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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량 사역은 '삯꾼 목사'의 천적목사가 없으면 안 되는 교회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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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1월 19일 (목) 03:57:54
최종편집 : 2017년 01월 22일 (일) 14:26:53 [조회수 : 7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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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약 300년간 교회는 자비량 목회자들에 의해 인도되었다. '폴 스티븐스' 교수에 따르면 2세기 알렉산드리아 교회에는 600명의 성도들이 모였는데 그 교회 설교자의 직업은 은장색(Silversmith)이었다. 4세기 유명한 설교자 크리소스톰(Chrysostom, AD.347–407)은 "시골 목회자들이 소를 가지고 밭을 가는 일을 한다"고 했다. 또한 가자(Gaza) 지역의 주교 제노(Zeno, AD.400)는 직물을 짜는 일을 했다.

초기 교회의 이런 자비량 목회 구조를 점차 유급 전임 제도로 변질시킨 것은 성직주의에 빠진 중세 가톨릭 교회였다. 그리고 16세기 종교 개혁도 결국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 했다. 다만 사제의 자리를 목사가 대신했을 뿐이다.

 

왜 자비량 사역인가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했다. 바로 유급 목회의 권리다. 그런데 그는 그 권리를 다 쓰지 않은 것이 상이라고 하며 굳이 고생길인 자비량 목회를 택했다.

그 절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유급 전임 사역이 복음 전도에 더 집중할 수 있어 효과가 큰 것이 사실임에도 그는 자비량 사역을 했다. 단지 상을 더 받기 위함이었을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9:12)."

바울이 자비량 사역을 택한 것은 그게 도덕적으로 더 우월해서도 아니고 목회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도리어 시간의 분산으로 인해 더 피곤하고 효율성도 훨씬 더 떨어진다. 자비량을 택한 진정한 기준은 오직 복음에 장애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개신교는 극심한 교권주의에 의해 지속적으로 고통받았다. 유급 전임 제도는 언제나 교권 집중과 교회 부패를 동반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이 있은 곳에 반드시 구더기가 생기는 원리와 같다. 그리고 그런 구조가 일반화하고 고착화할수록 그걸 지능적으로 악용하여 더욱 교회를 이권화하고 사유화하려는 사악한 무리들이 반드시 득세했다. 소위 말하는 삯꾼 목사들이다.

중세적 교권주의에 쩔은 현재 한국 개신교의 모습이 그 명백한 증거다. 설교 한 번 하고 백만 원 이상을 주고 받는 교회, 세습이 나쁜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장로, 툭하면 터져 나오는 성추행 목사, 그리고 먹었다 하면 보통 수억 원이 넘는 횡령 목사들이 그 자화상이다. 사회에서 그런 짓 하면 바로 끝짱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 거룩한 교회에선 모두 아주 안녕하시다. 한국 개신교는 그런 부패를 응징할 자정 능력조차 상실했다는 얘기다.

한 세대 전부터 나는 언젠가 개신교 목사 제도가 그 사역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매서운 눈총과 공격을 받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많은 직업 목회자들이 맘몬적 성직주의에 빠져 무당 목사 또는 귀족 목사처럼 교회에 발암적 존재가 되는 때로 보았다. 그런데 요즘 교회 비리는 대부분 담임목사다. 이제 거의 때가 찬 것 같다.

 

'삯꾼 목사' 동반한 개혁은 시간 낭비

개신교의 극심한 변질은 마피아적 성직주의에 기인한다. 교회 비리의 모든 틈새마다 삯꾼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어떤 종교적 특권이 있다고 착각하는 무리로서 교회 회복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방해하고 왜곡했다. 개신교를 망친 주범이다. 결국 중세적 성직주의를 동반한 체 추진하는 개혁은 그냥 시간 낭비이며 심력 낭비일 뿐이다. 그 덕분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린 이미 충분히 실패했다.

그래서 이제 사도바울에게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복음을 정면에서 가로막고 있는 고질적 불치병인 성직주의와 교권주의를 극복하려면 기존의 유급 전임 제도로는 역부족이다. 사도들의 자비량 정신이 필요하다. 자비량 사역은 교회 부패에 천적이다. 무급으로 자원 봉사할 삯꾼 목회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존 목회자들은 자비량 사역을 설사 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장기간의 정규 직업 교육이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 했기 때문에 다른 전문직을 갖기란 더욱 어렵다. 물론 단순 노동도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탄탄한 직업을 갖고 있는 교인들 중에 소명과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자비량 사역에 나서는 것이다. 필요한 신학 공부는 야간 과정, 온라인 과정, 통신 과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비량 사역은 구태여 목사 안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목사 직분을 받아도 좋고, 받지 않아도 별로 지장 없다. 목회나 설교는 신분이 아니라 은사다.

