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30대에게 쓰는 편지 - 사랑과 결혼편 

벗이여,

30대로 한국에서 산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30대로 살고 있으니 모를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피부가 그것을 외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부모님의 은덕과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인생의 3분의 1을 여러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런 제 경험상으로 볼 때에 지구촌에서 한국처럼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곳도 드문 듯합니다. 이때 외모란 생김새 차원이 아니라 대개 숫자로 측량되는 외적 조건을 말합니다. 귀가 닳도록 들으셨겠지만,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무슨 직장인가, 한 달 월급은 어느 정도인가, 모아 둔 것이 있는가 등등으로 사람의 값이 매겨집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30대에 진입하여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형성되어 온 것입니다. 그럼 우리를 제조한 한국 공장은 어떤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찍혀 나왔는지 살펴보면 무슨 공정들이 있었는지 얼추 헤아려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거의 분명한 것은 30대 제품으로서 우리 안에는 ‘숫자가 높으면 행복을 얻기에 더 유리하다’고 쓰인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 공장들을 방문해본 저로서는 이게 좀 이상한 것이, 어떻게 나의 행복이 남들보다 숫자가 높음에 달려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나저나, 삶이 좀 재미있으십니까? 한국에서 30대로 의미 있고 보람되게 지내고 계십니까? ‘행복하기 위하여 숫자경쟁에서 승리하라’는 명령이 입력된 우리들의 정신모터는 현재의 만족에 둔감한 상태로 정상만을 쳐다보며 분주히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인간입니다. 가장 비인간적인 시대였던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의 때, 그때에도 인간은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위하여 무엇이 참으로 인간다운 지를 찾고 추구함이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증언처럼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고(요일4:8), 그분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면(창1:26~27), 사람의 가장 사람다운 특징이란 바로 사랑함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합니다.

물론 누구는 “모두들 사랑을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부패한 귀결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랑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랑이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본래적 요소란 보여줌이겠지요.

사랑! 우리는 그걸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외적 조건에 걸려있지 않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자꾸 외형을 따지는 것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음과 세속적 욕망이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결국 그런 인생을 살지 않을까요? 사람이 외적 조건을 타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을 조건으로 값 매기는 시선 자체가 그 자신의 위태로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며칠 전 아버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신문사 논설위원들과 점심 먹으며 들은 얘기다. 70세의 한 위원이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는데 친구 15명이 나왔더래. 그 가운데 40살 넘은 노처녀 딸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5명이나 되었다는 거야. 높은 스펙을 좇다가 그리 되었다는 거지.”

한국에서 생산된 우리의 강점은 목표 달성이 빠르고 투철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최적화입니다. 하지만 약점은 혹 목표를 달성해도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목표를 이루는 경우 또한 사실상 드물기에, 목표 달성의 강점이란 것도 결국 경쟁을 가열시키는 악영향이 더 큰 것이었고, 이는 다시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하여 우리는 마취제를 맞아야 했습니다. 마취 기운이 퍼져나가면서 나타나는 특징들 중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목표를 위해 삶의 어떤 주제들을 눈 밖으로 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결혼이 포함되곤 했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혹은 좀 편하게 살아보겠다고 사랑과 결혼을 희생시켰던 것이지요.

더 높은 조건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켜 왔다면 혹 경쟁에서 승리하여 외제차까지 떵떵 끌고 다녀도 어딘가 슬픔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남들이 말해줄 것도 없이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니, 남들은 말한 것도 없는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미루어버릴 정도의 스펙 쌓기, 승진 노력과 일중독 또는 명품 추구나 자기 치장이란 사실, 행복하지 않은 기분을 걷어내기 위한 자기 최면이었다는 사실을 자기의 양심이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벗이여, 우리도 알게 모르게 ‘이기기 위하여’ 삶의 중요한 주제들을 희생시켜 오지 않았습니까? 혹은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소박한 명분 뒤로 숨어 사랑과 결혼으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겨우’ 30대란 점입니다. 참된 행복을 찾기에 아직 시간이 충분합니다. 또한 외적 조건을 갖추어 행복해지려 하는 시도가 지금도 계속되지만 여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니 인생을 아끼십시다. 생각 없이 남들을 따라가지 말고, 귀찮다며 어리석은 일들을 그대로 반복하지도 마십시다. 한 번의 인생에서 사랑을 낭비하는 것처럼 손해는 없으리니.

그러나 사랑!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 조금 더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 한국 공장은 우리를 숫자로 값 매길지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사람을 값 매기십시다. 그렇게 하여 한국 공장에 반란을 일으키십시다. 폭삭폭삭 먼지 나고 쩍쩍 갈라진 이 삭막한 땅에, 그래도 피어오르는 꽃과 같이 따뜻한 생명적 반란을 꾀하십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꾸준히 저항해야 합니다. 숫자보다 사람이라고, 스펙보다 사랑이라고. 끈질기게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싸움의 대열에 함께 서 전진하실 새날의 반군들을 모집하는 바입니다.

시우(是友)

정재헌 저, <30대가 30대에게 쓰는 편지 : 사랑과 결혼편>(주의 것, 201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