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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세월호에 예은이 보낸 박은희 전도사 “그냥 함께 울어주면 되는 것”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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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4월 06일 (목) 21:09:00
최종편집 : 2017년 04월 12일 (수) 15:32:36 [조회수 : 6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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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3주기를 열흘 앞둔 6일 오후 감신대백주년기념관 중강당에서 감리교신학대학교 총대학원학생회와 총대학원여학생회, 운영위원회가 공동으로 세월호에서 딸 예은이를 잃은 박은희 전도사를 초청해 ‘세월호 간담회’를 가졌다.

박은희 전도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하고 안산화정교회(박인환 목사)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는 중에 세월호 사고를 겼었다. 416합창단 활동 등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남편 유경근씨와 함께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박은희 전도사는 한 시간여에 걸쳐 세월호 참몰사고를 겪으며 느꼈던 심경, 그리고 세월호를 대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경험한 이야기, 세월호 사고를 미온적으로 대하는 정치권과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 등을 풀어내고는 마지막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립된 자신의 신앙고백을 신학생들에게 들려주며 끝맺었다.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구조된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세월호 인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 궁금한 점을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통해 묻고 박은희 전도사가 답을 해주는 방식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을 마친 뒤에 학생들은 노란 색종이로 접은 수백 개의 종이배를 유리병에 담아 박은희 전도사에게 전달했으며 이어 학부와 대학원 학생회 대표들이 차례로 나와 기도하는 순서가 이어졌다(아래 기도문 전문 참조). 박은희 전도사는 앞서 간담회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노란 리본 스티커를 나누어 주었다.

 

   
총대학원 이현길 원우회장이 박은희 전도사에게 학생들이 접은 노랑종이배를 전달했다.

 

박은희 전도사는 신학생들과의 만남을 반기면서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 이 모든 악몽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에서”라고 덧붙여 그가 겪는 현실이 얼마나 힘든지를 애둘러 표현했다.

박전도사는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남이 아닌 내 딸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잠간했다”고도 했다. 욥의 고백처럼 주신 분도 하나님,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므로 딸을 일찍 데려간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지 죽이는 하나님어선 안되었고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참 열심히 살던 딸 예은이를 무참히 짓밟으신 하나님을 이해할 길이 없어서 매일매일 그 뜻을 찾는 고통을 나날을 보내야 했다며 그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갔다.(아래 강의녹취록 전문 참조)

 

   
 

 

위로의 말들은 결코 위로를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막상 참사의 피해자가 되어 길거리로, 또는 많은 이들로부터의 위로의 대상으로, 또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보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전도사로서 남을 위로하던 말들이 결코 위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기독교인가운데 유가족들을 향해 ‘이제 좋은데 갔으니 그만 울라’고 말했어요. 그 순간 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드는 거였어요. 내가 우는 것은 천국을 부인하는 행동이고 그럼 하나님께 벌 받겠네 하는 생각. 그래서 우는 것조차도 입을 틀어막고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우는 것을 죄스러워 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흔히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의 아픔에 동참한답시고 어떤 방법으로든 그럴싸하게 신학적으로 또는 신앙적으로 해석해 주려고 노력한다. 당사자를 이해시키고 안심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모든 사건에 적용될 수는 없었다.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런 류였다.

“욥의 친구들처럼 ‘잘 생각해봐 너 잘못한 게 있을 거야’ 라거나 ‘하나님께서 너를 단련시키려는 거야’ 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너무 상처가 되요. 심지어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은, ‘세월호를 하나님께서 침몰시키셨다’고 설교했지요. 그 말은 진짜, 우리가 3년 동안 들었던 말 중에 최악이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어요.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일단 함께 울어 주는 거 같아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나라가 침몰될 정도로 발생부터 수습과정이 어느것 하나 상식적이지 않았다.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망언이야 귓등으로 듣고 흘려보낼 수 있지만 더 날카로운 비수는 내부로부터 날아오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하면서 참사를 겪은 가족들이 모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예은이가 순교자가 아니고 네가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박전도사가 거리로 나가게 된 이유였다.

그러나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당연한 의문조차도 풀리지가 않았다. 정부의 잘못에 대해 따져야 하는데 국가라면, 대통령이라면, 국회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되어도 정부나 국회, 언론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처음엔 대통령 퇴진이라는 말만 나오면 유가족들은 다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3년을 겪어보니 그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더라고 했다. 이렇게 까지 생명에 관심이 없고 국민을 발가락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대통령이 필요할까?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손잡아주고 앞장설 것 같은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 챙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어요. 그 절정은 탄핵반대 집회에 나온 교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굴 위해 주여삼창을 외치고 누굴 위해 거기서 구국기도회를 하고 있는지. 도대체 저기가 교회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솔직히 난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무너졌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세월호를 침몰 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박전도사는 “세월호를 침몰 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라고 말했다. 사회가 옳지 못한 길로 갈 때 옳은 목소리를 내야할 교회가 오히려 ‘권세잡은 자에게 순종하라’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입을 막으려 하고, 낮고 비천한 곳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이야기 하지 않고 힘과 권력을 옹호하고 심지어 부당한 권세를 지키려는 맛을 잃은 소금이 결국 세월호를 침몰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시대의 ‘권세잡은 이’는 황제였으므로 황제에게 복종하는 것이 맞을지 몰라도 국민이 주인인 지금 시대에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이들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안산분향소에 예배처를 마련한 뒤로 많은 교회가 방문하여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아픔을 공감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박전도사가 들려준 제일 기억에 남는 교회는 전북 익산의 어느 교회의 방문이야기였다.

