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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주면 목회 누군 못 하나설교는 '은사'다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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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1월 06일 (금) 07:39:16
최종편집 : 2017년 01월 09일 (월) 21:36:15 [조회수 : 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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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목회자께서 "성경에 있고 없고로 따지면 자비량 목사도 없어요. 목사 자체가 성경에 없으니까요."라고 하셨다. 아울러 "예수님이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고 하시며 시대와 상황에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 말씀하신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며 균형 있는 노력을 보여주신 점에 깊히 감사를 드린다. 다만 그 논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기에 다소 안타까움이 있다.

 

성경의 정신

그동안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가 성경에 있으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일 예배 참석도 성경을 있는 대로 다 동원해서 열심히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급 전임 목사 제도는 성경에 없지만 해도 된다"고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논리일까? 성경에 있어도 하고 없어도 하고, 결국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사실 개신교 일각에 이런 논리가 처음은 아니다. 어떤 교회는 "성경에 세습하지 말라"는 구절이 없으니 세습해도 된다고 한다. 이는 마치 성경에 "주일 헌금 횡령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구절이 없으니 "헌금 횡령해도 좋다"는 궤변적 논리와 유사하다. '성경의 정신'을 지킬 생각은 안 하고 문자적 말장난으로 궁색한 논리를 펼친다.

과연 성경에 있고 없고 따지는 게 불필요한 것일까. 성경의 정신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온라인 공간에서 '성경적'이란 말을 삼가하자는 게 대세인 모양이다. 물론 그 말이 의도하는 바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성경을 함부로 적용하거나 남발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도 상식으로 해도 될 문제까지 성경적 운운하는 건 반대한다.

그럼에도 간단한 판단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결국 그게 성경적인지 검토해야 옳다고 본다. 성경이 유일한 기준이니 하는 말이다. 우리가 불경적이나 코란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성경에 있는 것조차 제대로 안 하면서, 도리어 성경에 없는 걸 더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걸 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는데 '유급 전임 목회'의 근거가 성경 어디에 있는지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자비량 목회'는 분명히 성경에 있다. 바로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쓴 사도바울의 사역이다.

그런데 중대형 교회들에서 사도의 정신으로 자비량 목회를 하는 담임목사를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절반은 커녕 거의 다 '한결같이' 유급 전임 사역이다. 도대체 요즘 목회자들이 사도바울보다 얼마나 더 바쁘고 중요한 사역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일방적인 현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교회는 은사 영업장이 아니다

아무튼 자비량 사역과 관련하여 내가 꼭 논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설교다. 설교는 은사다. 예언과 방언과 병고침과 가르치는 것도 은사다. 병원에서 병 고치면 돈 받아도 된다. 그건 영업이다. 학원에서 공부 가르치면 돈 받아도 된다. 그것도 영업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병 고치고 돈 받으면 욕먹는다. 교회에서 예언하고 돈 받아도 욕 먹는다. 교회에서 전도하고 돈 받아도 욕 먹는다.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돈 받아도 욕먹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영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설교는 은사지 생업이 아니다.

같은 의사라도 병원에서 치료하면 돈 받아도 되지만 그 의사가 교회에서 치료하고 돈 받으면 욕 먹는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면 돈 받아도 되지만 그 가수가 성가대에서 찬양하고 돈 받으면 욕 먹는다. 교수가 신학대학에서 성경 가르치면 돈 받아도 된다. 하지만 그 교수가 교회에서 성경 가르치고 돈 받으면 욕 먹는다. 왜 그럴까.

설사 같은 은사라도 사회에서는 돈 받아도 되지만 교회에서 돈 받으면 욕 먹는다. 그 이유는 교회가 무슨 은사 영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단순한 접대나 간소한 사례까지 해선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니 달리 오해가 없으시기 바란다.

일부에서는 목회도 성속 구분 없이 정당한 노동이기에 다른 직종처럼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있다. 좋은 발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일 그런 논리가 옳다면 그럼 왜 함께 동역하고 노동하는 다른 시무 장로, 재정 집사, 교회학교 교사, 안내자, 주방봉사자, 성가대원, 부서장, 구역장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나. 교회가 무슨 노동 차별하는가.

