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유감한국 교회여, 차라리 ‘선교활동’을 포기하라
류상태  |  shalom77@cho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6년 08월 04일 (금) 00:00:00 [조회수 : 447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아시아협력기구’라는 개신교 단체가 주최한 ‘평화축제’가 결국 좌초되고 말았다. 이 행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8월 5일부터 4일간 20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8월 3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입국한 수백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출국명령을 내림으로써 이 행사는 시작 단계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들에게 출국명령을 내리면서 밝힌 추방의 이유는 “이슬람 문화를 훼손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아시아협력기구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NGO단체로, 이번 아프간 입국 목적을 “주민들에게 컴퓨터 기술과 언어를 가르치고, 교육과 건강 시설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보수적 개신교 선교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한우 아시아협력기구 사무총장도 “한국 기독교인들이 아프간을 방문한 이유는 종교 활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호활동 및 평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권 이외에서 이들의 활동을 보는 눈은 여타 보수 개신교 선교단체를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세프 스타네자이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은 “한국인들이 관광비자로 입국했지만 이들의 활동을 보면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화축제 참가 학생들이 아프간 바미얀 지역에서 현지인들에게 한글로 된 기독교 복음 관련 전단을 배포하여 말썽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혹 아시아협력기구가 순수한 인도적 봉사 차원에서 행사를 추진했다 하더라도 보수 개신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통제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이 행사를 주최한 사람들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4년 동안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아프간을 방문하여 문화와 스포츠 활동을 했지만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사를 주최한 분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왜 이런 무모한 대규모 행사를 기획하였는가? 예수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왜 4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던 방식, 즉 ‘조용한 봉사 활동’을 계속할 것이지 2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사를 추진하였는가.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고 그냥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종교를 묻지 않고 형제로 대해주는 너그러운 사람들이 무슬림(이슬람교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이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전하거나 훼손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면 결코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이 또한 무슬림이다. 그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꾸란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권에서 벌어지는 ‘선교 행태’에 대해 차분히 짚어보고 싶은게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선교적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독교인이 좋게 말해서 ‘선교적 사명감’,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선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성서, 특히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 선교를 독려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선교적 사명감에 불타는 기독교인들이 특히 마음에 새기는 대표적 성경 구절로 다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8~20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장 1~2절)

기독교인으로서, 예수 최후의 명령이며, 바울에 의해 재차 승인된 선교 명령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태복음 끝에 첨부된 이 구절은, 예수에 의해 직접 선포된 말씀이 아니라 그로부터 백여년 이상 지난 이후, 즉 교회가 조직화되고 권력체로 자라기 시작한 시대에 복음서에 뒤늦게 첨가된 구절이며, 디모데서 역시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 바울의 이론을 따르는 제자들(그들은 자신의 글을 바울에게 헌정하다 못해, 바울의 저작이라고까지 주장한다)이 교회 확장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기독교권에서 폭넓게 지지받는 공인된 학설이 아니라, 보수 신앙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의 교계 현실에서는 ‘사이비 이단사설’이라고 정죄되는 ‘성서비평학’을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그러나 나는 “내 주장이 절대로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또 하나의 독선일 뿐이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선교적 사명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역시 하나의 견해일 뿐이지 절대적 명제일 수 없다는 점이다.

성경은 시대의 산물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 사상이 녹아있다. 물론 성서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깨어 들었던 하느님의 사람들의 정신도 들어있다. 그렇기에 성서(거룩한 책)임을 인정받는 것이다. 결국 성서에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도 녹아 있고, 시대적 한계를 반영하는 인간의 억지와 오류도 담겨 있다. 이 사실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인지할 때, 비로소 성서는 읽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한 책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신약성서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선교적 사명’은 ‘하느님의 요구’가 아니라 조직체의 확장을 필요로 했던 그 당시, 즉 그 구절이 기록되던 당시 ‘교회의 요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내 확신을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 대신, 보수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 참에 한가지 변명을 좀 해야겠다. 내 글을 읽은 많은 보수 기독교인들 중에 내 글이 ‘강요적’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반하장이지만, 내가 ‘강요적’으로 글을 쓴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여기저기 썼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보수 신앙은 원시 신념일 뿐이며 거기에 매이는 것은 종교적 노예 상태에 있는 것이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라. 내가 갖고 있는 열린 신앙을 너희들도 가져야 한다.” 사실 많이 무리한 셈이다. “너는 반드시 틀리고, 나는 반드시 옳다”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런 식의 단정적 표현을 쓴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참 못난 이유지만, 내 마음 속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입으로는 ‘예수님 찬양’을 떠들면서도 철저하게 예수님을 교리 안에 가두고 제 멋대로 그 이름을 팔아먹고 이용하는 한국 교회에 대한 분노, 먹사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겠다. 앞으로도 이 못난 분심을 제어할 자신이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독선과 허망한 확신에 맞서기 위해 ‘강요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을 일부러 골라 쓴다.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겸손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대화법이지만, “반드시 그렇다”라고 확신하며 자기 신념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표현보다 “그건 반드시 틀렸다. 왜냐 하면...” 이라는 강한 표현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이 주식을 사면 반드시 돈 번다. 다른 주식 사면 망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과 “그 사람 말이 틀릴 수도 있다. 이 쪽 주식을 사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확신없는 투자자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한국의 기독교인 중에는 지옥갈 것이 두려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공갈협박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잖은 말이 통하겠는가. 내가 “그런 식의 신앙은 사랑의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신성모독죄를 저지르는 짓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의 이런 글쓰기 방식이 원시 기독교 신념을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허망한 확신을 내려놓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허망한 신념체계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견해’를 강력하게 들려주어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나 역시 그들처럼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무식한 확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말이 듣기 거북하다고 소리치는 보수 신앙인들이여, 나의 강요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 거북하고 듣기 싫다면, 당신들도 당신들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맹신하는 당신들의 신념이나 그건 원시 신앙에 불과하다는 내 신념이나 어차피 현실 세계에서 증명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원시 신념’을 ‘절대 진리’인 양 착각하고 강요한다면 나 역시 당신들의 유치한 신념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내 신념을 절대 진리인 양 강요하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리라.