사실 기능면에서만 보자면 유급 전임 목회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임 목회가 더 효과적이다. 신실하고 유능한 전임 목사도 많다. 그러니 자비량 목회라고 해서 특별히 더 우쭐할 이유는 없다. 어느 경우든 자신이 받은 소명대로 하면 된다. 따라서 자비량 사역자들이 목회하는 교회는 목사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 없다. 목사만 목회하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물론 자비량 목회를 한다고 해서 더욱 바른 교회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동안 개신교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며 골수를 갉아먹은 삯꾼 목회는 현저하게 벗어날 수 있다. 좋은 교회를 정말 이루고 싶다면 먼저 만성적 부패부터 제거해야 옳은 순서다. 사회의 기본적 상식과 윤리마저 못 따라가는 교회는 절대로 바른 교회가 될 수 없다.

 

더 좋은 교회

앞으로 한국교회는 "평신도의 동역 없이 새 시대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을 깊히 자각해야 한다. 나는 유급 전임 목회 제도가 그 사역의 효율성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성직주의의 발원지' 역활을 한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평신도의 주도적인 동역만이 앞으로 그 실패의 틀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목사와 평신도를 중세적 이분법으로 구분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목사 자신도 평신도 중의 하나라는 깊은 자각이 있어야 하며 스스로 특권 의식을 버리고 분수를 지켜야 옳다는 거다. 목사 또한 장로나 집사처럼 교회의 한 직분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자비량 공동 사역은 목사를 포함한 모든 교인이 교회 운영의 주체로 등장하는 신호탄이다. 교인이 관리하고, 교인이 설교하고, 교인이 가르치고, 그리고 교인이 섬긴다. 그래서 초기 교회 이후에 상실했던 교인의 주권을 다시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동안 교회에서 제사장 대우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오직 목사만 제사장 대접을 받았다. 개혁 교회는 말로만 "평신도와 동역한다"고 하며 하인처럼 이용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평신도를 제사장으로 대우해야 마땅하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은 중세 성직자에 맞서 싸워 평신도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늘 하나가 부족했다. 목사에게 종속된 교회가 너무 많다. 어떤 교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헌금으로 고용한 일개 목사를 도리어 상전으로 모신다. 종이 주인의 안방을 차지한 꼴이다. 이제 다가오는 제2의 개혁은 현대 성직주의에 맞서 평신도에게 '교회'도 돌려주어야 옳다.

물론 목사가 성실하게 사역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다. 그러나 목사가 없어도 되는 교회는 더 좋은 교회다. 반면에 목사가 없으면 안 되는 교회는 한심한 교회다. 특히 유급 목사가 마치 굿판의 무당처럼 필수적인 교회는 분명히 잘못된 교회다. 그런데 지금 개신교는 그런 한심한 교회를 잔뜩 만들어 놓고 태평하기 그지 없다.

종교 개혁 500년의 개신교 역사가 계속 실패하고 있는 이유다.

"초대교회 공의회의 토론거리는 목사가 세상에서 돈을 벌 것인가, 아니면 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것이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대부분의 목사들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폴 스티븐스(Paul Stevens), 리전트대학 명예교수.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 Priscilla, Aquila and Paul depicted as tent-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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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183.108.46.119)
2017-01-19 15:25:32
시각을 달리 해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에게 교회출석이 왜 필요하죠? 예수를 믿고 따르면 그걸로 족하다고 봅니다.

교회에 나가 목사의 말도 안 되는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다고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하고, 집사, 안수집사 또는 권사, 장로 등의 구조에 갇혀지내는 걸 신앙생활이라고들 합니다.

목사가 성도에게 제사장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스스로 제사장행세를 하는 게 복음적이지요.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면, 그게 바로 제사장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이걸 자비량 목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혹자는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으로 교회출석을 강변하지요. 한 가정에 부부와 자녀가 모두 성도면 적어도 3인 이상의 성도, 아니 3인 이상의 제사장이 모였으니, 그 가정이 곧 교회고, 그곳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지요.

그런 제사장들이 이 땅에 넘칠 때, 그래서 대형교회의 좌석들에 곰팡이가 슬 때, 그때에 가서야 개신교는 개혁을 완수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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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
여이레 (175.207.68.4)
2017-01-21 00:48:48
사랑하는 교회가 없으시군요...
요즘 민망해서 고개를 못들 정도로 창피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런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죠. 사랑하는 교회를 만나시기 바래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마16:18"

다른 분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죠. 여기서 말씀하신 교회는 아무리 봐도 '신실한 가정'은 아닌 것으로 보여요. 영문으로도 church 이고요. 헬라어는 전 모르구요,

사도 바울 선생도 사방에 다니시면서 교회를 세우셨어요.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고 물론 가르치셨지만, 그것 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가시는 곳마다 세우셨다는 말이죠.

