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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의 자식들에 대한 소고
박창진  |  5016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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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5월 12일 (금) 09:25:31
최종편집 : 2017년 05월 12일 (금) 15:48:51 [조회수 :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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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초대교회 당시의 은사직으로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와 교사를 말씀했다. 개혁주의에선 앞의 셋을 창설직으로 본다. 교회 초창기에 하나님께세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고 그 이후엔 없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동의한다.

목자와 교사는 한 관사에 함께 쓰인 것인데, 개혁주의에선 한 은사로 본다. 기능적으로 구분한. 목사는 돌봄, 교사는 가르침의 기능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합쳐서 개혁주의에선 목사로 부른다. 장로, (안수)집사와 함께 항존직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은사직이라는 것이다. 나는 동의한다.

성경에 목사라는 단어가 없다고 목사직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목사는 목자와 교사의 합성어로서 성경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목사는 교회를 말씀 위에 바르고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직이다. 그런데 현실은 목사 앞에 타이틀이 붙는다. 장로교 목사, 감리교 목사, 성결교 목사 등이다.

이러한 표현에서 어느 것이 더 가치가 높은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인가? 아니면 목사인가? 당연히 목사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인 듯하다. 성경의 가르침과 각 교단의 가르침이 상충할 때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교단의 가르침을 선택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기 교단의 신학 지킴이를 자처한다.

거기에다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 많은 목사들이 과도한 반공에 편향되어 수구화되어 있다. 보수가 아니라 수구인 것이다. 홍준표와 같은 이를 지지한다.

예수님 당대에 예수님께 독사의 자식이라는 책망을 들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선조들의 신학 성향을 열성적으로 따랐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났을 때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들이 윤리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진술은 없다. 그 시점의 윤리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보인다.

그 선언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다. 그 선언에 해당되는 이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인 언약의 백성이다. 그 선언은 그들의 현재 삶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조상들의 신학 성향을 열성적으로 따르면서 현재 자신들 앞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는 모습으로 인한 것이다.

그 모습은 과거로만 국한되는 것일까? 바울 사도는 출애굽 후의 광야생활에서 여러 형태의 범죄로 멸망한 이들이 교회에 본보기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책망도 과거로만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 이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윤리라는 면과는 무관하게.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외치신다고 가정해보자. 마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따르면 그렇다. 약자, 가난한 자, 고통 겪는 자로 오시는 것이다. 진리를 말하는 자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말하는 악자, 진리를 말하여 가난한 자, 진리를 말함으로 고통 겪는 자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오시는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서 영접받을 수도 있고 배척당할 수도 있다. 진리에 대한 생각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토론되느냐 아니면 무시되거나 차단당하느냐에 의해서.

기성 교회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사인가 아니면 루터나 칼뱅 또는 알미니우스나 웨슬리의 종으로서 목사인가를 진지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 독사의 자식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심각하게 재고하는 것이다.

독사의 자식이라는 예수님의 평가는 과거에만 가능했던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원리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실적인 평가이다. 윤리적 문제와는 별개로. 윤리적인 문제없이 교단의 관점과 정책을 따라 성실하게 사역하는 것으로 나는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인가 아니면 루터나 칼뱅이나 알미니우스나 웨슬리의 종인 루터교 목사, 장로교 목사, 감리교 목사, 성결교 목사인가?

현실적으로 교단의 타이틀이 목사 앞에 붙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되는 교단 신학이나 정책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따르는 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목사들이 진지하게 그 내용을 묵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평가와 결정 그리고 그 후에 행동이 뒤따르기를 바란다. 목사가 아닌 성도들도 이 글의 내용을 잘 분별하여 방향을 바르게 잡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현실 안주와 맹종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지금의 선택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의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영원한 구원은 지금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 선택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의지하는 것 곧 믿음이냐 아니냐 곧 믿지 않는 것이냐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목사들의 관계, 교제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어떠함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게 하는 글 삭제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옳은 행동인가? 나는 내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 수긍이 되면서도 아무 말을 히지 않는 목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이다. 그 침묵은 결국 동조가 된다. 불의한 행동은 그 침묵을 먹고 힘을 얻고 지속된다. 바뀌어야 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뀌지 않고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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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16.XXX.XXX.244)
2017-05-19 01:33:51
침묵하는 게 아니라 무관심할 뿐
박창진은
<기성 교회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사인가 아니면 루터나 칼뱅 또는 알미니우스나 웨슬리의 종으로서 목사인가를 진지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 독사의 자식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심각하게 재고하는 것이다.

독사의 자식이라는 예수님의 평가는 과거에만 가능했던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원리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실적인 평가이다.>
라고 말하므로써
기성교회목사 = 독사의 자식 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 이유가 단지 기성교회목사 = 독사의 자식 = 루터나 칼뱅 또는 알미니우스나 웨슬리의 종 이기 때문이라구?
그 말은 논리적으로는 독사 = 루터 = 칼뱅 = 알미니우스 = 웨슬리 가 되는 줄 아는가?
왜 루터 = 칼뱅 = 알미니우스 = 웨슬리 = 예수님의 제자들 이라고 생각지 못하는가? 그들의 신학이 예수님을 더 잘 알아가는 과정에 만들어진 것인데.

무조건 무식하면 장땡이겠네?

신학이 정말 우습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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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 (122.XXX.XXX.192)
2017-05-18 12:05:27
열성적인 당시의 유대교인들은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그 복음의 진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일면 그들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죠.

더 나아가서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의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시지 않는가요? 대부분 동일하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실상 아주 다르죠. 구약의 하나님이 아버지 같은 하나님이라면, 신약의 하나님은 어머니 같은 하나님 아닌가요?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예수는 그 차이와 인간의 한계를 알았겠죠. 그러면서도 유대인들을 저주한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한계였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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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파 (182.XXX.XXX.42)
2017-05-13 22:13:28
박창진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연락처를 남겨 주시든지 전화를 주십시오.
글에 많이 공감합니다.제 전화는 010 8209 6533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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