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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관행으로 썩어가는 교회들대개의 관행들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비성경적이며 인본주의적인 것이 대부분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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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20일 (목) 00:00:00 [조회수 : 6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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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희망(www.gospel-hope )에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 내용이 좋아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분으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여러 글들은 無順입니다.(당당뉴스 운영자)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관행들 가운데 유익한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행들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비성경적이며 인본주의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진리문제가 아닌 이상 교회의 화목을 위해서 그 정도 "관행" 은 그냥 받아넘기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분들도 있지만 "관행"이 심해지면 "관행범-상습범" 을 만드는 일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관행 뒤에는 반드시 기득권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국의 친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지는 서울에서 비교적 소득수준이 낮은 서민들이 사는 구로동에 위치한 어떤 교회에 다니는데, 권사로 피택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권사피택의 감사헌금으로 2백만원 이상을 내라는 교회의 관행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시키는 것은 아니고 개척부터 지금까지 그런 "관행" 이 있었다는 것이다.

친지는 200만원이라는 돈자체보다 평생 본인의 가슴에 돈으로 권사가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자책감 때문에 고민하다 전화가 오게 된 것이다. 반농담으로 피택장로는 그 교회관행으로 얼마를 바쳐야 하느냐고 물으니 500만원 이상이라고 하였다. 서울에서 소득수준이 낮은 구로동이 그 정도인데 잘사는 강남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갔다.

이민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에서 이민교회로서는 대형교회인 Q장로교회는 장로피택이 되면 교회관행상 3-4만달러(3-4천만원) 정도는 특별감사헌금으로 바쳐야 한다고 한다. 조금 세련되고 교양이 있어 보이는 담임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는 피택시에 특별감사헌금을 내지말라고 해 놓고서는 숨겨진 교회관행상 건축헌금이나 선교헌금을 내지 않으면 안되는 교묘한 분위기를 조장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교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민교회는 피택받은 직분자들에게 일체의 피택 특별감사헌금이나 음식대접을 하지 않도록 하고 교회가 도리어 앞으로 수고하게 될테니 거꾸로 선물하는 피택자들에게 주는 특이한 교회도 있다고 하지만 아마 이민교회의 관행에 벗어난 교회로 지목을 받게 된다.

절기만 되면 장로, 권사, 안수집사취임식이라는 대문짝 만한 광고가 이민신문에 실리는 것을 볼 때마다 "완전히 엽기적인 코메디"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격려차원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청지기-머슴 취임식" 을 동네방네 나팔까지 불고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해야 할 어떤 상식적인 이유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엽기적인 코메디쇼를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뿌리 깊은 교회관행" 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 관행 때문에 우스운 꼴을 당한다?

이러한 교회관행이 직분자에 관련된 일 외에도 교회내부를 가만히 보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방도나 길이 없어면 아예 상습적으로 "교회관행으로 하자" 라는 말로 피해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한마디로 교회관행은 성경에도 교단법에도 내규정관에도 없는 교회내 기득권들이 자기 편의상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갖다 붙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립을 하고 예산의 규모가 있게 되면 담임목사에 대한 팩케이지 사례에 대한 교회 관행은 눈뜨고 볼 수 없는 거의 추태에 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담임목사사례규정이 교단법, 노회규정, 또는 교회 내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내 아첨하고 직분자들이 자기 돈이 아니라는 이유로 목회자에게 아부 하기 위한 별 희한한 항목의 사례가 교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상류층이 산다는 롱아일랜드 J교회는 담임목사의 자녀에게 자녀교육비로 연간 9천-2만달러(2천만원)이 지급되었는데 대학, 대학원까지 근 9년 가깝게 "교회관행"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공부를 조금만 하면 스칼라쉽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돌머리가 아닌 이상 대학원을 자비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미국내 대학이 1천개가 넘는데 공부를 조금만 열심히 하고 학점만 관리를 잘하여도 1천개 대학 가운데 고르면 얼마던지 스칼라쉽을 받고 할 수 있도록 미국의 시스템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목회자의 자녀들이 어느 정도 돌머리인지는 몰라도 대학원과정까지 연간 2만달러씩 지급을 받았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그리고 더 우스운 것은 교회의 일부 상식적인 사람들이 항의를 하자 예산위원회에서 자녀교육비->목회자 지원비 (목회활동비와는 다름) 라는 항목을 변경하여 지급하는 일이 벌어져서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얄팍한 항목변경 때문에 교인들이 항의를 하자 그 교회의 담임목사 왈 "나는 스시맨보다 더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는 발언으로 말미암아 기름을 불을 지르는 격이 된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J교회의 K목사가 혜택을 받는 팩케이지 사례가 연간 15만달러(1억 5천만원정도) 정도가 되었다. 자기 손에 들어오는 현금이 8-9만달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미국의 직장인의 경우 이것 저것 떼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연봉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각종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을 연봉으로 계산하는 것이 상식인데, 본인의 손에 들어오는 현금이 얼마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스시맨보다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는 망언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희한한 교회관행"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도 아들도 스포일되어서 천치가 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임ㅆ다.

