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기다림’ 전시회를 마쳤다. 주제는 ‘어둡다, 등불을 켜라’였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기획이었는데, 전시물이 빈곤하여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22년 전, 처음 십자가를 수집할 때부터 연관된 성물들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두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보다 적극적으로 할 걸, 하는 미련이 남는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랬다는 것이지, 만약 과욕을 부렸다면 십자가 컬렉션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모자상(Madonna and Child)은 내게 십자가 다음 가는 제2의 수집아이템이었다. 다만 마리아 흠숭은 가톨릭교회의 관심사였기에 개신교 목사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동방정교회 잿빛 이콘으로든, 우피치 미술관의 황금빛 회화로든 그들이 표현한 성모자상은 오랜 역사와 연륜으로 이어져 현대판 케테 콜비츠의 스케치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쉽게도 애틋하게 모은 50여점을 지인에게 넘기면서 성모자상에 대한 내 관심은 더 멀어져 버렸다.

  독일 뮌헨 근교 다카우에 슐라이쎈하임 궁전이 있다. 아마 옛 영주의 레지던스일 것인데, 여기에서는 수집가 바인홀드(Gertrud Weinhold, 1899-1992)가 평생 모은 소장품들을 상설 전시한다. 벌써 17년 전일이니 여전히 계속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곳에서 경험한 그리스도교 상징물 경험은 내게도 사뭇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시물의 핵심은 전 세계에서 모은 구유상(Kinderkrippe) 83점이었다. 구유상들은, 마치 십자가가 자기 몫의 수난과 역사적 고통을 낱낱이 대변하는 것처럼, 자기 분량의 기쁨과 희망을 담아내고 있었다. 참 이채로웠다. ‘작은 아기 큰 하나님’(Kleiner Knabe Grosser Gott)이란 주제의식도 마음에 닿았다.

  몇 가지 전시물을 살펴보면, 둥글둥글한 몸과 큰 눈동자를 지닌 폴란드 구유상은 나무 조각품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페루에서는 형형색색의 찰흙인형으로 인디오들과 함께 한 구유상을 빚어냈다. 좁고 긴 배 위에 놓인 탄자니아 구유상은 그들의 검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온 걸개그림은 무사와 농부의 경배를 받는 구유상이었다. 놀라운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발견된 구유상으로 재료가 검게 그을린 불탄 나무였다. 죽음의 현실을 고발하듯 철조망으로 둘려 있었다.

  어쩌면 구유상은 성탄을 준비하는 한낱 명절치레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유상의 다양함과 천차만별 형상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란 말씀을 가장 구체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것이다. 아기 예수는 한결같이 자기 민족의 얼굴을 닮았고, 전통적인 고유한 주거 형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맨 처음 구유상을 그리스도교 전통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이는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1182-1226)였다. 그를 통해 우리는 아기 예수의 가난, 겸손, 사랑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다. 대림절부터 주현절까지 아씨시에서는 대형 구유상 세트를 전시한다. 실물로 꾸민 성 가족 인형 앞으로 살아있는 양들이 오간다. 눈부신 ‘신의 강림’은 구유 안의 ‘아기 예수’로 사람들의 삶에 살아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유상 장식은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다. 가장 단촐한 구유상은 어머니 마리아와 팔베개를 한 아기 예수 단 둘이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등장인물과 짐승들을 확대하면서 구유상은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다. 지붕이 있는 외양간은 훨씬 사실적이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을 비롯해 목자들과 양떼, 세 동방박사와 낙타들 그리고 천사들까지 모두 등장하는 구유상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성탄에 아기 예수는 우리 곁에 찾아오셨다.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초라한 부부의 아기로 태어났고, 가장 누추한 구유에 뉘었으며,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피난자로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의 변두리로, 낮은 곳으로, 그 소외와 곤궁과 비참의 자리로 자신을 이동해 온 분이시다.

  가장 깊은 동짓달의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면서 빛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을 예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섭리였다. 성탄 장식의 화려함도, 카드 쓰기와 작은 선물 등 소소한 성탄 축하의례도 점점 밀려나 버린 현실에서 과연 내가 품은 ‘기다림’은 무엇일까? 비단 기다림 초 그릇들과 몇 가지 등불과 이국적 천사 상 모음이나 테라코타 구유상으로 꾸민 전시형태는 아니더라도, 내 그리움과 목마름 그리고 기다림의 내용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것은 성탄을 맞이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