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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신뢰회복 방안을 찾아서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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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3월 11일 (토) 05:51:16
최종편집 : 2017년 03월 24일 (금) 02:19:51 [조회수 :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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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뉴스>에 올라온 “성인 2명 중 1명 “한국교회 신뢰하지 않아 라는 제목의 기사는 우리를 긴장시킬 뿐 아니라 부끄럽게 만든다. 기윤실에서 3월 3일 발표한 ‘2017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1.2%로 역대 최고치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교인들의 40.1%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비기독교인들은 89.3%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니,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불신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윤리와 도덕의식의 결여를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사회를 부패시키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목사나 장로라고 하면 모두 존경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추락했는가!

그동안 교회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말해도 교계에서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내 교회의 몸집을 불리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비기독교인들 10명 중 9명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지금 내 교회의 몸집을 불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제 기독교계가 발 벗고 나서서 더 이상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일찍이 이 사실을 직시한 김세윤 교수는 『칭의와 성화』에서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부끄러울 정도로 낮아진 것은, 김 교수의 주장대로, 우리가 칭의만을 강조하고 성화를 소홀히 한 결과다. 달리 말해서, 믿음만을 내세우고 행위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이번 기윤실의 신뢰도 조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추락해 가는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려면 칭의뿐 아니라 성화도, 믿음뿐 아니라 행함도 힘써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여서 악을 벗어나기 위해서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죄에 빠지게 되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독일의 속담이 있지만, 사람이 자기의 갈 길을 계획할 때 하나님이 그의 걸음을 인도하신다. 그런데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시기만을 바라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믿는 사람은 심판 날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려는 사람이다.

우리는 믿음을 중시하고 행함을 외면한 루터의 신학을 금과옥조로 삼아 왔는데, 그는 성경을 편향적으로 읽은 사람이다. 성경에서는 칭의나 믿음뿐 아니라 성화나 행함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가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을 정경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그의 편향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윤리의식의 결여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지금, 우리는 루터의 신학을 재고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김 교수의 『칭의와 성화』는 한국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한 안성맞춤인 안내서다.

김 교수는 영국의 만체스터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총신대에 있다가 미국의 풀러신학대학에 가서 가르치고 있는 신약학 교수다. 그가 총신과 풀러신학대학에서 가르쳤다는 것은 그가 보수진영의 신학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칭의와 성화』에서 칭의와 성화가 모두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의외다.

김세윤 교수는 칭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진보적인 톰 라이트를 비롯한 소위 ‘바울에 대한 새 관점’ 학파의 신학자들과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런데 김 교수는 그 논쟁을 통해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그 자신도 성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어느 신학자의 신앙적 노선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가 죽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보수적인 그가 진보적인 논쟁 상대자들에게서 배웠다는 것은 신학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그의 사고의 유연성을 말해준다.

