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콤플렉스가 없지 않을 터이나 나는 횃 컴플렉스가 있다. Fat을 우리말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너무 생뚱맞아 컴플렉스란 외래어와 어울리게 임의로 붙여 본 거다. 뚱뚱하거나 살찐 사람이 이뻐보이고 부러워 보이는 심리라 할까?
나는 1954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자 마자 태어난 전후 세대이다. 골육상쟁의 포연을 맡지 않고 자란 행운아에 속한다.
당시엔 남한 사람들이 거의 비슷하게 가난했다. 시집간 큰누님이 갑자기 죽고 가세도 기울어져 우리 형제들은 망태를 메고 봄나물을 뜯으러 들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머니는 큰 항아리를 주고 좁쌀로 바꾸어 순전히 노란 밥을 지어 주시곤 했다. 반찬은 간장 한 종지. 형 중 하나는 목이 메인다고 그것을 밀어 버렸다. 형이 대나무로 피가 나도록 엄니에게 종아리 맞는 걸 보고는 두려워 꾸역꾸역 그 차진 밥을 밀어 넣어야 했다. 조밥이나마 먹을 게 있다면 다행이었다. 하루는 진종일 굶어 허기가 져서 그 형과 둘이서 안방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엄마는 작은고모 큰딸 영자 누님이 시집가는 데 음식 만들러 가신 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잠결에 문을 열고 살짝 놓고 간 게 떡인 줄 알고 덥석 깨물었다. 구역질이 나고 토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빨래비누였다. 마당 우물가의 똥장군에 고인 오줌을 마시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서울에 와서 피난민이 주류를 이루던 해방촌에 살림을 차렸다. 깡보리밥에 개떡이나 해 먹고 배급 받은 밀가루로 멀건 수제비를 해 먹고 살았다. 같은 동네 사람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해방촌에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부자들은 누구나 단박에 알아 보았다. 그것은 뚱뚱한 몸매였다. 다들 삐쩍 꼻았지만 부자들은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뚱뚱한 몸을 흔들며 위풍당당하게 다니곤 했다. 철없는 나는 부자처럼 맘껏 먹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칸방에 모여 살던 열네 식구는 한끼 밥을 떼우는 것도 감지덕지했다. 아부지가 일터에서 돌아오시면 싸전에서 한두 봉지 쌀이나 보리를 사 들고 오셨다. 그것을 받아들고 형수님은 저녁밥을 지으셨다. 손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반찬을 천신하기 어려웠다. 먹는 게 아니라 입에 퍼 넣는 일이요 마치 속전을 치루듯이 먹어야 했다.
그래서 몸이 난 친구들이 부럽고 뚱보에게는 은근히 콤플렉스를 느끼게 된 게 아닐까? 우리 친구 하나는 사내라도 살이 뽀얗고 뚱뚱한 게 얼마나 보기 좋았던가? 은사님 아들 승민이와 남산 혜경이네 집 옆 공터에서 싸울 때도 힘이 딸렸다. 둘이서 몸싸움을 하다 뒹굴면 그 살에 눌려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풍성한 살에 짓눌릴 때의 포근한 느낌이 편했다. 임전무퇴의 오기로 잘 버티어 그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지만 내가 갈비씨였던 게 퍽 속상했다. 반찬은 매일 신김치 뿐이었으니 힘을 비축할 기름기라곤 없었다.
그래서 난 여자도 좀 풍성한 사람이 좋아 보인다. 요새는 웰빙이다 뭐다 하여 살과의 전쟁을 한답시고 사람마다 날씬한 몸매를 가꾸기에 혈안이 되고 있지만 나는 살찐 사람을 선망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학원사의 학생용 잡지에는 살찌는 비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첫째가 느리게 걷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뚱보가 되기를 소원하던 가난한 그 시절의 추억 때문에 몸이 부는 것에 방심했던 것일까? 결혼 후부터 몸이 불기 시작했다. 교사로 발령난지 첫 4년간은 정말 날씬했다. 결혼식 사진도 보면 정말 홀쭉이다. 이젠 살이 원수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내 맘속에 자리잡은 살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 이제도 약간 몸매가 있는 사람이 멋있게 보인다.
특히나 나이가 든 여자가 너무 빈약하면 주름살이 드러나고 더 추해 보인다.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눈에 보기에는 웬만큼 풍성해 보이는 여자가 좋다. 나의 이런 팻 컴플렉스 때문에 내 몸매에 대해서도 관대해 졌을 게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잠도 잘 자고 신경도 안 쓰고 태평한 데다 운동을 게을리 한다. 이젠 나도 새처럼 몸이 가벼워지고 싶은데... 어쩌나? 내가 날씬해지려면 살을 빼기 전에 가장 먼저 그 컴플렉스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