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영성 - 삼포 청년들을 위한 웨슬리의 위로와 신학적 충고

강성도(연구소 상임연구원)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갓난아이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할아버지가 적금을 붓기 시작한다고 한다. 학자금 융자 없이 대학을 마칠 수 있다. 식탁에서 율법이나 탈무드를 가지고 아버지와 자녀들이 논쟁을 한다. 결혼을 할 때는 집을 사준다. 빚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출발점이 다르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적절한 위치에 이르게 되면, 비슷한 그룹 끼리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준다. 서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이어주고, 업무상 서로 필요할 때 돕는 사이가 되게 이어준다. 거대한 인맥을 가지고 세상살이를 시작한다. 유대인들의 세속적인 힘이다. 수천 년을 핍박 속에서 살아오면 만들어낸 이들만의 지혜인지 모른다.

유대 청년 예수의 삶은 달랐다. 가진 것을 다 내어주었다. 머리 둘 곳도 잠자리조차 제대로 없었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었다. 하늘을 먼저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을 행함으로써 배가 불렀다. 목마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았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고치고,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나?를 최우선으로 살아냈다. 이 철저함이 기독교의 뿌리이다. 감리교의 아버지 요한 웨슬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최소한 생활비 외에는 돈을 모으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돈을 만 악의 뿌리로 보았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면서까지 돈을 벌면 안 된다고 했다. 많이 벌면, 선한 곳에 많이 쓰라! 했다. 유산 상속을 악으로 보던 사람이다. 이것이 우리 감리교인의 뿌리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당당하고, 이 세상 것을 쌓고 남보다 더 많이 쌓은 것을 성공으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하고 거룩해지는 것(성화)을 참된 인간 승리로 보았다. 더 많이 나누어주는 선행 속에서 은총의 수단을 발견하였다. 웨슬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사실, 가진 게 없으면 버릴게 없다. 버리는 아픔도 적다. 자존심과 무력감만 지우면 된다.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려는 내면의 저항을 내려놓고 그저 빈손으로 나오면 된다. 오늘 우리 사회는 “삼포” “오포” “칠포” 라는 자조적인 말로 스스로를 냉소한다. 권위와 도덕과 질서가 사라지고, 정당한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돈도 실력이다!”라는 철없는 아이의 돌발적인 한마디 말이 온 세상에 촛불을 밝히게 만든다. 분노와 미움과 박탈감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폭발되고 있다. 촛불을 밝히고 권력이 바뀌면 정말 세상도 바뀔까? 정당한 경쟁과 낙오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행해질까? 투쟁과 권력의 찬탈 그리고 강제적인 배분이 과연 예수의 방식일까? 웨슬리의 방식일까? 프랑스의 유혈혁명 대신 왜 웨슬리는 인간성 개조와 민족 개조를 꿈꾸었을까?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동일할 수 없다 것을 청년들이 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고, 가진 자들이 걷어가는 투자 수익이 과도하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이들이 돈 줄을 풀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그나마 라면이라도 먹을 수 없다. 부당한 차별과 하늘같은 격차를 어쩔 수 없이 현실로 인정하고 만다.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 절망의 수렁에 빠지면, 세상이 원망스럽고 가진 자들이 밉다는 마음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그저 귀찮고, 아무도 자신을 간섭하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더 이상 구직을 위해 사진을 찍고 원서를 마련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멈추었다. 결혼도, 자녀도 포기했다. 브랜드 옷도 사 입지 않고, 소비 심리도 굳어지고, 사회 참여도 줄어든다. 소위 “삼포”라고 부르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인적 자원이며, 믿음의 허리 세대이다. 이 허리를 어떻게 다시 튼튼하게 만들 것인가? “청춘 콘서트”를 통해 가슴을 울리고, 감동을 주면 끝나는 일인가? 사회적인 분석과 심리적 처방을 통해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할까?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 격차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고, 부자 세를 늘려 세수를 확보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 재벌을 규제해서 중소기업을 활성화하면 돈이 평평하게 흐를까? 재벌들은 세금이 적은 나라로 유령회사를 만들어 달아나지 않을까? 싼 노동력을 구해 베트남이나 중국으로 부품업체를 옮겨서 그나마 있는 중소기업마저 도산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신학도의 눈에는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삼고, 처방이 아닌 것을 처방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삼포세대의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성장을 경험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문제라고도 한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달관 세대),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 등도 마찬가지이다. 부자 부모를 만나면 부자로 살 확률이 높고, 가난한 부모를 만나면 교육의 기회도 계층을 상승할 기회도 제한된다. 미국의 경우는 인종별로, 이민 햇수에 따라, 학벌과 소득의 격차가 당연시된다. 계층 상승이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고, 으레 3D 직종에는 유색인종이 일하는 것으로 안다. 촛불을 들 힘도 없다. 경찰력이 워낙 드세서 함부로 길거리로 나가서 투쟁을 하다가는 플라스틱 끈으로 두 손이 꽁꽁 묶이고 만다. 경찰을 때렸다가는 그 자리에서 총을 맞는다. 계층 간 격차와 불평등,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일련의 관행은,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자체에 내포된 악의 뿌리이다. 직업과 경력에 따른 소득 격차 역시 자본주의 시장경쟁 체재가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한 시간에 삼백 불을 벌면, 건축노동자는 한 시간에 십 불 남짓 받는다. 이런 부조리가 어디에 있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 풍토이다. 모두가 의사가 되려고 진학준비를 한다. 요즈음 들어서는 그것도 힘들다고 그들보다 더 많이 버는 IT 기술자가 되려고 공부한다. 상당수 미국 젊은이들은 대학 졸업과 함께 학자금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허덕인다. 부모들이 마련해 준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학자금을 지원받는 청년들이 남들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이 차별과 불평등을 당연시한다. 팍스 로마나 시대의 추천과 후견인 제도가 부활한 느낌이다. 이것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이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개인의 능력과 경쟁 위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체재의 전반적인 문제요, 그 속에서 물량적 쟁취와 과도한 소비를 성공으로 재는 잣대의 문제이다. 아무리 사회복지 제도를 강화해준들, 저소득층에 분배해준 쥐꼬리만 한 돈 마저, 대기업들이 몇 달 안에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일 수 있는 것이 현 자본의 지배 구조이다. 계층상승이나 소득 격차를 좁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사실 한국보다 미국이나 자본 선진국에서 더욱 고착화되어 웬만해서는 계층 상승이 어렵다.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는 비율이 25% 남짓이다. 부자 부모를 만났는데 당대에 모든 자산을 잃어버리고 가난해질 확률역시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런 고착화된 차별과 불평등을 세속의 돈이나 물량적인 잣대로만 재면 문제 해결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치유가 힘들어 보이는 병리적 상황이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수께서는, 요한 웨슬리는 “물질을 쌓아 놓으라!”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식민지 착취를 당하는 유대 땅에서 팍스 로마나의 시대를 지내셨고, 요한 웨슬리는 초기 산업혁명의 자본주의 무절제 속에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처방은 동일했다. 돈에 찌들지 말고, 세속적인 안정에 목숨 걸지 말라는 반동이요, 반전이었다. 다 내어주고, 다 버리고, 다 비우고 가신 삶이었다. 무슨 힘으로 그리할 수 있었을까? 왜 그리하셨을까? 그들이 여전히 옳다면? 삼포세대는 굳이 저주받거나 절망의 세대이거나, 꿈도 미래도 없는 포기된 세대가 아니다.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 에 따라 지금 당장 없는 것이 축복이요 은혜로 전환될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가도록 이끄나? 에 따라 얼마든지 즐기고 꿈을 꾸고, 가슴 벅차게,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게 살 수 있다. 개인과 사회 전반의 가치관과 성공의 잣대를 역전시킬 수 있는 신학적 통찰력과 하늘의 지혜가 필요하다. 대반전이 절실한 시기이다.

