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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차라리 세상적이 되십시오.목회자 브랜드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가장 세속적인 교회들이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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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19일 (수) 00:00:00 [조회수 : 4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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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희망(www.gospel-hope )에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 내용이 좋아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분으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여러 글들은 無順입니다.(당당뉴스 운영자)



껍데기는 거룩하며 내용은 세속적인 것들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 "세속적, 세상적인 것" 은 경계의 대상이자 "영적인 것"의 정반대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것이다.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을 지나치게 율법적으로 구분하다보니 교회에 와서는 거룩한 척하면서 세상과 가정에서는 세속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삶" 때문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영향력이 없다고 규정하고서 평신도제자훈련을 통하여 일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지난 십 수년 동안 제자훈련전문가들의 일종의 유행어이고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원론적인 삶을 깨트리는 전제조건이 무엇인가? 진짜 거룩(성)이 무엇이고 진짜 세속(속)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과 의식이 신자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바르게 자리 잡고 있어야 이원론적인 삶을 살았던 위선과 형식 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가슴을 열고서 제자훈련에서 흔히 말하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과연 거룩한가에 대해서 우리들은 반문해보아야 한다.

교회의 거룩성이 개인과 가정과 세상에 영향을 줄만한 기본적인 가치관이 과연 존재하는가? 즉 모델과 기준이 있어야 일원론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말씀대로 살면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교회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사회에서 주어지는 삶의 모습이 분리될 수 없다. 천국갈 때까지 갈등하고 조절하면서도 교회라는 공동체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철저하게 담임목사중심으로 움직이는 교회의 구조와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서, 평신도들에게 일원론적인 삶을 살아라고 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조금 섭섭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교회안에서의 삶과 세상과 가정에서의 삶이 일치하는 "평신도들이 제자화 되어 일원론적인 삶"을 살면서 세상을 보고서 갈등하는 것이 아닌 세상보다더 훨씬 더 세속화되는 교회를 보고서 더 갈등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교회의 구조와 시스템을 보면 교회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거룩" 이라는 교묘한 포장과 껍데기 속에 세상에 있는 어떤 것과 비교하여도 훨씬 더 세속적인 요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일원론적인 삶을 살려면 거룩함에 따른 성경적인 기준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되어야 할 교회의 본질적인 거룩성이 내 팽개쳐져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제자훈련받고 사역자 훈련까지 받은 교인들이 자기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들 속에 들어가서 "일원론적인 삶" 을 살면서 섬기면 이 땅의 교회들이 더욱 아름다워지는데 "세련되고 고급화된 제자훈련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교회" 는 우습게도 대형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5년동안 사랑의 교회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평신도제자훈련프로그램이 한국교회에 진짜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 과연 "마이너스성장과 또 다른 중대형교회들이 생겼을까?" 라는 도전적인 질문이다.

제자훈련전문가들이 "교회의 99%인 평신도를 깨워야 한다" "만인제사장"의 뿌리를 설명할 때 목회와 같은 성직만 거룩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있는 직업도 거룩한 성직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코메디언의 대사처럼 느껴지는지 배꼽을 잡고 웃을 때가 많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봉사직과 목회직을 "거룩한 성직" 이라고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소명을 받았다는 목회자의 착각일 뿐이다. 세상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공천헌금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직분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이름만 거룩한 "감사헌금" 으로 포장되어 있지 사실상 공천헌금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상식화 되어 있다. 한마디로 "교회 안에 있는 성직" 은 자기들 편의대로 만든 "거룩한 브랜드"에 자기들이 속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들이 스스로 성직자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어 놓은 하나의 "특이한 개념-브랜드" 에 불과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난 2천년 동안 성직자라고 하는 분들이 스스로 "성직계급개념"을 만들어 놓고서 법과 제도와 규율을 제정하고 국가와 사회에 통용시켰으며 그것이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였다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 아닐까? 이제 세칭 "성직"은 너무 세속적인 직업화와 상업적인 특수한 브랜드처럼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외국에서 삼성하면 핸드폰, 현대 하면 자동차를 상상이 되는 것처럼 목사 하면 "성직자" 라는 브랜드이미지가 교회안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심어져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미료 "미원" 이라는 것은 브랜드이자 "맛의 근원" 이라는 말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정말 말 그대로 맛의 근원이기 때문에 "미원"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리 속에 박혀버린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가 조미료 하면 "미원" 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고, "성직자" 라는 단어 자체는 "거룩한 직을 가진 사람" 이라는 말 뜻이 있지만 이제는 거룩하여서 거룩하다는 것이 아닌 "미원" 과 같이 "성직자브랜드" 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에 미쳐 있는 세상과 교회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 시대는 "브랜드"의 시대라고 하며, 모든 사람들이 브랜드에 미쳐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브랜드 없는 물건은 인정받을 수 없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유명 브랜드" 가 아니면 제대로 평가를 받고 제값을 받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평범한 옷이라도 "유명브랜드" 가 가슴 왼쪽에 붙어 있다면 고급처럼 보이고 그 옷을 입은 사람까지 높아지는 브랜드이미지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이다.