“2015년도엔 전북 익산쪽의 어느 기장교회가 학생들 열 댓 명을 데리고 와선 긴 시간동안 우리 얘기를 들어 주셨는데 말씀하시는 한 유가족 어머니가 욕을 해가며 아슬아슬한 수위로 너무 오랫동안 울분을 토하시는 거에요.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이제 그만하게 할까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목사님이 절대 그리하지 말라시는거였습니다. 우린 여기 봉사하러 온 거고 아픈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봉사는 그냥 들어 주는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저 학생들은 듣는 봉사를 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 말씀하게 두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픔의 현장을 찾아는 주었으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지겹다면서 ‘다른 컨텐츠를 개발해 보라’는 교회가 있었는가 하면 들어주고 함께 해주는 것을 가장 큰 섬김이자 봉사라고 생각하는 교회가 있었다. 유가족들이 누구에게 마음을 의지할지는 자명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부정부패의 제일 끝자락에 세월호 문제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떠 받들고 있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그 가장 낮은 곳에 가보면 그 곳에 그 사회의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겸손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곳에 가서, 너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쌓이고 쌓인 그 현장으로 가라.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지 않나요? 알지도 못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신앙생활일 뿐이죠. 그냥 거기에 도취되어선 ‘난 너무 편안해. 할 일을 다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박전도사는 신학생들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외쳤다. 웨슬리가 세계가 나의 교구라 했듯이 언제든지 그 경계선을 넘어 세상으로 나가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파하는 이들과 연대해 주는 것이 내 삶일 것.

박전도사가 거리에 나왔을 때 이미 길거리에 나온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자신들은 이제 3년인데 10년이 넘도록 억울함을 토로하며 나라에, 기업에 하소연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더라는 것. 그렇지만 그 일에도 교회는 나서주지 않았다며 또다시 세상을 외면하는 교회의 민낯을 들어 올렸다.

“그 분들이 길거리까지 왜 나왔겠어요. 그냥 그 일이 좋아서? 원래 싸움꾼이라서? 과격해서? 누구말대로 종북좌파라서? 얼마나 당사자들이 안 들어주면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나 안 들어 주면 여기 이 힘없는 국민들 앞에 서명판을 들고 서명해 달라고 졸랐을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으면 머리를 깎고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소리칠까...”

박전도사는 이들에게 연신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자신은 자신의 교회만 잘 섬기는 것으로 자기 일을 다 하는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목사는 불의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척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분들이 다 신학과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러분들이 성도를 섬기실 때 그런 마음으로 섬기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일에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돌보아 주는 일 뿐 아니라 그 분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깊숙이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관심을 넘어서 불의한 일이 있다면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일에도 서슴없이 나설 수 있는 목사가 진짜 목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용감하게 직면하여 기억하여 바꿔 나가는 게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잊지 않기 위해서

박전도사는 강의를 마무리 하며 잠간 2014년 4월 16일을 회상했다. 고난주간인 그 날이 지나면 부활절에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고난주간에 이런 고난을 주시고 부활절에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는 거 아냐 하는 실낫 같은 희망을 가졌어요”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인양되는 배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저희 가족들은 세월호 올라올 때 다 오열해서 쓰러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는 그냥 배가 아니고 우리 애들이 절규하며 죽어간 현장이었기 때문에 너무 보기 힘든 거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너무 보기 괴로운 것을 보기로 결정한 겁니다.”

박전도사는 제자들이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은 것을 세월호에 비유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고 싶은 말은,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라 생각합니다. 교회에 걸린 십자가는 편한 물건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냥 십자가가 아니었을 거에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가장 극형에 돌아가시는 것을 그것도 비겁하게 숨어서 지켜봤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후 교회에서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았어요. 괴로운데도. 왜?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너무 보기 괴로운 것을 보기로 결정한겁니다”

제자들이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그들이 집어든 포도주적신 빵을 보고 예수님을 처절하게 떠 올렸을 것이다. 그들은 그 빵을 정말 예수님의 피흘리는 몸으로 느끼며 목으로 꾸역꾸역 넘겼을 것이다.

박전도사는 성찬식 때 딸 예은이가 떠 올려 진다고 했다. 그 빵을 먹으면서 너무 괴롭고 아프지만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기 몸에 새긴다고 했다. 그래야 이 나라에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박은희 전도사 세월호 간담회 강의

 

여러분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보문서점이 아직 있고 주인아저씨도 그대로여서 반가웠습니다. 보문서점을 드나들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악몽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 왔습니다. 전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연구소에 3년 동안 있다가 신대원에 들어왔습니다. 원래 학부편입을 하려다가 좌절되고 낙담하는 차에 신대원을 하는게 좋겠다는 목사님의 권유로 신대원을 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겪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 중에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남을 섬기기 위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신학대학원을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한 가운데서 다른 사람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 위치가 너무나 낯설고 믿겨지지가 않아서 왜 내가 이런 자리에 있어야 하나요 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처음엔 그것을 합리화 하려고, 우리 교회 성도의 자제가 아니라 내 딸이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잠간 했었어요. 그러다가 드는 생각이 ‘나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거지? 내 딸이 일찍 간거를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는 게 정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려던 신학은 무엇이고 내가 가졌던 생각이 옳은 것인가 하는 회의가 찾아오더라구요. 그다음부턴 미친듯이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욥도 처음에는 굉장히 당당하게 자기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지요. 주신분도 하나님,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받아들이지만 그 이후에 그가 너무 괴로워 하면서 ‘오히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자기 출생 자체를 거부하며 저주하는 말을 합니다. 이일을 겪으면서 욥의 그런 몸부림이 우리가 보기에는 욥기서 이야기가 몇 일 혹은 몇 달 안에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제가 이 일을 겪어보니 욥이 그런 고통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다시 하나님으로 고백하기 까지 짧은 시간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 저는 욥기서 첫 장도 안 나간 것이었습니다.

전 어떨 땐 하나님께 따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매달리기도, 어떨 땐 다시 외면하기도 하는 시간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막상 참사의 피해자가 되어서 길거리로, 또는 많은 이들로부터의 위로의 대상으로, 또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서 그 자리에 앉아 보니까 지금까지 내가 전도사로서, 혹은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남을 위로하던 말들을 다 주워 담으시더라구요. 이제까지 누군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내가 취한 제스춰는 그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 함께 있어주는 거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신학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건 이런거니까 이런거라고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이해시키려고... 그런데 내가 막상 이 일을 겪어 보니까 그게 굉장히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장례식장에 찾아온 기독인들 가운데 유가족들을 향해 이런 말하는 분이 일부 있었어요. “이제 좋은데 갔으니 그만 울라”고.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그 순간 우는 거에 대해 죄책감이 드는 거였어요. 내가 우는 것은 천국을 부인하는 거고 그럼 내 신앙이 잘못됐나? 하나님께 벌 받겠네 하는 생각. 그래서 우는 것조차도 입을 틀어막고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우는 것을 죄스러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이런 거였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분명히 예수님은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어요.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일단 함께 울어 주는 거 같아요.

