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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통치가 희망이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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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25일 (일) 00:25:52 [조회수 :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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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5장 2-4절

주님의 통치가 희망이다

 

가. 어두운 세상에 주님의 통치가 희망이다.

4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 미가(미카야)의 이름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과정과 남 유다의 혼란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희망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이름의 뜻이 보여주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에 어울리는 백성들이 되기를 소원하였다.

* 주님의 통치가 희망인 것은 그가 백성위에 군림하지 않고 목축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축하다’(라아)는 ‘다스리다’ 또는 ‘사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시며 또한 우리와 사귐을 가지신다. 그리고 그분은 사귐을 통해 우리를 목양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다.

* 특별히 주님의 통치는 빛의 통치다. 주님과의 사귐은 빛 가운데 있는 사귐이다. 주님은 빛으로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세상에 소망을 주신다. 이사야는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다(사9:1). 이는 평강의 왕 메시아가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어둠을 물리치실 것을 예고한 말씀이다. 어둠을 물리칠 주님의 빛의 통치가 진정한 희망이다(창1장 참조).

 

나. 아무리 어둡고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라.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 본문은 기죽어 있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말씀이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이지만 당시에는 기가 죽어 있었다. 여기서 ‘작다’(차이르)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수가 적다는 것이라기보다 ‘비천하다’ 또는 ‘무시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베들레헴이 비천하여 무시당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말과 같다(요1:46).

* 마태는 본문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였다(마2:6). 여기서 ‘목자가 되다’(포이마이노)는 말은 ‘인도하다’ 또는 ‘보호하다’라는 뜻이다.

* 성도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목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스바냐는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면서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격려하였다(습3:15-16).

 

다. 하나님께 어울리는 남은 백성이 되라.

3절,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 본문은 고난과 역경이 어느 정도 지속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오히려 어려움 가운데에서 훈련을 잘 받아 남은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여인이 해산하기 까지’는 고난이 어느 정도는 계속될 것을 말하는 것이고, ‘붙여두다’(나탄, 미완료)는 넘겨주어 훈련받게 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이다. 결국 연단을 통해 남은 자가 되는 것이 중점이다.

* 여기서 남은 자는 하나님께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역경 중에서 훈련을 잘 받아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남은 자’(예테르)는 ‘끈’ 또는 ‘매달린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의 끈을 놓지 말고 끝까지 매달려 있어서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

* 그리고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결국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참 평강이 있다.

4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 본문은 참으로 귀한 약속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평안히 거주할 것이요 크게 창대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거주하다’(야샤브)는 ‘남다’와 ‘자리잡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평안히 살도록 복을 주시는 것을 보여 준다. ‘거주하는 자’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가인처럼 ‘유리하는 자’는 저주받은 사람이다(창4:12).

* 본문에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창대하다’(가달)는 ‘함께 묶다’ 또는 ‘높아지다’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께 연합되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창대해지고, 위대해져서 결국 높임을 받게 되고 그 영광이 땅 끝까지 이르게 된다.

* 그리고 ‘남은 자’(예테르)는 ‘끈’ 또는 ‘매달린 것’이라는 뜻과 함께 ‘풍요’라는 뜻도 갖고 있다. 즉 끝까지 하나님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풍요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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