한국에서 불륜과 횡령과 배임으로 화제가 되었던 K교회의 K목사가 대법원에까지 항소하였던 내용을 읽어보면 결국 "교회관행상" 을 들고 나온 것이다. 즉 "교회=K목사" 라는 것을 들고 나와서 무죄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결국 K목사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라는 형이 확정되었지만, 한국교회나 이민교회나 할 것 없이 "교회관행" 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과 교인들을 상습적으로 속이다가 결국 사회법에 걸려서 큰 개망신을 당하는 일이 지금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 관행을 만들고 있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런 "교회를 망하게 하는 관행"을 만들었으며, 누가 이런 "교회관행"을 주도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분명히 주범들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독재하고 싶어하는 담임 목회자와 거기에 아부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직분자들(주로 장로들)이 바로 성경에도 없고, 교단법과 노회법에도 없으며 상식적인 교회내규에도 없는 "희한한 교회관행" 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 편의대로 교회를 움직이고 싶기 때문에 교회관행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교회관행들" 이 얼마나 힘이 쎈지 모른다.

장로와 권사와 안수집사가 피택을 받으면 교회관행상 지금까지 "이 정도의 특별 헌금을 하였다" 고 교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피택을 반납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것이다. 아마 세상말로 "또라이" 가 아닌 이상 나는 그런 헌금을 낼 수 없다면서 피택을 반납하는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그냥 좋게 해석하려고 무진장 애를 써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사회생활 속에 지독하게 많은 "관행" 이 있었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학부형들이 선생들에게 주는 "촌지" 도 하나의 "관행" 이다. 다른 학부모들은 담임에게 10만원, 20만원씩 "촌지"를 주는데 한 푼도 주지 않고 얼굴을 대하면서 다니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요즈음에는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기사를 써 주고서 기사로 인하여 이름이 올라간 사람이 "촌지" 를 기자에게 주는 것은 오랜 전통이자 "숨어있는 더러운 언론 플레이의 관행" 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이건 이민교회이건 중대형교회의 부교역자들의 사례는 담임목사에 비하여 대단히 박하다. 아침부터 죽도록 심방하고 교구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결국 포켓트에 찔러주는 "사랑의 촌지"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기들은 밖에서 개기름이 철철 넘치도록 처먹고 담임목사에게 아부하고 아첨하면서 부교역자들은 거지처럼 살도록 내버려두고 교인들이 교회관행으로 포켓트에 찔러주는 "그 사랑의 촌지" 로 빌어먹도록 한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촌지가 액수가 많아지고 대가성으로 발전하다 보니 "뇌물" 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법조브로커 문제로 판사들이 지독하게 쪽팔리는(?) 일이 드너났는데 "일종의 관행" 때문이다. 법조계에서 한 그릇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변호사로 개업하면 "관행상" 한그릇 먹을 수 있도록 각종 편의를 제공받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둘 다 너무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하였지난 "묵어 빠진 결혼 관행" 때문에 서로 사이가 틀어져 이혼하거나 깊은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이민교회에서 요즈음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과거에는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 최소한 1만 달러 (1천만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교회관행" 이라는 말 한마디에 "돈내라" 고 하면 아무리 똘똘한 사람도 바보 멍청이가 되어서 호주머니를 열 수 밖에 없는 이상야릇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교회관행에 미치면 본전만 생각한다?

이렇게 교회관행에 따라 특별헌금을 많이 낸 직분자일수록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결국 "본전생각" 을 가질 것이다. 내가 이 정도로 교회에 공헌을 많이 하였는데 하면서 끊임없이 "본전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서 신참이 장로, 집사, 권사로 피택을 받으면 "교회관행" 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고 담임목사가 별도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아서 기면서 호주머니를 열도록 권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본전생각" 이 1회성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교회내에서 교묘하게 마음에 맞는 패거리에 들어가거나 기득권세력 속에 빨려들어가 어느 순간 특권 계급의식을 가진 "기득권층" 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이 되다보니 마치 세상에서 여당 야당하는 식으로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의 목회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거나 딴지를 거는 왕족 노릇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직분자들 사이에 패싸움을 벌이는 곳도 부지기수이다.

