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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답게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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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02일 (금) 03:04:20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2일 (금) 03:08:27 [조회수 : 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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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답게
엡5:6-14
(2016/12/01, 감리교시국기도회)

• 다시 광장에서

주님의 은총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과 어둠에 뒤덮인 이 나라에 임하시기를 빕니다. 추위에 떨며 긴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목자들의 심정으로 우리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하는 이들이 빚어낸 어둠과 혼돈으로 인해 우리 가슴 깊은 곳에는 짙은 공허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190만이 넘는 촛불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지만, 대통령과 그의 곁에 기생하는 이들은 민중들의 그 뜨거운 요구를 정치공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이해가 엇갈리는 이들의 틈을 파고 들어 시민들과 정치권의 분열을 획책하고, 촛불 시민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써 봐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비관과 냉소의 함정으로 우리를 몰아가려는 것입니다. 어제는 세월호 가족들의 시린 가슴을 능욕했던 목사를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염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이들은 마치 지붕 위의 풀처럼 시들 수 밖에 없다(시129:6)는 엄정한 사실 말입니다. 제국주의의 압제 아래 가녀린 생존을 이어가던 이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갇힌 이들 품어 안으시고 그 속에서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 사실을 믿기에 우리는 증인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는 때처럼 보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합니다. 첫번째 짐승은 용의 권세를 받아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그 짐승은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기에 많은 이들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후에 또 다른 짐승 하나가 등장합니다. 그 짐승은 어린양처럼 뿔이 돋아났고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했고, 숨이 거의 넘어가던 첫째 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하고는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듯 보이는 그 짐승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짐승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새 노래를 불러 옛 세계를 진동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세는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입니다.

용과 용의 권세를 받은 두 짐승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허구임을 잘 압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핵심 메시지는 약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자기 확장을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일체의 세력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민중들을 개와 돼지로 아는 정치 공학자들의 계산이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 아벨의 피의 외침

우리는 지난 한 달 반 사이에 정직한 땀을 흘리며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의 실상과 맞닥뜨렸습니다. 정치계, 관료, 재벌, 언론, 의료계, 법조계, 학계가 공모한 악의 카르텔이 우리 삶을 어떻게 유린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았습니다. 밤이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불의를 공모하고, 해가 뜨면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뻔뻔하고 팽팽한 그 얼굴 말입니다.

 -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이미 우상이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만들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을 하듯 수많은 이들이 그 앞에 즐겨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 그를 에워싸고 있는 정치가들과 관료 집단은 성실함을 가장한 채 권력의 단맛을 한껏 누렸습니다. 그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사유하지 않는 이들'의 표본과도 같습니다.
- 재벌들은 뇌물을 바쳐가며 더 불의한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 곡학아세하는 학자들은 지식인의 윤리를 저버리고 그들을 비호하기에 바빴습니다.
- 권력에 맛들인 일부 종교 상인들은 평안이 없는 데도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며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역사를 초월적 비전 앞에 세우고, 꾸짖을 것은 꾸짖고, 위로할 것은 위로해야 할 종교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눈 앞에 다가온 위험을 직시하며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깨워야 할 이들이 나른한 자장가를 불러 사람들을 잠재우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돌아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에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거덜나고, 아름다운 세상의 꿈은 조금씩 스러지고, 무력감, 자기 비하, 역사에 대한 냉소가 독버섯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보며 악마는 웃고 있을 겁니다.

억울하게 죽임 당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외치고 있지만 그 외침은 하늘에 상달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난지 거의 1,000일에 이르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백남기 농민은 저 차가운 땅 속에 묻혔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고, 악인들은 그들을 위해 예비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드리웠던 어둠을 기억합니다. 15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들고 있던 촛불을 일제히 껐습니다. 그 장엄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애굽에 내렸던 아홉 번째 재앙을 떠올렸습니다. 그 재앙은 애굽인들이 최고신으로 믿고 있었던 '태양신'에 대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광화문 광장에 내린 어둠은 지금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불의한 체제의 공모자들에 대한 민중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이들은 그 엄중한 경고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던 것일까요? 이제 남은 것은 장자의 죽임 뿐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이 땅에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승리한 권력은 없습니다.

우리는 당장 눈 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다만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몰아내야 하는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구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박정희로 상징되는 체제입니다.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인권을 탄압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양산한 체제 말입니다. 돈을 사람보다 앞세우는 체제는 악마적입니다. 그런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꾼다고 하여 역사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눕는 세상,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세상, 해함도 상함도 없는 세상, 모든 생명들이 각자에게 품부된 생명의 몫을 온전히 살아내는 세상, 모두가 살아 있음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생명과 평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닙니다. 생명과 평화입니다. 생명과 평화 세상의 꿈을 폭력적으로든 교묘하게든 유린하려는 이들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이들과 굳게 연대해야 합니다.

체코의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은 세상에는 두 가지의 기다림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고도는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가 누구인지, 그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를 기다립니다. 하벨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무력감을 숨기기 위한 가림막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벨이 말하는 두번째 기다림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체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끈질지게 나아가는 반체제적 인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기다림을 압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질서를 기다리는 것 말입니다. 그 질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 땅에 도래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기다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앞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가 등불 하나를 밝혀들 때 세상의 어둠은 그만큼 스러지게 마련입니다. 지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다. 전에는 우리가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빛입니다.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정진규 시인은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노래했습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칭얼댈 것 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듯 보이는 별들이 성좌를 이루어 밤하늘을 밝히듯,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밝혀든 빛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꿈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꼭 붙들어주셔서 기어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 이번 칼럼은 12월 1일에 있었던 감리교시국기도회에서의 김기석 목사의 설교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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