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늙어가면 갈수록 점점 잔소리하기는 좋아해도

잔소리 듣기는 싫어한다.  나이 텃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잔소리에서 해방’을  외쳐온  나도  아직 그  예외는 아니다.

 잔소리 만큼은 되로 받으면  말로 꼭 갚으려 든다.

그런  내가 만날 때마다  한 마디  댓꾸도  제대로 못하고  두  손을 들고

일방적으로 완폐를  당하는 한 절대적  존재가  있다.

그녀는 나의 대학후배의  부인이자 담당 칫과 의사인  닥터 C 다.

나는 여지껏 2 개의 크라운 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강건한 치아의 소유자다.

그동안 내가 그녀를 만나는 횟수는 매 3개월에서 매 6 개월로 늘어났다가 ,

 저번 달에는  매 4 개월로 하향  조정되었다.  그녀의 의학적 판단에서 내린

일방적인 결정이다.  

그녀는 내가 싫어하는  ‘잔소리’ 라는 단어 대신  가끔 꿈을 꿀 정도로

증오하고 있는   ‘숙제” 라는 단어로  나를 초장에 제압한다.

“이번에도 숙제을 제대로 안하셨군요.”   아니면  “ 이번에는 제법 숙제에 신경을

쓰셨군요.”  그게  그녀가 매번  나의 입안을 들여보자마자  걷내는 첫마디 인사다.

그래서 칫과 약속날이 가까워 오면 나는 번쩍  긴장을 하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거울 앞에서 칫솔질을 하며 숙제에 대비한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는 옛 슬픈 속담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숙제는 기를 쓰고 증오했다.

국민학교 시절 여름방학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방학숙제 책 한 권씩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매일 숙제를 잊지말고   꼬박꼬박하라고

신신 당부를 하곤 했었다.  나는 그 숙제 책을 방학내내 보이지 않는 방구석에

팽게쳐 두었다가  방학 마지막날 헐레벌떡 당일치기로 끝내곤 했었다.

문제는 매일 매일 날씨와 그날에  한 일들 간단히  기록해야 하는  일기였다.

머릿 속에 어슴프레 남아있는 기억력과  위대한 나의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채우는 요령외에  별다른 뾰족한 묘수가  없었다. 천만행으로  국민학교  6년 동안

매일  날씨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처벌을 받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탁터 C  앞에서는  그런 술수나 거짓말이 통할리가 없다.

내 치아 상태가  그 진실을 스스로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내가 사용하는 유일한  병법은  “무언이 최선의 정책이다.” 이다.

나는 하와이에 16년간 혼자서 살고 있는 케롤을 인테넷 결혼 메체인  ‘E- HARMONY. COM ‘ 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어 결혼을 했다.  을찌년스런한 겨울날  저녁이었다

매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가엽게 지켜보고 있던

고등학교 동기 동창생 Mr. Lee가  그 때까지  난 이름도 모르고 있는  E- AHRMONY. COM  웹싸이트에

사진도 없이 나를 등제했다.

수십 페이지에  가까운  개인 신상명세와  배우자에게 바라는  요구서에 나는

 ‘지역은 지구 전체’,  ‘구하는 배우자의 성격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즐기는 사람’ 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간단하게 기제했다.

그리고 나서  몇주 후  CAROL 과  연결이 되었고  몇 차례의   E- HARMONY. COM  웹사이트를

통해서  이맬교환을 거친 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E- HARMONY. COM  이 제공하는  제한된 전화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케롤은 전화통화가 시작되자 말자   다짜고짜  영어로

 “ Hi, Bill ! 당신은 돈을 벌기위해서 거짓말을 해 본적이  있습니까? “ 하고 물었다.

(케롤은 6살 때 미국에 이민 온 탓으로 한국어가 서투름).

예상치 못했던 너무 뜻밖의  질문이라서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대답할까 를 두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솔직히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수차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기가 죽은 목소리로 얼머무렸다.

‘일어나야 할 일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고

만나야할 인연은 언젠가 반드시 만나고 만다.’

(케롤도 한 친구가  재미삼아  E- HARMONY. COM 에 등제했다고 한다)

그 후 우리들은 상대에 대한 더 이상의 조건이나 요구 사항이 없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비교적 잘  살아오고 있다.

( 좀 우수운 이야기지만 케롤은 내가 졸업한 서울대학을 한국에 있는

Community College 로  알고 있다가 몇 년 후에 한국 교회에 나가고 있는

처제의 “Bill 이 무슨 대학을 나왔느냐?” 는 질문에 Seoul Community College 을 졸업한 것

같다고 대답했고,  그 대학이 한국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명문대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장모님은   E- HARMONY. COM 을 이씨 성을 가진   할머니로 착각을 하고

중매를 한 고마운 이  할머니에게  큰 선물을 하라고 케롤에게 여러차례 당부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그때 케롤의 첫 질문이

“당신은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 숙제를 하면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 앞이 캄캄해 진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고 은혜일 뿐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칫과 방문에서 이빨청소가 대충 마무리될 무렵에

닥터 C가 “ 박 선생님, 아무래도 치아 건강을 위해 사랑니들을 모두 뽑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명령조로 말했다.  

“내 사랑니가  몇개나 되는데요? “ 하고 물었다.

“양쪽 모두 합해서  4개입니다.”

“그래요. 모든 인간들이 사랑니를 4개씩 가지고 있습니까?”

“ 아닙니다. 사랑니의 숫자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나는 2개를 가지고 있고,

내 남편은 한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니가 아예 없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한국사람들은 그 이름을 사랑니라고 부릅니까?

서양인들은  지혜니(Wisdom tooth) 라고 부르던데….?”

“그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걸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신의 창조물은 100%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논리로라면  신도 4개의 사랑니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

………………….

“저는 그런 것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의학적인 관점에서

 사랑니들 사이에 음식 찍거기들이  끼어  청소하기가 어려워 썩기도 하고

사랑니 뿌리들이  주변니들에게 손상을 주기 때문에  치아건강상 사랑니들을

뽑은 것이 좋습니다. “

“ 나는 이 우주에 신이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았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들 생각에  필요없는 듯한 하찮은  존재들의 도움으로

필요한 것들의 유용성을 창조해 내는 것이  신의 신비한  창조원리지요.

그리고 신은 가장 소중한 것들일 수록  찾기가 쉬운 가장 가까운 곳에

은밀하게 숨겨두었지요.

어리석은 인간들이 가까운 곳에서 찾지 않고  먼곳에서 찾아서 그렇지.

쉬운 예를 들자면  신은 사랑을 가장 가까운 인간들  가슴 속에 숨겨두었지요.”

“ 탁터 C!  만약 사랑니가  조금이라고  사랑과  관계가있다면 나는 사랑니들을

뽑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빨들이 없이 불편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사랑이 없이 살 자신이 없습니다. “

그 말을 탁터 C 에게 떨구고  집에 돌아와서 급히  인테넷을 검색해 보았다.

“사랑니 수는 진화와 관련이 있다’ 는 일부  주장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나는 진화를 멈추고  원시인들의 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좋다.  진화되지 않은 원시인의 뜨거운 가슴과 싱싱한

사랑의 감정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수만  있다면…..

05/21/2017 저녁 메모

버지니아 숲속에서

해암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