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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샤머니즘, 한국교회
김달성  |  kdal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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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1월 10일 (목) 19:30:33
최종편집 : 2016년 11월 16일 (수) 16:03:04 [조회수 :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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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만원 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 세계는 마치 그 버스와 같다. 첫출발부터 불평등한 자본주의 사회, 2~3백 년 달려온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 그 내리막길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소위 '신자유주의'란 그 끝을 달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전쟁은 파국을 향해 달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그 파멸을 지연시키기 위해 흔히 선택하는 응급방책이다. 제 1차,2차 세계대전은 대표적이다. 그 때 전쟁특수 효과를 단단히 봤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1970년 정도까지 약 25년 동안 자본주의는 예상 외로 큰 호황을 누렸다. 그 시기 자본 측은 곳간을 좀 풀었다. 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양보를 하며 사회복지를 늘렸다. 그러다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착취의 고삐를  조이며 강도 높은 이윤극대화 작업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에게 양보했던 것들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사회복지도 줄였다. 이렇게 자본 측이 이미 주었던 것들까지 다시 빼앗으며 착취의 강도를 다시 높이는 시기를 가리켜 듣기 좋게 '신자유주의'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이 왕 노릇하는 자본주의는 주술적인 마술을 잘 부린다. 흡혈귀 같은 자본의 송곳니를 감추고 미화시키는 주술이 '신자유주의'란 이름에도 깃들어 있지 않은가.

한국은 IMF(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에 깊은 성찰 없이 마구 뛰어 들었다.이에  그 때까지 수 십 년 동안 독재국가가  주도한 계획경제체제 아래서 일방적으로 착취를 당해 온 대다수 국민은 더욱 착취당하는 처지로 졸지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군사독재나 유신독재 아래서 사육되고 동원되다시피 해 죽어라고 일만하느라 경제성장의 열매를 제대로 누려볼 새도 없던 국민이 곧바로 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다. 지난 2000년~2014년까지 한국의 누적 경제성장률은 74%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 성장률의 절반 정도밖에 늘지 않았다. 같은 기간 동안 자영업자들의 이익은 무려 18%나 줄었다. 결국 경제성장의 열매를 기업 특히 대기업, 재벌들이 독식 한 것이다. 기업소득을 보면 지난 1990년도엔 나라 전체 일 년 소득의 17%였던 것이 2014년엔 25%로 증가했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기업의 투자는 줄고 저축은 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는 동안 한국의 노동자들(2천만)과 자영업자들의 주머니는 점점 비어가는 대신 대기업, 재벌들의 배는 더욱 부풀어 올랐다.현재 한국의 재벌 100대 기업은 고용은 고작 4%만 하면서 나라 전체 순이익의 60%나 가져간다. 아주 야만스러운 사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가리켜 '헬조선'사회라고 일컫는다. 이는 결코 농담이 아니다.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눈으로 우리 사회를 직시한 결과다. 지옥만큼이나 불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인데, 그 사회가 지속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사회구조가 고착되어 이제는 대물림되는 세습신분사회로 전락된 점을 많은 시민들이 피부로 절감하며 인식하고 있다. 심히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한국사회의 불평등 정도는 OECD국가들 가운데 으뜸에 속한다,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돈은 1,000조가 넘고 가계부채는 1,500조나 된다. 노인 빈곤율은 50%가 넘고 복지비 지출 예산 비율은 10% 정도밖에 안 된다. 자살률은 매우 높고 행복지수는 바닥까지 내려가 있다. 노조조직률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그 노조 파괴를 위한 기업과 국가의 단결력은 가공할 정도다.