한때 수사들이 뉴욕의 슬럼가로 들어갔다. 더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버리려고 해도 버릴 것이 없는 현실이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 절대빈곤 속에서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서로 도우며 살고 있었다. 수사들은 가르치기보다는 겸손히 배우기로 했다. 무소유를 이상으로 삼은 수사들이 무소유로 사는 이들을 만난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간 이들에게, 이미 그렇게 웃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하늘의 선물이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드렸다. 참 용기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이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 가지지 못한 것이 죄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라는 것을 직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눈뜨면 좋겠다. 남들이 자가용을 타고 빨리 갈 때, 지하 통로를 오가며 지하철을 갈아타는 불편이 있다. 피곤할 때 앉지 못하지만, 다리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적어도 마음은 편해진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운동 부족에 허덕이는 이들보다 체력 면에서 장기전에 강할 수도 있다. 가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꿈을 꿀 수 있다. 즐길 수 있고 나눌 수 있다. 이 꿈의 크기와 가치를 꼭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성공 잣대로 잴 필요는 없다.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남을 도울 수 있다. 위를 쳐다보며 빨리 이루려고 들면 저항이 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다. 자주 벽에 부딪히면 의욕이 떨어지고,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쌓일 수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돈이 없고 학벌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의 뿌리가 아니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같은 반 아이들이 너무 잘나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저 멀리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성공의 소리가 너무 큰 것 또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 다른 꿈을 꾸지 못하고,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내게 알맞은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걸음걸음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아니 비굴하게 눈치를 보고, 자신의 무력을 자조하며, 세상을 냉소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얼마나 많은 유혹의 손길을 펼쳤던가? 예수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예수께 가난은 죄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 불편하지만, 기다림을 배우게 하는 좋은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이 기다림 속에서 의욕을 잃고 용기를 접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손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겸손을 배우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으며 살아남는 법을 몸에 익힐 수도 있다. 손에 쥔 얼마 되지 않는 돈이 참 소중하다는 것도 새길 수 있다. 감사도 배우고, 어렵고 힘든 이웃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베푸는 동근 사상을 배울 수도 있다.

사실 용기와 의욕, 그리고 세상을 뒤집어 보는 깨달음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하늘의 것이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재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능 점수를 높인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도 실력’이라고 하는 무식한 인간을 미워한다고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늘의 것을 하늘 방식으로, 하늘을 향해 구할 때 얻을 수 있다. 이 하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신학이다. 손에 쥔 것이 없다는 것, 쌓은 것이 없다는 것은 실패도 고난도 아니다. 버려야 할 것들 잔뜩 쌓아놓은 것은 축복도 성공도 아니다. 오히려 버릴 쓰레기만 쌓아 놓은 것이요, 일거리만 늘려놓은 것뿐이다. 어차피 버려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제대로 서있는 것뿐이다. 이제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 삼포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신학적 통찰과 위로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직장, 결혼, 자녀를 포기한” 삼포 세대들이 힘차게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실천적인 신학, 곧 자기 포기의 신학을 그려보려고 한다.

1. 제대로 포기했는가?

무엇을 포기했는가? 왜 포기했는가? 강요된 포기인가? 실력이 딸려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인가? 자유로이 포기한 것인가? 몇 번이나 도전하고 포기한 것인가? 포기한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가?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은가? 세상만사가 귀찮고 지겨운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서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준 것인가? 아니면 가지려고 쌓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도 채우지 못했을 뿐인가?

아직 남은 것이 있다면 제대로 포기한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이 있고, 귀찮음이 있고, 원망이 있다면 다 버린 것이 아니다. 사람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이런 유형의 압박감은 우리 힘으로 포기할 수 없다. 부끄러움과 귀찮음과 원망과 분노를 가진 채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짐의 무게가 우리의 힘을 빼고 만다. 비굴하게 만들 수 있다. 오히려 나태와 게으름을 정당화시켜줄 수도 있다.

포기가 안 된다면 기회이다. 자신의 무력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어설 용기가 없다면 더욱 잘 된 일이다. 은총 앞에 나와 홀로 서면된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면 된다. 억지로 버리려고 기를 쓸 이유도 없다. 공로가 될 뿐이다. 하나님 앞에 서고 싶지 않은 저항과 하나님의 은혜 주심을 반항하는 자신의 허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이제 신학은 삼포 청년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가진 채 하나님 앞에 서도록 안내해야 한다. 거룩해지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고,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채근할 필요도 없다. 착하다고 달랠 이유도 없다. 진정 신앙인으로 살 길, 곧 빈 손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의 심장을 쏟아놓으라고 권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며, 모든 여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외쳐야 한다.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심정으로 다가가면 된다.

온통 절망이고, 온통 벽이라면,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하늘에서 길이 열려 내려오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을 바라보게 도우면 된다. 이 포기의 원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를 버리신 분, 하나님과 동등본체이시나 이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셨다. 사랑 때문이다. 신이 신 되심을 포기하고 인간 가운데, 인간 심장 안에 오셨다. 구유를 거쳐,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었고, 예루살렘에서 거짓 삶을 고발하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하늘로 돌아가셨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고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참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셨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의 결별의 아픔을 받아들이셨고, 성자 하나님께서 보좌로 돌아오신 후에는, 성령 하나님을 인간 가운데 다시 보내셨다. 자기 분리와 자기 포기의 아픔은 사람을 포함한 피조물을 살리기 위함이셨다. 자기를 버림으로 남을 살리고, 사랑하는 인간들을 다시 살리셨다. 버림을 통해 하나님의 참 본성 - 사랑 - 을 계시하셨다. 자기포기 영성의 원조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2. 포기의 영성, 그 신학적 검토 -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포기

하나님의 자기 포기로부터 시작된 우주적 회복은, 포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준다. 모든 만물과 하나님 자신이 하나를 이루시어 당신 안에서 지고의 완성을 이루시는 대서사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자와의 분열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성자가 인간의 육신 안으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드러나도록 허락하셨다. 성자는 성부 하나님과의 분열의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시고 화육을 감행하셨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권능을 포기한 상태에서, 아기로부터 시작하여 목수 일을 배우며 참 인간의 길을 살아내셨다. 그리고도 하나님과의 원초적 하나이심을 결코 놓은 적이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의 분열은, 하나님의 자기 포기는, 인간 예수 안에서 진정 하나를 이루고 다시 회복되셨다. 그의 인성의 죽으심과 인간 예수의 자기 포기는,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셨다. 성부와 성자의 회복이 인간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인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 안에 거하셨던 성자의 본성이 재 확증되었던 것이다. (죽을 수 없는) 신성이 죽음을 강행하셨을 때, 부활을 통해 죽으실 수 없음을 재 확증하셨다. 영원한 생명을 부활의 영체 속에 재 화육시키셨다. 이때 성부 하나님은 머물지 않으신다. 움켜쥐지 않으신다. 또 버리신다. 또다시 자기 분열과 자기 포기를 감행하신다. 곧, 성령 하나님을, 진리의 영을 세상 속에 모든 인간 속에 화육시키신다. 믿음의 눈을 뜬 자들은,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인 자들은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실재를 체감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며,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된다.(요 16장)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진정한 인성의 회복을 체득하게 되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을 이루어간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 안에서 영과 육과 혼이 완전히 거룩해지도록 친히 인간 안에서, 인간 사회와 관계 안에서 일하신다.(살전 5:23) 그의 약속이 종말에 이르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으로 완전해질 것이다. 이 완성의 모습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취되었다. 이 선취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선물이신 믿음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은 미리 맛보며 살 수 있다. 부분적인 회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죽기 오년 전 십년 전에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룬 자들이 나타난다.(요한 웨슬리)

