제 손에 익고 추억이 담긴 것이기에 저에게는 가장 좋은 노트북입니다.

   오래된 물건을 아끼고 고쳐서 쓰는 것은 새로운 것을 장만할 만한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지 더 좋은 물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희 어머니도 제가 성인이 된 후에 가전을 하나씩 바꾸셨습니다. 어떤 것은 자녀들이 장성해서 구매해 드린 것도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어머니가 새 세탁기를 구매한 것을 보고 그 모습이 무척 생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전이나 가구는 바꾸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새것을 산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주 고장이 심하게 나서 도저히 못 쓰게 되지 않는 한 물건은 교체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 오래 된 물건은 그것을 살 때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쉽게 치워버릴 수 없습니다. 요즘 오래된 한복을 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입지도 않기에 어떻게 리폼을 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잘 보이는 자리에 꺼내 놓았습니다. 조각보를 만들까, 옷으로 리폼을 해볼까, 이불을 만들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혹여 미래의 어느 때 한복이 필요한 날이 오지나 않을까 싶어서 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있으면 부피가 커서 짐처럼 느껴지지만 결혼할 때 부모님이 사 주신 한복이기에 함부로 리폼 할 수 없어 더 심사숙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흘리분교 도색 및 벽화 작업을 돕기 위해서 올라갔었습니다. 1961년 개교 이래 세월의 흔적이 벽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본관 건물의 갈라진 벽 사이를 긁어 낡은 페인트를 벗겨내면서 예산 지원이 어려운 작은 학교의 고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은 예산으로 도색 작업을 하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학교를 돌보고 꾸미려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물건 하나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물건을 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큽니다. 어차피 물건은 구입하는 순간부터 낡아가기 시작합니다. 제가 물건을 살 때 “은퇴 할 때까지 쓸거야”하고 말하면 남편은 웃고 말지만 저는 진심입니다. 고장이 나거나 너무 낡지만 않는다면 오래오래 그대로 고쳐가며 사용하고 싶습니다.

  모든 물건은 어느 한 때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구원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낡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에 더 마음을 쏟아야겠습니다. 물건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지만 신실한 믿음은 가능합니다. 오늘 하루, 낡지도 버려지지도 않는 진정한 가치에 마음을 두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