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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인가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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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5월 14일 (일) 16:11:28
최종편집 : 2017년 05월 16일 (화) 15:28:52 [조회수 :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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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과 크리스천 개개인의 신앙고백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인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들

사도신경을 십계명이나 주기도문과 거의 같은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계의 일반적인 경향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사도들이 직접 작성한 것, 열두 사도가 한 절씩 쓴 것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한데 사실이 그러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새기셨고,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치셨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성경 어디를 뒤져 봐도 있지 않다. 이리 말하면 성경 내용을 요약한 것이니 성경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항변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 했는데, 아니지 않은가.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려 하지 않고, 오리려 살리려 애를 썼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자신에게 닥칠 피해가 두려워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관철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예수를 죽인 것은 오히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같은 공회의 구성원으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빌라도 치하에, 그러니까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었을 때에 된 일이니 그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고, 사실 그 같은 내용이 포함된 사도신경도 있으나, 어떻다 해도 납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으셨다고 하면 끝날 일인데 왜 그리 구차한 사족까지 붙여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사도신경의 시작에 대해서도 구구한 설이 있지만, 처음에 세례문답용으로 쓰기 위해 만든 것을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사도들이 만든 그들의 신앙고백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경(信經)’이란 사회 일반에선 쓰는 일이 없는 기독교 용어인데, 교회들이 ‘신앙고백’과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경(經)’은 ‘성경’이라든가 ‘불경’처럼 종교의 경전을 말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지금 적절치 않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도’라는 말까지 붙여 사실과 전혀 다른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시정해야 할 일이다.

또 하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뜻도 모른 채 암송하는 것으로 끝내고 마는 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인데, 이게 무속신앙에서 주문을 외우는 것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를 일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의 ‘죽은 자’,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의 ‘저리로서’, ‘거룩한 공회와’의 ‘공회’와 같은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교인이 과연 몇%나 될 것인가. 우리는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 각자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신경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럴 시간을 따로 마련하기 어렵거든 이에 대한 강해설교라도 해서 교인들이 뜻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신앙을 고백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처럼 잘못된 표현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교회들이 많은데, 이 또한 문제이다. 이를 어법에 따라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잉태한 것이 되고, ‘~에게 낳다’는 표현도 바른 게 되지 못한다.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에는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 되어 있는데, 하다못해 이 번역으로라도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신앙의 색깔이 신자마다 다 다른데 신앙고백은 같을 수 있는가

사실 필자는 믿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신앙고백을 사도신경으로 통일해서 해야 한다는 데에 선뜻 공감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사람의 생김새가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모두 다르듯이 신앙의 색깔(colour) 또한 다 다른데, 어떻게 그런 그들에게 일률적인 신앙고백을 기대할 수 있는가. 사도신경을 공적인 신앙고백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필자 또한 그에 아니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에 신앙상의 비중을 너무 크게 두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배의 초반에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 싫어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교인들로서는 강요를 당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셨다고 거짓 고백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자는 사도신경을 성경교리의 축소판이라 하기도 하고, 교회가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하기도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 준다고도 하는데, 우리를 지켜 주는 것은 그 짤막한 사도신경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말씀의 정신이다.

사도신경을 신앙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정통교회이지만 그러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는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인의 신분증이라고까지 억지를 부리기도 하는데, 기독교를 패망으로 몰아넣자는 것인가.

사도신경의 문제점들이 재인식되기 시작하자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실제로 자체적인 신앙고백을 만들어 쓰는 교회도 있는데, 왜 그래야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신앙은 신자 개개인의 가슴 깊은 데에서 우러나온 그대로를 고백해야 하는 것이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일률적으로 암송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내 신앙을 왜 남의 신앙으로 고백해야 하나