거룩을 회복한 인간은, 자신의 완전 성화를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가며 주위와 환경과 사회를 거룩하게 변화시킨다. 이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거룩해진 인간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신다. 거룩의 회복(성화)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되는 것을 말하며, 이 회복은 믿는 자 안에서, 그리고 믿는 자들을 통해 세상 속에 확산된다. 세상이 변하고, 인간 사회가 변하고, 온 피조물이 변화되어 거룩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의 품성을 덧입고, 그의 품성으로 감화된다. 마침내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과 거룩해진 모든 만물이 일체를 이루게 된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께서 드린 기도가 응답을 받게 된다. 이때, 성령 하나님과 분열되었던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피조물의 거룩한 회복 속에서 자신의 본연의 관계와 품격을 다시 회복하게 되신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거룩해짐과 성화는 하나님 자신의 구원 (분열의 극복)과 이어져있다. 인간과 피조물을 향해 자기를 포기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피조물과의 일체를 이루시는 자기 확장으로 극복되고, 더욱 완전해진다. 화이트헤드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의 자기 초월 또는 스스로 자신을 능가하시는 하나님 (self surpassable) 으로 묘사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인간과 피조물을 사랑하사 자기를 포기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는 나자렛 예수 안에서, - 그의 탄생과 헌신과 죽음을 통해 - 분열되었던 성부와 성자가 일치와 회복을 이루신다. 이 회복은 자기만족에 머물지 않고 보혜사 성령을 인간과 피조세계에 보내시는 또 한 번의 분열의 자기 포기를 감행하신다. 이 포기는 모든 만물의 회복과 인간의 성화를 통해 인간과 만물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자기 회복과 성취로 마무리 된다. 격하게 표현하면, 인간과 피조물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서 - 사랑 때문에 자기를 포기하셨던 - 하나님 자신도 구원하신다. 포기는 자신을 구원하는 첫 단추요, 은총의 수단이다. 하나님이 우리 없이 감행하신 자기 포기의 사역은, 인간의 자기 포기에의 동참과 재현을 통해 우주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

3. 웨슬리 다시 읽기 - 그의 잊혀진 혜안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웨슬리가 말한 “성화”를 설명할 때, “인간의 무제약적인 책임”(변선환교수)과 “인간 100%”(김홍기교수)를 과하게 강조한 측면이 있다. 웨슬리가 강조했던 또 하나의 측면, 곧 하나님의 은총의 낙관주의와 인간의 무력에 대한 이해가 약화되고, 웨슬리 신학의 전체적 균형이 흩뜨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눈으로 웨슬리의 설교를 다시 읽으면, ‘죄 성을 가진 채 하나님 앞에 나오라!’ ‘지금 나오라!’ 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생각, 자기 자랑, 자기 공로를 결코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오히려 인간의 무력, 기다림, 사모 등과 같은 피동성에 대해 크게 강조하고 있다. ‘내가 해야 한다든지!’ ‘우리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든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웨슬리와 거리가 멀다.

웨슬리의 설교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먼저 성경구절들을 나열한다. 여러 본문들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다루는 주제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이어서 바울 이후 교부들이, 뛰어난 성현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설명했는지 보충한다. 이어서 이성적인 분석과 사례 비교를 통해 청중을 설득해 나간다. 지금까지 웨슬리신학에 대한 설명은 거의 이 세 부분에 편중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웨슬리의 4대 표준 중에서, 성서, 전통, 이성에 대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완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웨슬리의 체험 부분이다. 대부분의 설교에서 그의 체험부분은 전체 설교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택한 성서 본문에 새로운 색칠을 하고, 또 다른 눈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이다. 빈손으로 나오라든지, 죄 성만 가진 채 나오라든지, 자신의 어떤 것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말라! 는 부분 등은 그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된다. 동시에 이 체험이 앞서 지적한 성서, 전통, 이성에서 다룬 부분에 새로운 눈을 그리고, 새로운 색깔을 덧입혀 “전혀” 다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랑으로 실천하는 믿음”을 이야기해서, 우리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신의 무력을 고백함으로써 덧입혀지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당신의 선하신 축복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선수를 쓰시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안 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 내어 언제나 어디서나 끊임없이 기도해야” 된다. 기도를 통해 도우심을 청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취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제약적인 책임은 아니다. 물론 웨슬리는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면(행2:40)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우리 몫과 참여를 강력하게 권한다. “모든 수단을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동시에,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 이라고 “모든 수단”의 실체를 밝힌다. 자기 부인과 자기 부정이 전제된 “모든 수단”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내 구원을 위해 내가 행해야 하는 인간적 책임이나 인간적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바를 여러분 안에서 행하사 ……., 모든 선한 행실을 하는 여러분을 완전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런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웨슬리의 영적 체험으로 다시 녹여낸 성서, 전통, 그리고 이성은 하나의 신학적 조화를 이룬다.

예수님과 웨슬리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청년들은 은총 받기에 합당한 준비가 된 이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심중의 잣대를 변화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 대안이 필요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포기로부터 만물의 완성이라는 신학적 설명과 웨슬리가 말한 인간의 무력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낙관이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이 눈으로 보면, 무력과 자기포기는 자기완성에 이르는 전제가 될 수 있다. 예수님과 요한 웨슬리부터 물려받은 “자기포기의 영성”은 청년 세대를 교육시킬 새로운 신학적인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제 “자기 포기의 영성”을 좀 더 들여다보자.

4. 성공이냐? 실패냐? - 진리의 영이 오시면 밝히 깨닫게 해주신다.

감리교신학에 있어 성서적 기반은 출발점이다. 조직신학이든, 선교신학이든, 교육신학이든 성서를 떠나서 논의될 수 없다. 먼저 요한복음 16장으로부터 출발하자. 예수께서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밝히 설명해주시는 대목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나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낫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보혜사의 다른 이름은 진리의 영이다. 곧 진리를 밝히 알려주시는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시다. 이 진리의 영은 아버지의 영이며 동시에 예수의 영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준다고 약속하셨다. 세상의 잣대나,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만 가지고는 참을 논할 수도, 진실을 규명하기도 어렵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정말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가치 있는 것을 구하고 있는지? 쓰레기를 모으고 있는지? 사람의 지혜와 능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르네상스 이후, 특히 데카르트 이후 서양 철학은 “이성”을 진리의 최후 보루요 심판자로 격상시켰다. 철학적 신학 역시 이성을 우위에 두고, 이성적 점검을 통해 진리를 담보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쳤다. 이 방식은 실증주의와 과학주의를 낳는 모판이 되었고, 과학적이라는 말은 실증적이며 이성적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해된다. 해서 오늘 날의 젊은이들은 이성적이지 않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줄곧 그렇게 배웠다. 인간의 자율적 판단과 자주적인 결단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조된다. 다시 말해, 진리는 인간에 의해 판단되며,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이성의 역할에 의해 옳고 그름이 판정된다고 배웠다. 이성의 눈으로 볼 때, 부조리가 보이고 모순이 보이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고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의 학교 교육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눈을 키워주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재확인될 수 있는 것만 진리로 인식할 수 있게 눈을 좁혀놓았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하고, 내 귀로 듣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초월이라든지 심미적 가치라는 (순수) 이성의 영역 바깥이다. 네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에 익숙해진 이들은 추상적 사유나 추론조차 버거워한다.

성경은 말한다. 진리는 진리의 영이 오셔야 밝히 깨달을 수 있다고……, 참과 거짓에 대한 판정은 인간에 속한 것도, 인간 이성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 내 개입과 참여가 빠진 이성적 고려와 실증적 점검은 반쪽이다. 아니 그보다 작다. 아주 작은 모델만 가지고 진리 자체를 판정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실망하고 귀찮아하고 그리고 포기한다. 진리는 진리의 영이 오셔야만 제대로 보인다.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진리의 영, 보혜사가 우리 심장에, 우리 두뇌에 들어오셔야 겨우 보인다. 밝아진다. 역으로, 진리의 영은 자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텅 빈 심장에 찾아오신다. 이성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를 포기한 이들에게 찾아오신다. 역설이다. 최선의 노력을 하되, 자기 이성을 신뢰하고 자기 능력으로 이루려고 하지 않는 이들에게 찾아오신다. 성령이 도와주셔야 알 수 있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밝혀주신다. 그러고 나서 길을 나서야 길을 잃지 않는다. 성령이 오셔야만 의에 대해, 실패에 대해, 성공에 대해, 참에 대해 밝히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을 실천하여 삶 속에 화육시킬 수 있다. 성령 없이는 불가능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참여와 자기 구속 사역 없이는 그 어떤 인간도 온전한 의미의 자기완성과 실현을 이룰 수 없다. 잠시 잠깐의 세속적 성공이 인간성 전체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미래도 보장하지 못한다. 그가 속한 가정과 사회의 성공도 물론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초극적인 완성을 향한 구속 사역에 [수동적으로] 참여할 때,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진리의 영, 곧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은 바로 이 같은 구속 사역의 성취를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포기이다. 하나님의 선취적 포기와 구속 사역에, 세상을 포기한 인간의 수용과 참여가 인간성의 완성과 신성의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포기 없이는 불가하다.