유명브랜드를 입는다고 어떻게 사람의 인격과 수준과 가치가 올라 가겠는가?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브랜드이미지는 실제가 아닌 허상이며, 지독한 미신이며,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의한 지독한 세속화의 결과인 것이다.

유명브랜드를 산 것 때문에 빚지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닐 것이다. 유명브랜드 때문에 국가경제가 좀먹는 일이 있다. 유명브랜드 때문에 1년에 수십억달러씩 브랜드로열티를 지불하는 회사들이 한 두곳이 아니다. 유명브랜드 때문에 한국의 질 좋은 중소기업제품들이 골탕을 먹는 일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유명브랜드 때문에 길바닥에서 조폭 찐삐라들에게 옷, 안경, 신발, 시계, 패물을 빼앗기거나 두들겨 맞는 일조차도 있다. 심지어 유명브랜드제 때문에 절도, 강도, 살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얼마나 지독한 브랜드가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서울대, 연대, 고대, 이대를 선택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사고 속에는 이미 고질적이고 병적인 브랜드의식 박혀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입학하려고 하는 것이다. 세칭 일류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특수대학원이나 최고경영자코스등은 학벌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유명브랜드이미지를 팔고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일류대 최고경영자코스출신이면서 마치 그 대학의 출신들보다 더 큰 소리를 치고 총동창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이민자들도 마찬가지다. 1세대 이민자들은 비록 자신들의 시대는 끝이 났지만 아이들에게는 유명브랜드를 가진 대학에 넣어야지 하면서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녀들의 적성과 희망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아비리그라는 유명브랜드 대학만을 보고서 집어 넣지만 실제 정상적인 B플러스 이상의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는 성적을 가진 한인 학생들은 10%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초일류대학을 졸업하고도 전문대학원에 진학을 하지 못하거나 대기업에 취직도 하지 못하거나 적성도 맞지 않아서 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부모들 세대의 주업인 세탁소, 신발가게, 잡화상, 음식점 등을 이어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허다하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유명 브랜드의식 때문에 인생 망치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닌 것을 미국에서 보게 된다.


체면문화와 폼생폼사와 브랜드 이미지와 도덕성

한국인의 의식구조 가운데 가장 병적이고 고질적인 "체면 문화-폼생폼사" 는 이러한 "현대판 유명 브랜드 이미지"와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체면과 유명브랜드이미지" 가 생사람을 잡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만 보더라도 "목회성공브랜드, 박사브랜드" 에 목회자들이 미쳐서 돌아다니거나 "대형교회브랜드" 를 구축하기 위하여 목표를 세워 놓고서는 각종 거룩하게 보이는 이벤트로 교인들을 감성화시키고 구슬려서 거대한 교회건물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속이고서, 그 속에서 담임(위임)목사를 하나님의 통치대리인이라고 겁주고 속여서 호주머니를 털도록 하면서 생사람 잡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순진한 교인들이 열심히 맹종하고 해주었던 결과가 위임목사들은 "세습" 이라는 돌맹이를 교인들의 머리통에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21세기를 맞이하여 브랜드만 좋으면 무엇하냐?고 반문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먹고, 입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서 "질의 웰빙" 을 찾는 시대, 즉 "삶의 질(Quality of life)" 를 높이는데 주력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일등기업의 CEO들의 리더쉽에도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덕목이 강조되고 있는 판이다.

그래서 이제 잘나가는 기업들이나 전문경영인들은 자신들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우수성과 판매로 구축한 유명브랜드이미지에 걸맞는 도덕성(친환경성, 친생체성, 친사회성)을 정비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식품회사가 라면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고 90%의 시장점유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제품에 사용하는 기름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공업유라는 비도덕성이 들어났다고 하자. 그런데도 그 회사가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공업유를 계속 사용한다고 하면 그 회사는 분명히 망할 것이며, 단번에 검찰조사나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들이닥칠 것이다. 그래도 공업유를 넣는다면 그 경영자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서 정신병원에 보내지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콩밥이 먹고 싶어서 그런 짓을 하였을 것이다.

