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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힐링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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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5월 19일 (금) 23:56:14 [조회수 : 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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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말한 적이 있다. 진정한 희생과 삶의 변화 없이 쉽디 쉬운 죄의 용서를 남발하며 시장의 세일품목처럼 은혜를 뿌려대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값비싼 은혜를 얼마나 값싼 것으로 만들어버렸는가에 대한 비판이었다. ‘소통’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모든 주제와 제목에 유행처럼 딸려 있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보며 자신은 죽음으로까지 그리스도의 값비싼 은혜를 지키려 했던 본회퍼의 말을 생각해본다. 이것이야말로 값싼 힐링이라 불려 마땅한 남발이 아닌가.

치유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며칠 전 TV에서 보았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완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발되고 왜곡되고 폄훼되어 왔던 광주 5.18은 새로운 정부와 함께 비로소 광주가 지켜냈던 민주주의 정신을 재확인하는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행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5.18을 생일로 둔 여인이 딸이 태어난 것을 보고자 광주로 들어왔다가 사흘 만에 집에서 총탄을 맞아 숨진 자신의 아버지를 기리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어머니는 행복하게 살아계시지 않았을까 눈물을 흘리며 말하던 여인이 추모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갈 때, 대통령은 그녀를 뒤쫓아 가 그녀를 안아주고 함께 울었다. 미리 연출됐을 리 없는 이 장면은 보는 사람 모두의 눈시울을 적셨다. 안겨 있던 여인은 대통령의 품에서 서럽게 엉엉 울어댔다. 나중에 그녀는 마치 우리 아빠 같았다고 그때의 소감을 전했다.

그녀의 나이는 정확히 37세다. 광주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7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37년이나 지났는데도 많은 유가족 참석자들은 행사 내내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치유는 여전히 요원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국가에 의해 살해당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은 37년 동안 그녀를 괴롭히고 짓눌렀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여인은 아버지를 죽였던 국가로부터 진심으로 사죄를 받고 위로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제야 비로소 감히 치유를 말할 수 있으리라.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영화는 어떤 종류의 아픔에 있어서는 힐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 심지어 감히 그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받아들이는 것조차 얼마나 저어되고 힘이 들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광주의 아픔을 그려낸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처럼, 담담함이 전해주는 소리 없는 비통을 영화는 가장 역설적인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보여준다. 누가 과연 그 상처 받은 남자에게 위로 받으라고 감히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나 쉽고 값싼 힐링 무더기에 둘러싸여 산다. 힐링의 유행 시대. 유감스럽게도 교회 역시 그다지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값싼 은혜처럼 교회가 힐링마저 값싸게 남발해버린다면 과연 상처 받은 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하나님을 ‘치료자’라 칭한 성서의 의미가 지금 새롭다. 진정한 치유는 누구나 쉽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사실. 어쩌면 이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고백만으로도 값싼 힐링의 대열풍은 다소 수그러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출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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