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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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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17일 (토) 20:35:38 [조회수 :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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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장 1-2절

내 백성을 위로하라

 

가.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다.

1절,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본문의 말씀은 바빌론 포로생활로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들에게는 달리 위로가 없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하나님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다.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의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삶이 어려울 때 하나님의 위로가 가장 큰 소망이다. 동서남북이 막혀있었던 야곱에게 하늘에 닿은 사다리의 환상은 큰 위로가 되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라고 하였다(창28:12). 이 체험이 야곱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환상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위로가 야곱을 새롭게 하였다.

* 하나님이 메시야를 임마누엘로 세상에 보내신 것은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도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동서남북이 막혔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소망의 문이 열린다.

 

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

2절,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 하나님은 백성을 위로하되 마음에 닿도록 말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마음에 닿도록’(레브, 심장)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마음에 닿도록 말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징계를 통해 복을 받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 징계는 친아들에게 내리는 사랑의 매와 같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하였다(히12:6). 또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였다(히12:8). 그러므로 징계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을 전해야 한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것도 사랑받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고 하였다(신8:16).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라. 사랑 받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안 된다.

 

다. 죄를 뉘우치고 애통해야 한다.

2절,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 죄에는 책임이 따른다. 죄를 짓는 것은 자유지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 빨리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계속 죄를 짓다가 벌을 받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위로받기를 원하신다.

* 본문에서 ‘위로하다’(나함)는 ‘회개하다’ 또는 ‘애통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려면 회개하고 애통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마5:4).

*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이 평강을 외쳤으나 거짓이었다. 당시의 형편은 아주 심각했는데도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만을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들이 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꼬집었다(렘8:11). 회개 없는 위로를 선포하는 것은 거짓 평강을 외치는 것에 불과하다.

 

라. 애통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는다.

2절,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 본문에서 ‘위로하다’(나함)는 ‘회개하다’(애통하다)라는 뜻이 있다. ‘사함을 받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사하다’(라차)는 ‘빚을 갚다’(능동)와 ‘호의를 베풀다’(수동)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사람이 회개하여 죄의 빚을 갚으면 하나님은 이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호의를 베푸시게 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는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위로’(파라칼레오)의 뜻은 ‘곁으로 부르다’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내쳤던 사람을 다시 곁으로 불러들이는 의미다. 이전에 왕들이 신하를 귀양 보냈다가 용서하고 다시 곁으로 부르는 경우를 참조하라. 이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하고 내려주는 은총의 선물이다.

*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위로다.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의 위로가 되셨다. 또 다른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성령님도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위로가 되신다. 웨슬리는 마지막으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하고 평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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