이제 도덕성이나 상식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 유명 브랜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목회자 브랜드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가장 세속적인 교회들이다

오늘날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 주어진 개념들이나 현상들 가운데 "성직자" "대형교회" "목회성공자" "당회장-담임목사" "교단 총회장" "장로" "안수집사" '복음주의" "근본주의" 정통" 심지어는 "제자훈련프로그램" "성경공부코스" .........이 모든 것이 브랜드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업에서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브랜드이미지를 높히듯이 교회 안에서도 목회자들이 각자의 종류에 따라 "브랜드이미지" 를 가지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큰 건물을 짓고 교인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미국내 새들백교회와 같은 성장하는 메가쳐치들이 기업전문경영컨설팅을 받고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금 거친 세상 말로 표현한다면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회사를 경영해도 대기업의 CEO를 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를 하여도 최소한 국회의원을 할 것이며, 조직폭력배를 하면 OO파두목 정도는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별히 거룩하여서 성공목회자가 되고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되었다" 고 제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나팔불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중대형교회의 업적을 이룬 성공 목회와 거룩한 목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하는 것이다. 대형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거룩하며, 신령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미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가지 사건과 결과로부터 철저하게 드러났는데도 계속 속고 있는 것이다.

즉, 껍데기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리거나 거룩한 성령의 사역이라고 하지만 실제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성장수법이 기업성장수법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세속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안에서 목회자들이 마치 본인들이 거룩한 목회를 하여서 대형교회가 된 것처럼 교인들을 속이면서 "지독하게 세속적인 수법은 숨기면서 교인들에게 교회에서처럼 세상에서도 거룩하게 살아라" 고 하고 있으니 대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라 하는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반드시 세속적인 삶을 위해서 에너지를 사용치 말고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지말고 우리 집에서 물건을 사라는 기업의 브랜드 선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고급브랜드를 가진 교회에 왔으니 돈을 써라는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제자훈련으로 일원론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배웠으니 "제발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 지역교회에 가서 열심히 섬기십시오. 더 이상 저희 교회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 안에서 무엇을 가지고 논하던 "브랜드화" 를 시켜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주범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몇년동안 유행하는 "깨끗한 부자-청부론" 도 대단한 브랜드이다.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프로그램" 도 대단한 브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인하여 유명한 목회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에 미국에서 메가쳐지를 주도권을 잡고 있는 릭워렌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 은 영향력 있는 신앙운동으로 있기도 하지만 철저한 "브랜드화 이미지" 로 인하여 얼마나 유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그의 브랜드는 책을 통해서 충분히 광고되어졌으며, 영어도 잘 모르는 한국교인 10만명을 모이게 하였고 목회자 2만명을 모이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10만명의 사람들이 왜 열광하고 심지어 2만명의 목회자들이 무엇을 듣기 위해서 열광하였는가? 릭워렌목사가 구축해 놓은 "릭워렌브랜드효과" 는 그 정도로 파워가 있으며, 부시 대통령까지 찾아가서 만나고 싶어하는 상황까지 와 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알 것이다. 대형교회의 담임목회자들은 다른 교회나 다른 목회자들이 절대로 흉내를 낼 수 없는 한가지씩의 "특기 브랜드" 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달란트라고 표현하지만 그 달란트는 세상에서 세속적인 대형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이 가진 달란트와 별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추구하는 목적은 다르다고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은 "담임목사중심" 그리고 "돈" 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담임목사"와 "돈" 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구조가 바로"세속화의 극치"라는 것이다. 1인 장기독재목회, 세습, 횡령, 전용이라는 교회내 비상식적인 사건들은 이러한 세속화의 극치속에서 나온 당연한 열매들인 것이다.

우리가 속한 교회가 과연 세속화되어 있는지 되어 있지 않는지를 테스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돈이 없이도, 담임목사가 가진 어떤 브랜드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잘 성장하는 교회입니까?" 라는 것이다.