어떤 이민교회는 아예 상습적으로 교회 이름으로 불법비자나 불법 영주권을 해주고 있었다. 비자없고 영주권이 없는 교인들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출발하였던 것이 나중에 이상하고 괴기하며 엽기적인 "교회관행"이 생겨나겠다. 무엇이냐 하면 비공식적으로 불법으로 비자와 영주권을 취득하거나 신청한 사람들 때문에 정작 비자나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교회직원과 교역자들은 받지 못하는 "교회관행" 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교회꼴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과거에 불법을 저지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뒷거래를 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서 불법을 저리는 사람들을 감싸려고, 한편 억울하게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쫒겨나가는 교역자들에 대하여 동정하는 사람들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이 일어나 교회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교회이름으로 불법 비자나 불법 영주권을 신청하려고 하면 가짜 재직증명서, 가짜 세금보고서, 가짜 월급명세서, 그리고 진짜 교회재정보고서, 진짜 교단소속증명서 등이 이민국에 제출되어져야 한다. 미국은 법원에서의 위증과 미정부기관에 제출한 위조서류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격한 법이 적용된다.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가짜 재직증명서와 가짜 세금보고서와 가짜 월급명세서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그런데 이민교회 내에 "이민교회의 관행" 이라는 이름으로 음성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담임목사와 재정부장의 은혜(?)로 이민국에 가짜와 진짜 서류를 제출한 신청자들은 그 때부터 완전히 현대판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주권이 나올 때까지 교회에서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하여도, 목사가 엉터리라도, 교인들과 싸움을 하여도 울면서 그 곳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담임목사가 선교를 나가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도 집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정신적, 환경적인 노예의 수준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 비자나 영주권을 신청하기 보다는 교회를 이용하는 것이 돈도 적게 들고 훨씬 편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강남에 기러기 아빠를 둔채 자녀들과 미국에 건너온 여성들은 고급승용차, 최고급주택에 살면서 교회를 통해서 비자와 영주권을 신청하기도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이민자들로 가득찬 교회 속에 화려한 유한부인이 와서 휘젓고 다니니 교회분위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돈을 팍팍 사용하니 담임목사나 사모는 홀까닥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부교역자들이 받아야 할 영주권신청을 대신 신청하고서는 눈 지긋이 감고서 '나는 모르쇠" 하는 파렴치한 사람도 있는 것이 이민교회의 실상인 것이다. 이것은 가히 엽기적인 수준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던 사람들이 도저히 교회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언론에 공개하고 관련자들을 당국(검찰, 이민국)에 신고를 하려고 하니 교회내 어른들이나 교계의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민교회의 관행이니 어떻게 하겠느냐?" 는 것이었다고 한다.

진짜가 가짜가 되어야 하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것을 대단히 "엽기적인 이민교회의 관행" 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엽기적인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행을 박살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유대땅에 오셨을 때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알 것이다.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유대인디아스포라는 줄잡아 100만명은 될 것이다. 그들은 제사드릴 동물을 들고 올 수 없다. 그래서 "관행" 적으로 돈만 가지고 와서 예루살렘성전에서 환전한 후 실제는 "종교권력자들" 이 허용하에서 제물(그나마 그 제물도 허약하고 병든 것이 많음)을 사서 바치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당시에 성전세를 한 명당 10달러만 받아도 1천만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벌었던 것이다. 헤롯왕이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해주었던 것도 바로 "꿩먹고 알먹기" 라는 철저한 계산하에서 하였을 것이다. 그런 계산에 달라 붙어서 "온갖 종교관행" 을 만들어서 백성들의 피를 뽑아서 말렸던 것이다.

