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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생각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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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4월 19일 (수) 07:43:27 [조회수 :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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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당선된 대선에서는 아직도 개표조작 부정의 논란이 가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명박은 노무현 정권이 치른 선거에서 박근혜와 달리 공정하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었다. 당시 국민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그에게서 돈 냄새가 났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현실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환각이었을 뿐이다. 이명박은 무비판적인 대중들을 상대로 환각제를 무제한 살포했고 국민들은 이명박이 건 최면에 걸렸었다.

최면에서 간신히 깨어난 국민들 가운데는 또 다시 신기루를 찾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 때 나타난 것이 안철수이었다. 그렇게 등장한 안철수가 상한가를 치던 무렵, 대중은 안철수에게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명박식 성공신화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갖추고 덕성과 인간미까지를 겸비한 고상한 성공신화를 찾았다. 안철수가 마치 메시아처럼 순간적으로 한국 땅에 강림(?) 했을 때 나는 신약 성서의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는 구절이 생각났었다.

그는 박원순에게 서울 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5병 2어 비스름한 기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예수가 속히 돌아오지 않자 재림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지듯이 안철수에 대한 큰 기대 속에서 안철수는 대선 전날 미국으로 승천 하셨다가 다시 조선 땅에 재림 했다.

대중들은 ‘안철수가 정치를 하면 잘 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안철수가 제공하는 판타지는 그가 정치를 하면 기존 정치에서 실험되지 않았던, 기존정치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발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는 ‘새정치’라는 요령을 흔들어 계속 국민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여당과 싸우라고 했더니 야권을 들어가서 싸움만 하더니 결국은 야권을 분열 시키고 마침내는 전통 야당을 무너트리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게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인가? 한 때 신기루처럼 나타나 변화와 개혁의 상징처럼 떠 올랐던 인물이 보수와 기득권의 대표주자가 되다니? 안철수가 보수 후보가 되어 개혁과 진보의 장애물이 되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닌가? 그저 ‘보수층이 지지할 적당한 후보가 없어서’ 라는 애매한 답변 밖에는 어떤 정치 이론이나 논리로도 설명이 충분치 않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대선에서 과학 기술자 출신 안철수는 '4차 혁명'이라는 주술로 국민들에게 최면을 걸려 하고 있다. 안철수는 나스닥으로 상징되는 첨단 기술을 통한 자본주의 시장 성장과 함께 자란 사람이다. 안철수는 자신이 숨 쉬고 자란 그 환경에 의하여 실제 이상으로 과도 평가되었으나 유투브에서 보면 안철수에 대하여 비판하는 영상만 가득한 것을 보니 이제 바로 그 환경에 의하여 실제의 모습이 들어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제 안철수가 무릎 팍 도사에 나타나서 걸었던 최면에 걸렸던 사람들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할 것 같다.

웅변학원을 열심히 다닌 티가 역력히 들어나던 안철수 어린이가 대선 후보토론회에서는 “좌파냐? 우파냐?”의 질문을 받고 “상식파”라고 대답을 해서 재롱을 부렸다. 상식의 반대는 몰상식인데 정치권에는 좌파와 우파 대신 상식파와 몰상식파가 있는지 몰랐다.

인간은 둘만 살아도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규칙을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형성 되는 것이므로. 어려운 말로 체제내적인 규범의 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커질수록 더 복잡한 규범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규범은 사회가 클수록 거창하면서도 모호하면서도 무난한 것이 필요해진다. 세계 최고로 멋있었던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연설 할 때 마다 멋 떨어진 말을 하지 않던가? 그런 규범은 진짜로 실행할 수 없을 때에만 간판으로 장식의 가치를 가진다. 예를 들면 대학에 “정의, 진리, 자유”등의 모토를 걸어 놓는 것이다. '정의. 진리, 자유'는 무슨 오뉴월에 얼어 죽을 소리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전두환의 ‘정의사회 구현’ 이 모두 같은 이야기였다. 사회가 커지면 그 사회를 유지할 만큼 큰 거짓말이 필요하다..

종교가 수행하는 역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기능이다. 서구 사회의 발전 단계에 체제내적인 규범의 원칙으로서 기독교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다. 마치 동양사회에서 유교가 수행했던 역할처럼. 어느 사회, 어느 체제를 막론하고 항상 이런 거짓 때문에 이익을 보는 자들이 힘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느 조직이든 ‘내부 고발자’가 제일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세상의 내부 고발자’이었다. 이 땅의 질서에 만족하는 자들에게는 다른 질서를 말하는 예수는 바로 세상을 소란케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번에 순실 정국에서 보는 것처럼 세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언제나 영원하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내부고발자의 시선을 가져야만 한다.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수 후보로서 변신한 안철수가 당선이 된다면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체제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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