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쪽 사람들은 국가안보가 무슨 자기들만의 전유물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며 진보 쪽 사람들을 그 소중한 국가안보를 해치는 무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매국적 행위자들을 응징하듯 몰아붙이길 서슴지 않는다.

저들은 진보 쪽을 가리켜 종북세력, 또는 좌빨이라며 상대방을 향해 붉은색 물감을 끼얹는다. 그러다가 선거 때가 되면 그 기세를 한껏 드높인다. 색깔논쟁으로 사실을 호도하여 표를 얻어 보겠다는 심산이다.

저들은 색깔논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북풍’을 이용하길 주저치 않는다.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하는데, 저들이 이용하는 그것은 자기들이 남쪽에서 만들어 불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수를 헤아리자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 발가락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지만, 87년 대선 전날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과 9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우리 측이 북측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소위 총풍사건이 이의 실체를 과감 없이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과정에서도 어김없이 그 지긋지긋한 북풍이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주적’논란을 일으키더니 그에 이어 문재인 후보를 향해 2007년 UN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 과정에서 ‘북한에 반응을 물어보자’ 했는데, 그 책임을 지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의 진원지는 보수 쪽이 아니다. 참여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씨가 2016년에 발간한 회고록이 그 진원지이다. 그는 그도 모자라 대선을 불과 18일 앞둔 어제 (21일), 이 일로 자기를 공격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반박한 문재인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청와대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문재인이 해당 내용을 부인하여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개 시점이 왜 지금인가. 투표일을 18일 앞두었다면 선거에 영향을 주기에 딱 좋은 시기인데, 참으로 절묘한 시점이 아닌가. 물론 거짓말은 인격에 크나큰 타격을 준다. 그러니 인격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오해를 못 견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한 인격자는 무엇인가의 일에 때와 장소를 가리는 지혜도 갖는다. 무엇보다 인격은 자기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있는 것이고, 자기의 인격이 소중하면 남의 그것도 소중한 것이다.

인격의 손상에 반사적으로 발끈한다면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참았어야 했다. 문재인이 지난 대선에서 왜 떨어졌는가. 결국 거짓으로 판명된 NLL 녹취록 파동으로 입은 타격이 컸다. 그때 보수 측에서 그런 거짓 폭로만 하지 않았다면 박-최의 국정농단과 같은 불행과 그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으로 수모를 당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참았다가 문재인이 당선되든 낙선되든 선거가 끝나고 공개했다면 그의 인격은 더욱 빛이 나는 게 아닐까 싶다. 옳고 그름에 내 편 네 편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에게 있어 문재인은 참여정부에서 같이 힘을 모아 일했던 사람이 아닌가. 더구나 ‘북풍’이라면 NLL 거짓 폭로 사건이 떠올라 경기라도 일으킬 지경인 문재인이 아닌가 말이다.

다른 후보들 또한 아무리 표가 욕심난다 해도, 선두주자의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의혹을 마치 확인이라도 된 것인 양 다 같이 달려들어 물고 뜯는 것은 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서의 할 일은 아닌 듯싶다. 국가안보를 득표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그 소중한 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만다는 사실을 모두가 같이 명심할 일이다.

색깔논쟁,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수는 애국자요, 진보는 매국노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진보는 합리적인 사고의 집단인데 보수는 꼴통이랄 수도 없다. 양자는 모두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이념을 주축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

북에서 핵 공격 징후가 발견되면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고 하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 안보에 철저한 한 것이고, 선제타격 같은 전면전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를 지닌 행위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유연성을 견지하면 안보를 등한히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선제타격 같은 강경한 견해가 강도를 더하다 보면 결국은 군사력이 우위인 우리가 먼저 전면전을 일으킴으로 북을 초토화하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 호전적 광기로 변질될 수도 있다.

“노루 친 막대기 삼년 우려먹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색깔논쟁이나 이념논쟁 같은 묵고 묵어 고루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슈는 이제 그만 좀 우려먹고 폐기물하치장으로나 보냈으면 한다. 이번 같은 진위확인이 어려워 소모적이고 과거회귀적인 논쟁은 국가안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나라의 안녕을 해치고 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안보를 놓고 정 싸우고 싶거든 대북정책의 포괄적인 방향을 어떻게 잡고, 지금 우리에게 처한 북의 핵 위기를 포함한 어지럽게 헝클어진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의 방향을 놓고 싸우는 게 옳다.

그럼에도 “대선구도가 탄핵대선에서 안보대선으로 프레임이 바뀌었다”며 이념논쟁과 색깔논쟁으로 선거판을 혼탁케 하여 득을 보려 하기도 하는데, 안될 일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번 선거가 왜 조기대선으로 치러지게 되었는가를. 박-최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탄핵이 있었고, 그 때문에 대선을 앞당겨 치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저처럼 선거 판도에 안보라는 명목을 붙여 색깔과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이들이 있음을 간과했다가는 이번과 같은 조기 대선을 또 다시 치러야 할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