그렇다면 이 현실에 대해, 세상에 대해, 결혼과 직장과 자녀를 포기한 세대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꼭 그렇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포기한 다음에 전혀 새로운 것이 덧입혀진다면? 그것은 선물이며, 은총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 은총의 확산을 위한 은총의 수단이다. 바로 여기에 소망이 있다. 삼포세대의 청년들은, 어차피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스펙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을 잘 안다. 이들이 가슴을 열고 성령의 인도를 수용할 수 있다면 참된 진리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쌓지 말아야 할 것을 거들떠보지 않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포기했다는 사실이 남보다 오히려 한 걸음 앞섰다는 것을 뜻한다. 믿음은, 지상에서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며,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미리 누리고 사는 삶이다. 이 현실의 가치에 대해 포기했다는 사실은 하늘의 가치를 얻기 위해 첫 걸음을 이미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포기에서 (성화를 거쳐) 신화(神化)로! - 하나 됨의 완성을 향해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리우스의 논지였다. 이점을 오해하면 논의는 진행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타나시우스를 따라간다. 그 분은 원래 신성으로 가득하셨고, 인성을 덧입으셨다. 하지만 인간의 가죽을 걸치듯, 속 알맹이는 신이라는 뜻이 아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안에 충만한 신성은, 나사렛 사람 예수의 인성을 도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충만케, 완전케 하셨다. 신성의 충만이 그의 인성의 완전함을 더욱 완전케 하셨다. 니케아회의에서 이룬 교리적 절충은, 인성과 신성이 공재(共在: together-ness)한다는 사실을 함께 붙들었다. 섞이지도 않고 분열되지도 않는,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합의를 이루었다. 이 합의의 중심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교부들의 ‘인격을 말살시키지 않는 신성의 충만에 대한 공통 경험’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비록 서방과 동방으로 갈라져있었지만,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최소공배수는 무엇일까? 그것을 공재(共在)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한다. “하나님 앞에 자아를 모두 비웠을 때 자신 안에 가득 찬 하나님의 임재”, 곧 공재를 경험했다고 본다. 이 공재의 체험은, 사막의 성자들이나 신비가들의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신적 실재가 내 안에 함께하시는 경험은, 예수님 안에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이 가득할 수 있었을까?를 더듬어 살피는 고리가 된다. 이러한 추론의 전제는, 두 본성(two natures in a person) 교리가 예수를 일반 인간과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로 이해하지 않았다. 예수를 예외로 여기거나, 우리와 다른 별개의 인간 또는 특수한 존재로 분류하지 않았다. 오늘날 일반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만 특별한 존재, 신적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다. 양자설이나 가현설뿐만 아니라 단성론 역시 이단으로 배격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 말을 뒷받침해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더불어 그의 인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놓을 수 없었다. 동시에 그가 이 땅 위에서 사셨던 참 사람이었다는 것도 놓칠 수 없었다. 이 두 본성을 함께 붙들려고 노력한 두 본성 교리라는 이론적 작업이, 바로 공재설의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말의 참 의미는, 온 몸으로 온 삶으로 ‘그가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첫 열매가 되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면, 그와 같은 품성을 덧입거나, 이루거나, 회복해야 함을 뜻한다. 니케아 교리로 돌아가면, 그의 두 본성을 우리가 덧입거나 이루거나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영성 수련이나 신앙 실천에 있어서는 이 점이 중요하다. 이미 우리가 인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충분한 신성을 덧입거나 회복하는 일이다. 공재를 위해서는 이것만 남았다. 신성을 덧입거나, 신성을 회복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곧 구원의 완성이었고, 완성된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칭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인성 안에 신성의 충만은 동일 사건에 대한 다양한 표현 또는 강조점의 차이였다. 해서 참된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신성의 충만함으로 덧입은 “나”를 “진정한 나”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전통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신화는 두 본성 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차피 인성은 부정할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실천적으로] 신성을 내 안에 가득 차게 하는 것만 남았다. 나의 인성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가득 차게 하는 것을 신화라고 불렀다. 이 신화는 인간이 신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감정의 응어리가 휘두르고, 온갖 생각과 판단이 휘젓는, 몸이 이끄는 그 “나”를 나로 보지 않음에서 출발한다. 그 [옛] 사람을 내려놓고, 모두 내어드리고, 내 안에 하나님의 신성을 모셔드리는 것을 뜻한다. 이 신화 또는 공재는, 자기 포기를 전제로 한다. 나를 포기하고 나를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오심으로 인해, 오히려 자유와 충만을 느끼는 내가 내 안에서 살아난다. 내 안에 임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멸하시거나 파괴시키지 않으신다. 오히려 충만케 해주신다. 해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나는, 하나님의 영을 모신 나의 인성을 포함한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덧입는다. 개신교인들이 말해 온, 화육(incarnation)을 뜻한다. 곧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길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 저들도 아버지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한다. 하나 되는 길, 주님이 보여주신 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신성을 회복하는 것을 참 제자가 되는 길로 이해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 는 개신교의 구원론, 특히 근본주의 교리가 정착되기 전에는 기독교의 신학의 큰 축이었다. 오늘 날에도 동방교회 전통은 나름대로 이것을 지켜나가고 있다. 인간의 한계와 타락을 전제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승리를 강조했던 개신교 전통은 신화(神化)의 가능성을 도외시했다.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적이었고, 신화 교리 자체를 거의 신성모독처럼 여겨왔다. 이제 균형을 회복하고, 성화와 신화,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구원으로 보는 이해를 재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옛 사람의 포기가 전제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6. 포기로부터 아들과 딸이 되는 길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말 자체를 신성 모독이라 여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모순이다. 아니라면 언어 사용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을, 우리 믿는 자들이 닮아가는 것 자체를 스스로 부정한다면? 하나님을 너무 어렵고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는 것, 그 이상은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따르자면, 아들이, 딸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막아왔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내가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나를 지으시고 내 안에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이 바로 내 아버지라는 것을 믿고, 수용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은 내 인생의 목표요, 신앙의 푯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 푯대를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말이다.

지금은 비록 그 품성을 잊고 살지만, 내 안에 그 가능성이 남아 있다. 동시에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실재가 되었던 화육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화육 사건은 ‘아버지를 닮아가는 내 믿음’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 그 표본이신, 부활의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서 살아계셔서, 나로 그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이제는 보혜사 성령의 모습으로 온 인류와 온 만물 속에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의 목표를 재구성해야 하듯이. 믿음의 의미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믿어야 하느냐?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의 품성과 동일한 품성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형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 가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 “아버지와 (저들이) 하나 되기를” 예수님께서 친히 간구하셨다.(요 17장) “형상의 회복”과 “하나님과 하나 됨”이 믿음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합일을 이루고, 하나님의 통치를 나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사는 신학적 틀이 마련될 수 있다.

