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동생 집에 갔다가 동생 교회에서 신령한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한다기에 동생을 따라서 그 집회에 간 일이 있다. 그날 저녁 주제는 우상숭배에 관한 것이었다. 한참 십계명에 기록된 우상숭배 금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할 때 금송아지를 만든 이야기를 하다가 강사가 자기 뒤를 가리키면서 총회에서 이런 십자가를 세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보수 교단의 총회에서는 십자가는 우상이니 예배당 전면에 십자가를 세우지 말자고 결의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 아닌가?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일제 강점기에 일장기에 절하지 말라고 했다는 어느 목사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목사는 중학교 학생들에게 일장기에 절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니 절대로 일장기에 절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학생들은 목사의 말에 따라서 일장기에 절하지 않았고 결국 퇴학을 당했다. 그 결과 그들은 시골에서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지었다.

그 학생들이 나이 들어서 그들이 존경하는 목사님의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모두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목사가 정색을 하더니 젊은이들에게 사과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자네들이 어릴 때 일장기는 우상이 아니고 단지 일본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몰랐었네. 내가 자네들에게 아주 큰 죄를 지었어. 이 늙은이를 용서하게!” 그 말이 끝나자 잔치 자리가 초상집으로 바뀌었다. 그 목사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서 그들의 삶이 완전히 구겨졌으니, 억장이 무너질 만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거기 절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상은 신의 형상을 말한다. 그 목사는 절하는 것에 주목해서 일장기를 신으로 모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하는 것이 아니고 일장기가 신의 형상인가 하는 문제다. 실상 그 일장기는 단지 일본을 나타내는 상징일 뿐 신의 형상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젊었을 때 우상과 상징을 구분하지 못했다.

상징은 어느 단어가 지닌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것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중시하는 수사적 표현 방법이다. 그런데 내포적인 의미를 중시한다는 면에서 비유와 상징은 같다. 그러나 비유는 두 가지 사물의 공통점에 주목하지만, 상징은 어느 한 단어가 지닌 내포적 의미에 집중한다. ‘당신은 장미와 같다’는 비유적 표현에서 장미가 내포하는 ‘아름다움’을 당신에게 적용시킨다. 그러나 물, 국기, 십자가가 상징으로 사용될 때, 그 개별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주목한다. 물은 생명을, 국기는 애국심을, 십자가는 예수님의 구속을 나타낸다.

그런데 특별히 종교적 상징은 그 상징적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외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 대상에 참여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당신의 목숨을 버린 구속을 가리킬 뿐 아니라,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깊은 영성에 이른다. 종교적 상징을 성스러운 것과 동일시하는 예가 흔히 있어서 상징은 자칫 절대화할 위험이 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나타내는 상징이지만, 그 십자가 자체를 신성시하면 우상이 될 수도 있다.

개혁자들은 예수님의 상을 세우고 그것에 합장하거나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고 교회의 모든 성상을 없앴다. 그들은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에 나오는 형상이라는 말을 중시해서 그런 조치를 취했다. 성상이 신앙의 대상으로 절대화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의 뒤를 이어서 종교개혁을 이끈, 제2 종교개혁자로 불리는 츠빙글리는 강제금식. 성자기도, 연옥신앙, 성상숭배, 교회음악, 성직자 가운착용, 성직자 금혼, 미사 등을 폐지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지금도 츠빙글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스위스의 개혁교회에서는 십자가를 교회당 안에 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츠빙글리에서 비롯된 우상파괴의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상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지금 교회당 안에 십자가를 세우지 말자고 의견을 모은 일부 보수교단의 지도자들 역시 그런 사람들이다.
 
성찬식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루터에 맞서서 츠빙글리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한 것을 보면 인문학 소양이 풍부했던 그는 성상의 상징적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그가 성상을 파괴한 것은 성상숭배에 익숙해져 있는 그 당시의 교인들이 성상을 신성시할 염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교회에서는 성상이 상징이라고 가르치면 된다.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과민하게 반응한 면이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중시하던 음악을 츠빙글리뿐 아니라 칼빈도 금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찬양을 곡조가 있는 기도라고 본다. 찬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은혜에 대한 감사를 고백하며 신앙적 결단을 표현한다. 그래서 현대교회에서는 찬양 없는 예배를 생각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혁자들은 성상을 파괴하면서 채색 유리(stained glass)를 금했지만, 요즘 채색 유리로 장식한 교회가 많다. 지금 교인들의 집에는 예수님의 사진이 걸려 있다. 예수님의 사진을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진을 교회에 걸어놓을 수도 있겠다. 예수님의 사진을 교회에 걸어놓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상을 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금 많은 교회에서 십자가를 교회당 안에 세워놓은 것은 그것을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 마음이 답답했다. 부흥강사는 상징을 우상이라고 말하고, 교인들은 그런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이니 말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열심히 아멘으로 화답한 동생과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종교적 언어는 상징이라고 말하는 때에, 우상과 상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부 보수교단은 너무 시대에 뒤져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감신대의 영성수련회에서 어느 감독이 여성과 장애인을 비하하는가 하면, 줄기세포 연구를 비아냥거리고 백내장 환자를 예수 이름으로 고치겠다면서 현대의학을 외면했다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일부 보수교단만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