야만스러운 1:99사회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1% 부자들(지배자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 수단이 있다. 하나는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다. 돈이 왕 노릇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국가는 흔히 총자본의 심부름센터 역할을 한다. 1% 가진자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시 말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일을 원활히 하도록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동시에 국가의 공권력은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런가하면 현실 종교들 대다수는 자본의 행정 심부름센터 역할을 하는 국가가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대다수 종교는  지배자들의 통치를 거드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그 이념(교리, 신학, 설교, 신앙 등)을 널리 대중에게 퍼트리는 일을 한다. 대다수 종교들은  1%를 대변하며 99%를 세뇌, 순치, 적응시키는 일을 한다. 1% 편에 서서 99%를 혹세무민하는 작업을 한다. 물론 다양한 버전으로 한다.

 

   
 

샤머니즘

샤머니즘은 대다수 현실 종교들의 바탕이 되어 있다. 그것은 제도권 종교들 속에 깊이 스며있다. 어찌 보면 마치 얼룩말의 무늬처럼   대다수 종교 속에 아로 새겨진 것이 샤머니즘이다. 세계 전역에 퍼져 있는 샤머니즘 가운데 한국 샤머니즘은 불교, 유교는 물론 뒤늦게 들어온 가톨릭과 개신교까지 포섭한 지 오래다. 그런데 그것은 기존의 사회 현실체제를 옹호한다. 불의한 사회체제의 변혁을 추구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사회체제를 유지, 강화시키는 역할을 암암리에 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사회구조 안에서 개인의 부귀영화를 기복적으로 추구한다. 남보다 부자가 되거나 높아지기 위해 어떤 초월적인 힘을 의지한다. 주술적인 방법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소원성취를 이루고자 한다. 샤머니즘은 개인의 고통이나 한의 원인을 그 개인이나 초월적인 존재(죽은 사람이나 조상, 귀신 등)에서 찾는다. 고통의 원인을 진단하거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주술적이다. 샤머니즘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철저히 가로 막는다.그것은 일종의 신경증(정신증)이다. 인간이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판단하거나 모순된 현실을 합리적으로 헤쳐 나가는 일을 방해하는 신경증이다. 샤머니즘이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경우가 간혹 있으나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샤머니즘에 빠진 사람은 마치 강박신경증 환자처럼 반복적으로 자기기만적인 환상의 늪에 빠져들어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고  삶은 황폐해진다.

최근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우리는 샤머니즘의 민낯을 보게 된다. 샤머니즘은 자기의 고유한 독자적 영역을 가지면서 동시에 제도화된 종교에 스며들어 활약한다. 그것은 근대화 이후 국사나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없었다. 간접적으로 정치에 암암리에 영향을 미치는 생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게이트를 통한 국기문란 사건은 샤머니즘이 직접적으로 국정에 깊이 개입한 모습을 보여줬다. 국가의 공식적 시스템을 밀어내고 개입한 일은 매우 엽기적이고 이례적인 경우다. 현대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박근혜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목사)과 깊은 관계(최 씨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관계)를 가지면서 샤머니즘에 매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그는  국무를  최순실( 자신이 무당이든지 아니면  무당을 끼고 사는 )과 함께 하다시피 했다. 최순실은 국가의 정책이나 업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거나 결정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그녀에게 국무를 맡기거나 의탁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매우 의아해 한다. 그러나 주술이나 점술, 샤머니즘의 생리나 성격을 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하고도 남을 사안이다.

아무튼 지난 4년 동안 샤머니즘적 통치를 한 박근혜 정권이 강력히 추진한 정책과 사업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소수의 가진자, 자본가 계층을 위한 사업을 열심히 전개했다. 노동자 ,민중들을 탄압했다. 비록 주술이 개입되었으나 우리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정책을 조폭처럼 무식하고도 일관되게 펼쳤다. 주술과 사술, 음모와 공포를 동반한 공권력을 휘두르며 펼쳤다. 물론 박근혜와 최순실을 정점으로 한 일당은 엄청난 이권과 돈을 꼼꼼히 챙기면서.