바리새인들, 사두개파들, 제사장들, 율법사들,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걸고 넘어졌던 것이 "관행" 에 따라 왜 하지 않느냐는 터집이었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거나, 죄인들과 함께 어울린다,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는 등 온갖 "종교관행" 에 예수가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종교인들이 판단하고서 온 동네에 나팔을 불고 다녔던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제자들이라고는 어부들, 세리, 그리고 친구들로 지내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창녀출신에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이방인과도 말을 나누는 일까지 예수님이 마음대로 하였으니 종교인들의은 "종교관행" 을 깨어버리는 데에 대한 "무서운 분노와 살기"를 가지고 도전하였던 것이다. 급기야 종교인들은 "너는 귀신이 들렸으며 귀신의 힘으로 이적을 행한다" 는 막말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예수님은 설득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화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아, 평토장한 무덤같은 자들아.... 네 아비는 마귀니라" 는 말씀까지 예수님은 서슴없이 던지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은 "인간이 자기 편의대로 만들고 세웠던 모든 종교적인 관행과 관례"를 여지없이 초월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중에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주신 것은 지금까지 내려온 관행을 철저하게 깨트리신 것이었다.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다는 것은 관행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 였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모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들이 만들었던 신에 대한 관행과 의식" 을 박살을 내는 대사건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메시아가 저렇게도 출신배경이 불분명하고, 저렇게도 배우지 못하였고, 저렇게도 촌동네에서 나올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기들의 관행대로 생각하면 "예수는 절대로 메시아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 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니 할 수 없다는 정도가 아닌 살인강도나 미친놈 취급을 하면서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침뱉고 조롱하고 결국은 십자가 죽음으로 내어버렸던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은 태어나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고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관행을 완전히 깨어버린 대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손으로 벌거벗겨진채 죽어야 하였던 그 십자가, 완전히 죽은 후 사흘만에 부활한 그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종교적인 관행과 의식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 행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된 관행을 완전히 깨트려 버리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그 예수님, 부활의 소망을 주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의 위기는 무엇인가?

과거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권력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던 것과 같이 오늘날 이 시대에도 십자가의 피값을 치루고 산 어린 소자들-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서 "복음과 구원이 없는 종교관행" 속으로 밀어 넣고서 괴롭히고, 발가벗겨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물고 흔드는 종교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종교권력자들은 교회건물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기가 막히게 속이면서 교인들의 호주머니와 생명에너지를 다 쏱다 붓게 만들었다. 그래서 거대한 건물을 지어 놓고서는 그 속에서 담임목사는 왕노릇이나 하고, 직분자들은 특권의식을 가진 기득권층이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어린 소자들" 을 패대기 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난 10년간 마이너스 성장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정통교리를 가진 모든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아버지의 우편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예수의 영-성령으로 우리 속에 내주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성전 삼고 계신다. 그 부름받아 세워진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교회이다. 그런데 건물과 조직을 거룩한 성전이라고 속이는 "관행" 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 세뇌되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관행은 무엇인가? 담임목사가 하나님의 위임통치의 대리왕이 되어 있고, 장로들은 그 신하가 되어 있으며 안수집사들은 참모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교회(?)는 크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난 이런 조직은 배신하면 죽는다는 두려움으로 연결된 조직폭력배와 같은 모임이지 도저히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없는 조직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인데, 왕노릇하고, 주인행세하고, 오너폼을 잡으며, 아들에게 세습을 할 수 있는다는 말인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놈의 교회관행" 떄문에 장로들이 집사들이 카리스마적인 담임목사의 추천과 결정 앞에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당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안되니 깡패들을 시켜서 세습한 아들을 제거해달라고 부탁해 놓고서 미국으로 도망쳐 왔다가 결국 잡혀가는 일까지 일어나는 엽기적인 스토리까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교회인가? 이것이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의 역사로 움직이는 성령공동체인가? 절대 아닐 것이다. 바로 사느냐 죽느냐는 조폭적인 관행과 의식이 교회를 주름잡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건물과 조직 안에서 야심과 야망과 탐욕을 감춘 채 종교의 관행을 휘두르는 자들의 머리통(의식통) 때문에 모든 전도의 문이 막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먼저 가슴을 열고 정직하게 도전적인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내가 섬기는 교회 안에 혹시 돈으로 매관매직하는 썩어빠진 종교적 관행은 없는가?
내가 섬기는 교회 안에 혹시 담임목사가 종교적인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독재를 하지 않는가?
내가 섬기는 교회 안에서 혹시 장로, 안수집사가 종교적인 관행으로 비밀주의를 자행하고 뒷거래를 하는 것은 없는가?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지금까지 종교적인 관행 앞에 "예 할 수 있는 때에 예하지 못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지 못한 눌려 있는 상태" 는 없는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종교를 만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일개 종교단체의 교주가 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섭리하시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며, 성령의 역사와 은혜와 긍휼과 사랑으로 자기 백성들을 부르시고 세우시며 그 백성들을 통하여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무슨 종교 관행이 필요한가? 만약 꼭 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는 관행인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신령한 예배는 종교관행이라는 틀 속에 갇혀질 성격이 아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영이신 아버지께 신령과 진정으로 나의 몸과 영혼을 내어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이런 예배를 종교관행으로 열심히 집전하면서 그 댓가를 돈을 받아 먹고, 거기에 하나님의 보좌에 인간이 주인이 되고 인간우상이 되어서 잘난 척이나 하고 폼이나 잡으며 대단한 존재처럼 부각시키고 있으니 영적으로 볼 때 얼마나 저질적인 수준인가를 제발 알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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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버리고, 성령의 역사를 막아버리는 종교적인 관행들이 제거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아버지 하나님, 건물과 조직과 제도를 깨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건물과 조직과 제도에 매여서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미신과 같은 교회관행으로 눈 멀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성령께서 열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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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랑 (124.50.141.159)
2006-07-20 19:01:15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교회 모습들이 큰 아픔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의 관행들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 교회 안에 개혁되어져야할 관행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부교역자 생활을 16년을 하고 담임목회를 한지 7년이 되는 목사입니다. 부교역자 시절 많은 교회를 거치면서 위에 글과 유사한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피택을 받고서도 정해진 헌금 때문에 임직을 받지 않겠다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물질주의를 경계하라고 하면서 왜 그리 물질을 강조하는지.... 꼭 그렇게 해서 가난한 성도들의 마음에 아픔을 주어야 하는지 .... 초대교회의 임직식도 이러했을까? 초대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저는 그후 분쟁으로 인해 어려운 교회에 청빙을 받아 부임을 했습니다. 담임목회를 하면서 장로님 두분과 안수집사 두분, 권사님 두분을 임직하게 되었고 저 역시 위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이번 임직식도 초대교회로 돌아가서 행하자는 설교로 성도들의 동의를 얻어 1)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강요된 헌금을 하지 말자 2) 축하 화분이나 축의금 혹은 선물도 받지 말자. 3) 임직자들과 목사도 평상시 입던 옷을그대로 입고 하자(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옷을 해주지만) 4) 임직식에 들어 갈 돈을 절약하고 교회 재정을 합하여 필리핀 선교지에 교회당을 지어 하나님께 드리자.
이렇게 결의하고 모든 성도들의 협조 속에 은혜로운 임직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약속대로 모든 교인들이 정성으로 헌금하여 필리핀 두마게티에 원주민들을 위한 예배당을 건축하여 헌당했습니다.

