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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님의 문자주의
박창진  |  5016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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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06일 (화) 20:02:21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6일 (화) 21:56:48 [조회수 : 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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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미래교회포럼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에 참여하였다. 박영돈 교수님(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과 김세윤 교수님(풀러신학교 신약학)이 주 발제자였다.

박 교수님은 한국교회에서 얘기되는 칭의론이 루터의 것이라며 기독교강요에서 칼뱅이 펼친 칭의론을 얘기했다. 본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참 좋은 강의였다.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으니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김 교수님은 본문을 중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칭의론을 펼쳤다. 이 또한 참 좋은 강의였다. 그분의 주장을 유보적 칭의론이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얼마나 성경 본문에 대해 무지한가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님은 질의 응답 때에 한 성구를 언급했다. 그 구절을 김 교수님은 여러차례 언급했다. 고전 6:9-11이다. 이 구절은 8절부터 읽어야 한다. "너희가 불의를 행하는구나." 여기서 너희는 두분 모두 언급한 1:2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하여지고 성도라고 칭해진 이들이다. 그들에게 "불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은 알지 못하느냐"고 한다. 이전부터 그러한 가르침이 있었다는 말이다. 불의의 항목들을 언급한다.

그리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11절)고 했다. 너희 중에 이전에 언급된 불의를 행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주님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말이다. 1:2의 진술이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앞 절과 연결시키면 그러한 상태에서 계속 불의를 행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님은 이대로 얘기했다. 박 교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원래부터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앞 뒤의 그 어떤 성구에서도 지지받지 못하는 주장이다.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칭함받는 너희 중에서 불의를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진술인데, 어떻게 애초에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가 있단 말인가? 교리에 따라 본문을 읽는 전형적인 예이다. 칼빈주의 5대교리의 성도의 견인을 따르는 이는 벗어날 수 없는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싶다.

김 교수님은 지속적으로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얘기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경 저자들의 말이라면서. 성경엔 그런 성구가 한 둘이 아니다. 다만 적은 수라고 하였다. 자기 고집을 앞세워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산 신자는 은혜에서 탈락한다는 것이다.

강의가 막바지에 이르러 김 교수님은 직접적으로 성도의 견인을 다룬다. 그러면서 그것이 성경의 진술이란다. 성경은 성도의 견인과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함께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긴장을 얘기하면서. 그리곤 고전 3:11~15을 설명한다. 불 가운데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신자는 소명이 주어진 이들인데, 부합함이 미흡하도록 불 가운데 구원은 얻는다는 것이다. 강의가 끝났다. 논찬자들은 좋아한다. 강의를 들은 이들도 거의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멘붕에 빠졌다. 이게 뭥미?

성도의 견인이란 뭔가? 신자가 참음 또는 견딤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신자 자신의 능력으로?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이들이라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견뎌 반드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곧 은혜에서 탈락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그렇게 여러차례 말하고서는 은혜에서 탈락할 수 없다는 말인 성도의 견인도 성경의 가르치는 바라니... 성경이 내용적으로 모순을 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물었다. 확고부동하다. 혹시나 성도의 견인이 무슨 뜻인 지를 모르시나 싶어 물어보니 아니다. 그것이 은혜에서 탈락할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은 알고 계신다. 성경은 그걸 말씀하고 있단다. 고전 1:7~8을 언급한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구절의 문자는 진리이다. 그 의미는 뭔가? 성도의 견인을 뜻하는가? 거듭난 모든 신자에게 예외없이 적용되어 영원한 구원을 모두 받게 된다는 의미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 문자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인데, 그 내용은 신자 안에서 육체의 욕심을 거스르는 성령의 역사이다. 유일한 방편이다. 다른 방편은 없다. 그것은 은혜이기도 하다.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와는 달리 거듭난 이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다. 그 은혜 안에서 신자는 주 예수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하게 된다.

문제는 그 은혜가 기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은혜에 대해 신자는 자기 의지로 반응을 한다. 은혜를 바르게 받거나 헛되이 받거나. 후자는 육체의 욕심으로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 결과 맘몬 우상숭배, 육체의 일들, 윤리적 범죄의 지속 등이 있게 된다. 그렇게 살면 육체를 위하여 심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 영생과 대조되는 것이다. 영원한 멸망이다.

문자주의. 성구의 문자에 담긴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지 않고 문자대로 이해하고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의미를 파악한 결과 문자대로라면 문제가 안 되지만 문자대로가 아닌 경우엔 문제가 된다. 오늘날 교회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고전 3:11~15도 김 교수님의 주장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뒤에 내가 질문하고 그에 대해 김 교수님이 인정했던 바와 같이. 생중계되었으니 확인할 수 있다.

김세윤 교수님, 세계적인 신학자인 그분의 문자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람이 완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한 예 정도로 가볍게 넘기면 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세윤, 오늘 강의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섰습니다. 유보적 칭의론, 구원의 탈락가능성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예정과 성령 그리고 성도의 견인을 강조했습니다. 12.12. 지나면 더 물러 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김 교수님 비판의 최일선에 서서 열심히 뛰고 계신 최덕성 교수님의 글이다.

이런 현실을 떠나서 나는 아프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밝히고 그 가르침 앞에 교회가 서고 그 가르침 위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는 사실 때문에. 성도의 견인론자들은 너무 좋고 즐겁겠지만 말이다. 아, 이 지난한 싸움은 내 생애 결코 끝낼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남은 생애 동안 지금과 같이 살아야만 하고. 주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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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223.39.130.115)
2016-12-07 07:30:15
누구든지 성전을 더럽히면
불 가운데 얻는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고전 3:15을 김교수님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생각한다. 그 구절은 그리스도파,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라는 분파주의에 빠진 상태에 대한 얘기이다. 그런 상태를 만든 고린도교회의 말씀사역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결과이다.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분파주의에 빠진 그들이 돌이키도록 하기 위해 이 얘기를 했다. 돌이켰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돌이키기는 커녕 한단계 더 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분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 예수의 한 몸인 교회를 인간적 생각을 앞세워 찢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17절에서 얘기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은 누구든지 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누구든지'는 불 가운데 구원을 얻는다고 한 사람들이 해당된다. 그들은 분명히 거듭난 이들인데, 교회를 찢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면 멸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성도의 견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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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3
이중성 (72.38.0.208)
2016-12-07 03:48:28
님은 이런데서 부치는게 아닙니다.
그냥 김세윤 이렇게 사용하세요. 무슨 님이라고 합니까?
그 분한테 밥줄이 달렸습니까? 아니면 교수 임용권이 있습니까?
성도 알기는 우습게 알아도, 두 분 교수 한테니는 이런곳에서도
님짜 꼭 써대는 것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아니면 아예 각주로
제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교수님들이라서 님짜를 부쳤습니다.
이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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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박창진 (223.39.130.115)
2016-12-07 07:31:20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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