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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자 고난의 종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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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3월 04일 (토) 21:52:38 [조회수 :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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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장 1-4절

정의의 사자 고난의 종

 

가. 성도는 정의의 사자로 살아야 한다.

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부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 본문은 이사야서에 있는 ‘고난의 종의 노래’ 4개 중에 하나다. 그런데 고난의 종은 이방에 공의를 베푸는 정의의 사자다. 이는 성도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가장 힘든 사명 중에 하나다. 성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세상에서 정의의 사자로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의의 사자는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사명을 감당한다. 여기서 ‘정의’(미스파트, 공의, 공평)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다. 그리고 ‘베풀다’(야차, 히필)는 ‘이끌어내다’ 또는 ‘결실을 맺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성도들은 정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에 정의와 공의를 이끌어내고 결실을 맺게 하여야 한다.

* 물론 정의의 사자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의의 사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역에 앞서 성령을 받았음을 참조하라.

 

나. 정의의 사자는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4절,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 세상에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해 정의의 사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의의 사자는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세상에 정의를 이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영적 싸움이다. 이 일에는 거친 저항과 방해공작이 있다. 성도들은 이를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 본문에서 고난의 종은 정의를 세우는데 힘들어도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기 싫어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안위와 평안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 주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셨고(마5:6),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셨다(마5:10). 성도들은 정의를 위하여 앞장서다가 고난을 당할지라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정의의 사자는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다. 예수님이 모델이다.

2절,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 그런데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할 정의의 사자, 즉 고난의 종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서 완벽하게 사셨다. 물론 예수님만을 고난의 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배우고 따름으로써 예수님처럼 정의의 사자로 살아야 한다.

* 우선 정의의 사자, 고난의 종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2절). 정의의 사자의 역할이 고함치고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의와 공평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몸소 실천해야 한다.

* 또한 정의의 사자는 힘이 없어 압제당하는 사람들을 배려한다(3절). 그는 꺼져가는(케헤, 연약한)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상한(라차츠, 분사수동, 지속적으로 압제당하고 있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는 힘 있는 사람들이 약한 이들에게 포학을 일삼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예수님이 약한 사람들을 불쌍히 보시고 긍휼을 베푸셨듯이 성도들도 그리해야 한다.

 

라. 정의의 사자는 약자들의 희망이 된다.

4절,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이 말씀은 정의의 사자가 고난을 무릅쓰고 정의를 실현하면 이것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섬’(이)은 ‘열망하다’(이봐)에서 유래하였는데 연약한 가운데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연약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들을 절망에서 건져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성도들은 정의의 사자로서 이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한다.

* 예수님은 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하셨다(눅4:18).

* 이처럼 정의의 사자로 사는 것은 고난의 길이지만 약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된다. 또한 정의의 사자는 약해 보여도 실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힘이 있다. 그들에게는 마음으로 존경할 만한 권위가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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