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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교인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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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30일 (일) 00:00:00 [조회수 :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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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희망(www.gospel-hope )에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 내용이 좋아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분으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여러 글들은 無順입니다.(당당뉴스 운영자)

천주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관상기도, 침묵기도에 대한 훈련을 해왔고, 최근 개신교에서도 침묵기도운동의 일종인 레노바레(renovare 새롭게 한다의 뜻) 운동이 미국과 한국에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확산되고 있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민중신학과 개인구원중심의 복음주의와 은사중심의 오순절운동의 맛을 보아온 한국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제 조금 입을 다물자는“침묵기도운동” 은 영성훈련으로서 소리없이 확산될 것이다.

미국에서의 침묵기도운동(레노바레)은 1990년 대초부터 퀘이커교의 강한 영향을 받은 영성학자로 알려진 리처드포스터목사(교수)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도되었고 그의 저서들은(리처드포스트의 기도) 한국어로도 번역되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는 것도 있다. 한국의 개신교회에서는 주로 복음주의 진영의 목회자들이 레노바레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처드포스트목사가 시작한“이제 하나님 앞에 말 좀 그만하고 침묵을 좀 하자”라는 레노바레운동은 시기적으로 개신교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충분한 배경과 동기가 있었다. 1990년대초의 미국은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던 TV전도자들”이 넘쳤던 시대였다.

예를 들면 오순절계통의 지미스와커트목사는 오순절목사 답지 않게 근본주의적인 설교자로 유명하였으며, 그의 TV설교는 골든타임에 방영되었고 100개국이상에 송출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그는 동성연애, 낙태, 이혼, 술과 담배와 음행과 마약에 대하여 근본주의적인 멧세지를 강하게 전하였으며 세속적인 논쟁거리를 교인들에게 허용하거나 또는 그런 행위를 하는 목회자들의 뒷조사를 해야 한다는 설교를 하는 등 당시에 무기력한 교회를 떠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미스와커트재단에 헌금을 보내는 등 대단한 환호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지미스와커트목사가 매춘부와 상습적으로 놀아났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강하게 부정하였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잡혀 결국 역동적으로만 보였던 모든 사역을 전부 접게 되었다.

한편, 당시에 지미스와커트목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유명한 TV전도자였던 짐 베이커목사도 다른 여자와 간통하였던 일이 드러났고 놀라운 것은 목사부인이었던 그 아내도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일까지 알려져 베이커목사 역시 언론과 수많은 입방아에게 망신을 당한 후 모든 사역을 접게 되었다.