나는 지금 유급 목회자 개인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적은 연봉으로 수고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현재의 유급 목회 현실도 충분히 이해하며 인정한다. 일꾼이 품삯을 받을 권리도 존중한다. 따라서 기존 목회자들에게 자비량 사역을 하자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 자비량 사역의 주체는 직업과 소명을 지닌 평신도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교회에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기복 목회와 무속 목회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배당의 작은 모순도 결코 참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굳이 수입 십분의 일까지 바치며 교회에 충성하지 않는다. 목회자가 특권 의식을 갖거나 고정 관념에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바울로 살아내는 목회자

사실 요즘 같이 힘든 세상에 월급 제대로 주면 목회 못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목회해서 처자식 모두 먹여살리고 자녀를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공부시킬 수 있다면 아마 개나 소나 설교를 '표절'해서라도 기어이 목회할 것이다. 게다가 은퇴 후에는 원로 목사가 되어 노후까지 든든히 보장 받고, 추가로 자식이나 사위에게 교회 세습하면 대대로 평생 가업이 된다. 이보다 더 좋은 꿈의 직장이 어디 있나.

현재도 전국에 널린 수많은 신학교들이 목회 지원자들을 반기고 있다. 게다가 이들을 적절히 검증할 정화장치가 고장난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요즘 줄줄이 터지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파렴치한 목회 비리들이 그 생생한 증거다. 

물론 대다수 목회자는 순수한 소명을 받고 목회한다. 하지만 대부분 교단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게 그동안 유급 전임 목회제가 한국교회의 부패로 연결된 은밀한 메커니즘이다. 즉 제도적 악이 되었다는 거다. 반면에 파트타임 사역자는 교권을 흔들 수 없다. 그러므로 특정 직분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이 '목회 독점'과 '설교 독점'의 낡은 틀을 깨지 못 한다면 교회 회복은 단지 헛된 망상이 될 뿐이다.

원칙적으로 '자비량 공동 목회'는 현재 생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를 위한 파트타임 사역이다. 설교는 은사이기에 반드시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소명을 받은 교인들 중에 신학을 공부하고 자원 봉사로 목회하는 평신도 설교자가 크게 늘어나기를 소원한다. 평신도가 깨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개혁 교회는 평신도 동역이라는 미명 아래 교인들에게 만날 주방 설거지나 주차안내만 시키지 말고,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평신도 제사장(벧전2:9)'들에게도 목회와 설교의 기회를 균등하게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어느 성도가 "바울을 설교하는 목회자는 많은데 바울로 살아내는 목회자는 드문 듯 하다"고 지적한 것에 마음 아프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8-11)."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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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XXX.XXX.86)
2017-01-06 23:4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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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
깨진돌 (59.XXX.XXX.245)
2017-01-07 07:45:56
멀쩡한 사람도 신학을 해버리면
뇌가 텅~ 비게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쓰레기로 가득차게 되겠죠.
뇌가 비어서 개독교가 되는 게 아니라,
뇌가 잘못되어 개독교로 되는 것처럼~~.
기독교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옷과 같습니다.
그래서 돌아갈 길이 막막한 게지요.
뇌가 비었으면 차라리 쉽습니다.
새 것, 좋은 것으로 채우면 되지만
뇌가 오물과 잡설로 채워져 있으니
제대로 갈 리가 없지요~~.
바울을 즐겨 인용하면서도 그를 따르지는 않는
기묘한 중생들이 개독교 신자들이요
먹사들입니다.
전에는 교회가 사교장인 듯 하였으나
지금은 차라리 오물수거장인 듯 합니다.
물론 다(100%)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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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
월급줄테니... (218.XXX.XXX.26)
2017-01-19 20:22:42
신집사님 월급줄테니 목회 한번 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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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개혁본부 (211.XXX.XXX.190)
2017-01-17 14:56:40
현재(2017/01/17 오후 2시 54분) 클릭수 = [조회수: 8890]

올해도 그놈의 제목 아이템으로 클릭수 높이기 성공 하셨네~?
제가 보기에는 싸움닭 처럼 피흘리는 상처를 쪼아댈 뿐이지~ 그 속에서 엿 볼 수 있는 진정성, 신앙성은 전혀 느끼거나 볼수 없는듯 합니다.