하나님과의 하나 됨은 하나님으로부터 처음 주어지는 원초적인 목적을, 얼마나 나의 주체적인 목적으로 삼느냐? 의 달려있다. 이론적으로 0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 분의 품성을 닮아가기를 원하고, 점점 더 많이 수용한다면? 그 가능성은 점점 증가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100퍼센트를 수용하고 이루어가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실재로는, 여러 가지 제약과 저항의 요소들이 널려있다. 최대의 가능성 보다는 사소한 것을 이루고 만족하고 마는 악(triviality)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점점 높여가는 것을 전통 교리에서는 성화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원초적 목적을, 나의 주체적 목적으로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하나님의 품성을 더욱 많이 닮아갈 수 있다. 마침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완전” 교리는, 직선적(linear)인 발전 과정을 연상시키는 제한성이 있다. 늘, 아직 아니다(not-yet). 대신, 공재는, 오늘 완성을 체험하지만 내일 실패할 수 있는 한 순간의 체득 (drop of experience)을 전제한다. 오늘 한 번 맛을 보지만, 내일도 당연히 이룰 수 있는 보장은 없다. 오늘 이루면, 어제 보다는 훨씬 내일 이루기 쉬울 뿐이다. 주어진 환경에 대해, 오늘 이 순간의 내가 전혀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오늘 내가 내리는 그 결정과 성취가 올바른 방향이든지, 그릇된 방향이든지 어제가 오늘을 결정하지 않는다. 반드시 반복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이론적 근거들은, 언제나 늘 새롭게 맛보는 영적 체험과 합일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정 체험은 과정적이며 동시에 찰나적이다. 고정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늘 새로운 피조물이며, 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간다. 늘 포기를 통해 새로움을 도모하고, 완성을 지향한다. 그래서 포기와 내려놓음은 아름답다.

7. 이성적/철학적 점검: 화이트헤드, 하나 됨, 그리고 神化

화이트헤드 철학에 있어서,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내가 나로 있을 수 없다. 그가 주시는 원초적인 목적을 내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에 따라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닮을 수 있냐? 를 결정하게 된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을 나의 삶의 목표와 목적으로 삼아갈수록 하나님에 의한 나의 통치는 자발적으로 더욱 강화된다. 성서는 이 상태를 “하나님 나라”라고 불렀다. 내가 하나님께 많이 개방할수록 하나님(에 의한 나)의 통치는 더욱 온전해진다. 하나님의 뜻이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삶의 전 영역에서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그 분의 원하심을 점점 나의 원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함께 하심 속에서 그 분의 품성이 내 안에서 점점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

이 모든 과정과 이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취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루어진다. 해서,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온전히 포기할수록, 더 온전히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살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과의 일치는 신비적인 일이거나, 단지 유비적인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성서 속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실생활에서 겪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며, 간증거리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사는 매일의 삶이 그렇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내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가,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설득하시며 함께 참여하심으로 나를 함께 이루어가는 삶이라고 설명해준다.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면, 하나님께 더욱 온전하게 개방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매일 매일의 생활이 바로 천국을 맛보고 사는 삶이다. 내가 매일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매 순간, 하나님께서 내 안에 직접 참여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시에, 하나님이 내 안에 친히 찾아오셔서 함께 살아계심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하나님과의 합일을, 어떤 개념이나 은혜 등의 추상적인 표현으로 애매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화이트헤드 철학 체계 안에서 내 안에 하나님이 가득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도, 신비적인 일도 아니다. “영원한 대상”으로 기억하고 “개념적 경험”으로 인지하신다는 개념적 합생으로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하나님이 내 안에 가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가득하신 것을 내가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못하느냐? 는 인식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자기포기와 수용의 문제일 뿐이다. 다시 말해,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개방하느냐? 의 문제로 전환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신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본래적 모습이다. 나만 모르고,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리되면, 신비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요 저항과 거부의 문제가 된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게 그 분의 뜻을 주셔야 나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을 거부하면 진정한 내가 되지 못한다. 적당히 타협하거나 일부만 받아들이며 나의 최상을 이루지 못하고 산다. 자기 상실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내 안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충만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품성도 바로 이 순간부터 회복되고, 다시금 내 안에서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이 충만이 내일 지속되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오늘 나는 하나님 나라를 살고,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그 분과 더불어 살고 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그의 나라가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 이 일터 그리고 이 가정 속에 가득하다. 이때 “개방”이라는 말은, “포기”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8. 전통의 눈으로 점검해 보는 개신교 영성의 뿌리 - 자기 포기

개신교의 시작은 예배당과 수도원의 예식과 규례 그리고 안정을 포기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성서를 손에 들고 은총을 외쳤다. 교회도 아니고, 미사도 아니고, 강론자도 아니었다. 오직 은총이었다. 오직 성경이었다. 성령의 빛으로 비추어진 성경은 마치 처녀처럼 자신의 옷을 벗고 삶의 감동과 원동력을 주고, 새 삶의 길잡이가 되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기쁜 삶의 길이다!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다! 는 외침이 이어졌다. 해서 과거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다. 편안한 잠자리와 보장된 밥그릇을 포기할 수 있었다. 자신의 심장 안에 끓어오르는 감격과 희열이 있었고, 거친 잠자리와 거친 음식 속에서 오히려 잔잔한 영혼의 내적 기쁨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알려주는 길을 걷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뼈와 살이 만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길을 갈 수 있었다. (이것을 오직 은총이라 고백했다.) 해서 마틴 루터는 ‘그저 받아들이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경이 밝혀주는 그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외치었다. 그저 받아들이라! 오직 믿음이었다. 이것이 개신교의 영성이다.

이 영성 생활의 뿌리는 성경이며, 성경에서 제시하는 길을 걷는 자에게 임하시어 함께 사시는 보혜사 성령의 인도와 힘주심이다. 이 감각을 잃으면 개신교 영성도 사라진다. 이 영성은 예배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 통에서도 맛보았다. 지하 감옥에서도 경험하였다. 그리고 거리에서도, 탄광에서도, 창녀촌을 찾아가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 내가 숨 쉬는 곳,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가 바로 그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품 안이었다. 이것이 개신교 영성이었다.