미국이 어느 정도로 도덕이 타락하였는가를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1995-1997년에 벌어졌는데 클린턴 전 대통령과 인턴직원 르윈스키가 백악관내에서 가진 성적관계문제를 기억할 것이다. 클린턴 전대통령은 초라한 표정으로 TV생방송 중계 하에서 자신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특별검사들 앞에서 자백(?)하는 일이 벌어졌다. 모든 언론들은 무한대의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대통령의 과거를 샅샅이 들추면서 대통령의 아랫도리 사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보도되어 미국에 세계에 망신을 당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90년대는 구소련과 동유럽의 공산독재가 완전히 무너지고 난 후 전 세계가 세계화라는 화두를 내걸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재편성되었던 시점인 동시에 정치가들이나 시민 사회 운동가들이 낙태, 동성연애, 종교간 대화, 환경보전, 인권문제를 내어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기간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초부터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의 등장과 IT산업 등을 비롯한 기술과학의 측면에서 볼 때 1990년대 10년 동안 있었던 변화의 속도와 발전의 분량은 지난 20세기 동안의 속도와 양보다 훨씬 많았다고 평가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김정일이 중국을 오랜만에 방문하고서는 “천지개벽” 이 일어났다고 표현한 것도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미국은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으로 의기양양하였고, 팩스로마와 같은 미국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었으며, TV전도자들이 대규모 안방을 점령하고서 떠들고 있었던 그러한 1990년대에 등장하였던 것이 바로 미국발 영성운동의 하나인“침묵기도운동-레노바레운동” 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에 등장한“침묵기도운동-레노바레운동”은 어떻게 보면 미국적인 상황과 가치관에서 볼 때는 필연적인 운동인지 모른다. 한마디로 세계를 상대로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해보고 모든 것을 이루었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바로 성취감 뒤에 오는 “공허감”또는 “상실감” 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발“침묵기도-레노바레운동”은 21세기를 맞이한 한국 내에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물량주의와 세속화로 만신창이 되어 있는 교회로서는 새로운 희망운동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앞으로 제자훈련이나 영성훈련과 같은 모습으로 한국교회 내에 계속 확산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내에 침투하는 "침묵기도운동의 의도성과 방향성" 에 대해서 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과거에 제자훈련프로그램이 사람을 부르고 세워서 파송하는 기본을 잃어버리고 개교회를 성장시키고 대형화 시키는 하나의 도구나 일종의 계급장으로 악용되어 작은 교회들은 더 작은 교회로 큰 교회는 더 큰 교회로 만드는 기괴한 일이 있었던 것과 똑 같이 “침묵기도-레노바레운동”이 대형화나 물량주의를 치닫고 있는 중대형교회들의 목회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교인들의 입을 교묘하게 틀어 막는 "세련된 종교도구"나 자신들에 대한 "비판의 방패"로 전락되거나 악용되지 않을까라고 심히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세습과 독재와 우상숭배를 교묘하게 가리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학습시간에 "가정에서 어버이를 마음으로부터 공경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어야 한다."는 때 아닌 "공자의 가르침"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각 교회의 담임목회자들은 일주일에 적어도 5회 이상(주일1,2부예배,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혼자서 실컷 떠들고 혼자서 자기 주장만 실컷 해놓고서, 그나마 나눌 수 있는 교회인터넷도 일방적인 교회홍보용으로 전락시켜 놓고 있는데 갑자기 교인들을 대단히 신앙적으로 보이게 하고, 교인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레노바레운동”은 그야말로 물량주의와 성장지상주의를 걸어왔던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침묵은 금이다 운동" 으로 너무나 신나는 운동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기 혼자 강단이나 기회가 주어지는 모든 시간에 “원맨쇼”를 벌이면서 실컷 떠들어 놓고서는 이제 와서 교회가 수많은 문제에 봉착되자 기가 막히게“침묵영성운동”을 들고 나와서 교인들에게 가르치면서 한국교회회복의 대안이나 되는 것처럼 씨부렁거리는 것은 지독하게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일수록 목회자 혼자서 원맨쇼 하고 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열심히 헌금이나 내고 열심히 들어 주고 “침묵”하는 교인만이 바로“축복받을 교인, 믿음 좋은 교인”으로 인식시켜 왔던 곳이 한국교회가 아니었던가?

교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말이 많았는가?” 말이 많고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은 교인들이 아니고 “말이 많은 목회자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침묵해왔던 교인들에게 말많았던 목회자들이“침묵의 영성”이 최고의 영성훈련의 단계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한국민들은 “침묵운동”에 도를 턴 “침묵의 도사들” 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인들이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한다면 과연 한국의 중대형교회나 이민교회의 목회자들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 민중들은 조선 500년, 일제식민지통치, 그리고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항상“침묵”을 강요 받았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들이 사회에서 평안히 살아가는 중요한 덕목으로“함부로 주둥이 놀리지 말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라” 는 것이었다. 지금 북한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교회가 보수적이고 복음주의 노선을 걸을수록 이상하게도 담임목회자들은“신본주의” 를 내걸고서 일방적으로 마이크를 잡고서 평생을 혼자서 말하고 교인들에게 “자신에 대한 맹종과 침묵”이 최고의 신앙수준을 가진 믿음의 사람인 것처럼 지속적으로 세뇌시켜 왔던 것이다.

이런 교인들의“맹종과 침묵” 의 부작용들이 바로 “세습과 횡령과 배임과 음란과 목사우상과 독재” 목회자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목회자가 불륜하고, 횡령하고, 독재하고 불법을 행하는 것을 두 눈 뜬 채 듣고 보는데도, 교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독재와 권위주의적인 사회와 교회에서 바른 말했다가는 “찍히고, 망신당하고,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 는 이유로 인하여 소리 없는 “침묵의 강요” 속에서 살아왔어야 하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못하고 쥐죽은 듯이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보면,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있었던 실제적인 모습들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독재와 귄위주의 정권의 권력자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민중이 “침묵”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었던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한 가지는 “입 다물고 시키는대로 하라는 언론통제” 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남산(구 중앙정보부의 취조실) 에 데리고 가서 겁 주는 것” 이었다. 입을 다물지 않으면 어느 날 붙잡혀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멍도 없이 얻어 맞거나 죽을지 모른다는 이 공포심은 정말 대단하였다. 그런데 “입다물고 시키는대로 하고 말 듣지 않으면 벌 받을지 모른다” 는 요즈음의 중대형교회의 모습과 대단히 유사하지 않는가?