안나가는 건 보다는, 나갈 만한 곳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교회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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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
가나안 (183.108.46.119)
2017-01-21 22:46:53
순진무구
사랑하는 교회? 너무 주관적입니다. 그게 어떤 교횝니까? 목사가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대우하는 교회?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 그거야 주님께 직접 여쭤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지.

바울과 베드로는 우리와 동격인 성도들이고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에게서 본받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답은 예수님에게서 찾아야죠.

좋은 교회가 많다고요? 하나 소개해 주시죠. 하지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사방에 다니면서 교회를 세운다. 그게 요즘 상황에서는 가정교회 아닙니까? 가정교회도 결국에는 가족구성원들이 교인인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왜? 거기에서는 권력과 돈과 성을 추구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그저 복음을 전할 뿐, 그저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뿐. 그 외에는 자비량 말고는 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전반적으로 타락했다는 겁니다. 어쩌다 좋은 교회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덩치가 커지면 99% 타락합니다.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최근에는 여의도와 강남에 있는 교회를 비롯한 대형교회들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왜 들먹입니까? 목사들의 영향으로 성도들이 그들을 예수님과 거의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

모세와 느헤미야의 유대교가 타락했을 때, 예수님이 어드케 하셨는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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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
포이멘 (183.109.98.239)
2017-01-20 06:10:56
아멘!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무당들을 우상숭배하는 불쌍한 소경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교회에 다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안나가 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있는 가나안 성도입니다.

요한복음 2장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교회에서 무당들을 쫓아낼 때까지 절대 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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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가나안 (183.108.46.119)
2017-01-21 22:56:37
무당들이 누구입니까
그게 집사나 권사나 장로는 아니겠지요? 그건 너무 시시하죠.
그렇다면 목사들(담임목사와 부목사들)일 수밖에 없는데...

무당들 쫓아내는 것, 그거 잘 되겠습니까? 예수님도 못 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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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
포이멘 (183.109.98.239)
2017-01-22 07:22:07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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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거듭나기 (211.34.110.112)
2017-01-19 16:33:13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가나안 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깨달은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산 삶을 살아간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그는 예수의 제자이며 크리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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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
자유 (183.97.6.39)
2017-01-27 03:09:49
맞는 듯 하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성경적인 부분도 있지만 사탄의 의도도 보인다.....
진정한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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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
깨는돌 (59.15.42.148)
2017-01-21 23:23:32
자비량 목회가 만병통치약인가?
현금 기독교와 교회의 문제가 자비량 목회(사역)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웃픈 코메디다!
사명은 잊고 사업에 열중하는 먹사들에 의해
한국 기독교는 개독교라는 새이름을 얻었지만
현실 기독교는 그 자체에 개독교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인자를 지니고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될터.

예수의 영으로, 예수의 정신으로 사는
예수의 추종자가 되려는 목표가 아니라,
바울이 해석하고 신학화한 예수를 섬기려하고
실제로는 그 바울조차도 더욱 왜곡한
기독교와 개신교의 교리와 신학을 추종하는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어그러진 종교!

자비량 사역? 자비량 목회?
왜곡된 바울은 물론이려니와 바울 자신까지도
극복하여야 올바른 개혁의 길을 만날터.
개혁이란 끊임없이 예수와 만나는 일이고
개혁이란 끊임없이 예수의 영(정신)으로
거듭나고 교정받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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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부패사회에 기인한다. (223.39.130.10)
2017-01-21 16:06:31
목사들은 일 못해요.
어떤 부분에서는 연예인과 같아요.
독일같은 국가에서 한국개신교 목사들이 존재할 수 없는 토양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병든 사회에
병든 목사가 창궐하는 겁니다.

독일사회에서

오목사
조목사
권목사
김목사
전목사 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사회가 부패했기에 이런 목사들이 크게 일어서는 겁니다.
지방의 중급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또 한 꼭지 드렸죠?
잘 다듬어서 훌륭한 글 나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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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
나원참 (218.156.188.26)
2017-01-20 10:18:46
"어떤 교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헌금으로 고용한
일개 목사를 도리어 상전으로 모신다. 종이 주인의 안방을 차지한 꼴이다"

신집사님은 목사에 대해 심한 편견이나 상처가 있는듯 한 인상을 지울수 없네

요.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잘 나가다가 감정적가학 졸필을 느끼는 개인적 감

정이 뭍어 나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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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1
가나안 (183.108.46.119)
2017-01-19 15:25:32
시각을 달리 해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에게 교회출석이 왜 필요하죠? 예수를 믿고 따르면 그걸로 족하다고 봅니다.

