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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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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3월 26일 (일) 23:27:16 [조회수 : 6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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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무지근한 어깨 통증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어렵다. 어깨를 주물러도 보고 자세를 바꿔보기도 하지만 통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곁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와 몸을 풀어보기도 한다.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은 통증을 "조직에 생긴 손상과 관련된 불쾌한 느낌"이라고 정의하는 한편 통증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해로운 물질로부터 물러나게 해서 생물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한편 환자에게는 치유과정에 필요한 휴식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휴식을 보장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가끔 병원에 입원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이랍시고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으니 강제로 부과된 이 휴식 시간을 통해 깊어지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통 혹은 통증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한센병 환자였던 시인 한하운이다. 그는 나병 확진을 받고 소록도를 향해 걸어가던 자기 경험을 <全羅道길>이라는 시에 담았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뿐이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붉은 황토길은 아득하고 암담한 시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숨막히는 더위는 중의적이다. 날씨가 덥다는 뜻도 있지만, 벗어던질 수 없는 구속복에 채워진 것 같은 절망감이기도 하다. 낯선 사람들은 모두 공포의 대상이 된다. 천형을 앓는 자라고 하여 모두 기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과 서러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그늘 아래서 다리쉼을 할겸 지까다비를 벗는 순간 발가락이 '또' 한 개가 없어졌음을 안다. 그 가슴 철렁한 절망의 순간을 건조하게 묘사하고 있기에 슬픔의 정한은 더욱 깊어진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길". 그것이 절망의 길이라 해도 삶은 계속된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삶이 내린 고통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말끔히 비우겠다는 다짐인가?

잠에서 깨어난 김에 지금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세상에서 이유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나 때문에 울고 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중에서).

그런가? 나도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싶다. 고통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지상에서 몸을 받아 살아가는 인간 경험의 저 밑바닥에는 슬픔의 강이 흐르고 있다. 문득문득 자기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그 슬픔의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보면 문득 곁에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위의 세계에 머물 때 그들은 나와 무관한 존재들이었지만, 슬픔의 강가에서 그들은 남이 아니다. 아픔과 슬픔은 우리를 타자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인들이다.

뇌 신경과학자들은 전두엽과 측두엽을 연결하는 회로인 변연계가 망가지면 감정에 장애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사회 관습에 역행하여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반사회성 성격 장애를 보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기들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 참수를 일삼는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이나, 파렴치하고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람들을 노려보는 사람들을 보면, 말세가 되면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떠돌게 될 거라는 유대인들의 전설이 떠오르곤 한다.

문제는 그런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만이 아니다. 경쟁을 내면화한 채 살고, 욕망의 거리에 내몰려 쉼없이 질주하고 있는 우리 역시 타자들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진지 이미 오래이다. 가슴이 무너져내려 통곡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말을 해대는 이들이 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변연계가 무너지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통각이 회복되어야 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간지럽긴 하지만 연속극에 나왔던 이 대사를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재는 척도로 삼아보면 어떨까? 무지근한 통증이 좀 가시면서, 창을 통해 희붐한 빛살이 비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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