지금 한국에서는 진보적인 정치가들이나 시민운동가들의 언행 때문에 많은 우려를 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 극심한 피해를 당하였던 사람들의 일시적인 반작용, 즉 심한 부작용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갑자기 “자기의 생각(사상의 자유)을 표현하였다” 는 이유로 끌려가 몰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였으며, 사회에서 평생 불이익을 당하였는데 거기에 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감옥살이 하였던 상처와 분노와 복수심이 그냥 기괴한 언행들이 바로 “양극화 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각종 양극화 현상들은 한국내 좌파들 또는 북한공산집단의 책동이라기 보다는 전부 “기득권세력들의 자업자득” 이며 지난 세월 동안 기득권세력들에게 억울하게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의 “심각한 역작용 또는 부작용” 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목회자들, 특히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자기들이 바로“역작용과 부작용”의 공범이었던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좌파와 빨갱이들은 대형교회를 싫어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대단히 무식하고 무지하며 거만한 태도로 “툭하면 구국기도회라는 이름으로 궐기대회”를 하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적어도 북한 공산집단이나 빨갱이들을 비판하려고 한다면 “자기들부터 교회 안에서 독재하지 말고, 자기들부터 불륜하거나 횡령하거나 세습하지 말고, 자기들부터 돼지처럼 배터지게 먹고 비싼차와 비싼 집에 사는 특권계급이 되지 말고, 자기들부터 교회내 인터넷과 같은 언론을 통제하지 말고, 자기들부터 세습과 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 참된 말빨이 서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마치 북한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선전용 대형 건물을 짓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오직 대형교회건물 짓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과 사명으로 알고서 민초들인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어서 거대한 건물 안에서 왕 노릇이나 독재나 하고 일산불란하게 조직화 하여 결국 세습이나 하는 자들이 어떻게“좌파와 빨갱이들은 나쁜 놈들” 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면 말할수록 “나는 대단히 사악한 기득권세력” 라고 자백하고 확인시켜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언제 그런 식으로 “좌파와 빨갱이들은 나쁜 놈”이라는 식의 정치발언을 하라고 하셨는가? 왕 같은 자리에 앉아서 호의호식하면서 민중들의 피를 빨아먹었던 종교지도자들이 도리어 예수님에게 심한 책망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공산당보다 더 독재하고 더 비도덕적이고 더 나쁜 짓을 하면서 “좌파와 빨갱이들이 대형교회를 싫어한다”고 예배시간에 떠든다면 지나가는 소나 나귀도 웃을 일이며 한마디로 “엽기적인 쇼”에 불과한 것이며, 타락한 행태들이 도리어 좌파나 공산주의자들의 활동목적을 열심히 돕는다는 역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생을 “멸공보다 더 차원을 높힌다는 승공운동”을 해왔다고 하는 통일교주가 북한에 한번 다녀오더니만 홀까닥 하고 바뀌어진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침묵의 영성을 주창해온 리처드포스트목사의 “레노바레운동”은 이론이나 테크닉이 아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삶의 열매인 것이다. 그런데 리처드포스트식의“레노바레운동”을 주도하는 한국의 목회자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단에서 열심히 말을 많이 해왔던 “말쟁이” 들로 “침묵의 영성” 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리처드포스트목사와 같은 목회나 삶을 한번도 살았던 적이 없으면서 교회의 불법과 불의에 침묵하면서 교인들에게 “침묵의 기도-레노바레운동”을 하는 한국의 복음주의 목회자들은 “또 다른 형태의 위선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 본인들은 평생을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해놓고 이제 교인들이 인터넷 시대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맞이 하여 교인들이 한 마디라고 하려고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교회인터넷을 기업과 같이 자기 선전이나 홍보용으로 만들어 놓고서 자유게시판이나 나눔의 공간은 아예 실명제니 회원제니 하는 세속적인 아이디어를 총동원하여 교인들의 입을 틀어막고서, 독재시대와 같은 또 다른 형태의 교묘한 “침묵”을 강요하는 이 시대가 되어 있다. 교회는 세속화와 물량주의로 타락하고 있는데 거기에 반발하는 교인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있는데 그런 양심의 고백을 담임목회자가 전혀 수용을 해 주지 못하니까, 교회밖으로 튀어나가 각종 기독교 안티사이트들이 우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까발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제 입 좀 다물고 침묵하자” 고 침묵의 영성운동을 벌이는 말쟁이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있으니 정말 놀랄 일이다.

세칭 근본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의 탈을 쓰고서 물량주의를 걷고 있는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는 목회스타일은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무신론 공산주의자들과 그렇게도 닮았는지 놀랄 때가 너무나 많다.