이 길은 (개신교 초기 개혁가들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가셨다. 십자가 위에서 이미 이루셨다. 해서 인간은 그저 받아들이고, 늘 새로운 인도하심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선취적 은총과 인간의 수동적 수용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에게서 결여된 “성화”의 개념은 칼빈과 웨슬리가 부언하여 보충하려고 애썼다. 종교개혁가가 전투의 한 복판에서 놓친 중요한 개념과 실천을 개혁 제2세대가 보완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랑으로 가득 찬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했고, 그리되도록 독려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개신교 뿌리에 놓여 있는 개신교 영성의 이론적 정초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새삼 강조해야 하는 마틴 루터의 주장은, 직업소명설과 만인제사장설이다. 모든 믿는 자가 바로 제사장이며 사제이다. 그가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일이며,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드리는 일이다. 동시에 이웃을 위해 제물을 바치고 스스로를 번제물이 되어 남을 위해 자신의 삶을 대신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이웃을 섬기는 일은 동일한 본질의 두 개의 다른 형상일 뿐이었다. 하나의 사건이며,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신비한 변화, 곧 떡과 포도주가 신비롭게 변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가 된다는 개념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는 매일의 일이, 내 일터에서 하는 나의 수고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비롭게 변화되어 거룩한 산제사가 된다는 신학적 틀을 갖추었다.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입으려고, 내 가족 건사하려고, 세상에 나가 일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세상 한 가운데서 하는 가장 세속적인 일이, - 나의 중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인해 신비하게 변화되어 - 가장 거룩한 일, 가장 거룩한 산제사, 거룩한 예배가 된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거룩한 교환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해서 내가 만나는 나의 고객과 손님을 거룩한 예배의 대상처럼 공경하고 섬길 수밖에 없다. 이 일상은 매일 반복되며, 삶의 가장 치열한 자리가 가장 신령한 곳이 된다. 이 예배는 사랑의 실천이 곧, 산 제물이다. 너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소멸시키는 헌신이 “진정한 제사요”, “제사를 원치 않고 자비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 마음을 내 안에 품고 내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전체가 바로 개신교의 영성이다. 이 마음을 품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삶 전체가 자기포기의 영성이며, 개신교의 영성의 맨 얼굴이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해서 수도원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이곳이 바로 가장 거룩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신비하게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신비 속에 내 일상이 거룩하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를 분리할 수 없다. 가장 탁월한 예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드러났다. 예수 안에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 공재하듯이. 내 안에서, 내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그 신비가 재현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드러내는 세속적인 동시에 거룩한 도구이다. 이 일에 참여함을 통해 나의 영성은, 나의 인격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해서 나의 일터는 바로 수도원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출가 수도승에 버금가는 재가 수도승의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는 것이 결국, 칼빈과 웨슬리에 이르면, 성화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혼신의 삶을 이끌려 살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다다를 수 있다고 보았다.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조선 기독교 영성도 이런 맥을 이어왔다. 기록된 말씀에 대한 애정과 헌신 그리고 이어진 사경회를 통해 선포된 말씀을 사모하는 말씀 중심의 영성이 자리 잡았다. 기록된 말씀 자체를 거룩하게 여기는 풍토와 말씀 선포에 목숨을 거는 “말씀 중심의 영성”은 “화육된 말씀”의 원초적 중요성을 약화시켰다. 곧 나자렛 예수의 삶 자체의 의미와 실천적 가치를 약화시켰다. 하지만, 초창기 조선 개신교의 영성은 통성기도와 철야 기도와 사경회 등과 같은 “오직 내 개인의 신앙” “오직 내 교회” 중심에 머물지 않았다. 사회 변화와 계몽 운동, 교육 운동 그리고 조선의 독립과 분리될 수 없는 신앙실천이 개신교 신앙의 뿌리였다. 1930대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과 강제징집과 수탈 등과 같은 사회 변화는 개신교 영성의 방향을 저 세상적이며 종말론적인 환상과 기대로 변질되었다. 신사참배의 갈등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 개신교의 분열을 초래했고, 한국 전쟁의 처절한 아픔은 이단 종파를 양산하였다. 분열과 전통의 고수, 그리고 이단 종파 사이에서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성령 운동의 특징은 성결과 종말론적 기대가 아니라, 현실적 문제 해결이라는 독특한 모습을 띄게 된다. 조용기 목사로 대변되는 이 운동은, 가난 귀신과 병 귀신이 들린 불쌍한 신자들이 금식을 통해 귀신을 몰아내고 병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강조하였다. 병의 문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기독교가 된 것이다. 사회적 책임과 사회 변혁. 이웃에 대한 봉사와 헌신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성화보다는 현실적 문제 해결이 우선시 되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신교인들이 생각하는 영성, 또는 신앙인의 길은,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건강은 필수며, 적당한 명예와 재산도 갖추고, 남들의 칭찬과 존경도 얻으며 살고 싶어 한다. 주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까지 받고 싶어 한다. 한 걸음 더 나가면, 남도 조금 도와주고 선교도 다니고, 교회 생활이나, 헌금도 남 보다 떨어지지 않게 하고 싶어 한다. 자녀들이 일류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이나 의사, 변호사 또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출세”도 원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축복의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것의 바탕은 믿음이라고 여긴다. 곧 믿음의 보상이 축복이며, 이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영성”이라 이해한다. 영성 유지를 위해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고자 한다. 말씀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고, 예배 때 이 축복을 기원한다. 물론 개중에는 보다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거나 그 이상의 목표를 찾아보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종교심성과 영적 추구가 이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통속적 이해의 뿌리에 삼박자 축복과 번영신학이 자리하고 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건강(?)해지기를 원한다. 꼬리가 되기보다는 머리가 되고, 빌리기 보다는 꾸어주기를 원한다. 모두가 믿음 때문에 부어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간주한다. 믿음 충만이 흔들리면, 금식도 하고, 새벽기도회에도 나간다. 하지만 여기에 인격의 변화나 성화에 대한 요구, 그리고 사회적 성황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미약하다. 세속적인 축복을 구하고 누리며 사는 비신자들과의 큰 차이를 찾기 보기 어렵다. 오늘에 이르러 개신교 영성은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9. 예수의 길: 말씀의 화육, 자기희생과 자기 포기

오늘 일반 개신교인들에게 “누가 폼 나게 살고 있는가?” 하고 물으면, 안창호, 안중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이클 조단과 같은 사람의 이름을 댄다. 현실적 성공이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 “극기”의 삶을 살았거나, 남들에게 보기 훌륭한 삶을 살다가 간 사람들을 꼽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렇게 살겠다거나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진정한 이상적 삶은 어떤 모습일까? 바울은, “하나님과 동등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에게 찾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산 것이라 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살아가는 삶을 일체자족의 삶이라고 내세웠다. 바울에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이상향이나 이상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께서는 어떻게 사셨을까? 예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다. 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고도 하셨다. 예수께서는 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까? 왜 자기 멍에는 쉽고 자기 짐은 가볍다고 했을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삶에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무차별적인 사랑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예수는 당당했다. 누구에게도 굴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았다. 스펙을 쌓고 재물을 쌓고 교인을 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대신 모두를 품고 사랑하고 끝까지 차별 없이 사랑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안 그 사랑이 흘러넘쳤고, 넘치는 사랑이 그의 양식이었다. 배고프지도 갈하지도 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안했고 자유로웠다. 그의 영성은 아버지의 일을 함에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하셨다. 내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일을 하셨다. 그리고 늘 아버지의 소리를 듣고 아버지와 하나이셨다.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일을 하심으로, 그 삶 전체에 아버지의 품성이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품성이신 사랑과 자유, 진리와 평화가 흘러 나왔다. 그래서 평안을 누리고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사랑의 길로 제자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들어서기를 권하셨다.

예수의 영성은 말씀의 영성이다. 그의 영성은 사랑의 영성이며 실천의 영성이다. 그 영성의 뿌리에는 아버지와 하나 됨이 있다. 늘 하나 되어 움직이며 멈추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며 자비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 속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었다. 이 평안을 제자들이 나누어 갖기를 원하셨다. 세상 풍조가 험악하고,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의 절박함이 닥쳐와도 흔들림 없는 평안이었다. 해서 당신은 자유로우셨다. 두려움으로부터, 남에게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내일의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로부터 자유하셨다. 이 자유의 영성은 스스로 아버지의 종으로 사셨기에 유지되셨다.

이 논리적 역설은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해소된다. 종이 되고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신이시기를 포기하시고 인간 안에 함께 내재하신다. 그의 내재는 인간의 유한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표징인 부활로 드러난다. 인간이 인간답게 제대로 살 수 있는 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 삶은 영원한 생명 속에서 드러나게 될 것을 이미 이 자리에서부터 현현시킨다.

10. 예수의 제자의 길: 어떻게 안내하고, 실천하도록 이끌 것인가?

무력감에 빠진 청년들을, 실망하고 좌절하는 청년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 것인가? 무엇을 배우게 하고 무엇을 행하도록 안내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교회 교육의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커리큘럼을 새로 짜는 일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교과 내용을 마련하는 것은 교회 교육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자기포기의 영성”을 교육하기 위한 “자기 포기의 신학”의 뿌리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신학적 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시도가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천을 통해 품성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모색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교회교육 현장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그 적용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말씀으로 돌아가자. 우리의 뿌리이며, 우리의 영성의 가장 소중한 가이드북이다. 종래에 교리의 눈으로 재단하고, 교리의 옳음을 강화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던 방식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기록된 말씀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청년들의 눈으로 직접 탐구하도록 개방해야 한다. 진정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청년들이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방식으로 -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 분석하고 그 의미를 파헤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매주 마가복음 한 장을 단락으로 나누고 각 단락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고, 결국 마가복음 1장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스스로 찾도록 도와준다. (나누어진 각 단락을 periscope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시간, 장소, 청중, 화자, 강조화법 등에 의해 나누어진다.) 어떤 문장이나 어떤 글로 이런 식으로 나누면 읽기에 편하고 의미 파악이 쉬워진다. 스스로 단락을 나누고, 단락의 의미를 찾아가다보면, 그 의미가 던지는 도전 앞에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성경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동시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지 부딪히게 된다. 종래 해오던 QT 이상의 파급효과가 있다. 이 같은 분해와 분석을 통해 성경을 꼼꼼하게 읽게 하는 것은 성서의 거룩한 말씀 읽기 (lectio divina) 와도 이어진다. 자기 손으로 성경을 나누고, 성경의 각 조각이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내고, 그 전체를 묶는 순간 -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 신비하게 말을 건네신다. 읽는 사람, 바로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알맞은 말씀을 던지신다. 이때 도전받게 된다. 우리 목회자들이 교리를 가르쳐 빨리 좋은 교인을 만들려고 노력해왔기에, 저들과는 상관없는 신학 사조를 소개하거나 교회 입장에서 교회를 키우는 일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말씀이 말씀하시게 하는 일은 성경을 꼼꼼히 읽히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관심을 갖게 하고 재미를 붙이게 하는 것만 필요하다. 그 뒷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시다.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청년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면 참 교육은 시작된다.