유명브랜드가 있어야 이민교회에 초청받는 목회자들

한국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뉴욕교협에서 주최하는 대형연합집회의 주강사로 오는데 뿌려진 팜플렛을 보면 정말 얼마나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어떤 강사는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뉴욕상원의원인 힐러리여사의 추천을 받았다"는 문구가 적은 것을 뿌리고 있었다.

이민교회에 부흥사경회로 초청받아 오는 어떤 목회자의 이력을 보면 정말 얼마나 자신을 인정받고 싶으면 "한국대통령조찬기도회참석' 도 있다. 이민교회의 부흥사경회 강사로 오면서 "한국대통령조찬기도회참석"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 그런데 무지몸매한 교인들은 그런 저급한 브랜드이미지선전에도 무엇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참석하여 은혜를 받겠다고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독하게 세속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흥사경회시간의 설교를 들어보면 "거룩하게 사십시오. 세속적인 삶을 버리십시오. 예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라면서 대단히 거룩한 설교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는 것이다.

강사가 부흥사경회에 참석한 어떤 사람보다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거룩하게 살라" 고 하면서 결국은 "하나님께 확실하게 바치고 사는 것이 세속적인 삶을 거부하는 것" 라는 설교를 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유명브랜드를 가지고 뉴욕에 오시는 한국목사님들, 거룩한 사람처럼 흉내를 내지 마시고 차라리 세상수준의 세속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세속적인 회사CEO와 더 세속적인 교회CEO

교인들이 말하고 있는 세상 사람, 세속적인 사람들, 예를 들면 100,000명 정도의 사원이 있는 비그리스도인 중견기업의 전문경영인 CEO는 기업경영을 위해서 술과 담배를 마시고 피우는 지독하게 세속적인 사람인지 모른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미친듯이 뛰어다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거룩한 교회협의회나 교단이 아닌 세속적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회장에 출마하여 표를 얻기 위해 회사 공금을 횡령하여 뿌리는 기업오너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대기업의 전문경영인이 불륜, 횡령, 배임이라는 사적인 일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고서 과거에 콩밥까지 먹고 나서 10만명의 사원들 앞에 잘난 척이나 하고 나서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세상에도 그 정도의 도덕성과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더욱 우스운 것은 세상에서 자기소유의 기업오너가 아닌 이상, 전문경영인 CEO가 회사의 규모를 10배정도 키웠다고 해서 아들에게 세습하는 저질적인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의 오너라도 자기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서 최소한 10년이상 말단직원에서 출발시켜서 정상에 올리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전문경영인CEO가 자기 아들을 자기 회사처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자기 마음에 맞는 이사회를 열어서 적법한 절차는 거쳤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면 아마 미친 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골빈 이사들 골빈 대기업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에서 하지도 않는 지독하게 세속적인 일들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세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거룩한 복음주의노선을 평생 걷고 있고 설교하고 있다는 목회자들의 목회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아들에게 세습을 한다는 것은 교회주인이 "나"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 아들이 능력이 있다면 다른 교회에서 얼마던지 청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아버지가 있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오려는 것인가? 부르는 사람도 골빈사람들이지만 가는 목회자도 골빈 목회자라고 할 수 있다. 지독하게 쪽팔리는 일인데도 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능력이 있다면 다른 대형교회 아니 편안하게 목회할 수 있는 중형교회들의 청빙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왜 안되는가? 애비덕이나 보려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거룩한 성령운동"을 브랜드로 목회를 해왔던 초대형교회의 재정구조의 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교회의 담임목회자의 아들은 횡령과 탈세로 50억원의 추징금이 대법원판결에서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거룩한 성령운동"이 "가정내에서는 지독한 세속운동" 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세속적인 사람" 이 되면 위선자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들의 목회자들은 스스로 뼈를 깍는 듯한 의식의 개혁을 하지 않는 한 강단에서 "세속적인 삶을 버리십시오. 거룩하게 사세요" 라는 말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들이 지독하게 유명브랜드를 선호하고 브랜드목회를 하려고 하며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도들에게 세속적인 삶을 버리라고 하니 당치도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형연합집회나 뉴욕에서 열리는 대형연합집회는 표면적으로는 복음운동처럼 보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준비과정, 목적, 강사,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면 가장 세속적인 방법으로 세속적인 브랜드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유명브랜드가 없는 목회자를 초청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보면 간단하다. 이 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명브랜드를 가진 강사목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결국 주최자들의 브랜드를 높히는 목적이 도사려 있는 것이다. 교묘한 속임에 속으면 안된다.