극과 극이 만나면 통한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이다. 여기서 물량주의 목회자들은 교회의 규모에 관계없이 (소형 교회이든, 중형교회이든, 대형교회이든), 복음증거와 선교와 이웃의 구제에는 관심에 없고 오직 교회 건물을 짓고서, 작은 교회로부터 수평이동이라도 시켜서 교인들을 끌어 모아 목회성공에 미쳐 있는 목회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과 독재하면서 물량주의와 성장지상주의로 나아가는 목회자들과 얼마나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 교회건물을 폐쇠하고, 목회자들을 없애고, 신학교를 없애면 하나님이 없어지거나, 그리스도교는 사라진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물량주의 목회자들은 교회건물이 판자집이나 되고, 담임목사가 없어지고, 신학교가 없어지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지거나 그리스도교가 무너진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 인민궁전과 같은 거대한 건물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의 위대성광 우수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인민들은 굶어 죽는데도 상징적인 건물들을 엄청나게 지었다.

>물량주의 목회자들은 교회건물 속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속이고서는 하나님의 역사는 곧 거대한 교회건물건축이라고 세뇌시킨 후, 교인들이야 어떻게 살든, 빚지고 굶어 죽든 호주머니를 털어서 수천억 수백억의 건물을 지었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알기 쉽게 북한체재) 수령만이 유일한 지도자이며, 무오류하고, 맹종하는 공산당간부만이 수령의 유일한 형제들이며, 충성스러운 공산당원들만이 수령의 자식들이라고 믿고 있으며 인민들은 오직 수령과 공산당간부와 당원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절대 복종을 하여야 하고, 고난이 올 때는 총폭탄이 되어서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물량주의 목회자들은 담임목사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무오류한 위임통치대리자이고, 맹종하는 당회원들만이 담임목사의 유일한 동역자들이며, 맹종하는 제직회원들만이 담임목사의 진정한 영의 자식들이며, 교인들은 오직 담임목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특히 담임목사에게 절대 복종을 하여야 하고, 담임목사가 고난이 올 때는 모든 교인들은 “총폭탄”이 되어서 목숨까지 걸고 방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 철저하게 인민의 입과 언론을 통제하여, 오직 수령의 일방적인 교시대로 움직이는 것이 인민의 영광과 축복이라고 세뇌를 시키고 있다.

>물량주의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입과 교회내 언론을 통제하고, 오직 담임목회자의 일방적인 가르침대로 움직이는 것이 교인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되는 것으로 세뇌를 시키고 있다.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 수령의 교시에 어긋나는 반동들은 사회주의 건설에 방해꾼으로 지정하고서 바로 반동으로 처단한다.

>물량주의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교인들을 교회성장의 방해꾼으로 지정하고 바로 마귀새끼들이라고 지목한다.

오늘날 근본주의, 복음주의, 보수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교회와 담임목회자일수록 교회내 언론이 통제되어 교인들에게 교묘한 “침묵”강요하고, 교회건물을 짓는 것이 대단한 헌신과 업적이며, 담임목사에 반항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라는 식의“교묘한 암시”로 지속적인 세뇌를 시켜왔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세뇌의 결과” 가 아니고는 어떻게 불륜하고, 횡령하고 배임한 타락한 목회자를 여전히 감싸고 “우~리 목사님”하면서 교회를 다닐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아내 아닌 여자 앞에서 바지를 함부로 내리고 몸부림치는 인간을“우~리목사님” 하는 맹신족들이 이 사회의 지천에 깔려 있으니 다섯명에 한 명이 개신교인들이라고 하는데 사회는 더 음란해지며, 더 부패해지는 것이다. 목사도 불륜해도 끄떡 하지도 않는데 평신도인 나는 불륜해도 문제가 없겠지 하는 공범의식이 있으니 세계 3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이혼률이 높으며, 고아들이 보육원에 차고 넘치고, 1년에 2천 500명 이상의 고아들이 해외에 입양되어지며, 수도권만 하여도 70만명 이상의 매춘여성들이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태연히 불법을 행하고, 부도덕하여도 교인들이 오로지 “총폭탄” 이 되어서 그런 타락한 목회자를“침묵”으로 비호 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 이 집단정신질환적인 억제심리와 행동이 바로 교회는 물론이고 사회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교회들은 왜 인정하지 않는가? 불법과 불의와 천인공노할 비도덕을 보고도“침묵” 이라는 형태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은 “세뇌” 외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무신론공산주의자들에게 인민들이 세뇌 당하는 그 수법” 과 똑 같은 방식으로 교인들도 혹세무민 속에서 오랫동안 철저하게 “세뇌”를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들이 타락하고, 갱신의 가망성이 미약한 이유는 타락한 목회자들과 직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러한 타락한 자들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도록 세뇌된 “침묵”이 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타락한 목회자로부터 은혜를 받겠다고 자리를 채워주면서 기계적으로 “아멘” 하는 교인들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의 “침묵” 의 주소를 찾아가면 “깊은 영성”이나 “예수님의 마음” 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한국교인들의 “침묵”은 “말하면 죽는다”는 조선 500년 봉건주의사회로부터 피 속에 흐르는“일단 살고 보자는 생존본능”과, 말하면 일본도에 목이 날아간다는 일제시대의 “비열한 생존본능”과, 바른 말하면 남산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독재정권하에서 겪었던 “공포심 속에서 잘 먹기만 하면 되지 뭐, 조용히 살자” 하는 “기복적인 돼지본능”이 믹서가 되어 “침묵”이 골수에 박혀 버렸으며, 무한한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본능적으로 “세뇌되고 강요된 침묵”이 교회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민교회의 상당수는 엄청난 불법 속에 휩싸여 있다. 교회이름으로 가짜 교직원, 가짜 전도사, 가짜 목사의 재직증명서를 발행하여 종교비자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담임목회자-당회서기-재정부장이라는 삼각동맹 속에서 수천달러에서 수만달러를 받아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선교나 중국선교나 제3세계의 선교를 한다는 명목으로 영수증 없는 선교비를 교회나 개인들로부터 챙겨서 선교여행하는 척하면서 인마이포켓하는 골빈목회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담임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받는 사례를 분산시켜 실제는 엄청난 혜택을 받으면서 안그런척 교인들에게 내숭을 떨고서는 뒷돈 또는 동정을 받는 "쇼맨쉽"도 대단하다.