이제 기독교인들의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선교 활동’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싶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선교’에는 세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 “참된 선교란 기독교 교리를 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보수적 선교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상대방을 설득하여 기독교인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래야만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고, 예수께서 약속하신 세상의 종말이 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선교활동이야말로 상대방을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져내어 천국으로 인도하는 선한 길이기에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기독교 교리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도 이런 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둘째, “바람직한 선교는 교리를 전하는 것 뿐 아니라, 봉사와 구제를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만 교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결국은 상대방을 예수에게로, 즉 기독교라는 종교에로 귀의하게 만드는데 최종 목표가 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차라리 첫 번째 부류의 사람보다도 순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면을 벗는 것이 낫지 않을까.

셋째, “진정한 선교는 교리를 강요하지 않고 그냥 이웃들의 삶의 자리가 높아지도록, 혹은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픈 사람은 조건없이 치료해 주고, 배고픈 이웃에게 빵을 주고,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는 기술을 가르쳐 주되 종교와 연관짓지 말고 그냥 돕기만 하라는 것이다. 슈바이처 박사와 테레사 수녀가 실행한 선교가 바로 이런 선교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다원화된 세계에서 기독교가 해야 하는 선교가 있다면 이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교회에, 아니 기독교 세계에,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그냥 선교하지 말자. 이제는 그만 ‘선교’라는 용어를 버리자. 지난 2000년 동안 ‘선교’라는 이름으로 이웃종교의 고귀한 삶의 자리를,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를 얼마나 훼손했던가.

‘선교’라는 말에는, “나는 당신들이 갖지 못한 좋은 것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담겨있는 듯 하다. 또한 “당신들은 부족한 것이 있다. 받아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전제가 담겨있는 듯 하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없는 그것, 혹은 당신에게는 부족한 그것이 나에게는 있다.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는, 너그러운 듯하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하고 자기 기준에 맞추려는 오만이 담겨있는 듯하다. 게다가 그 의식에 집착하여 “반드시 주고 싶다” 혹은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 그것은 상대방의 문화를 해치는 폭력으로 나타나기 쉽다. 그러니 더 이상은 ‘선교’라는 말을 쓰지 말자. 그냥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사는 것은 당연하니까, ‘봉사’라고 하던가 ‘서로 돕기’라는 말을 쓰자.

그리고 제발, 도와야 한다면, ‘기독교’라는 이름을 접고 그냥 도우라.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관련기사]

