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이계선 칼럼
크리스마스 때 간 친구의 죽음
이계선  |  6285959@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01월 08일 (일) 23:28:19
최종편집 : 2017년 02월 05일 (일) 00:27:45 [조회수 : 76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2016, 성탄절은 즐거웠다. 사랑을 원 없이 받았고 사랑을 원 없이 줬다.

성탄절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다. 따르릉 따르릉. 상쾌하게 울리는 벨소리. 웬 반가운 까치가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올까?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최광남씨 안식구 스잔나예요”

(......???)

‘아, 광남이가 죽었구나!’

“광남씨가 3일전에 심장마비로 갔어요. 40년간 하던 호텔사업도 몇달전에 정리하여 이젠 쉬면서 여행이나 즐기자고 했는데...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이목사님 걱정을 많이 해왔었는데... 먼저 갔네요. 오늘 아침 10시에 발인식이예요”

안개속으로 끌려가고 있는 얼간이처럼 나는 멍해졌다.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벙어리가슴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슬픔을 삼키면서 눈을 감았다. 멀리 서대문냉천동시절의 감리교신학대학이 떠올랐다. 서강대에 다니는 광남이가 신학교를 찾아왔다.

“광남이 아니냐? 내가 신학교 다니는 거 아무도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고 왔지? 우리 부모형제도 못 오게 하는 곳을 네가 찾아오다니! 넌 이제 만고의 역적이야”

“중학교 동창회에 네가 안 보이는거야. 계선이가 죽었느니 병들었느니 하는데 어느 여학생이 그러더라. ‘학교때 부터 원래 말없이 착했던 걔가 세상등지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는 거야. 그래서 내가 찾아 나섰지”

“잘 왔다. 내가 너에게 영화배우 김진규집을 구경시켜주마”.

20분을 걸어 감신기숙사로 갔다. 아현동 언덕에 있는 2층짜리 기숙사는 김진규씨집 바깥마당을 밟고 올라가게 돼있었다. 안채를 넘보던 광남이가 목소리를 낮췄다.

“야, 저기 김진규부인 김보애가 안마당 빨래줄에 빨래를 널고 있네. 이쁘다“

“임마, 저건 영화배우 김보애가 아니고 그집 식모야“

“와, 부럽다. 일류배우는 식모도 이대생보다 이쁘구나”

우리는 그날 기숙사밥을 먹었다. 광남이는 그때 먹은 시래기국맛을 잊지 못한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일하게 학교를 찾아온 친구. 광남이는 그런 놈이다.

내가 최광남이를 처음 만난건 중학교때였다. 난 시골 안중중학교에 다니는게 부끄러웠다. 3년동안 소설만 읽었다. 친구도 없었다. 그때 나에게 다가오는 학생이 있었다. 용산중학교에 다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내려온 최광남이었다. 그는 명랑하게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날라 다녔다. 장난을 하면 책상위에 올라가 이책상 저책상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섬과 섬 사이를 날라다니는 경비행기처럼. 나는 최광남이를 안창남이라고 불렀다.

“떳다 떳다 비행기, 날아라 안창남/ 하늘에는 안창남 안중에는 최광남/ 최광남 넌 안중의 안창남이다”

1988년 뉴욕으로 이민와보니 광남이가 뉴욕근처에 호텔을 두개나 갖고 있었다. 광남이 말고 두명의 중학동창들이 또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정수웅과 인진식. 에피소드가 있는 괴물들이다.

서울부자집 외아들로 태어난 정수웅은 경복중을 다니면서 주먹을 휘두르다 퇴학을 당했다. 배재중으로 옮겼으나 더큰 사고를 일으켜 시골안중중학교로 유배를 왔다. 안중중학교에는 외삼촌 유승근선생이 수학선생으로 있었다. 국어를 좋아하는 나도 유선생님의 수학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잘 가르쳤다. 유그리트로 불리는 유선생은 고교때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한 수학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동국대국문학과를 나온 작가였다. 천상병의 단짝이다. 단칸하숙방에서 호랑이 외숙과 함께 지내면서 수웅이는 꼼짝없이 착실해졌다. 성균관대학을 나온 그는 통역장교가 되어 일찌감치 외국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캘리포니아로 유학온 그는 배짱과 담력으로 아랍의 유학생들을 돕다가 사우디 왕자와 친해졌다. 왕자의 호의로 아랍석유산업에 투자하여 수천만달러짜리 부자가 됐다.

인진식도 괴물이다. 중학교 수업이 끝나면 난 진식이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갔다. 20리를 걸으면 우리집인데 진식이는 10리를 더 걸어가야 했다.

우리집 사랑채 마루에 앉아 주점부리를 나눠먹으며 쉬었다 가곤했다. 한번은 간식거리가 없어 어머니가 아끼는 흑설탕을 봉지채 훔쳐냈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채우고 흑설탕을 털어 넣었다. 여간 꿀맛이 아니다. 한잔 한잔 또한잔 권커니 자커니 들이키다 보니 설탕봉지는 빈 털털이가 되고 주전자는 바닥이 나버렸다.

흑설탕 물로 배는 태산만 한데 빈배에 갑자기 설탕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설사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는 꽁지에 불이 붙은 생쥐처럼 교대로 뒷간을 들락날락 거렸다.

그날 밤 난 어머니에게 설탕도둑으로 몰려 얼마나 매를 맞았던고!

그런데 이민와 보니 안중의 괴물동창들이 미국와서 성공하고 있었다. 광남이는 호텔왕으로, 진식이는 부동산왕으로, 수웅이는 석유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늦게 이민온 날 도왔다. 광남이와 수웅이는 내가 책을 출판할때마다 도왔다.

진식이는 장로님이라 날 만나면 신바람이다. 광남이는 뉴욕근교에 있어서 더 가깝게 지냈다.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물리학의 수재다. 호킹박사의 불랙홀을 설명할때는 대학교수같다.

다정다감하고 연극무대처럼 엉뚱했던 광남이가 갔다. 안창남처럼 세계를 날라다니던 최광남이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불랙홀의 세계를 찾아 떠나가 버렸다. 살아생전 호킹스박사의 물리학이론으로도 밝혀내지 못했던 불랙홀의 숙제를 죽어서 통과할수 있을까? 요단강을 건너가듯이.

‘친구들에게 광남의 부음을 알려야지’

샌프란시스코의 인진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부인이 받는다.

“인진식 장로님은 2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캘리포니아의 정수웅을 불렀다. 응답이 없다.

“모두가 없구나. 모두 어디로 가버렸구나. 그래서 나 혼자 남아있구나”

난 갑자기 우주의 미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 우주만세를 부르고 있는 최광남
이계선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위로를 드립니다. (99.XXX.XXX.117)
2017-01-12 09:46:13
나이드신 분들을 만나다 보니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좋은 것 보시고, 젊은 마음으로 사십시요. 다음은 나라고 하는 생각속에 슬퍼지고, 힘들어 집니다. 힘내십시요.
계선이 화이팅!
리플달기
1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