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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김재규복권인가?-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계선  |  628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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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4월 17일 (월) 23:38:43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0:49:33 [조회수 :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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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김재규복권인가?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5월 24일이 오면 경기도 광주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김재규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김재규는 1980년 5월 24일에 처형당했다.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김재규를 추모하러 오는 것이다. 전라도 광주에서는 송죽회(松竹會)회원들이 버스 두 대를 끌고 경기도 광주로 올라온다. 광주끼리는 서로 통하는 모양이다.

“10.26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도 단체로 온다. 귀에 익은 이름들이 많다.

공동대표: 박민기회장 이돈명변호사 유현석변호사 김승훈신부 청화스님 김현교무 김상근목사

집행위원: 강신옥변호사 함세웅신부 효림스님 이정택교무 이해학목사

집행위원장: 김범태

 외로운 길손처럼 홀로 찾아오는 이가 있다. 1980년 무덤이 생긴이래 한해도 거른적이 없는 단골이다. 김재규장군 변호에 고군분투했던 안동일 변호사다. 안동일은 새벽같이 달려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장군의 무덤위로 태양이 떠오르면 안동일은 장미 한송이를 들고 “아침이슬”을 노래한다.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 대학시절 데모 하면서 길거리에서 참 많이 불렀었지! 그런데 지금 70노인이 되어 김재규의 무덤 앞에서 부르는 것이다.


“1.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2.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노변호사의 눈가에 아침이슬이 반짝인다. 무덤가에 핀 빨간 철쭉들도 아침이슬을 먹고 눈물을 흘린다. 안동일은 올적마다 가슴 아프다. 오늘은 더 아프다. 오늘이2013년 기일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 무슨일이 있기에 그럴까? 노래를 끝낸 안동일은 장미송이를 무덤에 바친다. 그리고 정종을 꺼낸다. 김재규와 대작하려는 듯 가득하게 두잔 술을 따른다.

“장군, 잔 받으시오”

한잔은 무덤에 뿌리고 한잔은 들이마신다. 연거푸 따르고 연거푸 마신다.

“한잔 한잔 또한잔 석잔이 한잔/ 아홉잔도 또한잔 한잔 술따네...”

공초(空草)오상순의 권주가를 읊조리면서 술을 따르던 안동일은 드디어 김재규를 부르면서 통곡한다.

“의사 김재규장군님,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어요. 독재자를 제거한 장군은 대역무도의 누명을 벗지 못한채 무덤에 묻혀있는데 독재자의 딸은 대통령이 됐단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가슴이 아픕니다.

장군께서 궁정동의 총성을 쏘아올린지도 어언 33년이 지나갔습니다. 세상은 강산처럼 변하여 조국은 민주화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박정희가 아니면 금방 나라가 망할줄 알았지요. 민주주의 하면 나라가 결단날줄 알았지요. 그래서 박정희가 독재해야 한다고 유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었어도 조국은 멀쩡합니다. 민주주의 하고 있어도 조국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장군을 사형에 처하고 대통령이 됐던 전두환 노태우는 감옥을 거쳐 지금 역사의 죄인으로 숨어살고 있습니다.

‘역사바로세우기‘ ’과거사진상조사‘ 바람을 타고 제주도 좌익폭동도 인정을 받고, 지리산 공비들도 ‘태백산맥’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빨갱이로 몰려 처형당한 인혁당사형수들도 민주인사로 복권되어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민주화의 물꼬를 트고 돌아가신 장군은 아직도 대역무도의 죄인으로 남아있으니!

아! 이건 장군에 대한 예우가 아닌데....

장군의 저격이 없었더라면 조국은 지금도 박정희 일인독재국가로 신음하고 있을겁니다. 10년 독재자는 영구독재하기 마련이요 타락한 독재자는 죽을때까지 독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장군의 복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민운동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군과 부하들의 묘를 고향 선산에 6인묘로 이장하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아! 김재규장군님....“

김재규의 무덤에 술을 따르면서 횡설수설하던 안동일은 무덤앞에 고꾸라져 버렸다. 5월의 따사한 아침 햇살이 안동일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햇볓은 솜이불처럼 따스했다. 안동일은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속에 웅성거리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동일은 자다가 일어나 물었다.

“무슨 일이오? 어디를 이렇게 급하게 가고 있는거요?”

 “오늘이 18대 박근혜대통령이 퇴임하고 19대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아니오? 그런데 댁은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군요“

 “아니, 박근혜가 대통령취임한지 5개월 밖에 안됐는데, 벌써 퇴임이라니?”

 “하하, 하루가 천년이라더니? 당신은 박근혜대통령 재임 5년을 1시간 낮잠으로 때운 모양이군요. 그만 일어나 대통령 취임식 구경이나 갑시다”

부스스 몸을 털고 일어난 안동일은 취임식장으로 따라갔다. 18대 대통령을 퇴임하는 박근혜가 퇴임사를 하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18대 대통령을 퇴임하면서 취임사 같은 퇴임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5년전 제가 취임할 때 했어야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말씀드리면 위선자같은 인식이 들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제가 정계로 진출하자 말들이 많았습니다. 대통령에 출마하자 극에 달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과연 독재자의 딸 답다. 어머니가 8.15경축시장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아버지는 궁정동 연회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하의 총을 맞고 죽었다. 부모의 생명을 빼앗아간 정치라면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텐데, 불나비처럼 달려들다니?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아내가 죽어가는 아수라장에서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경축사를 계속한 아버지처럼 딸도 그랬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테러를 당하면서도 총선 유세를 했던 딸이 아니냐? 사랑하는 남자만나 행복한 가정이루는 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일 텐데?’라고 저를 욕하고 비난하는 걸 잘 압니다.