지독하게 세속적인 목회스타일과 세속적인 유명브랜드이미지를 추구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도우심, 거룩함" 이라는 상투적인 단어를 제발 붙히지 말라고 말 해 주고 싶다.


교회 안에서의 브랜드추구

이러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거룩하다는 전제하에서 벌어지는 세속적인 브랜드이미지의 세뇌는 대형교회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규모이하의 교회 안에서도 얼마던지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담임목사에 대한 브랜드이미지를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교회들이 있다. 주일설교는 반드시 담임목사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임목사는 종신브랜드이고, 나머지 부교역자들은 전부 한번 사용했다가 버리는 임시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교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또한 담임목사가 아무리 도둑질하고 불륜하고 사기를 쳐도 교인이 그를 잘못 하여도 건드리면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거룩한 성직 담임(위임)목사 브랜드 이미지" 를 교인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심어두는 것이다.

미국은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사는 베니핏이 월급의 40-50%가 되는 곳도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본봉+의료보험+연금+주택보조비+자녀교육비가 팩케이지로 지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적인 시스템을 교회에 그대로 들고와서 담임목사에게 그러한 세속적인 시스템을 교묘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인들에게 본봉은 아주 작게 만들어 놓고서는, 교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다른 항목으로 교묘하게 분산하여 주택보조비, 주택관리비, 의료보험비, 자동차운영비, 도서비, 자녀교육비, 은급비, 자동차보험, 여행비, 세금......이런 식으로 온갖 명목을 갖다 부치고서 본봉의 2-3배씩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월급명세서에 본봉, 의료보험, 연금, 주택보조지, 세금홀딩에 대한 것을 명확하게 적어서 각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합리적이며 과학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서 어떻게 하면 담임목사의 팩케이지 전체 사례를 숨겨 볼까 하면서 교묘하게 항목을 분산시켜 "목회자 사례 생쇼" 를 하는 것이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그런 생쇼를 보이면서 도리어 가장 세속적이고 비겁한 일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방법을 도입할 수 없다는 생어거지로 교인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교인들조차도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교회안에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고 공개하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가? 무언가 교인들이 알아서는 안될 비밀은 감추어 두어야 한다는 대단히 악한 영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에 투명화하기를 거부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회사에서는 "감사" 라는 것이 있다. 정상적인 회사에서 외부감사제를 도입하여 감사를 철저하게 함으로 회사가 탈법과 도덕성문제로 이미지 손상을 받지 않도록 책임감사를 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교회들이 대형화되면서 들어오는 돈들은 많은데, 1년에 한번 "재정감사" 를 정말 제대로 하려고 하면 감사위원들이 재정담당 당회원들이나 담임목사와 잘못하면 "지독한 원수, 마귀들린 사람, 교회를 흔드는 세력"이 되기가 십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좋은 게 좋다" 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을 들라고 하면 아마 조폭들이 경영하는 회사나 이단교주가 있는 이단집단이나 김정일 독재정권 정도는 될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에서도 하지 않는 수준을 교회 안에서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세속적인가? 그런데 거룩한 성직을 감당하고 거룩한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교인들을 속이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인가?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의식과 행동을 하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고 예수이름을 팔면 안된다. 이것은 지독한 양심불량인 것이다.


유명브랜드를 철저하게 깨시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최고의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배하는 로마제국은 세계를 제패한 제국정치브랜드를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고 돈벌이와 종교세력을 지배하기 위해서 세워진 예루살렘성전이라는 거대한 성전브랜드 하에서 바리새파, 사두개파, 제사장들, 율법사들, 서기관들은 대단한 종교권력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특수한 브랜드문화와 사회가 지배하였던 그 때에 동방박사들이 메시아가 오시려면 적어도 궁정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헤롯왕에게 갔던 것이다. 적어도 메시아라면 궁중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상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최소한 종교인들의 집안이나 중류층의 상인계급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브랜드 이미지를 여지 없이 박살을 내어버렸다.

하루 일해서 겨우 먹고 사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가난한 말구유에 태어났으며 죽음을 피해서 다른 나라로 도망쳐야 했으며 돌아와도 유대에서 가장 척박한 나사렛촌동네에서 30세까지 살아야 하였다.