김 교수는 그 책에서 칭의 다음에 성화가 따르는 것이 아니고 칭의와 성화는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칼빈이 칭의와 성화를 언급했지만, 그 두 가지를 구분해서 칭의 다음에 성화와 견인이 뒤따른다고 가르친 결과 칭의만이 강조되면서 성화는 외면당하게 되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가 보수적인 신학대학의 교수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개혁자들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열린 자세가 주목을 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에서는 개혁자들의 신학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함으로써 바울의 칭의에 중점을 두고 성화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결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삶에 관련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김 교수는 그런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서 지금 한국교회가 타락하고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면 우선적으로 ‘거룩한 삶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본받기 위해서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윤 교수가 지적하는 대로, 한국교회는 바울 서신에 기록된 칭의를 중시하면서 복음서에 명시되어 있는 삶을 외면하는 성향이 강하다. 바울의 서신에도 칭의 외에 성령의 열매나 사랑을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오지만,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그런 구절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예수교인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면서 바울 서신들에만 의지하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기 때문에 ‘예수 없는 예수교회’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달 경동교회의 ‘평신도 포럼’에서 김형석 교수가 교회가 그리스도를 상실했다고 말한 것은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칭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믿으면 믿는 그 순간 구원이 완성된다고 가르치지만, 김 교수는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구원은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삶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믿음은 구원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그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과 삶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경에는 종말에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 하나님의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이라도 영적인 삶에서 벗어나서 육적인 삶을 살면 구원의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구원은 심판의 날까지 미완성 상태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도의 견인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견인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행함을 중시하는 성경구절들을 외면하는데, 성경에 상반되는 진술이 나올 때는 문맥을 잘 살펴서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견인과 탈락에 관한 경우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지만 인간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편향되지 않게 읽어야 한다는 글 읽기의 기본을 따르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신학적 주장을 앞세워서 성경을 읽으면 그 주장에 맞는 구절들만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견인을 앞세우는 사람의 눈에는 견인만 보이고 타락은 보이지 않는다. 김 교수는 성경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읽은 사람이다. 신약에는 칭의와 믿음을 강조하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있지 않고 복음서들과 야고보서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로마서 12장 이하에서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복음서들에서도 믿음의 중요성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세윤 교수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느 한 부분에만 확대경을 대고 읽지 말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책읽기의 모범을 그의 책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는 바울의 서신서뿐 아니라 신구약 전체에 나오는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칭의와 성화가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편향적 성경 읽기에 익숙해 있는 한국교회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려는 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김 교수는 그가 한국에서 가르친 12년이 그의 신학 연구에서 공백 기간이었다고 말하지만, 그가 논쟁 상대자들에게서 성화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교회의 타락상을 한국교회에서 보았기 때문에 칭의만을 강조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가 한국에서 가르친 12년 동안의 경험은 칭의와 성화에 관한 그의 신학 연구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가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여 위기를 맞은 지금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는 한국교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좋은 안내서다.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은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성경해석이나 신학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성경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한국교인들은 보수적 신앙을 옹호하던 김 교수가 왜 성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 그의 책에서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칭의와 성화』는 김 교수가 한국 교인들을 상대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어려운 신학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쉽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현실과 직결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감 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가 나날이 추락하고 있는 지금, 『칭의와 성화』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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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칭의와 성화』/두란노서원, 2013년/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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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XXX.XXX.242)
2017-03-11 19:17:03
간단하게 理氣論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갈래 이기론의 군더더기를 다 빼고 그 줄기만 살펴보면 理氣論의 理는 사물의 근본(행동원칙)이라고 한다면, 氣는 근본이 활성화 된 상태(행동양태)를 뜻합니다. 퇴계선생은 理에 방점을 찍었고, 율곡선생은 理氣에 동시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성철대종사의 경우 단번에 깨우친다고 했습니다. 퇴계선생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진정으로 깨우쳤다면’ 행동원칙이나 행동양태가 일치한다는 겁니다. 행동양태가 나쁜 것은 진정으로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철대종사의 頓悟論에 이의를 제기하여 頓悟漸修論을 주장하는 대종사도 많습니다. 율곡선생의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행동원칙을 정해두고 꾸준하게 정진하고 노력해야만 ‘진정으로 깨우칠 수’ 있다고 합니다. 단번에 깨우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성경에는 칭의(예수의 행동원칙)와 성화(예수의 행동양태)를 구분 없이 있는 그대로 記述하고 있습니다. 칭의만 알면 구원을 얻는다는 구절에 함몰되어 다른 것을 일체 배제해버린다면 절름발이 칭의에 불과합니다.

퇴계선생 식으로 풀이하면, 진정으로 칭의를 얻었다면 성화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 아니냐? 성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진정한 칭의를 얻었다고 볼 수 없다.

율곡선생 식으로 풀이하면, 칭의를 입에 달고 다니지 마라! 인간은 부족하여 계속 수양을 쌓아야만 한다. 성화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 주제에 칭의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건 주제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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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222.XXX.XXX.85)
2017-03-11 11:48:39
교회는 예수님 것.!!!

교회는 담임목사 것 =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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