 

 

한국교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 말씀의 뿌리는 출애굽사건이다. 야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히브리 노예들의 탈출, 해방 사건이 성경의 뿌리다. 이 해방운동은 노예제시대에 노예들을 착취함으로써 굴러가는 사회체제에 대한 거부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그런 사회체제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에 대한 거부도 함께 있었다. 출애굽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연대 공동체 형성에 있었다. 새 공동체를 위한 이 대장정은 예수에게 와서 최고 절정에 이른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은 출애굽운동의 완성이다. 출애굽운동을 영구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시키며 완성시키기 위한 사건이다. 로마제국이 정치범을 처형하는 방식인 십자가형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지배계층과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세력에 맞섬으로써 촉발되었다. 로마제국(외세)과 이스라엘의 지배계층에 의한 이중적 착취와 억압에 시달린 가난한 사람들과 일체가 되어 살면서 활동한 예수에게 십자가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알맹이는 하나님나라다. 그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만드는 사랑의 공동체다. 예수의 영을 모신 사람들은 그 공동체를 부분적이나마 실현했다. 역사서인 사도행전은 2장과 4장에서 연거푸 그 공동체를 소개한다. 그 공동체의 특징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공동체'라는 데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선포하고 실천하신 하나님나라 복음을 구원론적으로 설파했다. 그 설파를 위해 여러 가지 비유(metaphor)들을 사용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칭의稱義(Justification by faith)다. 이는 개신교회의 중심 교리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바울은 칭의를 인간이 예수의 지배를 받는 마음으로 사는 삶(상태)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칭의란 '주권의 전이'(Lordship transfer)인 것이다. 예수를 마음과 삶의  주권자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가령 이제까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던 사람이 자유와 생명이신 예수를 따라 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칭의-구원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주권의 전이를 도모하며 사는 사람은 이제까지 잘못 산 죄를 용서받게 된다. 즉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이 칭의-구원의 복음을 잘 담고 있는 말씀이 있다.

"그(하나님)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로새서 1:13-14)

대다수 한국교회, 주류 한국교회는 '예수 없는 교회'다. 십자가복음은 물론 출애굽정신도 없다. 진정한 칭의 -구원의 은총이나 믿음도 없다. 왜곡된 십자가복음이나 출애굽정신은 넘친다. 왜곡된 칭의-구원론은 널리 퍼져 있다. 샤머니즘에 깊이 빠진 주류 한국교회 안에서 칭의-구원 교리는 단지 내세 천국 들어가는 티켓을 얻는 수단일 뿐이다.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은 예수 믿고 세례 받으면 내세 천국 가는 자격은 이미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기복신앙으로 달려간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에서 부자가 되거나 높아지기 위해 돌진한다. 물론 예수 이름을 이용하여. 그들은 예수의 능력을 이제 오로지 세속적 성공, 탐욕적 소원성취를 위해 맘껏 사용하려고 전력을 다 한다.그들은 돈이 주인 노릇하는 사회에서 돈을 더 많이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에게 예수는 가장 위대한 샤먼이다.

대다수 한국교회의 겉 무늬는 기독교이지만 속 내용은 다분히 샤머니즘이다.  한국교회 안에 최순실이 허다하다. 최태민도 무수히 많다. 실제 최태민은 개신교 소종파의 목사였고 최순실은 여러 대형교회들을 다녔다. 지난 '70년대에 영세교 교주 최태민이 주도하는 구국선교단 예배나 사업에 많은 목사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샤머니즘에 물든 주류 한국교회는 해방 뒤 지난 수 십 년 동안 수구적인 정치세력과 유착되어 나라와 민족의 출애굽을 훼방해 왔다. 1%의 논리를 대변하며 99%국민을 우민화하는 사역을 충실히 감당했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누구보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자신의 체질 개선을 위한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음 중심에 좌정한 맘몬과 샤머니즘을 먼저 밀어내야 하지 않을까?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옆구리 뚫린 아담의 기쁨'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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