류상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3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5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반성수 (211.197.130.221)
2006-09-09 13:26:46
최바울 선교사 칼럼(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와 우리의 과제)
8월 초 아프가니스탄 5개 도시 사역을 현지 정부와 주민들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서 성공리에 마무리 하고 수도 카불 스타디움에서 전체가 참가하는 평화축제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마지막에 한국정부의 극심한 반대와 외교적 개입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행사가 중도에 조기 마감되었다. 아프가니스탄2006 평화축제는 작년 서울 주재 아프간대사관 및 아프간 문화정보관광부와 협의를 통해 아프간측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 성사된 행사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이중적 양면성을 가진 과도기적 상황에 처해있다. 2001년 11월 미국이 무력 개입한 이후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으나 국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극도의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전쟁 직후 아프간 재건을 약속했으나 이라크 무력개입으로 헤매면서 아프간 재건은 지난 5넌 동안 철저히 방치되었다. 이로 인해 아프간 국민은 사실상 탈레반 정권 때보다 더 어려운 경제적 상황 가운데 놓여있다. 특히 지방은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과거 마약 재배를 통해 수익을 챙기던 농민들은 미군과 카르자이정부에 의해 마약재배가 완전 금지됨으로써 수입원을 상실하고 허덕이고 있다. 대체 작물이 보급되지 않음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과거보다 더 어려운 처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일부 시골 청년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부지역 탈레반 잔당에 합류하여 목숨을 담보로 일당 15-20불을 받고 최신무기로 무장한 서구 동맹군에 대항하여 승산 없는 전쟁을 하는 파리목숨의 용병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카르자이 정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전통적으로 지방 군벌들에 의해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는 국가를 통합하고 지난 세기 동안 내우외환으로 끝없는 내전과 전쟁을 치러온 과거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건설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미군의 도움으로 각 지방 군벌들의 무장을 해제하였고 경찰과 군대조직을 완성함으로써 중앙정부의 통치체제를 구축하였다. 물론 일부 지방군벌들이 은밀히 무기를 숨겨놓고 유사시 사병조직을 재가동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방군벌 전체가 동시에 반란하지 않는 한 중앙정부의 경찰력과 군사력에 도전하기는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중순에 중앙정부에서 지방군벌 세력을 전격적으로 제거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일부 반발이 있었으나 결국 모두 굴복하였다. 정치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안정적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초보적 단계이지만 지난 세기 아프가니스탄 역사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놀라운 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카르자이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해서 60여 개잡다한 부족의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당신은 어떤 종족입니까?’ 라는 질문에 과거에는 파쉬툰, 타직, 우즈벡, 하자라 등으로 대답하던 아프간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아프간 종족입니다" 라고 대답하도록 계몽하고 있으며 적어도 공무원 집단에서는 서서히 이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신민족 창조의 실제적 성공은 요원하다. 그러나 카르자이 정권은 내부종족 간 고질적인 갈등과 전쟁을 끝내고 평화정착과 새로운 역사 창조를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탈레반 정권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와 발전은 종족 간 갈등구조를 타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탈레반 정권이 추구한 것은 종교독재였다. 내부 종족들이 부족주의로 끝없이 경쟁하고 갈등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전쟁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것을 막는 방법은 각 개별 종족성을 제어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종족성을 제어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은 종교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탈레반은 알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내적 사정에 밝지 않는 사람들은 탈레반 집단을 단순히 전근대적인 무식한 무리들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그렇게 간단히 매도할 일은 아니다.



마침내 탈레반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했다. 탈레반 종교독재 덕분에 그들의 집권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고질적 내전은 끝났고 드디어 평화가 이루어 진 것이다! 문제는 그 평화가 철저한 무력 독재에 의한 형성된 '기계적 평화'였다는 것이다. 국민의 인권과 개인의 인격성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여성들은 사실상 감금 폐쇄되었으며, 교육은 철저히 종교이데올로기화 하였다. 탈레반 정권 내 가장 강력한 권력은 종교경찰이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종교경찰에 의해 통치되는 경찰국가이며 히틀러 정권 이상의 잔혹한 인권탄압이 알라신의 이름으로 통치 기간 5-6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매년 수백 명의 단기팀을 구성하여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우리가 만난 99%의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 정권을 혐오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산주의 소련의 지배도 거부했으나 이슬람독재도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란 국민들 대부분이 지난 20여 년의 이슬람통치에 식상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유산과 전통 그리고 민족적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이란 지도자들은 이슬람 독재의 비인격적 요소를 제거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프간의 내적 상항은 탈레반으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이른바 평화를 위한 잔혹한 통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양심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이름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슬람 경전 쿠란이 이러한 통치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적극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레반 통치로 인해 심리적으로 극도의 상황에 놓였던 아프간 국민들은 지금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고 있다. 전쟁 이후 지난 5년 동안 하나님께서 한국과 미주 성도들에게 아프간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부어 주셨고, 매년 1천여명의 크리스천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단기선교에 나섰다. 아프간 영혼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각양각색의 직업적 및 영적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가면 죽을 수 있다'는 이웃들과 친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돕기 운동에 나섰다. 우리들의 간절한 소원은 단 한 가지 "기뻐하라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아시아의 가장 빈국, 아프가니스탄이 끝없는 내전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마감하고 하나님의 평화 가운데 기뻐하기를 그렇게도 소원했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가! 전쟁과 가난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새로워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바라보면서 신신한 크리스천들은 오히려 이것을 기뻐하기보다는 아프가니스탄을 보며 눈물로 기도했던 것이다. 우리 한반도 민족의 운명을 바꾸신 하나님께서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아직 분단의 아픔에 여전히 고통하고 있는 우리가 왜 저 멀리 남의 나라를 위해서? 여전히 분단의 민족적 아픔이 있기에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볼 때 마치우리의 아픔인양 가슴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언론이 이번 아프가니스탄평화축제에 나서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을 보고 매우 의아해 했다. '왜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저 난리들인가?' 한국정부가 국민안전을 이유로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거의 핍박수준으로 우리를 방해했다. '왜 위험한 나라에 떼거지로 몰려가는가!' 인생들은 늘 자기 수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사람들로 본다면 우리는 백분 이해한다. 그들이 약소국의 서러움을 얼마나 알겠는가? 전쟁과 분노와 극심한 가난, 그로 인한 서러움과 맺힌 한은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우리 한국 국민들은 달라야 했다. 안타깝게도 박종순 목사(서울 충신교회) 등 일부 한국 교계 종교지도자들과 현 정권은 마치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린 사람들처럼 종교권력과 국가 권위를 앞세워 집요하게 끝까지 방해공작을 했다.