욥의 친구들처럼 “잘 생각해봐 너 잘못한 거 있어” 아니면 “하나님께서 너를 단련시키려는 거야” 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너무 상처가 되요. 심지어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은, “세월호를 하나님께서 침몰시키셨다”고 설교했지요. 그 말은 진짜, 우리가 3년 동안 들었던 말 중에 최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착 때 인신 제물에 대한 경고를 하셨거든요. 그런거 하면 안된다고. 이 일을 겪고 보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인신제물을 바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려고 테스트 하신 게 아니라 그것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더 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기를 위해 인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하나님을 신으로 믿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건 아니더라구요.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고 지키시는 분이지 부당하게 죽이는 분은 아니시거든요. 그 목사님이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거 같아요.

제가 과거에 어줍잖게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 뭔가 설명을 하려 했던 적이 있어요. 목사님이 잘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말씀전하는 것이다 보니 그게 몸에 베어 있는 거 같아요. 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건을 그럴싸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그런 실수가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 일 겪을 때 우리 유가족들 중에 기독인들이 처음에 보인 반응은 하나님 원망하는 거였어요.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죄악시 했죠.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단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자나요. 그건 아닌것 같아요. 그걸 참으려 하니까 가족들이 미치는 거 같았어요. 그걸 죄악시 하려니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그냥 소리를 질렀어요. 하나님을 향해 악을 쓰며 기도하기도 하고 같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원망도 하고, 자연스럽게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감정을 주위 분들이 틀어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나님 원망도 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하면서 가족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성경을 쳐다보기도 싫었어요. 그런데 예은이 보낼 때 빈소에 성경을 펴놨는데, 저희 아이가 넷이에요. 예은이가 둘째에요. 다 같은 모양과 크기의 성경을 가지고 있어서 예은이 성경인줄 알고 빈소에 펴놨는데 예은이 것이 아니어서 다시 예은이 성경책을 가져와서 책갈피가 꽂혀있는 곳을 그대로 펼쳐 놓았는데 그곳이 사도행전의 사도바울의 순교장면이었어요. 너무 소름이 끼쳐서 그 성경을 집어던졌어요. “하나님 우리 예은이는 순교하고자 태어난아이 아니고 순교를 각오한 아이도 아닙니다. 그래서 즐거운 수학여행에 꿈에 부풀어 있었고 이루고자 했던 꿈이 있어서 하루하루를 참 열심히 살던 아이였습니다. 내가 봐도 존경스러울 정도로 너무너무 열심히 살던 애였어요. 페북에 올린 마지막 사진도 꿈에 대한 것이었고 그 꿈을 위해 무엇이던 참겠다고 했던 아이인데 너무 억울한 거에요. 하나님은 왜 예은이의 꿈을 무참히 짓밟으셨는지.

이후 그 성경책을 한 달음에 읽고 또 읽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예은이가 순교자가 아니고 네가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시더라구요. “너가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숨기고 참을 것이 아니라 너가 보고 격은 것을 말해라. 말했을 때 네가 겪는 고통을 이겨주길 바란다” 하는 메시지가 들리는 거에요.

유가족 중에... 목사 사모님이 계셔요. 그 분은 처음에 활동을 안하셨어요. 정부의 잘못에 대해 따져야 하는게 분명한데도 권세 잡은 자에게 순종하라는 성경말씀 때문에 우리 활동에 대해 거부감이 있어서 몇 달동안 활동을 안하셨어요. 거의 일 년 가까이 활동을 안하시다 어느 날 나오셨어요. 그 분이 이런 고백을 해요. 집에서 혼자 새벽기도 철야기도 하고 하루종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 딱 하난데 ‘진실을 밝히라는 거였다’면서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 대부분이 현장에서 봤던 부당함에 대해 참는 건 옳지 않다고 스스로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겁도 없이 큰 권력 앞에 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에요.

아무튼 제가 먼저 성경을 읽으며 너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어요. 누가복음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구절구절이 너무나 우리 상황과 똑같은 거에요. 그래서 성경을 같이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여 유가족들과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의한 자를 향해 호통치는 장면에서 같이 위로를 받았고 호통치는 구절을 같이 소리내서 따라 읽기도 하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가족들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독인 가족들은 크게 세 부류입니다. 먼저, 교회를 아예 떠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참사 일어나고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교회가 세월호에 대해 일절 아무 얘기를 하지 않을 때 목사님께 항의도 해보고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 교회를 떠난 것이에요. 또 한 부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께 벌 받지 않을까 신앙생활 잘해서 죽어 천국가서 자식 만나야 되는데 교회를 떠나서 혹여 못 만날까’ 두려워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다니는 사람. 다시 교회일상에 젖어서 어떨 땐 이게 맞는가 싶다가 속에 불이 나는데도 그냥 신앙생활해 가는 사람이 있어요. 저의 경우 다행히 목사님이 워낙에 세월호에 대해 자기 일처럼, 어떨 땐 나보다 더 열심이셔서 남아있게 됐습니다.

우린 이일을 겪으며 하나님을, 교회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더 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리고 무기력 해 보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뒤에 더 큰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한편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손잡아주고 앞장설 것 같은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 챙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어요. 그 절정은 탄핵반대 집회에 나온 교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굴 위해 주여삼창을 외치고 누굴 위해 거기서 구국기도회를 하고 있는지. 도대체 저기가 교회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솔직히 난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왔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일부 의식 있는 분들이 비판할 때도 그래도 교회가 세상보다 더 나을거라 믿었는데 막상 이 일을 겪어보니까 교회가 세상의 평균만도 못한거 같아요.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어요. 세월호 사건에서 초기에 정부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과 돈벌기에 급급한 기업, 권력 앞에 오보를 남발하던 언론들, 얽히고 설킨게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그걸 통해 들어난 이 사회의 병든 모습이 생각보다 너무 심각했어요. 그래서 저희 부모들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러다간 교회에 뭔 일이 나도 나겠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심각한데 거기에 대해서 뭔가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은 우리더러 너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했는데 ... 그렇다면 한국교회 대형교회는 규모로 봤을 때 왕소금임일텐데 그런데도 사회가 이정도로 썩었다? 그건 소금의 역할을 못한 때문이자나요. 성경의 말씀이 소름끼칠정도로 옳아요.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처럼,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 옳지 못한 길로 갈 때 거기에 최소한의 제동을 걸 사람은 종교인들이라 봤었는데 이 사회에 브레이크가 없던 겁니다.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는데 교회가 브레이크를 밟아주지 못해 여기까지 온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에요. 그 목사님은 하나님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 했는데 그거 아니죠. 제대로 역할 하지 못한 교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죠. 우리 세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죠. 굉장히 비겁한 것이죠. 자기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저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대화를 나눠보니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리 생각하여 너무 놀랬습니다. 교회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 일에 구경꾼처럼 뒤로 물러서서 누가 잘못했네 하나님이 그렇게 한거네 하면서 물러서 있었습니다. 난 세상의 소금이 아니라는 자기부정과 무엇이 다른것이겠어요?

