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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온유한 자들
박평일  |  BPARK7@CO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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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3월 23일 (목) 20:18:47
최종편집 : 2017년 03월 23일 (목) 20:19:16 [조회수 :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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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온유한 자들

 

3월 20일,  아침 햇살이 찬란하다.  산새들의 지절대는 노랫소리들도

한결 상큼하기만 하다.  외진 숲 속  그늘아래 잔설들이 히끗히끗 눈에 들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이 아직은 차갑다.

그래도 봄은 역시 봄이다.

 

지난 겨울 벌거벗은 벗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문득  1950년대에 가수 남인수가 불었던 유행가

‘청춘 고백’ 의 노랫말이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를

바람소리처럼 스쳐간다.

 

"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것 이내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말자

누가먼저 말했던가 아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많은 내청춘"

 

인간들의 마음은 이렇듯 간사하고 변덕스럽다.

해어지면 그리워 하고 옆에 두면 쉽게 시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나누는 키스가 아무리 감미롭기로소니

어찌 30분을 넘길 수 있겠는가?

키스는 짧을수록 더 황홀하고 사랑은 짧을수록  더 애절하다.

 

사랑의 맹세라는 것도 그렇다.

하늘로도, 예루살렘 으로도,   머리로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허무한 사랑의 맹세다. 인간들은 한 길을 택하는 순간

택하지 못한 다른 한 길을 곧  아쉬워하기 시작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 그것이 문제로다.”

이는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가 낳은 케럭터 햄렛만의 고민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고민이며 인류역사의 고민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의 저자인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게고르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죽을 때까지 망설이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죽고말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럭키한  행운아이고 위대한 혁명가인가?

 

“ Whatever you can do, or dream you can, Begin it.

Boldness has genius, power and magic in it. –Goethe-

내 책상머리에 걸어두고 항상 쳐다보는 괴테의 잔소리가

오늘따라 고맙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변덕스럽고 간사한 인간들의 마음을

순진한 한국 50년 대의 노랫말을 빌려  죄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그건  내탓도, 네탓도 아닌  인간들의 본성인 탐욕 탓이다.

물컵에 반이 채워진 물을 감사함으로 마시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빈 반쪽을 아쉬워하는  탐욕스런 동물들이

바로  인간들이다.

인간들은 평생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두고 고민 고민하다가

정작 빈손으로 죽어간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선택의 고민이야 말로

인간의 본능적 고독이고 죽음에 이르개 하는  질병이다.

 

우주 존재계는 옛것들에 대한 추억이나 미련이 없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소망과 걱정도 없다.

순간 순간 다가오는 새로운 선물들을

있는 그대로 늘 사랑하며 즐길 뿐이다.

 

生과 死 는 흘러가는 하나의  과정이고 상태이다.  

 

올봄을 맞으며 문득,

‘늙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신의 섭리와 사랑을  이해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봄이 맞을 때마다

영국 시인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 나오는

“사월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는 싯귀를 음미하며

엘리어트의 탁월한 통찰력과 감수성에 감탄하곤 했었다.

 

철이 더 든  탓일까?  더 늙은 탓일까?

올봄에 대한  감상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의지할 잎도 하나 없이

겨울을  뚫고  샛노랗게 피어나는 연약한 한 송이

들꽃을 깊게 바라다보며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치열하고 잔인한 생명의 목소리가 더 이상 아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는 여리고 연약한

사랑의  신비한 속삭임이다.

 

그리고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하는

해맑은 예수의 외침소리였다.

 

그렇다.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

그리고 저 사랑의 대지는

마음이 온유한 자들의 영원한 안식처다. 

 

 

03/20/2017 아침 메모

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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