3년동안 보통 종교지도자라면 최소한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무엇인가 능력이 있는 제자들을 불러야 하였지만 무시당하는 어부들, 세리들을 불러서 가르쳤다. 세상사람들 특히 종교인들이 볼 때는 엉망진창의 브랜드이미지를 예수님은 보여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종교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 백성들에세 세뇌시켰던 화려하고 강한 메시아 브랜드에 대한 거짓된 브랜드이미지를 철저하게 부수고서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구약성경을 줄줄 외우고 가르쳤던 종교인들은 이러한 브랜드를 깨버리고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보일리가 없었고 도리어 "바알세불-귀신의 힘을 빌리고 있으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 고 하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한 솥밥을 먹었던 가롯유다까지 자기가 생각한 메시아브랜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서 은30에 예수님을 종교인들에게 팔아버린 것이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의 십자가로 나아갈 때 부정하거나 도망쳐버렸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깔보고 우습게 보았으면 얼굴에 침뱉고, 뺨을 치며, 조롱하고, 욕하며 때리고 옷을 완전히 벗겨버렸겠는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상상해보아야 한다. 내 아들에게 내가 모욕을 당하고 침뱉힘을 당하면서 뺨을 맞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면 예수님의 버림당함이 얼마나 처절하였는가를 조금이라도 실감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당하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이라는 "브랜드이미지"는 살인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박혀 죽어야 마땅한 자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당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매달려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외쳤던 것이다. 자기백성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하신 메시아의 모습은 너무나 연약하고, 너무나 인간적이며, 너무나 처참하게 버림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수를 우리들이 바라고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데 브랜드 이미지에 미쳐 있는 세상이 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웃기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난의 십자가를 전부 지셨으니 우리들은 더 이상 질병도 고난도 가난도 죄와 관계없기 때문에 영혼과 범사와 육체가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삼박자브랜드"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목회자도 있는 것이다. 그 "삼박자 브랜드" 를 평생 주창해왔던 유명브랜드 목회자의 큰 아들은 국가에게 50억원을 벌금으로 추징 당하였지만 한 푼도 내지 못하고서 "물질의 빚쟁이" 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과연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을 높히려는 어떤 브랜드이미지도 거부하였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었다. 그는 헐벗고, 굶주리고, 매맞고, 사형수처럼 되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런 나를 본받아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바라는 예수님의 실상과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는 아무리 보아도 수 많은 대형교회들의 위임/담임목사라는 보좌에 앉아서 자신의 브랜드이미지를 가지고 이름을 날리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도리어 그들의 모습 속에 교회사 속에 등장하는 종교권력자들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또한 작은 교회에서 독재하는 목회자들의 모습 속에서도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당함으로 자기백성을 구원시킨 예수님의 가슴을 보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만약 교회를 사물화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세뇌시켜서 자기브랜드이미지를 구축하여 내 종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떻게 하면 주머니를 털어서 자기 성을 구축하려고 한다면 중대형교회의 타락한 목회자들 이상으로 비참한 모습일 것이다.

당연히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평신도직분자들은 더이상 장로, 안수집사. 권사라는 자기 브랜드를 꾸미려고 아옹다옹하지 말아야 한다. 브랜드로 절대 천국을 갈수도 없고 브랜드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가치를 높혀주시지도 않으며 도리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책망을 받을지 모른다.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어린 소자들을 섬기는 "머슴"으로 일하도록 장로, 집사, 권사로 세워 놓았는데 무슨 큰 계급으로 알고서 목회자의 목에 개줄 같은 것을 걸고서 끌고 다니려고 하거나 교인들로부터 상전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브랜드이미지 구축은 고사하고 하나님께 언젠가는 큰 몽둥이로 맞을 날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더 이상 위선적인 종교인의 브랜드를 가져서는 안된다. 가장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 거룩한 척 하는 그 모든 껍데기를 훨훨 벗어버리고 사는 것이 훨씬 자유한 사람, 훨씬 솔직한 사람이 되면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평생 진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난 그리도인", 진짜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교회" 가 아닌, 가짜 나의 종교인브랜드, 목회자나 직분자가 주인이 된 가짜 교회브랜드를 만드는데 모든 생명에너지를 바치는 노예처럼 일평생 개줄에 묵여 다니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나에게는 혹시 가짜 브랜드이미지가 있는가?
우리 교회에는 혹시 가짜 브랜드 이미지가 있는가?
우리 목사님에게는 혹시 가짜 브랜드 이미지가 있는가?

예수님처럼 모든 가짜 브랜드 이미지를 깨어버릴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 교회다운 교회, 주님의 종다운 종이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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