 

가족들이 다시 모여 성경을 다시 읽으며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왜냐면 구약을 봐도 신약을 봐도 하나님은 소외된 자 아픈 자를 끊임없이 찾으셨거든요. 사회의 약자, 병들고 아픈 곳을 찾아 가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발표 전 한 달 전부터 저희 가족들은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어요. 탈수기에 물기를 짜내는 것처럼 몸 안에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습니다. 헌재 발표 일을 알려주는 날에 기다리다 잠을 못 잤어요. 늦게라도 발표나지 않을까 기다리느라고요. 다음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성경읽기하려고 가족들이 모였는데 다들 누렇게 떳더라구요. 이사야35장 말씀을 읽었는데 그 말씀을 펴서 읽다가 다 울었어요.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너희는 연약한 손들에 힘을 주며, 떨리는 무릎을 견고하게 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말하라. 강건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복수하러 오시며 하나님이 보응하시리니 그가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라.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 말씀 읽으며 엄마들이 다 펑펑 소리내어 울었어요. 몇 번을 읽었어요. 그 자리에 오신 목사님께 이 구절 우리에게 다시 큰소리로 읽어달라고 했어요. 신기하게도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 말씀을 통해서 너무 세밀하게 우리를 만져주시더라구요. 교회는 믿지 못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다고 고백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주 청계광장에서 예배가 있었습니다. 복음주의권 교회들이 장대비가 와도 모인 ‘거리의 교회’. 너무 훌륭하고 그 어느 교회보다 커보이더라구요. 그곳이 교회가 있을 자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안산분향소에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예배인도를 교회들에 부탁드렸어요. 처음엔 나 혼자 드리기도 하고 어떨 땐 교인들은 왔는데 목회자는 안 오기도 하고 하며 아름아름 정착이 돼서 많은 교회들이 찾아와 주었어요. 그 교회들을 통해 그나마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았던 것 같아요. 오셔서 하는 말씀이 우리 교회가 작아서 적은 인원이 왔다며 미안해했는데 우린 전혀 작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들, 큰 자가 작은 자가 되고 작은 자가 큰 자 되는 말씀이 너무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오히려 대형교회가 한 번 쯤은 찾으셨지만 한 번 다녀가면 그 담부턴 전화도 받지 않아요. 오히려 작은 교회들은 꾸준히 찾아오셨어요. 보여주기 식이 아니고, 하나의 행사처럼 오지 않고 진심을 담아 오셨어요. 재작년엔가 큰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도 않아요. 우리더러 그냥 부모님이 와서 말하는 거 말고 컨텐츠를 개발해 오라 하는거에요. 거긴 다시 안가기로 했어요.

2015년도엔 전북 익산쪽의 어느 기장교회가 학생들 열댓명을 데리고 와선 긴 시간동안 우리 얘기를 들어 주셨는데 말씀하시는 한 유가족 어머니가 욕을 해가며 아슬아슬한 수위로 너무 오랫동안 울분을 토하시는 거에요.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이제 그만하게 할까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목사님이 절대 그리하지 말라시는 거였습니다. 우린 여기 봉사하러 온 거고 아픈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봉사는 그냥 들어 주는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저 학생들은 듣는 봉사를 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 말씀하게 두라고 하시는 거에요. 두 교회가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컨텐츠를 개발해 와라 너희들 얘기하는 거 이제 지겹다 그러니 ppt나 영상자료, 노래 준비해라’ 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들어주는 거 함께 해주는 거, 그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겐 가장 큰 섬김이고 봉사라고 생각하는 교회가 있었던 거에요. 대부분 교회들이 오면 청소할거 없는지 정리할거 없는지를 물어옵니다. 이 이야기 들으며 성경에 생각나는 장면 없나요?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 들어주는 거, 함께 하는거, 그게 아픈 사람들에겐 가장 큰 섬김이고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저희 분향소에 예배를 오면 가족들이 함께 예배드린 후 가족들이 짧게 이야기를 하고 질문를 하고 식사 교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목요일 오후 7시 주일오후 5시 두 번의 예배가 있습니다. 한번은 한 어머니가 굉장히 많이 우셨는데 오신 목사님이 “이제 그만 우시고 이제 행복하게 지내시라” 하는 거에요. 그러자 그 어머니가 울음을 뚝 그쳤어요. 왜? 우는게 저 사람에겐 불편한 것이어서 울 수가 없던 거였어요. 그런데 같이 오신 원로 목사님은 “오히려 어머니 울음소리 들으니 어머니 울음처럼 안들리네요. 오히려 이 말도 안 되는 참사 앞에서 흐느끼는 하나님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부정부패의 제일 끝자락에 세월호 문제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떠 받들고 있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그 가장 낮은 곳에 가보면 그 곳에 그 사회의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겸손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곳에 가서, 너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쌓이고 쌓인 그 현장으로 가라.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지. 예수님이 의사의 비유를 말씀하셨자나요.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지 않나요? 알지도 못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어디가 아픈지 모르면서 그냥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신앙생활일 뿐이죠. 그냥 거기에 도취되어선 “난 너무 편안해. 할 일을 다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저희도 분향소를 찾는 교회를 통해, 그렇게 원망스러웠던 하나님의 숨겨진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그분들 안에 있는 시선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을 끌어 올리고 올려서 그 마음을 붙들고 그 자리에 오는 거자나요. 그러니까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모습이죠. 그 좁은 예배실 안에서 서로 대면하며 느기는 것은 우리 안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만나는 그런 공간인 것 같아요. 우리가 막상 길거리에 나와 보니 이미 길거리에 나온 분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너무 많아요. 우린 이제 3년인데 10년 넘게 싸워 오신 분들 너무 많아요. 저도 그 전에는 그분들에 대한 관심 없었어요. 그 분들이 길거리까지 왜 나왔겠어요. 그냥 그 일이 좋아서? 원래 싸움꾼이라서? 과격해서? 누구말대로 종북좌파라서? 저희 가족들도 처음엔 그런 분들 다가오면 솔직히 무서워 했어요. 거리를 두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3년을 겪어보니, 모든 부모들이 똑같이 생각했어요. “아니구나. 얼마나 당사자들이 안 들어주면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나 안 들어 주면 여기 이 힘없는 국민들 앞에 서명판을 들고 서명해 달라고 졸랐을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으면 머리를 깎고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소리칠까”... 너무 미안해요 그분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그 분들도 오랫동안 외롭게 싸웠구나. 그러면서 내가 전도사라는 이름을 걸고 있었구나. 너무 부끄럽더라구요. 교회에 꼭꼭 숨어서 그저 예배 잘 준비해서 예배에 오는 학생들 청년들, 일주일에 한번 성도들만 행복하게 세워주면 내 일을 다하는 거라고 착각을 한거에요. .