새해 첫날 이라도 고요히 주님과 대화 한번 해 보신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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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여이레 (175.XXX.XXX.4)
2017-01-11 23:05:03
자비량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기복의 거품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목사님도 전문직인데, 형편이 안되면 당연히 못드리겠지만, 형편만 좀 되면, 전문성이 확보되도록 사례비 좀 넉넉히 드리는게 뭐가 그리 문제인가요?,

자비량 사역한다고 다른 일 하면서 겸해 보세요, 몇일도 가기전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느니, 말씀이 변했다느니,,, 난리 피울 신도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그거라고 쉽겠어요?

진짜 문제는 돈이죠. 한국교회가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지, 자비량이냐, 유급이냐가 중요한진 잘 모르겠군요.

바울은 자비량이고 베드로는 유급이고,, 그런거 말고, 예수님, 베드로, 바울을 포함해서 한명도 예외가 없는 모든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진정한 공통점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죠..

지금의 한국교회 지도자들과는 반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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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젊은목사 (112.XXX.XXX.50)
2017-01-10 15:48:12
신성남 집사님
월급 드릴테니 목회 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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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3
나도 한마디 (67.XXX.XXX.80)
2017-01-10 22:45:04
살아가는것이!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이 목회아닌가요? 목회가 뭐 하늘에서 떨어진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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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 (210.XXX.XXX.20)
2017-01-07 14:37:49
"평신도"라는 말부터 부셔야 합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로마가톨릭에서나 쓰는 말입니다. 하긴 어느 분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나라는 개신교가 다른 나라 천주교같고 천주교가 다른 나라 개신교같다고. 우리나라 개신교는 너무 배부르고 보수적이며 오히려 우리나라 천주교가 더 개혁적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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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
지나가다가 (59.XXX.XXX.19)
2017-01-07 10:10:37
맞습니다. 월급 주면 누군 목회 못할까요. 그러니 목회자들에게 월급 줘야죠. 목회 잘 하라고. (물론 신성남 집사님처럼 성도들이 모여 은사대로 사역하는 교회도 훌륭합니다. 그런 교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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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3
. (82.XXX.XXX.86)
2017-01-06 23:4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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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
깨진돌 (59.XXX.XXX.245)
2017-01-07 07:45:56
멀쩡한 사람도 신학을 해버리면
뇌가 텅~ 비게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쓰레기로 가득차게 되겠죠.
뇌가 비어서 개독교가 되는 게 아니라,
뇌가 잘못되어 개독교로 되는 것처럼~~.
기독교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옷과 같습니다.
그래서 돌아갈 길이 막막한 게지요.
뇌가 비었으면 차라리 쉽습니다.
새 것, 좋은 것으로 채우면 되지만
뇌가 오물과 잡설로 채워져 있으니
제대로 갈 리가 없지요~~.
바울을 즐겨 인용하면서도 그를 따르지는 않는
기묘한 중생들이 개독교 신자들이요
먹사들입니다.
전에는 교회가 사교장인 듯 하였으나
지금은 차라리 오물수거장인 듯 합니다.
물론 다(100%)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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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
화평 (122.XXX.XXX.192)
2017-01-06 23:15:44
신 집사님의 의기는 동감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현황에 대해서 이렇게든 저렇게든 개선해 보자는 심정을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안이 실현성이 있는지 한 번 행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실현성이 없으면 폐기되게 마련입니다. 어느 분이 지적하 것처럼 베드로는 부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생활비를 조달 받으면서 사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독신행활을 하면서 자기의 권한까지도 내려놓으며 헌신했습니다. 또한 그분은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개신교도 목회자들이 독신생활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교회의 부정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도입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바울처럼 자비량 목회를 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분은 특별한 분, 기독교 역사에서 달리 찾아볼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특히 자비량 목회에서 그분을 닮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개척교회에서는 자비량 목회가 필요하고 또 가능합니다.미국에서는 많이들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러나 교인이 늘어나면 어쩔 수 없지요. 자비량 목회는 하나의 꿈이지요. 아름다운 꿈이지요.