예수님 당시 민중은 고통하고 있었다. 로마의 변방의 팔레스타인은 새롭게 몰려오는 제국의 힘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로마제국이 추진하는 세계화- 유럽의 세계화- 돌풍은 그 어느 세력도 감히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계를 강력한 힘으로 주조해 가는 로마제국에 대항하지 않았다. 그 대세에 대해 저항하지도 않았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 정치세력과 결탁한 종교지도자들을 비난하였다. 또한 민중을 억압하는 당시 바리새인 집단을 강력히 비판하셨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민중의 고통과 아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탈레반처럼 신의 이름으로 종교기제를 작동시켜 민중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심정 없는 종교기계'로 전락해 있었다.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다. 아무리 세상의 권력이 횡횡해도 하나님의 공동체가 살아있으면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교회가 세상의 소망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하면 다른 방법이 없다.



국가는 제도적 시스템에 의해 작동한다.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관료들이다. 그래서 관료들은 국가의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민족 혹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다. 또한 국가이익 이외의 다른 어떤 가치도 하위 개념에 속한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가치중립적 입장을 견지한다. 시스템을 기계적으로 작동시키다보니 도구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 역시 심정 없는 기계로 전락한다. 그래서 관료들은 긍휼도 자비도 감동도 없다. 저명한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관료들을 향해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세계는 점점 더 지구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가고 있다. 지구적 종교갈등이 가열되고 팽창하면서 특정 종교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제어하는 메커니즘은 점차 확대되고 심화될 것이다. 마침내는 세계 시스템을 장악한 권력이 짐승처럼 성도들을 협박하고 무참히 죽이며 '세계평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기독교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탈레반이 시도했던 기계적 평화요 통치시스템의 절대적 지배이다. 이렇게 될 대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늘의 절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역에서 왕따가 될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의 믿음의 선포와 믿음의 행진은 지구적인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 아프간에 주둔한 UN군이 '왜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국가에?' 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치 우리를 원숭이 쳐다 보 듯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들은 지난 5년 동안 우리 크리스천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전국을 누비며 위험을 감수하고 아프간 주민들을 도왔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심은 '왜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국가에?'이다 이것이 아직도 계속되는 그들의 질문이다. 철모를 쓰고 첨단 무기를 들고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전쟁과 가난, 이슬람 통치에 진저리가 나 있는 아프간 영혼들에게 사랑의 마음과 생명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한국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바로 이 UN군과 동맹군이 지난 5-6월에 사살한 아프간인이 2천여 명이나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 5년 동안 전혀 종교갈등을 유발하지 않은 크리스천들을 종교갈등의 여지가 있다고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 정치권력과 전쟁기계들이 '평화''와 '체제의 안전'을 명분으로 세계를 철저히 무력 통제할 때 하늘에 속한 성도들과 하나님의 교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가이사는 인정하지만 신뢰하지 않는다. 이번 아프간 평화행사를 통해 하나님은 미래를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셨다. 그래도 우리가 중국교회 성도들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들은 지난 30-40여 년 동안 엄청난 국가권력의 핍박 속에서 성장하였다. 아마 이번에 중국 형제가 아프간에 함께 동참했었다면 그는 이번 사태를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겼을 것이다. 국가권력의 횡포에 당황해 하는 우리를 보고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교회의 선교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속의 권세를 이기고 일어난 중국교회, 거룩한 시님의 군대를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시어 백투예루살렘 비전을 성취하실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은 심정 없는 로마의 관료들이었으나 그 배후에 종교지도자 가야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은 겉으로는 정치권력에 희생된 것 같으나 사실상 종교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번에 한국교계 지도자들이 현 정권의 핵심세력과 동조하지만 않았다면 한국정부는 아프간 5개 도시에서 정부와 경찰, 현지주민들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평화봉사활동을 마지막 몇 일, 카불 행사를 남기고 전격 개입하여 이렇게까지 중도하차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아무 문제없이 평화로이 진행되고 있는 행사를 막을 명분이 없어서도 그렇게 무리하게 개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번 행사 참가자 2천 여명은 이란, 북인도, 아라비아, 중앙아시아, 중국신장 위구르 등 5개 국가로 나뉘어 1-2주 동안 사역을 은혜 가운데 마치고 귀국 하였다. 아프가니스탄 5개 도시 1주일 사역 그리고 주변 5개국 1-2주일 사역을 하였으나 단 1명의 인명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특별한 역사하심이다. 더군다나 어린이 청소년 5백 여명이 함께한 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큰 은혜를 체험하고 돌아 왔다. 한국정부는 방해하였으나 수도 카불 스타디움 3일간 행사 대신에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오히려 새로운 변방을 밟게 하시고 우리의 지경을 크게 확장해 주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9.11 사태 이후 서구교회는 글로벌 리더십을 상실하였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최강 선두주자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시대를 읽고 복음의 순수한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리더십은 순간 중국교회로 넘어갈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중국교회 100대군과 함께 마지막 시대 치열한 지구 영적 전쟁에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중국성도들의 영적 수준으로 세계관 및 복음 안에서 삶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한국교회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며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