아까도 말했지만 저희 교회 목사님은 저보다 더 열심이셔요. 그래서 혹여 목사님이 공격을 받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아요. 사람들이 공격을 해 와요. 사람들이 찾아와서 “교회일이나 신경 쓰지 허구헌날 나가서 세월호세월호 지겹다”고 대놓고 얘기해요. 저희 목사님은 강단이 있으셔서 “희생자가 있는 교회에 그게 할소리냐”고 한마디로 일축하시지요. 교회에 그런 분들이 늘 있어요. 제가 한 번은 이런 설교를 했어요. “진짜 목자는 ‘애들아 이 풀 잘 먹고 있다가 늑대가 오면 빨리 도망 가야되’라고 이야기 해주는 목자와, 그렇게 할 뿐 아니라 늑대가 오면 늑대를 잡으러 노력하는 목자 중에 누가 참 목자이겠나. 여러분들이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설교를 목사님이 정성으로 준비하고 어려움 당한 가정을 심방하시는 것도 목회지만 내가 겪어 보니 그분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교회를 오지 않고 일상을 빼앗기는 위기의 사람들을 보고도 목회자가 모른척한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 양식을 떠 먹여주는 걸로 만족한다? 그건 진짜 목자가 아니라고 본다. 목사님은 일상의 삶을 위해 싸우는 중이시다. 더 좋은 목사님이다”라고 설교했어요.

여러분들이 다 신학과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러분들이 성도를 섬기실 때 그런 마음으로 섬기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일에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돌보아 주는 일 뿐 아니라 그 분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깊숙이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관심을 넘어서 불의한 일이 있다면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일에도 서슴없이 나설 수 있는 목사가 진짜 목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주 월요일에도 감신대에 잠간 왔었어요. 감신 신학생들이 세종대왕상 올랐다가 벌금을 받았자나요. 그거할 때 열심히 기도나 하지 열심히 성경이나 볼 것이지 라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들은 혹시라도 여기 없을 줄 알아요. 혹시 주위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목회는 교회 안에서만 하는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있다면 교회의 담을 넘어서야 해요. 웨슬리는 세계가 나의 교구라 했는데 언제든지 그 경계선을 넘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 이 일을 겪으면서 생긴 것 중의 하나가 ‘의심’입니다. 왜? 계속 안 가르쳐 주니까요. 지금 배가 목포로 왔자나요. 여러분들도 봤지요? 유실방지막 준비한다고 했는데 올라온 배를 보세요. 곳곳이 뚫려 있고 선수 부분이 와이어에 조여 갈라졌고 그 틈으로 머리 하나 들어갈 만한 크긴데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요. 지금도 진행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요. 유가족들이 무슨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희가 3년 동안 인양관련해서 의견을 내놔서 수렴된 게 한건도 없어요. 그냥 마이웨이에요. 저희 의견 따윈 안중에도 없어요. 그저 뭔 일 할 때 통보. 언론 브리핑 나가기 전 몇 분 전에 이번에 뭐한다고 문자. 뭐 잘랐다 통보. 그러니 의심할 밖에요. 왜 이러는 걸까..

국회에 가보니까 생각보다 국회의원들은 이거에 관심 없어요. 가족들이 몇 개월을 그 곳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데도 와서 아는 척 하는 국회의원들 많지 않았어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방문 한 번 하지 않아요. 사무실은 왜 그리 커요? 아파트 한 채 보다 더 커요. 그 많은 것을 누리면서 정작 국민들이 어려움 겪어서 거리로 나왔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국회가 뭐지? 청와대에 진돗개 있었죠? 끝끝내 진돗개 한 마리 나와보지 않았어요. 그럼 대통령은 뭐지? 세금을 내고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에서 살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지? 그런 질문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질문들이 이 과정을 키운 것 같아요. 질문하면서 국가라면 국회라면, 대통령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너무 많이 벗어나 있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박근혜 탄핵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어요. 처음엔 대통령 퇴진하라는 말만 나오면 우린 다 집에 갔어요.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3년을 겪어보니까 그 말이 저희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됐어요. 이렇게 까지 생명에 관심이 없고 국민을 발가락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대통령이 필요할까? 하는생각에서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신학하며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예수님을 그분이 보내셨다는 것 외에는 마음껏 질문 했으면 좋겠어요. 질문을 해야 해요. 내 아이가 죽은 게 다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해요.