교회에 나가 목사의 말도 안 되는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다고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하고, 집사, 안수집사 또는 권사, 장로 등의 구조에 갇혀지내는 걸 신앙생활이라고들 합니다.

목사가 성도에게 제사장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스스로 제사장행세를 하는 게 복음적이지요.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면, 그게 바로 제사장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이걸 자비량 목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혹자는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으로 교회출석을 강변하지요. 한 가정에 부부와 자녀가 모두 성도면 적어도 3인 이상의 성도, 아니 3인 이상의 제사장이 모였으니, 그 가정이 곧 교회고, 그곳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지요.

그런 제사장들이 이 땅에 넘칠 때, 그래서 대형교회의 좌석들에 곰팡이가 슬 때, 그때에 가서야 개신교는 개혁을 완수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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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
여이레 (175.207.68.4)
2017-01-21 00:48:48
사랑하는 교회가 없으시군요...
요즘 민망해서 고개를 못들 정도로 창피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런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죠. 사랑하는 교회를 만나시기 바래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마16:18"

다른 분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죠. 여기서 말씀하신 교회는 아무리 봐도 '신실한 가정'은 아닌 것으로 보여요. 영문으로도 church 이고요. 헬라어는 전 모르구요,

사도 바울 선생도 사방에 다니시면서 교회를 세우셨어요.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고 물론 가르치셨지만, 그것 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가시는 곳마다 세우셨다는 말이죠.

안나가는 건 보다는, 나갈 만한 곳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교회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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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
가나안 (183.108.46.119)
2017-01-21 22:46:53
순진무구
사랑하는 교회? 너무 주관적입니다. 그게 어떤 교횝니까? 목사가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대우하는 교회?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 그거야 주님께 직접 여쭤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지.

바울과 베드로는 우리와 동격인 성도들이고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에게서 본받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답은 예수님에게서 찾아야죠.

좋은 교회가 많다고요? 하나 소개해 주시죠. 하지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사방에 다니면서 교회를 세운다. 그게 요즘 상황에서는 가정교회 아닙니까? 가정교회도 결국에는 가족구성원들이 교인인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왜? 거기에서는 권력과 돈과 성을 추구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그저 복음을 전할 뿐, 그저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뿐. 그 외에는 자비량 말고는 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전반적으로 타락했다는 겁니다. 어쩌다 좋은 교회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덩치가 커지면 99% 타락합니다.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최근에는 여의도와 강남에 있는 교회를 비롯한 대형교회들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왜 들먹입니까? 목사들의 영향으로 성도들이 그들을 예수님과 거의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

모세와 느헤미야의 유대교가 타락했을 때, 예수님이 어드케 하셨는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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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7-01-20 06:10:56
아멘!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무당들을 우상숭배하는 불쌍한 소경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교회에 다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안나가 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있는 가나안 성도입니다.

요한복음 2장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교회에서 무당들을 쫓아낼 때까지 절대 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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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183.108.46.119)
2017-01-21 22:56:37
무당들이 누구입니까
그게 집사나 권사나 장로는 아니겠지요? 그건 너무 시시하죠.
그렇다면 목사들(담임목사와 부목사들)일 수밖에 없는데...

무당들 쫓아내는 것, 그거 잘 되겠습니까? 예수님도 못 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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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
포이멘 (183.109.98.239)
2017-01-22 07:22:07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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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거듭나기 (211.34.110.112)
2017-01-19 16:33:13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가나안 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깨달은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산 삶을 살아간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그는 예수의 제자이며 크리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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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
여이레 (175.207.68.4)
2017-01-19 10:43:18
용기가 남다르시네요.
글을 올리신 시간이 새벽 4시 경이시네요. 거긴 여기(서울)과는 시차가 있더라도 1,2시간에 불과한 곳인데, 아마 집사님은 이 글을 쓰시기 위해 밤을 새우신 것 같다고 짐작이 되네요..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논란도 많고 하니, 글을 하나하나 올리실 때마다 부담도 많으실텐데,, 전 개인적으론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만, 용기가 대단하신 분 같아요. 성의나 열정도 많으시구요.

전 신집사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제 동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암튼 그렇다는 말이죠.. 모든 교회가 그래야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교회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해결책은 필요한 상황이고, 이런 해결책도 해결책 중에 하나 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시도해 보는, 실험적인 모습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단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로만 너무 많은 논의를 주고 받다가, 결국은, "모두 주께서 알아서 하실테니, 기도하고 기다려 봅시다." 라고 만 말하면서, 계속 미루기만 하는 건 이젠 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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