가이사는 가이사일 뿐이다. 주님은 가이사를 인정하셨다. 그러나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가이사에게 대항하지도 않으셨다. 가이사는 세상에서 크게 보이나 하나님의 권세 앞에 곧 사라질 허상일 뿐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 있다. 우리는 문명과 세속의 권력에서 자유케 되는 한국교회, 거룩하고 성결한 한국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모든 세속화되고 문명화된 모든 종교권력이 무너지고 복음과 성령 능력으로 새롭게 되는 한국교회로 거듭나도록 기도하자.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영적 세대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우리는 결코 좌절하거나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의 서진, 백투예루살렘 비전을 위해 끝까지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 시대를 감당하며 역사의 막힌 벽을 뚫고 우리 세대에 왕의 대로를 구축할 것이다. 우리의 행진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어떤 정사와 권세도 우리의 믿음의 행진을 막지 못할 것이다. 연약하여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은 무너질지라도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행진은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시여! 주님의 지상명령에 저항하는 모든 정사와 권세를 파하시고 당신의 통치를 이 땅에 이루시옵소서!

이 시대를 하감하옵시고 시대를 감당할 신실한 제자들과 거룩한 교회들이 하늘의 권세로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도의 권세가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여호수아 세대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일어나게 하시되, 이 시대를 감당할 거룩한 군대로 일어나 왕의 대로를 구축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시여!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하는 변방의 민족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 가운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임하게 하시되 하나님의 평화가 속히 임하게 하옵소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파하시고 아프가니스탄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속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뻐하라! 아프가니스탄!
리플달기
0 0
t서대치 (220.116.42.28)
2006-08-08 11:00:31
류상태선생 님 은 진실한 에언자
류선생의 글과 이돌님이나 진숙님의 글을 보면 이땅의 기독교의 양면성을 보는것같습니다..한마디로 이땅에 사이비 먹사가 얼마나 활개치는지를 알수있지요 대형교회의 성령 장사 축복 장사 는 기독교를 하등 종교로 전락 시키고 있다......류선생 같은분이 더많아져야 이땅에 기독교가 살아납니다 지속적 인 지도를 원합니다 평안하시길
리플달기
0 0
김요한 (81.49.190.157)
2006-08-08 09:26:44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글을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당연히 생각해야 할 귀한 내용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에 리플의 내용들을 읽는 순간 '한국교회의 갈등의 극'이 아래 리플의 글속에 그대로 표현되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류상태님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라는 요한 1서 4장 7절의 말씀이 줄곳 떠오르면서 타종교인들(당시에는 이방인, 더러운자들을 물론 요한 공동체의 사랑을 말하지만..)을 사랑해야한다는 ..새롭게 사랑으로 다가가야한다는 류상태 목사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며 읽어 내려가며 선교에 대하여 신중해야한다는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류목사님의 말씀대로 과거 역사에 대부분의 선교는 '선교'라는 단어자체(솔직히 성서에는 없는말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을 뿐이지요)에 너무 만들어진 형식에 ..그것이 선교인양 외형적인 행사와 일만 했을뿐이지요.또는 식민지의 정책과 함께 서구기독교는 다가갔지요. 문화식민주의 정책등등

또 리플의 글들을 읽으며 느껴지는 것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 이런것이 없는자는 소경이라..그의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벧후1:6-9)

지금 우리의 싸움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에서
믿음과 지식과의.. 믿음이 지식에게 괜한 필요없는 싸움을 걸어 스스로 가짜믿음으로 드러나는 시비를 거는 한심한 작태가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싸우긴 싸워야 깨닫게 되지요. ㅎㅎ

류상태 님의 글을 보고 열심히 악담을 퍼붙는 분들은 스스로 믿음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지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함몰시키려 끔찍한 ...지독히 끔찍한 악담을 퍼붓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믿음이 진리안에서 세워진 믿음인지 의심스러울정도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믿음을 지키려는자들의 믿음의 내용이었단 말인가?' 라고 반문해 볼 정도입니다.
아니면 ...'아직 밥으로하지않고 젖으로 먹을수 밖에 없는 신앙이라서 그렇군' 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는가 라고 참담한 느낌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고...누가 이렇게 가르쳤는가?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1:5-7)

저는 김진숙 님의 리플을 읽으며 위의 말씀이 떠오르게 되는군요.