한 목사님이 설교하러 오면서 ‘권세잡은 자에게 복종하라’는 본문을 택하여 오셨어요. 우린 일순 긴장했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여러분 예수님 시대와 지금 시대가 같습니까? 그 때는 누가 다스리던 시대입니까? 그 시대는 황제가 다스리는 시댄데 지금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그 권세 잡은 이는 누구여야 합니까. 국민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 힘 있는 권세에 무조건 복종하지 마세요”라고 하시는 거에요. 알게 모르게 교회가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그거 같아요. 이 복종은 하나님을 향한 복종이어야 하는데 이 복종을 확대 해석해서 목사님을 향한 절대 복종을 말하는 것 말이에요.

이번에 안산 은혜와진리교회에서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에 버스 2대를 대절해서 사람들 태워 가는 걸 제가 봤어요. 그래서 그 교회 신자들 중 유가족하고 아시는 분이 담당 전도사님께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잘못하시는 거 아닙니까” 했더니 전도사님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목사님 뜻이 무조건 순종하라셨다는 거다. 만약 목사님이 잘못하는 거면 벌은 하나님만 내리실 수 있다”고 했다는 겁니다. 교인들에게 사고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 무섭더라구요. 이거 잘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좋은 목사님은 굳이 그리 말씀 안해도 믿고 따를 수 있겠지요. 혹여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나중에 목회자 되셔서 성도들은 무조건 내말대로 하라는 분 없었으면 좋겠어요.

 

질문지

목포신항에 대해 물었는데.. 지금 배가신항에 도착해서 다행히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상거치를 위한 트랜트포터 설치가 잘 안되고 있다고 합니다. 시험을 했다는데 오늘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오늘 저녁 내려가 볼거다. 며칠전 내려갈 때 배가 오후 3시에 오기로 했는데 뭐 그리 일찍 가느냐고 했더니 임원들이 무조건 일찍 가야한다는 거다. 지금 거기엔 숙소라던가 하는 것이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다. 처음엔 프레스 센터에 있는척 하다가 일순 뛰어갔다. 안그러면 경찰들이 막으니까.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세월호를 따르던 가족들이 연락 오기를 1시쯤 도착할거라는 거다. 저희는 근처로 가서 보게해달라고 했는데 경찰이 무조건 안된다는 거다. 뚫고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허허벌판이더라. 좀있다가 다시 연락오기를 배가 가다가 멈췄다는 거다. 우리 때문인가 해서 나가있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시간 넘어 배가 들어오긴 했다. 역시 아무것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너무 신기한게 그날 아침 새벽부터 계속 비가 왔는데 배가 들어온 시간에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저희가 3년동안 느낀 것은 중요한 집회가 있을 때마다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지난 겨울도 너무 따듯해서 주말마다 집회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배를 보고 오니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노숙을하고 있다가 목포시에 항의해서 지금은 컨테이너 두 개가 마련됐어요.

3년전과 상황이 똑같아요. 여전히 해수부는 은밀하게 일방적으로 인양과정을 진행해버려요. 심지어 선체조사위 꾸려졌어도 이들이 힘이 없는거 같아요. 그리고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거에요. 우린 여전히 기다려요. 달라진게 없어요.

처음엔 배를 보지 못하게 했는데 싸워서 하루 두 번 볼 수 있게 됐어요. 전국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와서 응원해 주고 하고 있어요. 3년전과 달라진게 없지만 함께 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우리 가족들이 많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부활주일이 다가옵니다. 4월16일 3주기가 부활절입니다. 우리 아이가 갔던 3년전의 4월16일은 고난주간이었죠. 그래서 2014년 부활절에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었어요. 하나님이 고난주간에 이런 고난을 주시고 부활절에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는 거 아냐 하는 실낫 같은 희망을 가졌어요. 그런데 그렇지 못했어요. 부활절에 아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많은 목사님들이 제일 힘들었던 설교가 2014년 부활절 설교라고 해요. 부활의 기쁨을 선포해야 하는데 당시 상황이 그렇지 못했어요. 온 국민이 그렇게 기도했는데, 아이들도 배안에서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 했을텐데 그 아이들이....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원래 부활절 강단색이 흰색인데 그날 검정색이었어요. 그날 개기월식이 있던 날이었어요. 어느 시인이 하늘조차도 너무 참혹해서 눈을 감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었던 고난주간이고 부활절이었어요.

어찌됐던 2017년은 온몸으로 이 모든 진실을 막았던 정권이 물러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세월호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2017년의 부활절은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희 가족입장에서는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시작한 고난주간이 아직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부활의 아침은 오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올해는 빛이 미미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아직 9명의 미수습자를 못 찾았고 선체인양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완전한 부활의 아침은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번 부활주일날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 부활절예배가 안산분향소에서 16일 4시30분에 있다. 이번엔 nccck등 많은 분들이 오신다 한다. 성가대를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500분이 신청해 주셨다. 여러분들도 사역의 자리에 계시다가 시간이 되시면 함께 해달라. 안산기독교연합에선 참사부터 지금껏 가족들과 함께한 예배를 드리지 않았어요. 그 자리가 정치적이라며 갈수가 없다 반대하는 교인이 많다면서 오지 않았다. 올해도 4월16일이 부활주일인데 분향소 옆 체육관에서 별도의 예배를 드린다한다. 안타깝다.

하고싶은 말은,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라 생각합니다. 교회에 걸린 십자가는 편한 물건이 아닙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사도행전을 읽으며 제자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세월호 올라올 때 다 오열해서 쓰러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는 그냥 배가 아니고 우리 애들이 절규하며 죽어간 현장이었기 때문에 너무 보기 힘든 거에요. 제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냥 십자가가 아니었을거에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가장 극형에 돌아가시는 것을 그것도 비겁하게 숨어서 지켜봤어요. 어떤 면에서 지금 저희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해요.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국민들, 저희 가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자나요. 그 때문에 더 상처를 받고 온 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지금까지도 괴로워요. 저희 가족들은 그래서 뉴스에 배나오는 것을 보는 게 무척 힘들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후 교회에서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았어요. 괴로운데도. 왜?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그게 난 너무 대단하다 생각해요. 너무 보기 괴로운 것을 보기로 결정한겁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이렇게 잃고 나서 성찬을 맞는데 빵을 포도주에 묻힐 때 들었던 생각이, 제자들이 이 빵에 포도주를 적셔 먹을 때 이게 정말 예수님의 몸이라고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들이 목격했던 십자가상의 예수님과 너무 닮아 있던 거자나요. 피를 철철 흘렸던 그 몸과 말이에요. 그들이 그 빵을 씹어 목으로 넘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거에요.

