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날씨가 꽤 추웠습니다. 기온이 영하 15도 밑으로 내려간 덕에 덕장마다 황태들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교회 앞은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마치 썰어놓은 백설기같이 눈들이 반듯하게 지붕 위에 쌓여 얼어붙어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 장화를 신고 눈 속에 발을 푹푹 묻어가며 걸어갑니다. 나쁘지 않은 추위와 눈입니다.

   이 추위에도 군부대 용사들은 집 앞 산에서 늦도록 혹한기 훈련을 했습니다. 남의 집 귀한 자녀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변변찮은 반찬에도 주일이면 항상 맛있게 먹고 가는 모습이 참 고맙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저를 대신해서 설거지를 해 주는 일도 많습니다. 할머니들은 “군인들이 설거지까지 해서 어떡하나”하며 안타까워하시지만 제게는 아주 반가운 도움의 손길입니다. 주는 도움의 손길은 거절하지 않고 즐겁게 받기로 했습니다. 고마울 땐 고맙다고 말하면 됩니다.

   날이 추우니 집 안 거실에 있는 어항 속의 구피들이 움직이지 않고 물속에서 몸을 세로로 세우고 가만히 있습니다. 저도 구피들처럼 이불 속에 몸을 길게 펴고 가만히 있고 싶지만 두 아이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평일에 바쁜 엄마는 주말에 인기가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피구도 엄마와 하고 싶고 눈썰매도 엄마가 봐줬으면 좋겠고 보드게임도 엄마와 하고 싶습니다.

   마트에 갔다가 가격이 비싸서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온 썰매를 남편이 지난주에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똑같은 빨간 썰매 2개를 끌고 두 아이는 하루에 세 번도 나가서 눈썰매를  탔습니다. 썰매장은 교회 옆 비닐하우스 아래 비탈진 길입니다. 음지라 녹지 않은 울퉁불퉁한 눈길 위에서 겁도 없이 썰매를 타고 내달립니다. 다 내려올 때쯤이면 이리저리 튕긴 썰매와 아이들의 몸이 따로 착륙을 하면서 엎어지거나 뒤집어지기가 일쑤이지만 아이들은 헤헤대며 즐겁기만 합니다. 혹시나 쌓아놓은 땔감에 머리라도 부딪칠까봐 저는 삽을 가져와서 땔감 위에 눈을 올립니다. 그러면 썰매는 그 눈 위로 더 높이 올라갑니다. 정비를 하면 할수록 썰매장은 고난이도로 변신을 해서 아이들의 긴장감을 더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썰매장이 필요하신 분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진부령으로 오셔도 됩니다.

  썰매를 타고 들어와서 이제는 개그를 이해하는 두 아이가 지나간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서 저도 함께 보았습니다. 박장대소하며 웃는 저를 보고 큰 아이가 “엄마 그렇게 웃는거 처음 봐요. 그렇게 웃으니까 좋아요”하고 말합니다. 말인즉슨 크게 ‘푸하하하’하고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 양육철학에 따라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이 더 크게 더 큰 동작으로 웃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집 밖에서 보다 집 안에서 덜 웃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졌습니다. 앞으로 더 크게 웃어 보이는 엄마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글씨기’라는 책에서는 협상을 할 때 최대한 자기 생각을 감추지 말고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생각을 감추고 상대방을 제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이 알게 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 어른보다는 고수입니다. 원하는 것, 꿈꾸는 것을 더 정확하게 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술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은 아니어도 많은 경우 원하는 것을 얻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서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고 마음의 귀를 열기만 하면 웬만한 것들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도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 올해는 작년보다 좀 덜 바빴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피부 가려움증이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적응을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솔직하게 제 소망을 두고 기도해 봅니다. 해마다 새해가 있어서 마치 처음인 것처럼 새해 기도를 자꾸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올 해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해결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도의 상대방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과 꾸미거나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냥 대화하니 삶이 한결 가볍습니다.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시는 신이 함께 한다는 것, 오늘 하루 삶의 무게의 절반은 덜고 시작합니다. 저를 비롯한 모두 가볍게 설레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