필자에게는 나만의 신앙고백이 있다. 사도신경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사도신경과 그로인한 맹점을 말해 왔으나,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세기를 넘고 넘은 장구한 세월을 통해 정착되어 온 전통이니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도 좋은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자의 신앙고백을 소개해 본다. 이유는 달리 없다. 신자 각자가 하나님께 자기만의 신앙에 따른 고백을 드릴 것을 권하고자 하는 것 말고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내용에 다른 사람의 동의 같은 것을 구할 생각도 없다. 조언에 타당성이 인정된다면 수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기에 소개한 필자의 신앙고백을 최선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능하시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만인을 사랑하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주재하시다가 이 세상 마지막 날 우리를 영접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만인을 사랑하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셨습니다”는 사도신경에 없는 것인데, 삽입한 내용이다. 그분의 ‘사랑’과 ‘복음 선포 및 전파’는 신앙고백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삽입한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는 삭제하고 “세상 죄를 다 지시고”를 삽입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를 간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는 성경에 있는 말씀이지만 삭제했다. 이 말씀만을 떼어 놓고 생각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가운데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사실과 다르게 멀리 떨어진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편안히 쉬고 계시는 것으로 느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에 따라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주재하시다가”를 삽입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도 성경적이지만 삭제했는데, 필자는 “이 세상 마지막 날 우리를 영접하여 주”시리라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심판을 앞두고 있다면 크든 작든 불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신학적 설명이 필요하지만, 문장만으로는 그렇다.

70대 중반인 필자는 하나님께서 언제 데려가셔도 좋다고 하는 느긋함이 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없다보니 그게 오히려 신앙적이지 못한 것 같아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게 해 주시라고 기도할 정도이다. 구원의 조건인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다. 좋은 믿음을 가지려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믿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 주님, 나의 주님께서 영접해 주시라는 것을 믿어 조금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성령을 믿사오며” 이후는 “거룩한 공회와”의 ‘공회’를 ‘교회’로 바꾼 것 말고는 사도신경 그대로이다. 여기에서의 ‘공회’는 전술한대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한 ‘공회’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 우리의 교회들이 ‘거룩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기도 하다.

 

마치며

지금까지 사도신경에 대한 필자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끝으로 사실과 다른 명칭만이라도 우선적으로 고쳐져야 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도 거짓이니 삭제하거나 사실에 부합하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만은 강조하고 싶다. 차제에 사도신경을 예배 순서에 넣음으로 해서 교인 모두의 신앙고백으로 강요하는 것을 지속해도 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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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 (182.XXX.XXX.73)
2017-05-21 00:11:08
사도신경은 성경에도 없으며 사도들이 만들었다는 근거가 전혀 없으며
사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인 카톡릭교회에서
만든 가짜입니다.
그런대도 현 모든교회에서 중 염불 하듯이 뜻도 모르고
중언부언하고 강요되고 쇠뇌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거기다가
종교이단 연구가인 탁**씨에 의하면 교회가 사도신경을 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규정하다니 한국의 교회가 왜이리도 어리숙할까요?
참으로 참담하고 우리교회는 예배시간마다 염불하고 하고 있으니
저희는 예배를 드릴때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합니다.
교회목사들은 성경 지식없나요?
저는 물리학 석사이지만 몇 글자 내용을 보면 뭐가 문제인가를
알 수 있는데
한국교회는 언제 성경대로 돌아올찌 주일만 되면 온갖 비성경적인
설교를하고 인터넷에 심지어 돌아다니는 설교도 목사에게 허락 맞고 들으라고하고 마치 자기교회이외는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우리 교회
왜이러지요?.
물론가짜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는 성도라고 염려 하지만
성도들은 진짜와 가찌를 구분한답니다.
교회발전을 위한 권면을 하면 사이비 이단의 신천지사주라고 단정
하는 희안안 명분이라는 꺼리 찾기, 왜 이러나요?
요즘 교회보면 신천지 명분을 내세워 교회를 향한 옳은 말을 하면
이단으로 규정짓는 잣대...
우리 한국교회는 저희가 봐도 너무 타락했어요.
더이상 손을 되지 못할 정도로 도를 넘었는것 같아요.
모두가 옳고 그름의 상황판단을 못하는것 같아요.
주여!......
목사들이 성경의 진실된 본질을 너무 훼손시켜 전도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복타령, 돈강요, 알지못하는 방언주문, 새벽기도강요(피곤한 직장인들은 잠은..), 목사의축복권 저주권 운운, 교회성물, 점쟁이, 결산을 포기한 재정 운영, 아멘강요, 설교문 원고 그대로 읽는것, 예배시간 세상이야기하는
설교, 아는 성도는 다아는데 목사들만의 무지함,.........
어떻게 하자고 하는건지 너무너무 참단합니다
리플달기
0 0
박선 (117.XXX.XXX.30)
2017-05-17 08:54:16
사도신경의 현실적 의미는 한마디로 타락한 교권이 평신도를 지배,
억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사도신경을 거부하여
암송하지 않는 교인과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리플달기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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