그런데 연말감사 또는 공동의회에서 불의가 전부 드러나는데도 교인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침묵하도록 길들여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특히 이민교회는 수평이동이 심하기 때문에 교회 속에 만연하는 불법들에 대하여 교인들이 관여하기를 원치 않는다. 한마디로 그냥 이민의 삶에 지쳐서 교회나 왔다 갔다 하는 종교생활이나 하고 사람들 만나서 키득꺼리는 친목회나 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민교회는 갈등하는 본국교회보다 훨씬 더 썩어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침묵하는가? 그 뿌리 속에 길들여짐의 흔적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나는 왜 침묵할 수밖에 없는가? 그 뿌리 속에 어떤 녀석이 들어 앉아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나는 왜 침묵이 상습화 되어 있는가? 그 뿌리 속에 어떻게 세뇌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두려움 속에서 불법과 불의에 침묵하도록 철저하게 세뇌되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그 모습이 과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며 “참영성” 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하셨는가? 외쳐야 할 때는 외치셨으며, 꾸짖어야 할 때는 꾸짖으셨고, 탄식해야 할 때는 탄식하셨고, 부르짖어야 할 때는 부르짖었으며, 울어야 할 때는 울었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하셨으며, 아파해야 할 때는 아파하셨으며, 울부짖어야 할 때는 울부짖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외쳐야 할 때는 뒤로 궁시렁거리고, 꾸짖어야 할 때는 아부하고, 탄식해야 할 때는 씩씩거리고, 부르짖어야 할 때는 내 배만 채워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울어야 할 때는 웃어버리고, 침묵해야 할 때는 변명하고, 아파해야 할 때는 낄낄거리며, 울부짖어야 할 때는 입다물어 버리는 상태는 아닌가?

지난 10년 동안 왜 교회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타종교는 전부 성장하였는데 개신교회 만큼은 왜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는가?

그 진짜 이유는 "지속적인 세뇌와 침묵의 반강요" 속에서 복음을 외치는 그리스도인, 죄를 꾸짖는 그리스도인, 이 땅의 죄악들을 보고서 탄식하는 그리스도인, 주님의 나라와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부르짖는 그리스도인, 죄를 붙잡고서 애통하는 그리스도인,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따라가는 침묵하는 그리스도인,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아파하는 그리스도인, 죄를 회개치 않으면 망할지 모른다는 절박감으로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하여 울부짖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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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 마디 (192.234.212.253)
2007-05-25 00:44:29
지식없는 외침
당당하게 저도 글을 씁니다. 진정으로 관상기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요? 얼마나 책을 읽어보았나요? 글쟁이라면 어느 정도의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써야 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글은 당신의 철학과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쟁이요 괘변일 뿐입니다. 그냥 침묵이라는 단어하나로 모든 것을 매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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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61.252.115.23)
2006-07-30 16:14:11
^^
좋은 글 넘 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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