오늘날 성찬식이 코이노니아의 방편으로 삼기는 하지만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그 빵을 씹어 넘기며 내가 얼마나 비겁했구나 이 십자가를 보며 곱씹어서 내 몸 안에 담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저도 성찬식 때 불어 터진 빵을 보면 제 아이가 생각나요. 먹으면서 너무 괴롭고 아프지만 나도 제자들처럼 내 몸에 새겨야겠다 결코 잊지 않겠다 잊지 않아야지 견딜 수 있고 잊지 않아야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교회마다 성찬을 맞을 텐데 2천 년 전의 제자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성찬을 맞았으면 좋겠어요.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빵을 씹어 넘겼을 지를 말이에요. 그 마음으로 여러분들도 때론 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용감하게 직면하여 기억하여 바꿔 나가는 게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더 이상 구경하지 마시고 제자들처럼 용감하게 나오는 여러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하며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현길 – 신학생들이 노란 배를 접었습니다.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구조된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잘 지내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두 부륜데. 현실을 외면하려는 아이와 정면으로 맞서는 아이입니다. 외면이 잘 안되지요. 저희 가족들 중에도 처음엔 외면하려 했어요. 이 일이 해결되야지 온전해 질 수 있어요. 저희 부모들도 3년을 지나며 아픔 가운데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 신앙생활하던 분들도 신앙이 더 깊어진거 같아요. 하나님에 대해 더 분명히 알게 되고, 한국교회를 더 냉철하게 보는 눈이 생긴거도 같고 앞으로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어요. 학생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이 아이들은 다 뺏긴거자나요. 친구도 시간도... 이 아이들에 대한 응당한 보상은 필요한거고 두 번째, 이 아이들은 그 가운데 아무것도 안했을까? 아니에요. 이 아이들도 저희와 똑같이 봤어요.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이 사회가 그 아이들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 아이들은 귀중한 씨앗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를 더 좋게 이끌어갈 아이들이 될거라 생각해요. 작년에 대학생들이 동거차도에 갈 때 이 아이들이 많이 동행했었어요. 이 아이들이 아직 대학생이지만 앞으로 점점 자기 목소리를 낼 거에요. 아마 부모들이 싸우는 싸움에 같이 동행할거라 봐요.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거 잠간이에요. 저희 부모들도 밥먹다가 웃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 잠간이에요. 잠간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네요. 제 생각엔 아이들의 이 상처는 죽을 때까지 완치되지 않을 거 같아요. 참사 초기에 OOO씨가 와서 강연을 했는데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하고 물었더니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됩니까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러는 거에요. 그땐 그 사람이 너무 미웠어요. 우린 진실을 밝혀야 되죠 라고 말해 주기를 바랬는데 스타강사라고 말을 막해도 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상처는 치유가 안될거 같아요. 다만 이 참사를 계기로 사회가 나아지는 것을 보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아무튼 아이들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동해요. 동거차도에도 같이 다녀오고 모든 집회에 같이 나오고, 지난해 12월엔 생존학생들이 올라와 촛불집회때 이야기 하는 등 애쓰고 있어요.

 

세월호에 대한 모든 의혹이 해소되면 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서운 질문하셨네요. 일단 이게 가능할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오는데 3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대통령이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다 그대로 요직에 남아 있거든요. 황교안이 어제 기습적으로 방통위원장 예정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되기전 일사천리로 요직에 자기사람 다 꽂아놓고 나갔거든요? 지금 황교안도 똑같은 일 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 남아 있는 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해결 안되요. 저희가 겪은 바로는 우리가 죽을 때 까지 깔끔하게 해결이 안될 거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7시간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3년이 넘도록 아직 못 밝히고 있겠어요. 그런데 다행히 해결이 되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다른 일들을 돕고 싶어요. 우리보다 먼저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과, 그리고 그 이후에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과 연대하는 일을 할 거에요. 우리도 받았자나요.

엊그제 신학생 벌금 맞았던 거 부당하니까 내지 말았어야지요. 사실 도로를 더 많이 점거한게 경찰들인데.. 경찰이 더 교통을 방해하고 길에 나왔자나요. 오히려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으며 법을 이용해 불법을 행하는거자나요, 그런 일들에 힘없는 이들과 연대하여 함께 하고 싶다고 가족들은 생각해요.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우리에게 일상은 없어요.

 

이현길 - 이번 간담회를 위해 학부에서도 함께 했습니다. 학부 총학생회장 나와서 기도해 주겠습니다.

 

 

기도회

학부 총학생회
대학원총대학원 여학생회
신학전공학생회
기독교교육학전공학생회
종교철학전공학생회
동아리연합회
총여학생회
 

 

교회에서 허락하시면 16일 오후4시30분 안산분향소에서 드려지는 부활절예배에 참여해 주세요.

 

   
   
 

 

 

 

총학생회 기도문

   
 

사랑의 주님, 2014년 4월은 우리에게 참으로 잔인한 날들이었습니다.
천진하게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295명의 싱그러운 학생들이 미처 그 꽃을 다 피지도 못한 채 하늘에 가게 되었습니다. 9명의 미수습자들은 아직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습니다. 무엇으로도 그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부디 주님께서 고통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마음속에 위로와 평안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들의 손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신 주님, 오늘 당신 앞에서 더럽고 추악한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며,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며, 아픈 이들의 손을 끝까지 잡지 못하고, 외면했던 나날들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그날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 아픈 세월을 인양하려 합니다. 아직까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들이 있습니다.
주님, 부디 그들이 온전하게 가족들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세월호에는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 우리가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간이 흘러 잊혀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던지, 항상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총대학원 여학생회 기도문

   
 

하나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는 교회는
이웃의 아픔은 무시한 채 죽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폭력과 무관심, 사랑 없음을 회개합니다.
이 회개는 제3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회개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바로 폭력이었고 무관심이었고 사랑이 없었음을 깨닫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눈물과 마음을 주옵소서

하나님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양과정에서 드러나는 해수부의 무능은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을 가라앉게 합니다.
인양이 온전하게 이루어져 미수습자들을 모두 찾게 하시고,
여전히 감춰져 있는 진실이 빛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신학전공 학생회 기도문