둘째, 말씀은 선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데 진정한 깊이와 의미가 있다. 기록된 말씀의 이해를 기반으로, 선포자의 도움과 가이드를 얻어, 내 삶의 현장에 말씀대로 사는 길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각자가 생생하게 듣도록 도와야 한다. 보조자들의 도움을 얻어, 듣는 훈련을 더욱 예민하게 해야 하며, 들은 대로 살아내는 실천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 중에 가장 감동을 주었던 대목을 직접 실천하도록 인도하고, 그 결과를 신앙 일기에 적도록 도와준다. 요즈음은 휴대전화기가 그런 기능을 다 가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얻은 은혜와 감동을 단체 SNS를 통해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 성경을 분해하고 그 의미를 찾을 때 오는 충격을 적어보고, 그 느낌 때문에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실천하게 된 경험을 적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켜가고 있는지, 그 기록이 영성 수련의 역사책이 된다. 이것을 나누는 것은 웨슬리 시대의 밴드를 전자 시대의 네트워크로 재현시킬 수 있다. 은밀한 도움과 서로 함께 나누는 일은, 영적 수행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서로 격려하는 공감의 장이 될 수 있다. 여기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대신 실천을 통해 얻은 감동과 격려가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자극이 될 수 있으며 교사 역시 청년들의 솔직하고 과감한 변화 - 말씀에 의한 변화 - 앞에 자신의 허구와 무력, 그리고 그 위에 새롭게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말씀을 꿰뚫고, 의미를 찾아내는 영적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만큼, 들은 것을 실천해 내는 영적 근력도 강화시켜주어야 한다. 말씀대로 살아내고 그 말씀이 실천하는 자의 근육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인격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셋째, 이 말씀의 영성은 듣는 훈련을 포함한다. 어쩌면 이것이 제일 먼저 실행되어져야 할지 모른다. 다만 실천적으로 말씀에 부딪히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온다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어울려서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속을 드러내고 심장을 찢는 일은 쉽지 않다. 꼼꼼하게 성경을 쪼개어 읽어가면서 부딪히는 감동은 결국 하나님께 말을 거는 순서로 이끌어가게 된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다. 말씀과 실천 속에 부딪힌 변화의 체험은 감동을 느끼게 하고, 그 감동의 실체이신 하나님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감사를 표현하고 의심을 묻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에서 결국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을 직접 들어야 한다. 듣기 위해서는 앉아야 하고, 고요한 가운데 들어야 한다. 들리지 않아서 쉽게 포기하고 멈추는 일이 생긴다. 이때 교사나 인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끈질기게 진솔하게 시도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소위 멘토의 역할이 필요하다. 듣기 위해서는, 듣고 따르겠다는 중심을 먼저 드려야 한다. “한번 [말씀]해 보세요!” 하는 심정으로는 약하다. 온 마음을 다해, “주님 말씀하시면 제가 듣겠나이다.” 라는 온전한 마음을 드리는 고백이 나오도록 인도할 필요가 있다. “제가 듣고 따르겠습니다!” 하는 심중의 고백은 비움을 전제로 한다. 포기가 먼저이다. 내 생각과 내 판단. 내 기호와 내 능력에 대한 신뢰, 내 목표, 내 자신에 대한 애착마저 다 드려야 한다. 자신은 세상에 대해 별 기대가 없고, 다 내려놓았다고 하는 사람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쌓여있는지? 그 무게와 중압감이 얼마나 큰지는 홀로 하나님 앞에 앉아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실 이 더러운 짐을 지고 매일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온 마음을 드리고 온 몸을 드려야 한다. 그 판단과 최종 결과에 대한 기대마저 드려야 한다. 진정한 믿음의 드림이다. 여기서 개신교의 오랜 전통이 “오직 믿음”이 되살아난다. 진정 믿는다면 다 맡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게다가, 이 세상에 대해 실망하고, 의미를 못 느끼고, 별 애착이 없다면? 무엇을 남길 것이며, 무엇을 아낄 것인가? 다 내어드리면 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생명과 생명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아 전부를 드려야 한다.

넷째, 이 드리는 기도가 있은 후에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어디로 이끄시고, 무엇으로 채우시고, 무엇을 행하라고 명하시더라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곧 “오직 믿음” 으로 교정된 개신교의 영성의 진수는 비움과 순종, 곧 자기포기라고 규정될 수 있다. 이 기다림의 훈련이 실천에 있어 가장 고통스럽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요구된다. 이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응답을 받았는데, 심중에 무엇인가 느끼는 것이 있었는데, 작은 감동이 있었고, 감사의 고백이 있었는데, 아직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질나고 사람으로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 밖을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속에 하나님의 품성을 이루어가시고, 그 품성이 참으로 영글었는지를 확인시켜주시기 위해 반대의 환경들을 부단히 만나도록 이끌어 가신다. 여기서 바깥을 보면 환경을 점점 열악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해서 지친다. 하지만 속을 보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어떤 때는 인내를, 어떤 경우에는 온유를, 성령께서 열매 맺게 일하고 계신다. 이것이 보이면 환경을 오히려 즐길 수 있게 된다. 이 환경 속에서 영적 열매를 무르익어간다. 무르익기 위해서는 카이로스의 시간의 도래뿐만이 아니라 크로노스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거룩하고 완전하게 변화시키시도록 일하게 개방해야 한다.

