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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섬이 특별한 이유를 들라면?<평회의 배 띄우기> 남.북을 이어주는 연륙교도 되고, 평화의 배도 되는 곳
구본선  |  bonesun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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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30일 (일) 00:00:00 [조회수 : 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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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너무 늦게 도착한다고 노래를 부름니다. '안아주는 나무'팀의 노래 연습 모습.

지난 27일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가 강화도에서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다음날 인터넷을 통해서 평화의 배 띄우기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교동이 얼마나 나왔을까하는 지역 주민의 작은 이기심이지요.

이번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는 강화도의 각기 다른 두 장소를 축으로 해서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는 외포리에서 진행되는 '대중문화행사와 한강하구 생명평화지대 선포식'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교동 월선포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평화 한마당'이었습니다.

외포리에서 문화행사를 한 뒤에 삼보해운에서 제공한 배를 타고 교동 앞 바다로 들어오는 것은 작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금년엔 교동으로 들어와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평화의 축제를 가지는 순서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평화의 배도 두 척을 띄웠습니다. 외포리에서 출발하는 '평화의 배' 1호, 창후리에서 뜨는 '평화의 배' 2호.

화개 해운에서 제공하는 배를 타기 위해서 교동의 주민 30여명은 창후리 선착장에 나가서 1시간 반을 기다렸습니다. 원래 출발 예정시간을 30분 넘긴 5시경 서울, 김포에서 찾아온 방문객들 100여명과 같이 화개 9호 배에 올라탔습니다.

배 위에서는 원로 예술인의 춤사위가 벌어졌고, 갈대 잎으로 배를 만들어 물위에 띄우는 선상 행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옆 외포리에서 온 배 위에서도 선상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교동 사람들 비 맞는데 왜 빨리 안오냐고 배에 탄 사람들에게 몇 번을 전화했는지 몰라요." 이날의 사회자 무학교회 조언정목사. ⓒ 구본선

월선포에 도착하면서 가진 첫 느낌은 '미안함'이었습니다. 교동 주민 약 150여명이 비를 맞으며 평화의 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포함해서 300여명이 모여서 평화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교동 고등학교 학생들의 풍물놀이, 교동지역(12교회) 교회 사모님들의 중창, 그리고 초청 가수들(안아주는 나무)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동에서 치르는 평화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고려 시대에 교동의 위치는 수도 개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고,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이 개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꼭 들려야 하는 중간 기착지였습니다.

교동 남산포구에 도착한 중국 사신들을 맞았던 곳이 남산포 대변창입니다. 대변은 손님을 맞는다는 대빈(待賓)이란 말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변형된 글자입니다. 남산포구에 내린 사신들은 인근에 있는 절에서 하룻밤을 지냈고, 다음 날 아침 배로 개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교동은 충청도, 황해도, 경기도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 통어영이 설치된 곳입니다. 당시 교동의 원님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했다고 합니다.

그뿐인가요? 교동의 북쪽 해안 청주뻘에서는 숭어가 많이 잡혔습니다. 숭어는 임금님 상에 올라가는 공물로 지정될 정도로 맛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방되기 전에 교동 사람들의 활동 무대는 강화도가 아니라 황해도 연백이었습니다. 교동에서 연백의 거리는 겨우 3Km에 불과합니다. 교동 사람들은 연백 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교동은 감이 많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나면 감을 가지고 연백에 가서 쌀로 바꾸어 왔다고 합니다.

   
▲ 교동에 있는 12교회의 사모님들.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가 곧 기도입니다. ⓒ 구본선

작년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는 교동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일을 진행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로 한계선을 넘어서 800미터 정도 북쪽으로 배를 띄웠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동에서 배를 지켜본 저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에게는 배가 약간 우회해서 다니는 정도에 불과 했습니다. 그리고 교동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남의 잔치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교동을 지나면서 정작 교동에는 눈길 한 번, 발걸음 한번 안했다고 하는 섭섭함이지요.

이번 교동 행사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북한에서 쏘아 올린 미사일 때문에 '평화의 배' 띄우는 행사가 직격탄을 맞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사하는 당일 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이런 저런 지적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장맛비로 인해서 전국이 난리인데 꼭 배를 띄워야겠냐"고 했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판국에 무슨 평화의 배냐"고 말합니다.

배를 타고 오면서도 일행 중에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왜 우리들만 배를 띄워야 하나요. 저쪽에서도 배를 띄우고 해서 한강어귀에서 남·북한 배가 함께 만난다면 몰라도…"하면서 말끝을 흐리시더군요.

교동에서의 평화 행사는 '2006년 평화의 배를 띄우는 강화인의 입장'을 낭독하는 순서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교동에 들어 왔던 손님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또 다시 교동은 썰렁한 섬이 되었습니다.'농산물 개방은 10개의 핵무기보다 무섭습니다'라는 플랜카드만 월선포에 남았습니다. 연륙교 하나 없는 교동은 막 배가 끊어진 오후 7시 이후로 철저하게 고립된 섬이 되고 맙니다.

한때 중국과 고려를 이어주던 다리였고, 또 한때는 조선 삼도수군의 심장부였던 교동의 현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이라는 주소에 있습니다.

   
▲ 교동고등학교의 풍물팀. BBS 음악회에서 대상받은 실력이라고요. ⓒ 구본선

그러나 나름대로의 희망을 만들어 본 시간은 되었습니다. 북녘 땅이 보이는 섬, 그러면서도 동쪽 강화도를 향해서 소리지르면 들릴 것 같은 섬 교동(실제로 강화 창후리 포구에서 교동에 있는 저희 집이 보입니다.)

교동은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연륙교도 되고, 평화의 배도 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가 얼마나 지속 될 수 있을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동은 특별합니다. 평화를 소망하고 민족의 통일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이 섬에 살고 있다면 섬 자체가 남·북을 향한 '평화의 배'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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