'하나님은 같으니...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지혜의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병고치는 은사를...' (고전12:8)

김진숙님의 신앙을 제대로된 믿음의 은사를 가진님으로 이해하려고해본다면
김진숙님께서는 류상태목사님의 글을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가진분으로 이해할수 있는 마음은 조금도 열리지않고 '날뛰는 악마성,사악한 눈빛.. 악마의 영으로 충만 '(님의 표현대로)을 가진자로 밖에 왜 이해될수 없을까? 정말 의아합니다.

저는 류목사님의글들이 한성령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글들로 이해하며 읽고 있습니다. 김진숙님의글도 나름대로 진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용어와 단어들은 지극히 서로의 교통을 위한 단어와 용어가 아니라 한 집단들 만이 사용하는 공통된 언어들입니다. 그 언어들은 이미 태도의 형식이 내재화한 집단의 단어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낼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독선이 되며.. 동기와 이유, 적용을 도출해 낼수 없는 자신의 경험위에 기독교 용어로 덮어씌운것이기에 더욱 위험한 강요와 독선을 낳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방언만 좋아하고
예언은 멸시하는 기독교에 잠들어 버린것 같습니다.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펼쳐보여줌' 펼칠 '예') 을 하면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불안과 깨어남을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와 성서의 용어는
몰아적인 신념체계의 언어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의 직시적인 '귀있는자는 들을찌어다'라고하는 '너희가 성서를 어떻게 읽느냐" 라고 묻는 주님의 말씀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언어이며 이해의 언어입니다.
그 현실의 직시적인 언어가 사랑으로 희망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책임과 행동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는것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에 '이상한 것' 이 되고 맙니다.

류목사께서는 이 '이상한 것'이 었던 것을 '이렇게 나타나야한다' '이렇게 되어야한다'라고 힘써 노력하며 말씀해 나가시는 분으로 그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있습니다.
리플달기
0 0
일해 (59.8.245.109)
2006-08-08 01:42:28
ㅎㅎㅎㅎㅎㅎ
김진숙님 참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

허허허허허허

그냥 웃음이 나와서요.

한국교회 보는 것 같기도 하구.
리플달기
0 0
김진숙 (211.248.181.166)
2006-08-07 15:00:03
버림받은 하나님의사람의 비애
하나님의 생명력의 기운으로 임재하사
이땅을 변화시킬 주님의몸된교회를
세움으로 소망없는 이민족가운데
생명의빛 예수그리도의 십자가의복음으로
충만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류상태님안에 악마성은 대응하면 할수록
날뛰는것같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제안에 이런마음을 주셨습니다

진숙아 너가 분노하는 그것은
하나님안에 내안에 잠재된 신성과
일치되는지 생각해보아라

귀신들린여인을 고치시며 한사람모두를 안수하신
예수님의 신성은..그안에 모든 아픔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힘 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귀신들의 메시아 라는
외침에는 입을 다물라 하셨습니다 ..^^
왜일까요..??

하나님은 귀신들과 논쟁하신역사가 없습니다
언제나 단호히 내어쫒았습니다 능력의이름
권세의이름예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권세란 내안에 있는 힘을 통해 밖에사물과현상 모든본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


생명의능력예수의이름을 무기로 삼는 사랑이의 신앙가운데
이능력을 제가믿는다면 류상태 님이랑 논쟁할 가치는 주님의 폐기처분하신것입니다 ^^
주님의능력을 볼수없는 님의 사악한 눈빛에선 주님의 종으로 세움받은
영적권위는 고사 악마의영으로 충만케된 님의모습을보면서 하나님의부르심을
값없이여김으로 치루는 대가의 위엄을 다시금 생각해보게되었습니다
리플달기
0 0
워겅이 (211.179.135.131)
2006-08-06 22:25:56
김진숙님에게
류상태님의 글과 김진숙님의 글을 5번씩 읽어 보며 느낌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류상태님의 글이 훨씬 마음에 와닿는군요.