왜? 저라고 그러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도 여자이기에 사랑하고 싶습니다. 응접실에서 남편과 자녀들과 커피를 들면서 TV드라마를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때문에 저는 개인의 사랑과 행복을 접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시던 길을 이어 가고 싶었습니다. 그 길을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박정희대통령처럼 독재하려고 그러는구나. 김일성 3대처럼 대를 이어 독재하려고 그러는구나?’

그게 아닙니다. 아버지는 18년간 독재하셨지만 출발 할때는 민주주의로 끝내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권력이라는게 아편 같아요. 빠져 나오려면 더 깊이 빠져들어 갑니다. 국가통치를 잘못하여 경제가 파탄되고 국방이 약해지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찍 하차합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는 세계가 놀라는 부국강병을 이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빠져나올수가 없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믿던 안 믿던 공개합니다. 10.26이 나기 얼마 전 아버지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혜야, 3년만 있으면 내 나이 65살이다. 그때 민주정부로 돌려놓고 은퇴하여 어머니의 고향 옥천으로 내려가서 청산별곡을 노래하면서 지내련다’

그런데 아버지는 저격당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민주정부로 돌려놓을 기회도 기다려 주지 않고 독재자로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 그때 제가 결심했어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자. 내가 민주정부의 대통령

이 되어 아버지의 몫을 대신해드리자. 그래서 저는 국회의원이 되고 당 총재가 되고 대통령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렸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저는 아

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가 가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의 고향 옥천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제가 옥천으로 내려가기 전에 퇴임사를 끝내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김재규장군 복권입니다. 난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18대대통령 박근혜는 김재규장군을 10.26이전으로 복권시키고 모든 명예가 회복됐음을 선언합니다.’

여러분! 10.26이 지난지 33년이 됐습니다.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때가 됐습니다. 제가 마음이 넓어서 김재규장군을 복권시키는 걸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사실은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을 복권시키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욕심에 김재규장군을 복권시키는 겁니다. 김재규복권은 박정희복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대한민국에는 진보와 보수가 반반입니다. 법적으로 박정희대통령은 복권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김재규장군을 지지하는 진보민주세력들은 여전히 박정희를 독재자로 묶어두고 있어요.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김재규장군을 복권시켜 드리면 그들도 박정희대통령을 복권시켜 줄겁니다. 그래서 김재규장군을 복권시켜드리는 겁니다.

진보민주세력 여러분! 제가 김재규장군을 복권시켜 드리는 것처럼 여러분은 제 아버지를 복권시켜 주세요. 그래야 박정희만세 김재규만세 대한민국만세가 됩니다.“

박근혜의 퇴임사가 끝나자 별안간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대한민국만세!

박정희만세!

김재규만세!‘

안동일도 따라 불렀다. 만세! 만세! 만만세!

   
▲ 장군의 무덤에서 태양을 기다리는 아침이슬

“아니 안변호사 아니오? 자면서 웬 만세를 그리 많이 부르고 있어요? 김재규장군 추모회도 끝났으니 이제 내려갑시다.”

누가 잠꼬대하는 안동일을 흔들어 깨웠다. 강신옥변호사였다. “10.26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의 멤버로 추모제에 온 강신옥이었다. 두 사람은 김재규변호를 하면서 아주 가까워졌다. 사선변호사 34명, 국선변호사 2명이 김재규재판에 참여했다. 그중 강신옥과 안동일이 가장 헌신적이었다. 지금도 두 사람은 김재규복권을 위하여 뛰어다니고 있다.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에서 추모제를 드리러 와보니 안동일이 자고 있었다. 워낙 만취상태라서 내버려두고 추모제를 치뤘다. 잠든 안동일에게 추모제행사소리가 비몽사몽간에 박근혜대통령 퇴임식 꿈으로 둔갑한 모양이다. 추모제가 끝나자 강신옥이 안동일을 깨운것이다. 산소를 내려가면서 안동일은 강신옥에게 조금전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은 강신옥이 말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베델숲속에서 꾼 야곱의 사다리 꿈처럼 생생하게 들리는군요. 야곱의 꿈이 이뤄졌듯이 그 꿈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신옥은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끝-

 

 

 

 

*4월 27일 소설“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요?” 김재규복권을 토론하고 나서 함께 “아침이슬”을 부릅시다. 여자들은 “가수양희은”처럼, 남자들은 안동일변호사처럼... 양희은도 안동일도 이제는 70노인이 됐겠지만 37년전의 젊은 목소리로 불러봅시다.

“김재규소설”을 이야기하는 흥사단모임에 구경오겠다고 10명의 돌섬통신 친구들이 연락주셨습니다. 전화없이 오셔도 됩니다. 건강식만찬이 있습니다.

4월 27일(목) 밤 6시30분. 16 W. 32 St #803 맨해튼.

 


 *등촌 이계선(646)549-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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