신집사님 나는 목회자가 아니고 평신도입니다. 신집사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필요악이라는 것이 있지 않아요?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세요. 속만 상합니다. 어느 목사가 신 집사님의 이상적인 제안에 호응하겠습니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허공에 대고 부르짖으면 목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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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
어느 목사 (99.XXX.XXX.163)
2017-01-07 23:26:51
목사들도 이분 이야기 동감합니다.
해결 방법은 그냥 내 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일으켜 혼란하게 하는 것 보다 순리에 맞게 진행하는 것이 좋아서 그럽니다. 서구 교회도 성공회도 무급으로 한다고 하는데, 교회 성도가 없다보니 점점 그렇게 됩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백년이 좀 넘어서 식기 시작해서 점점 줄어가는데, 200년 정도 되면 거품이 다 빠질꺼예요. 그리고 큰 교회들마다 텅텅비어서 양로원이나 체육시설로 쓰여질 겁니다. 목회지망생들도 점점 사라지고요. 문제는 이렇게 교인들이 줄어들고, 똑똑해 지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사라지고, 좋아져야 하는데, 더 많은 빈부의 격차와, 정신적 고통을 통해서 자살과, 여려가지 문제들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되니 문제입니다. 종교를 중국 공산당이 아편이라고 했는데, 왜 아편이라고 했는지 알아야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의 글들은 기독교가 이땅에 들어오면서 부터 있었기 때문에, 왜 치는 것 보다는 직접 실험하고, 도전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인의 성격상 하도 때려치고, 부스는 것을 좋아해서, 안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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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노초대 (171.XXX.XXX.9)
2017-01-06 21:50:05
초대교회로?
신집사님 저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잘못 되었고, 불가능한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정신을 이어가자는 말이겠지요.
성경에는 누구도 정규 신학교육을 받고 사역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그러자고 한다면 어떨까요?
바울이 한 곳에 정주하면서 사역을 한 것이 아닌 여행하면서 사역을 하였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거의 대부분의 선교사들조차 정주 사역을 하는 지금 그게 가능 또는 바람직한 사역의 모습일까요?
저는 목회자가 아닌 소위 평신도들의 설교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전임 사역자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파트가 아닌 전임 사역자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전혀 동의가 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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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2
요상해 (171.XXX.XXX.9)
2017-01-06 21:39:22
토론을 하고 싶으면 상대방과...
저자는 누구와 토론하고 싶으신 건가요? 전체 한국교회와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글을 올린 어느 목회자와 하고 싶으신 건가요? 토론의 기본이 안 되어 있으시네요. 글을 올린 그분이 글 가운데 어느 곳에서는 성경에 나와 있으니 따르자고 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성경에 없어도 하자고 한다면 일관된 주장이 아니기에 충분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비판하니 전혀 말이 안 되는 비판입니다.
그리고 필자는 성경에 나온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상황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나요? 무조건 성경에 나왔다고 따를 수도 없고, 무조건 성경을 무시하고 시대적 상황을 따를 수만도 없습니다. 양자택일의 문제도 더욱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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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9
깨진돌 (59.XXX.XXX.245)
2017-01-06 17:42:18
하지만 대부분 교단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게 그동안 유급 전임 목회제가 한국교회의 부패로 연결된 은밀한 메커니즘이다. 즉 제도적 악이 되었다는 거다. 반면에 파트타임 사역자는 교권을 흔들 수 없다. 그러므로 특정 직분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이 '목회 독점'과 '설교 독점'의 낡은 틀을 깨지 못 한다면 교회 회복은 단지 헛된 망상이 될 뿐이다.<본문 중에서>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교회가 돌아갈 곳은 바울이 아닌 듯 합니다!
바울조차도 예수 왜곡의 그릇된 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왜 예수살기라는 모임이 있을까요?
예수운동이 바울 등에 의하여 기독교라는 종교로 화하면서
예수 왜곡은 시작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어떤 학자들이 바울 자신은 예수 왜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어차피 기독교라는 집단은 바울을 왜곡하여 이해하므로
기독교가 돌아갈 곳은 바울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어야 합니다.

바울의 자비량 목회(선교)사역은 현금의 한국의 먹사들에 의한
교회사업을 비판하는 하나의 잣대일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아내와 함께 사역하는 베드로를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아내와 함께 선교사역을 할때 그는
바울처럼 자비량 선교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을 모든 것의 잣대로 삼는 것은 무리입니다!
물론, 배부른 먹사들의 부자교회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부자라는 말은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헌금이 많이 걷혀서 어찌할 바 모르는 교회는 아시다시피
교회라는 간판을 달았을지는 몰라도 사업장일 뿐입니다.

예수살기가 아니라, 예수사업에 열중하는 중생들은
같이 논의를 할 종자들이 아닐 듯 합니다.
그리고 잣대와 목표는 바울이 아니라, 예수임을
다시한번 강조해 봅니다.

바울을 강조하다 보면 바울과 같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진저!
하게 되리라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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