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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던지러 오셨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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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2월 11일 (토) 18:43:48 [조회수 :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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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장 49-53절

불을 던지러 오셨다

 

가. 주님은 불을 던지러 오셨다.

49절, “내가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본문은 주님의 열정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불을 던지러 오셨다. 그리고 그 불이 붙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이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여기서 ‘불’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체로 성령의 불, 또는 심판의 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본문의 전후문맥을 보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인 ‘의’의 불을 가리킨다. 주님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을 참조하라(마6:33).

* 본문의 앞에서는 주님의 날에 벌을 받지 않도록 주인의 뜻대로 행하라고 하셨다(46-48절). 그런데 ‘의’(디카이오스)는 ‘벌’(디케)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의를 행해야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뒤에서는 “천지의 기상을 분별할 줄 알면서...어찌하여 옳은 것을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하셨다(56-57절). 결국 ‘옳은 것’(디카이오스, 의)을 깨닫고 따르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활활 타오르기를 원하셨던 것은 ‘의의 불’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 타협이 능사가 아니다.

51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씀은 주님이 생각하는 화평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맞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화평을 이루는 방법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 일반적으로는 타협이 능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옳은 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 ‘옳은 것’(의)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옳은 것’이 화평을 확고하게 만든다. 언제나 옳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불의가 타협으로 적당하게 가려져서는 안 된다.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 쉽게 사는 길이지만 진정한 화평을 이루는 길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지 안 돌아가는 것을 타협해서 억지로 돌아가게 하면 더 큰 분쟁을 초래한다. 타협이 능사가 아니다.

 

다. 의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라.

49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주님은 의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를 원하셨다. 주님은 ‘이미 불이 붙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주님은 의의 불꽃이 타오르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를 생각하며 답답함을 호소하셨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하셨다(50절). 주님은 의의 불꽃이 타올라서 십자가와 같은 심판을 받지 않기를 원하신다.

* 여기서 ‘불이 붙었으면’(아납토, 수동)은 의의 불이 성도들에 의해 타올라야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의의 불은 스스로 타오르지 않는다. 의의 불이 타오르게 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다. 교회는 주님이 던지신 의의 불씨를 살려 세상에서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 이사야 선지자는 의의 사명을 강조하였다.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라고 하였다(사45:8). 교회는 정의와 공의를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 의가 진정한 화평을 이룬다.

51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 맞다. 주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오셨다. 다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적당한 타협에 의한 화평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에 기초한 화평을 주려고 오셨다. 이사야가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고 한 것을 참조하라(사32:17).

*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다(롬14:17).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는 정의와 공의다. 그리고 공의와 정의가 활활 타오르면 평강과 희락이 확고해진다. 성령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진리로 인도하신다.

* 하나님 나라의 의는 혈연관계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물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 혈연관계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그러나 혈연관계(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적당히 타협하면 참 평화를 누릴 수 없다. 혈연관계보다도 하나님의 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즉 의에 기초한 화평은 혈연관계에 의한 화평보다 더 확고하다. 이것이 확실한 화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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