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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온전히 속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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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0월 22일 (토) 20:31:51 [조회수 :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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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장 15-17절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라

 

가. 주님과의 사귐을 잘 지켜야 한다.

15절,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 본문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사랑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어떠한 사귐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여기서 포도원은 주님과의 사귐의 동산을 비유한다. 성도가 열매를 맺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을 잘 지켜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과의 사귐의 동산인 교회나 하나님의 나라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 본문에서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야 할 이유는 포도원에 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꽃은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서 주님과의 사귐을 상징한다. 꽃을 잘 피워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주님과의 사귐을 꽃피워야 한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과정이다.

* 신앙생활에서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 꽃 없이 열매가 없듯이 과정 없이 성숙은 없다. 열매를 갑자기 맺을 수 없듯이 신앙성숙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앙의 과정을 충실히 할 때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성도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주님과의 사귐을 꽃피우고 잘 지켜야 한다.

 

나. 악은 작은 것이라도 막아야 한다.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 그런데 주님과의 사귐의 동산에는 이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이 있다. 여기서 여우는 사귐을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을 비유한다. 여우는 포도원에 들어가 포도나무의 뿌리를 갉아먹으므로 큰 피해를 입힌다. 마찬가지로 주님과의 사귐을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과 그들의 유혹을 막아야 한다.

* 작은 여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작은 여우라고 방심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철저하게 잡아야 한다. 신앙생활에서 작은 죄나 유혹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다(살전5:21-22). 선이 성장하듯이 악도 성장한다. 작은 악이라고 방심하다 보면 곧 큰 죄악으로 성장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는 과정도 점진적이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사탄이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은근히 유혹하자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라고 대답하였으며, 이에 사탄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고, 결국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다(창3:1-4).

 

다. 하나님께 온전히 속해야 한다.

16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도다.”

* 온전한 사귐은 주님께 철저하게 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상태를 말한다(요15:5). 그리고 ‘양 떼를 먹이는도다’(라아)는 ‘사귀다’로 해석해도 좋다. 주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는 그에게 온전히 속하여 그를 따를 때 주님과의 사귐은 꽃이 핀다.

* 그리고 주님께 온전히 속한 상태는 성령충만의 상태이다. 이는 성령님이 내 속에 거하시며 나를 온전히 통치하시는 상태를 말한다. 성령충만이 주님께 온전히 속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 더욱이 악한 세력이 파고들 수 없도록 빈틈이 전혀 없는 사귐이어야 한다(라아, 분사형). 주님과의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도 악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귐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 함”이라고 하였다(요1서 1:6). 성도는 악한 어둠의 세력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주님께 온전히 속해야 한다.

 

라. 주님과의 사귐 안에 평안이 있다.

17절,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이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을 그리고 있다. 주님과의 사귐이 있는 사람은 날이 저물고 해가지지 전에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본문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평안이 있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 본문에서 ‘베데르 산’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그런데 ‘베데르’(베테르)는 ‘분할’ 또는 ‘구분’이라는 뜻인데 여성의 품을 암시한다. 즉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는 말씀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품속에서 편히 쉬고 있는 어린 양들과 같이 되라는 축복의 말씀이다.

*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는 평안과 안식을 얻었다. 더 이상 어둠의 세력이 그를 괴롭히지 못했다. 즉 주님과의 사귐 안에 있는 사람에게 평안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를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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