다섯 째, 때로 내가 원치 않던 길로 이끄시어도, 나의 원함과 기호를 먼저 드렸기에 묵묵히 따라야 한다. 이와 같은 돌발변수와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음도 알려주어야 한다. 내 안에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하기에 두려움 없이 따를 수 있다. 난관이 깊을수록 장애가 클수록 아버지에의 의존과 인도하심을 느끼는 감각이 더욱 예민해진다. 생활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24시간의 영적 교제는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크기를 점점 예민하게 인지하게 도와준다.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만큼, 그로인한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인생관 전체가 서서히 변화해 간다.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는 만큼 행동양식과 습관도 바뀌게 된다. 스스로 놀란다. 아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지? 두려움도 불안도 엷어진다. 나의 기호가 포기되어지는 순간,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나를 바라보고, 내 앞 길을 바라보게 된다.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전에 좋던 것들이 더 이상 좋지 않다. 그리도 놓지 못하던 것들을 눈길도 주지 않는 자신을 보게 된다. 점점 주위 사람들의 가치관과 달라지고, 그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에 대해 상대적으로 초연해진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이 중용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과 성경 속에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빛이 더욱 소중한 지침이 된다. 때로 외로울 수도 있지만 이미 쌓아놓은 영적 동지들과 멘토에 의해 그 외로움의 시간을 잘 넘기게 된다. 문제는 이때의 변화가 자신에게만 머물거나 자기 충족에 머물면 영적 교만이나 영적 희열만 추구하는데 멈추게 된다. 스스로 고립하게 되고, 세상 속으로 자신을 내주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고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 안에서 조금씩 화육되면서, 남을 경계하고 내 것을 챙기던 습관도 희미해진다. 내 중심이 희미해지고, 내 경계에 대한 고집도 엷어진다. 점점 아버지의 품성을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게 된다. 바로 내 가족들에게, 내 고객들에게 그리 대하게 된다. 그 경계가 넓혀져서, 다른 인종에게도, 다른 사물과 자연에게도 조금씩 더 넉넉해진다. 조금 더 남과 자연을 존경하고 경외하게 된다. 사회적 성화를 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고 이루어가는 일에 자신을 내어놓기 시작한다. 이것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웨슬리의 말로는, “은총의 수단”을 활용하는 일이다. 여기에 이르기 전에 하는 선행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화하는 은총의 수단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진정 남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의 자기 포기에 참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하셨던 일을 이 땅에서 지금 내가 재현하는 것이다. 진솔한 마음으로 성령의 도구가 되어 어둡고 낮은 세상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독거노인, 고아원, 양로원, 부랑자 보호소, 등을 찾아가 빨래해주고 청소하는 가장 낮고 비천한 일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주고, 겨울철 연탄과 쌀을 나누어주고, 반지하 단칸방을 찾아가서 도배지를 갈아주고, 청소를 함께 한다. 온 천하가 내 형제 자매라는 것을 몸에 익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두운 곳에서 작은 불꽃을 지피다보면 그 불길이 확산된다. 이 불길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가장 아름답게 비춰주는 불길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으로 펼쳐나가고, 불길을 옮겨줄 때, 자기 확장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자기 구원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고 닮아가게 된다. 가난해도, 스펙을 쌓아놓지 못했어도,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이들을 도울 때, 성령이 함께 하시며, 내 삶의 의미와 내 존재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일곱 째, 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부족과 작음에 수없이 부딪히고, 자신을 한계를 알게 된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하신 것을 알기에 입에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는다. 함께 하심으로 인도하시고 극복시키시고, 용서와 칭찬을 끊이지 않으심을 느끼기에, 내가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음을 안다. 어쩌면 나는 이미 포기하였었다. 그런데 포기한 내 손과 발을 사용하셔서,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드러나게 해주신다. 그래서 겸손을 몸에 새기게 된다. 그나마 써주심에 감사를 올리게 한다. 그리스도가 이 시간에도 중보자로서 옆에서 거들고 계시고 앞서서 십자가로 이끌어 가심을 느낀다. 자신이 작은 그리스도로 쓰이고, 작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 자리에 이르면 절망도 미움도 사라진다. 좌절도 포기도 사라진다. 굳이 내가 앞서서 직장과 결혼 그리고 자녀 갖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포기할 필요도, 굳이 붙들어 고집할 이유도 없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값진 일이 무엇인지를 매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힘에 부치고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무력 앞에 다시 서지만, 이제는 안다! 바로 그런 나를 이끌어 가시는 손길이 내 심장 안에 있음을 안다. 하나님과 점점 하나 되어 가는 자신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아버지의 손길로 사람을 대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어떤 환경이나 사건도, 어떤 사람의 성취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기에 두려워할 일도, 서두를 일도 없다. 그저 매 순간이 놀람과 감격의 연속이다. 매 순간이 은총의 열매이며, 은총으로 살아가는 삶을 즐기기 시작한다. 빈손도 두렵지 않고, 친구들보다 천천히 걸어가도 불안하지 않다. 가야할 종점을 알고, 가는 길을 알고, 가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꿈을 꾸며 따라가는 길이다. 세상을 포기하고 하늘을 얻은 자들만이 누리는 이 땅 위에서의 축복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것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땅에서 성취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안개처럼 걷어진다. 내려놓고 포기함으로써 얻는 하늘나라이다.

10. 나가면서 - 웨슬리의 위로: 포기하라! 그러나 좌절하거나 낙심하진 말라! 

당당하게 사는 길이 보인다. 가진 것이 없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어차피 버려할 것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성공이 아니다. 어차피 버려야할 쓰레기를 많이 모은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이것을 자랑하고, 이것을 모으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한다면 정신이상이다. 웨슬리가 말한 대로, 생활필수품 외에는 더 가지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사치와 향락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만 악의 뿌리이다. 웨슬리는 오락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다. 돈을 벌되 자신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벌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남을 해치거나 해롭게 하여 돈을 벌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물론 상속을 물려주거나 교묘하게 세금을 떼어먹는 것 역시 악이다. “호화로운 저택에서 호의호식하며, 온갖 향락에 탐닉하는 생활도 우리의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고 손상시킬 뿐”이며, “신앙생활에 장애물”이 된다. “금전을 선용하지 못할 때 이것은 다만 금전의 낭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러 가지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어 우리의 인격과 신앙과 생활에 부패와 부조리를 불러오며 고상한 복음 진리를 따를 데 큰 차질을 가져온다. 하였다.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금전으로 우리 자신에게 해독을 끼칠 독약을 사는 것과 같다” 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웨슬리의 눈으로 보면 호의호식과 사치, 향락은 “성공의 상징”이 아니라 “독약[을 마시는 일]”이다. 죽는 길이다. 이렇게 악하게 살면 구원받지 못한다. 이것을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도 - 비록 전문가적인 안목은 부족했지만 - 그리고 사치와 특권층의 방종에 대해서도 고발했다. 귀족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 마차를 타고 다니고, 마차를 끄는 말의 수가 늘어나자, 말을 먹이느라 귀리 값이 네 배나 뛰었다고 한다. 농부들은 말을 키우기 위해 염소와 양을 키우지 않게 되었다. 옥수수와 귀리 값이 뛰고, 양고기나 염소 고기는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가난한 자들의 양식이 모자라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의 뿌리에 사치와 독점, 그리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싶은 인간 욕망이 숨어있음을 250년 전에 지적하였다. 그의 날카로운 고발의 끝은 성화 받지 못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심판이 이어진다. 아무리 많이 모으고 호화롭게 살아도 성화를 이루지 못한 인간이며,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인간들이다. 이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웨슬리는 평생을 근면하게 검소하게 살았다. 목표 설정 자체가 현실과 현실의 안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했다고 해서 주눅이 들거나 인생을 원망하거나 열심히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자신의 성화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라는 신앙적 뿌리와 맞닿아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재물관은 독특했다. “첫째로 할 수 있는 대로 [정당하게] 많이 벌고, 둘째로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고, 그리고 나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주십시오!” 자녀에게 주라는 말이 아니다. 자녀들에게는 생필품만 공급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다. 다 나누고 나면 가난해진다.

해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느리게 가면 된다. 포기할 일이 아니다. 좌절하거나 낙심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버려야 하는 것들이, 그것들을 포기함으로써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품성을 자신의 심장과 가정과 일터에 심으면 된다. 거룩한 교환을 거듭하면 된다. 땅을 주고 하늘을 얻으면 된다.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 그리고 소유를 주고, 하늘의 위로와 진리와 평강을 얻으면 된다.

현실을 더 많이 포기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포기할수록 자신의 심장과 일터 속에 거룩이 드러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음이 점점 자연스러워지면, 거룩은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다. 이 거룩을 선물하기 위해 성자 하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생의 역경을 거쳐 십자가 너머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그가 가신 길을 그 누구나 가슴을 열고 세속과 “옛 사람”(인성)을 포기한 자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 지혜로 깨닫게 하시고, 눈을 열어 따라가며, 힘을 주어 끝내 완성에 도달하게 이끄신다. 그 길 끝에 작은 그리스도로 화육한 삼포세대의 청년들이 보인다. 패배한 무리들이 아니라 진정 거룩한 성도들이다. 세속에 대해서는 포기했으나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소외된 자들을 위해 자신의 작은 힘과 소유를 아낌없이 나누고 베푸는 청년들이다. 하늘의 소리를 듣고, 말씀에 늘 부딪히기에, 말씀을 화육하며 살 수밖에 없는 맑은 청년들이다. 나보다 더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진해서 나눌 수밖에 없는 거룩한 요청에 “예” 라고 대답한 이들이다. 비록 약하여, 가다가 멈추고, 하다가 그만두었지만, 성령께서 친히 끈질기게 인도하셔서 손을 피고 가슴을 벌려 어두운 곳에서 빛의 삶을 끝까지 살아낸 청년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모습을 한 이들이 같은 길을 주님과 더불어 가고 있음에 결코 외롭지 않은 청년들이다. 더 이상 왕따를 당하지도, 남을 왕따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함께 더불어 행하고 서로 격려하며, 하나보다 둘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 청년들이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내 잔치에 함께 참여하라!” 주님의 크신 위로가 매일 아침마다, 가정과 일터에서,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매일 더 버리는 일만 남았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내 유익만을 구하지 않는 “포기의 영성”을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묵묵히 따라가면 된다. 그 길 끝에, 가는 노정에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