   
 

하나님, 오늘 저희가 이 자리에 모이게 하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세월호가 3년이 지나고 이제서야 인양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가족들이 있습니다.
부디 주님께서 이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세월호 같은 일이 이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바랍니다.
주께서 이 모든 상황들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부디 도우시길 바라오며 감사드리옵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기독교교육학전공학생회 기도문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참사에 대한 어떠한 진전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3월 22일, 그토록 기다렸던 세월호 인양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9명의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남은 인양작업과 미수습자 수색 과정 가운데 함께하여 주셔서 인양작업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미수습자들 또한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 과정 가운데에서 유가족들이 더이상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유가족분들과 언제나 함께하여 주실줄 믿습니다. 또한 그들의 마음에 더이상 상처와 아픔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가 가득하게 하여 주세요.
또한, 우리가 이 사고를 시간이 지나도 잊지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더이상 이런 가슴아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와 함께하여 주세요.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유가족들과 미수습가족들과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과 함께하실줄 믿으며 이 모든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렸습니다.

 

종교철학전공학생회 기도문

   
 

“세월호를 인양하라
세월호에 아직 아홉 명의 사람이 있다
선체를 온전히 인양하라
실종자가 아니라 수습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을 인양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세월호 가족들이 거리에서 외친 말들을 그저 따라 외쳐 봅니다. 주님, 지난 날 많은 아픈 일들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평온한 이 사회에서, 여전히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분노와 슬픔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던 이후로부터 세월호 가족들은 찬바람 부는 팽목항 앞 바다를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인양되어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세월호 앞에서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되뇌여 왔지만 사실 많은 순간들을, 잊은 채 바쁜 일상을 탓하며 함께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매순간을 예수로 본 받으리라, 예수를 섬기리라 다짐했지만, 어느날 돌아보면 더 많은 순간들을 돈과 명예와 인정을 좇아 움직였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주님, 이제 주님의 긍휼함으로 구하옵기는,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운 강도였을, 율법과 제사로 생명을 외면한 제사장이었을 우리들에게, 다시금 해야할 바를 깨닫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기도 해야 합니까?”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의 시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과 가리워진 진실과 정의 앞에서 우리가 서야 할 곳을 깨닫게 하여주옵소서.
주님, 지금 여기에 그 물음을 간절히 묻고 있는 우리에게 용기를 허락해주옵소서. 세월호 가족들의 외침과 기도에 동참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학부 총여학생회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3년전 세월호 사건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에 아물지 않는 상처와 같이 남아있습니다. 여기 모인 저희들이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프고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지체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사건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좌절한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로 그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남아있는 생존자와 그 가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하여주시고 아직도 미처 수습되지 못한 이들을 온전히 찾을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 사건안에 감춰진 진실이 밝은 곳으로 드러나게 하시며 세월호가 온전히 인양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동아리연합회 기도문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모든 걸 아시는 주님, 우리가 오늘 세월호 간담회로 이 자리에 모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 덧 꽃이 만개하는 그 봄을 기다리며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봄의 따스함처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따뜻함이 다가가길 소망합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인양 가운데도 주님 함께하셔서 더 이상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이 없게 하여주시옵소서. 특히 미수습자의 가족들을 도와주시고 인양 작업이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 가정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하옵소서. 세월호 사건 뿐만 아니라 대책이 없는 나라로부터, 관심이 없는 교회로부터 긴 시간동안 많은 상처를 받고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던 유족들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그 마음이 안정되게 하시고 평안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총대학원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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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사랑 (58.XXX.XXX.184)
2017-04-10 14:05:43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꼭 용기 잃지 마시길 기도합니다.
리플달기
7 0
수남 (203.XXX.XXX.244)
2017-04-15 21:26:20
예수 그리스도를 진보 좌파의 사회주의 계급 투쟁에 아주 겸손하게, 아주 부드럽게,아주 좋은 말로 하는 것 같다. 십자가가 아니라, 정치 종교 집회 같아 보인다.
리플달기
0 1
목사 (88.XXX.XXX.141)
2017-04-11 22:05:43
왜 사나? 좋은데로 바로 가시지~~
‘이제 좋은데 갔으니 그만 울라’고 ?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죽지 않고 왜 사나?
바로 천국으로 가시지~

같이 울어주지 않고 그런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까요? 물론 같이 울어 주었겠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리플달기
4 1
일봉성도 (122.XXX.XXX.146)
2017-04-10 07:46:33
세월호의 상처를 교훈으로
어제(4월 9일)세월호가 드디어 뭍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진도 앞바다인 맹골수도에 세월호가 침몰하진 1,091일째에 올라왔다고 하네요.
그동안 참으로 오랜기간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놓고 눈물을 지어가면서 버티어 왔습니다.
아직 세월호 선채 내부엔유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9구의 희생자가
남아있습니다.
남아 있는 희생자 모두가 잘 수습이되어 유가족들 품으로 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월호의 상처를 쉽게 지울수는 없겠지만 어서 빨리 안정을 찾기를 바라며, 다시는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세울호의 교훈을 우리모두가
잘 새겨야할것입니다.
리플달기
4 1
지나가다 (99.XXX.XXX.163)
2017-04-08 21:56:56
위로를 받을라고 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동물도 자기 새끼가 없어지거나 다치면 울부짓고 난리인데,
사람인들 다를 수 있습니까?
다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시간이 지나야 좀 정리가 됩니다.
요즘 야구선수 최동원씨 어머니가 최동원씨 동상이 있는 곳에 가는 모습이
화재가 됬듯이, 다 같은 마음입니다.
그냥 옆에서 아무소리 않하고 같이 있어 주는게 제일 좋은 겁니다.
그런데 하도 세월호 사건은 떠들어 대서, 다들 힘들어 합니다.
침묵이 가장 저주 스럽기도 하겠지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아무도 헤아려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잡고 일어선 부모들의 이야기는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늘 자녀가 생각 날 수 있을찌라도,
누가 옆에서 세월호 이야기 꺼내서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잘 인내하시고, 가시기 원합니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이라고,
어떻게 이것을 잘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니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날 기대와 소망이 있으니
이것을 품고 삶에서 건승하십시요.
사랑합니다
리플달기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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