당신의 글에는 겸손한척하는 모습속에, 짙은 교만이 드러나 있으며, 선민의식과

더불어 강한 오만과 자만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입은 사람은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줍지 않은 글귀로 마치 당신이 남들은 모르는 특별한 무엇을 알고 있기에 대단한

것처럼 말하며, 상대를 폄하하는 모습을 보니 작은 넷독자의 한사람으로

마음이 착찹할 뿐입니다. 혹 진리를 아시더라도 겸손하십시요. 그리고 그 진리를

입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요. 당신이 아는 하나님이

정말 죄인을 사랑하신다면,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정말

로 류상태님을 마치 가룟유다처럼 악마의 키스를 받은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 하나님께 류상태님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구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그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음을

믿는 신실한 성령의 사람이라면, 미워하지 마시고, 공격하지 마시고

오히려 예수님처럼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십시요.

제발 부탁입니다. 어줍지 않은 편파적인 사고는 당신을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주님의 평안이 늘 진숙님에게 함께 하시길 빌겠습니다. 진심으로....
리플달기
0 0
김진숙 (211.248.181.180)
2006-08-06 13:53:37
류상태씨에게 고한다
하나님의 성령을통해
주님을 인격적인 아바아바지라
고백한후 성령께서 제안에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마음을
잉태케하시며 주님의부르심에
반응하는 성령으로 다져진

인격과 영성을 제안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성령의 내제하심을통해
주님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을 제안아 주셨고
잃어버린 영혼들을향한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품게 하시며 그영혼들을향해 눈물짖게 하시고
실체적으로 섬길수있는 섬김의장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수족못쓰는 할아버지를 2년간 모시는 경험이있습니다

저를통해 한영혼을 구원하시는
구원사역을 제가 눈으로 보고 오감으로 체험하는
하나님의임재 객관적증거를 통해 주님을 닳아가는
은혜를 주셨고 하나님의살아계심을 조금도 주저함없이
전파할수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런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류상태님 제발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칼럼쓰실때 문자주의에 갇힌 발언은 삼가해 주시를 부탁을드립니다
류상태님의 글에는 객관적인 증거를 비판하는 내용은없고
오직 문자주의안에 갇혀 문자논쟁만을 일삼는 전직먹사님을 보면서
참 안쓰러울뿐입니다 ^^
리플달기
0 0
paulandsam (61.81.23.254)
2006-08-05 18:17:04
토마스 목사의 순교가 과연...
1866년 8월의 토마스 목사가 타고온 배는 미국 프레스턴 무역회사 소속의 제너럴셔면 호였습니다. 즉 상선입니다. 이들은 안하무인격으로 남의 땅 깊숙이 들어와서 결국 쌍방간에 무력 충돌이 빚어져 승무원들이 모두 희생됩니다. 싸우기 전에 조선에서는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음식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힘든일이죠. 이것을 순교의 씨앗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서구 제국주의가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면 동남아시아와 중남이 국가들의 처참한 역사가 우리의 역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교는 순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우리 민족에게 득이었는지 아니면 실이었는지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사실 평양대부흥 운동은 하디 선교사의 철저한 회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조선인들을 업신 여기며 잘 못한 모든 것을 회개 했을 때 그 회개에서 대부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남보다 우월하다고 설친 분의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회개한 한 사람의 겸손에 부흥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현재의 선교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제국주의시대의 모습이 아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섬김이 필요하겠지요. 어떤 목사가 이야기하기를 하나님이 이라크를 사랑하셔서 미국을 통해서 그곳을 점령하게하셨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직 많이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믿음이 결국 모두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플달기
0 0
김진숙 (211.248.181.174)
2006-08-05 16:55:12
순교의피로세운 주님의교회와 복음의진보
전쟁을통해
피를통해 하나님의뜻을 이루어 가신다는것입니다 .
기독교의피의역사 순교의역사입니다
복음은 대가를 요구합니다
물탄복음이 아니라면 ..
진정한 복음은 피와순교 희생을통해 주님의복음을
완성해가십니다 이땅에 100년전 토마스선교사의 대동강변의 순교는
개인 사적입장에선 작은 시건이지만
그 순교후 얼마후 평양에 대부흥의역사가 일어났습니다 .
이것은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사람들의 목숨을통해
자신의 복음 은결코 싸구려 이론 문자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보다 귀한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생명은 인간의대가를 요구한다는것을
보여주는것입니다
리플달기
2 10
김진숙 (211.248.181.174)
2006-08-05 16:28:30
하나님의살아계심을 만져본경험이없는 먹사를보면서.
역시나 류상태씨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이비 먹사입니다 ^^
성령을통해 생명을 경험한 기독교인들 더이상 분노하지않습니다
사랑 관용 을 그리도 외치던 류상씨안에 한국교회를 향한 분노가있다는

자체는 스스로 사탄의영을 받은 존재라 시인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믿는자안에는 사랑 관용 이라는 생명이잉태된 하나님의자녀입니다 .
이런 믿는자들에게 주시는 마음 포용하고 용납하며 모순된 그들을품고
기도하는 이러한 마음가짐과 영적권위조차 없는 먹사 류상태양반

