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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라는 직분...!
강만원  |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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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25일 (일) 22:34:14
최종편집 : 2017년 02월 05일 (일) 00:29:45 [조회수 : 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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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牧師)라는 직분...!

 

오늘날 목사가 교회의 주인처럼 온갖 권력을 독점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인들 ‘목사 없는 교회’는 감히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에서 밝혔듯이 ‘목사’라는 직분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원형적인’ 직분이 아니다.

신약성경에 18번에 걸쳐 예외 없이 ‘목자’로 번역했던 ‘포이멘’이 유일하게 에베소서에서만 ‘목사’로 옮겼을 뿐이다. 이를테면 개역성경에 등장하는 목사라는 이름은 헬라어 포이멘(poimen)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잘못 옮긴 것이다.

한글성경만의 오역이 아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선한 목자’(good sheperd)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영어 성경에서도 포이멘을 빠짐없이 ‘목자’(sheperd)로 번역했지만 유독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사’(pastor)로 번역했다. 이는 목사가 처음부터 있었던 성경의 원형적인 직분이 아니라는 뚜렷한 반증이다.

목사는 종교개혁 이후에 중세 가톨릭의 사제주의에 맞서 개신교에서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새로 만든 직분으로, 목사라는 직분을 개신교의 새로운 성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포이멘’을 목사(pastor)로 변개한 것이다.

사역자의 직분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종교·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세워질 수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상관없이 사역자에게 반드시 적용돼야 하는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 이를테면 목사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사역자는 신약성경이 명시적·암시적으로 제시하는 사역자의 규범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목사’는 성경적인 관점에서 정당한 직분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목사를 ‘가르치는’ 직분으로 정의한다면 현대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분은 마땅히 성경적인 직분에 해당한다. 성경은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를 사역자의 기준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목사라는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르치는 장로’로서 목사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며 ‘반성경적인 직분’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데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단지 처음부터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사역자로서 오늘날 목사의 역할이 성경의 가르침에 좀처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에서 새로운 ‘교회권력자’로 대두된 목사가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역자의 역할’, 다시 말해 제자와 종의 사명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분명히 가리는 것이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인가를 가름하는 뚜렷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시대의 ‘새 부대’에 합당한 사역자의 공통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성적인 논리 이전에 성경에 근거해서 목사를 비롯한 오늘날 교회의 사역자들의 역할이 성경에서 제시하는 규범에 합당한지 가리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

목사를 비롯한 사역자의 역할에 대한 성경의 지침은 분명하다. 예수와 더불어 스승과 제자라는 사제관계와 더불어 주인과 종의 주종관계에서 살펴볼 때, 교회의 사역자로서 목사는 예수의 계명을 준행해야 하는 ‘제자’인 동시에‘종’이다. 요컨대 목사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종의 직분을 맡은 ‘낮은 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라고 하시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제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하셨다. 스승이며 주인인 예수가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마땅히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주의 종이며 제자인 사역자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의 주인일 수 없으며, 교회를 지배하는 권력자가 될 수 없다. ‘높은 자’를 자처한다면 목사는 결코 성경적인 직분일 수 없다.

세상에 속한 ‘집권자’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권세를 부리’지만, 교회에 속한 주의 종은 모름지기 주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섬기는 자’가 돼야 되기 때문이다. ‘온유와 겸손’을 강조하신 예수는, ‘제자도’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크고 높은’ 자가 되기 원했던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이방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이방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 26)

본문에서 말하는 ‘크고자 하는 자’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가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자들 가운데 진정 ‘큰 자’, 이를테면 주의 뜻에 가장 합당한 자는 주께 온전히 순종하는 자이며, 온전히 순종하는 자는 예수께서 보이신 겸손의 본을 오롯이 따르는 자이다.

따라서 제자를 비롯해서 모든 사역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교만한 자의 탐심과 정욕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겸손한 자가 돼야 한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간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이기 위함이다. “나는 너희에게 본을 보이려 하노라”

전지전능의 초월적인 신성에 눈이 가려져 예수의 ‘특별한 신성’을 보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이유를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시면서 ‘종’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예수로부터 섬김의 본을 받은 제자들은 마땅히 섬기는 자가 돼야 한다.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고 거세게 비난하는 이유는, 교회권력에 탐닉하는 목사들이 ‘종이 되라’는 예수의 계명을 어기기 때문이며 예수의 명령에 따라 ‘섬기는 자’가 아니라 자기 욕망에 따라 섬김을 받는 자로 교회에 왕처럼 군림하기 때문이다.

결국 목사라는 직분에 대한 날선 비난은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이 섬김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교만한 자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일어난 자업자득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들은 예수의 계명을 지키기는커녕 예수의 몸 된 교회를 제멋대로 통치하며 마치 세상의 제왕처럼 교인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목사가 반성경적인 직분이라는 참담한 비난을 듣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목사는 교회의 주인도, 지배자도, 권력자도 아니다. 예수께서 그랬듯이 ‘섬기는’ 사역자로서 목사는 생명을 바쳐 교회를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위한 탐욕과 교만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며 겸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목사를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당당히 말하려면 목사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언행이나 신앙이 주의 종이며 제자로서 거리낌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단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겸손한 종의 자세를 저버린 목사에게 ‘반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다.

개신교의 목사, 특히 메가 처치의 ‘배부른’ 목사들이 성경에서 벗어난 사이비 직분이라고 호되게 비난을 받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가 섬기는 종의 자세를 버리고 섬김을 받는 주인인 양 행세하며, 제반 권력을 독점한 채 교회를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목사는 종이다. 종은 결코 주인이 맡긴 ‘양’의 털을 벗겨 자기 몸을 따뜻하게 할 수도, 양의 살을 찢어 제 배를 채울 수 없는 ‘낮은’ 신분이다. 교회의 영적 질서를 주장하면서 섣불리 목사권력을 정당화하지 말라. 목사는 교회의 권력자가 아니며 교회는 속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과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주인이 주인의 자리에, 그리고 종이 종의 자리에 있는 것이 ‘주의 몸 된’ 교회를 바로 세우는 진정한 질서다. 그렇다면 목사의 자리는 어디가 돼야 하며, 목사가 제자리에 바로 서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요컨대 목사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면서 주의 몸 되신 교회인 성도를 섬기는 것이 교회개혁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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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198.XXX.XXX.17)
2017-01-04 02:16:07
요즘 자칭 목사들 중에는 사도를 담임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디다. 예를 들어 "베드로 담임 목사는 ..."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이렇게 얘기하면서 "담임 목사 = 사도"라는 등식을 은연중에 세뇌시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조심해야할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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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
마리아 (183.XXX.XXX.62)
2017-01-06 23:49:55
목사 직함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목사는 대개 권세자가 되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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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포이멘 (183.XXX.XXX.239)
2017-01-03 21:50:58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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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
구름 (198.XXX.XXX.15)
2016-12-27 16:57:35
목사가 성경에 뿌리가 없다?
그럼 신부와 수녀는 성경에 있나? 아무리 목사가 못 마땅해도 무슨 전통과 역사적 사실까지 다 부정하려 들까. 성서 문자주의인가? 어쩔때는 문자주의, 어쩔 때는 해석.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걸, 어거지로 부정하려 하니 참 복잡하게도 써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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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XXX.XXX.239)
2017-01-03 21:46:17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셈.
신부와 수녀가 성경에 있남. 목사가 성경에 있남?
무식하면 가만히 있지. 중간이나 가게.. 좃도 모르는 것이 탱자 탱자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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