물론 우리교회가 행한 것이 옳다고만 생각해서 여기 글을 싣는것이 아닙니다. 잘난척하는 목사로 보지않았으면 좋겟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교회의 좋은전통도 많이 있습니다만 , 많은 부분 변화되어져야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목사들도 어떤 일을할 때에 한번쯤 초대교회는 이 일을 어떤 모습으로 행하였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교회의 모습이 너무 마음에 아파와 짧은 경험을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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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 (152.99.132.13)
2006-07-20 16:55:54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
무엇보다도 글 속에서 배어나오는 교회를 사랑하고, 걱정하며,
다시 초대교회,성경중심의 교회로 돌아가자는 호소력있는 애정에
고맙기까지 합니다.

떄떄로 당당뉴스에 올라오는 글을 읽고 있노라면, 교회를 아니,
기독교계를 걱정한다고 하면서 올리는 글이, 더욱이 목사님이라는
타이틀을 버젓이 가지고 써놓은 글에 절망할 때가 더러 있었는데,
역시나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되었습니다.

전에 올리신 글도 그렇고, 이번에 읽은 글도 그렇고 제 스스로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해 보지만, 그리길지 않은 한국의 기독교역사속에서
많은 눈부신 발전은 전적으로 야훼의 은혜와 섭리였다고 생각하는데,
교인들의 학습효과(?)라고할까요, 알게모르게 부작용이 교회와
기독교계의 계속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급기야는 전도까지 가로막아서
정체를 넘어 침체하는 사태까지 빛고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기독교와 교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우리 교인들이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교회와 기독교의 부흥발전은 나라의 경제,정치,교육,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던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의식했던 그렇지 못했던 그 모든 혜택을 야훼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세계선교사 파송 2위라는 큰업적을
이룩했습니다.

지금의 교회침체와 부패와 문제점의 돌출은 직접적으로 우리 나라의
경제 및 여러 어려움으로 나타나는것이라 생각한다면 저만의
오바일까요?

바라기는 많은 신앙의 어른들꼐서 먼저 꺠닫고 야훼께 회개함으로
예수님안에서 우리나라를 축복하신 야훼의 사랑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교회와 가정을 바로세워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국가와 사회전반이
바로서서 다시한번 우리나라가 도약과 발전을 이루어,
이제는 세계선교사파견 1위로써 야훼를 기쁘시게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속에서 계속적으로 축복받는 나라가 되어야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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