볼수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나님의경험이 전혀없는
신앙과 그리고 증오와원망 .외엔 설명이안되는 당신이 인생을 보면
하나님을 부르는 당신의 입술은 악마가 키스한입술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통해 생명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은 문자에 휘둘리지않습니다
지상명령과 예수님의선교명령은 문자로 그시대의 조작된 문자성경으로
취부하는것은 류상태님 자유입니다 역시나 류상태씨는 먹사요 삭꾼임이 드러났습니

다 .. 성령을통하지않으면 주를 주라시인할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받은자는 하나님의마음 비전이 심겨집니다 이것은 무식한 베드로가 성령받고 예수의부활을 선포한것같은 이치입니다 단순히 무식하게 문자로 선교를 밀고나가는 기독인 이런 무식한 자들은 없습니다 ..류상태씨 스스로 먹사시절 문자주의안에 갇힌
증거에서 파생된 논리라는 생각이듭니다..

선교는 광신자들만이 하는 행위가 아닌 역사의산물이요
역사는교회를중심으로 흘러가는것입니다..^^
객관적 역사적증거앞에서 ..이세상에선증명할수없다
라는 논리는 역사공부안한 먹사 ..하나님의경험 없는 먹사 문자주의에갇혀
질식한 먹사시절의 대가인 분노와원망을 품은 그 사악한마음이 그저 한국교회성도들은 불쌍할뿐입니다
리플달기
5 9
김진숙 (211.248.181.174)
2006-08-05 16:20:51
먹사수준 류상태를보면서
역시나 류상태씨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이비 먹사입니다 ^^
성령을통해 생명을 경험한 기독교인들 더이상 분노하지않습니다
사랑 관용 을 그리도 외치던 류상씨안에 한국교회를 향한 분노가있다는

자체는 스스로 사탄의영을 받은 존재라 시인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믿는자안에는 사랑 관용 이라는 생명이잉태된 하나님의자녀입니다 .
이런 믿는자들에게 주시는 마음 포용하고 용납하며 모순된 그들을품고
기도하는 이러한 마음가짐과 영적권위조차 없는 먹사 류상태양반

볼수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나님의경험이 전햐없는
신앙과 그리고 증오와원망 .외엔 설명이안되는 당신이 인생을 보면
하나님을 부르는 당신의 입술은 악마가 키스한입술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리플달기
4 9
이 돌 (210.206.199.5)
2006-08-05 16:18:41
아래 제 대글에 류씨의 증언과 함께 한다면...
세대치님도 사이비임다~~
제가 사이비를 만나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시간낭비일뿐!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할렐루야!
만고불변의 진리!

이 구호에 대적하는 자!
누구를 막론하고 지옥불 입수!
리플달기
5 10
김진숙 (211.248.181.174)
2006-08-05 16:16:26
류상태씨의 기가막힌망언
하나님의 성령을통해 생명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은 문자에 휘둘리지않습니다
지상명령과 예수님의선교명령은 문자로 그시대의 조작된 문자성경으로
취부하는것은 류상태님 자유입니다 역시나 류상태씨는 먹사요 삭꾼임이 드러났습니다 .. 성령을통하지않으면 주를 주라시인할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받은자는 하나님의마음 비전이 심겨집니다 이것은 무식한 베드로가 성령받고 예수의부활을 선포한것같은 이치입니다 단순히 무식하게 문자로 선교를 밀고나가는 기독인 이런 무식한 자들은 없습니다 ..류상태씨 스스로 먹사시절 문자주의안에 갇힌

증거에서 파생된 논리라는 생각이듭니다
리플달기
5 10
t서대치 (220.116.42.106)
2006-08-05 15:33:03
이돌씨 당신의 생각이 그리 자신이있다면
우리 한번 만나서 대화좀 해봅시다 이곳으로 만날 장소 시간을 말씀하시면 가겠습니다 나를 만날 자신이없다면 이런 글도 올리길 삼가하시길..... 굳이한마디 결론 을 말한다면 류상태 선생이 가르키는곳에 관심을갖고 손가락끝을 가지고 중언부언 하지않으시길..... 우리나라 기독교는 철저히 망햐야만 합니다 대형교회중 90%는 먹사들부터 사라져야 할 인간들이지요 만나서 이바구 합시다
리플달기
3 10
이 돌 (210.206.199.5)
2006-08-05 12:56:06
사이비이단 발언의 류씨....
[한국의 기독교인 중에는 지옥갈 것이 두려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공갈협박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잖은 말이 통하겠는가. 내가 “그런 식의 신앙은 사랑의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신성모독죄를 저지르는 짓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상 이런 주장대로라면 한국교인들 다 지옥간다.
왜 예수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다 신성모독죄니 어찌 천국 입성을 바라겠는가?
참 한심도 정도가 있지 이런 류씨가 그리스도인 이겠는가!
사이비지....
리플달기
7 1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