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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대사태와 감독·감독회장 선거를 보면서엘리야를 찾아오신 여호와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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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0월 18일 (화) 14:20:39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7일 (수) 22:41:45 [조회수 :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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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의 사태와 최근에 실시된 감리회 감독·감독회장 선거를 보면서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더 이상 한국교회에 희망을 걸 수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신대에서는 교수의 승진논문심사, 총장과 이사장의 거취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이사들, 교수들, 동문들, 학생들이 서로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여 왔다. 소위 선지동산이라고 하는 신학대학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아수라장이 벌어져 왔다.

우리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가! 하나님의 의를 염두에 두는 사람들인가! 예수님의 복음을 아는 사람들인가!

감신대에서 일어난 혼탁한 싸움이 감리회 제32회 총회 감독·감독회장 선거에서 재연되었다. 여기서도 파벌싸움이 일어났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탈법적인 행태가 연출되고, 권모술수가 판을 쳤다. 총회심사위원회에 상대를 제소하는가 하면, 앞으로 세상 법정에까지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목사들이라는 데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명예와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총회장 자리나 감독 자리를 놓고 이렇게 서로 싸우고 있다. 이러한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목사들이고, 재물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목사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받을 혜택에 눈이 어두워서 입에 거품을 물고 싸움을 벌인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려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이다.

그 싸움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는 그 싸움이 진지한 것이겠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난장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난장에는 재미있는 굿판은 없고 한심한 진흙탕 싸움만 있다. 예수님의 복음에 따라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욕,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파벌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좌절감을 갖게 한다. 그들이 한국교회를 추락시키는 장본인들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그들이 교계를 이끄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면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한국교회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어 갈 것 같다.

그들의 삶은 예수님이 비판하셨던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삶과 다르지 않다. 교회 강단에서는 온후한 음성으로 혹은 열정적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토록 이기심의 만족을 위해서 아귀다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생각나게 하는 그들의 이중적인 삶이 참으로 가증스럽다. 교계 지도자들이 이토록 타락한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주소 앞에서 우리 모두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절망에 빠졌던 엘리야를 생각하게 된다. 절망에 빠진 엘리야는 그를 찾아오신 여호와에게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언약을 버렸다고,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그리고 이세벨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 한다고 자기가 절망하는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선지자들을 박해한 것과 지금 한국교회의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교회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발붙일 자리를 주지 않는 것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도망하다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원할 때, 여호와는 엘리야를 버리지 않고 천사를 보내서 그에게 빵과 물을 주셨다. 호렙산에 이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절망감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를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반복해서 물으셨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절망하는 이유를 다 들으신 여호와는 그를 책망하시지 않고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실 뿐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기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이해해 주셨던 것이 분명하다. 엘리야는 그 약속을 믿고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일어섰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맡겨진 사명을 완수한 그에게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는 복을 내리셨다.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도 훨씬 더 어두운 것을 보면서 우리도 엘리야처럼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야를 찾아오셨던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찾아오셔서 빵과 물을 주실 것을, 우리와 함께 일할 믿음의 형제들을 준비해 주실 것을 믿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이 일부의 정치 목사들처럼 모두 타락하고 위선적인 것은 아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신실한 목사가 그리고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일부 목사들의 비행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기도하는 목사와 교인이 아주 많다.

우리뿐 아니라 여호와께서도 그리고 예수님도 때때로 좌절하셨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데서 여호와의 좌절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화를 내시고 그들을 저주하신 데서 여호와의 실망이 나타난다. 예수님 역시 때로는 울기도 하셨고 화를 내기도 하셨고 저주하기도 하셨다. 당신이 손수 창조하신 인간이 범하는 악행을 지켜보신 여호와와 예수님의 실망과 좌절은 우리가 일부 목사들의 비행을 보면서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오래 참으셨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의를 외면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바치시면서 당신을 따르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의 의와 뜻을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하는 우리는 그분들처럼 오래 참고 노력해야 한다. 절망을 극복하고 여호와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한 엘리야처럼, 우리도 좌절하지 말고 악을 행하는 교회 지도자들 앞에 나서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발해야 한다. 예수님이 들을 귀가 없는 자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힘껏 외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타락한 교회 지도자들을 방치해두는 것은, 한국교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것을 원하시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 이사야 등 선지자들을 보내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일어나서 까마귀들이 싸우는 곳에 가기를 원하신다. 안타까운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엘리야야, 어찌하여 네가 여기에 있느냐?’고 물으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왜 너는 그러고 있느냐?’고 안타깝게 물으신다. 우리는 그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좌절하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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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39.7.51.216)
2016-10-18 17:58:35
전이해도 해법도 이상합니다~도대체 이 글을 쓰고 올리고 읽으라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무딘 칼로 단단한것이 베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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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화평 (122.35.176.192)
2016-10-19 18:02:41
본문을 쓰신 분은 일련의 감리교 사태를 보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글을 썼군요. 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부분에서 그것이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찾아오신 여호와'를 부제로 내세운 데서도 그것을 알 수 있겠네요. 싸울 때에는 어느 한 쪽은 잘못한 것이 없고 다른 쪽이 문제가 있는 경우가 태반인데, 싸움 당사자들은 모두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믿고 있지요. 그러니까 싸움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이 글을 쓴 분은 어느 편이 잘하고 있다거나 어느 편이 잘못하고 있다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고 그런 분쟁이 많은 교인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그리고 그런 분쟁을 지켜보는 교인들이 좌절할 만하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지 않나요?
이 글을 읽으면서 분쟁의 당사자들은 나는 억울하게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분쟁을 지켜보는 교인들이 누구의 잘잘못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낯뜨거워한다는 것, 그리고 앤티 기독교인들에게 교회를 매도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요.
리플달기
3 2
포이멘 (183.109.98.239)
2016-10-19 08:11:50
.
감리회에 몰래 들어온 니골라당이
정치를 앞세워서 성도들이 모은 연보를
자신과 자신의 패거리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당당뉴스를 통해서 듣고 보아왔습니다.
그 연보는 가난한 교회를 위해서 쓰여야 하는데
지금 당장 자신의 풍요를 위해서 쓰이고
노년까지 풍족하게 쓰기 위해 작당을 하고 있습니다.

교단은 다르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감리회를 걱정하시는 글쓴이를 통해
감리회 니골라당의 부패상을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이미 타교단에서는 감리회를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삼자가 가장 공평하게 사태를 감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숨까지 걸고 감리회를 걱정하시는 형제님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리회에 몰래 들어온 니골라당이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
리플달기
6 4
개혁의목소리 (49.172.112.242)
2016-10-18 18:34:04
본문을 쓰신 분은 당당에 상당히 많은 글을 남기었군요.
칼럼니스트라고 해야겠네요.
이정도 위치라면 그래도 포괄적이며, 총체적 관점에서 글을 쓸 수도 있는 분 같은데 도대체 이게 뭡니까!
인생의 아픔을 모르는 분이며, 남의 일은 내 쉬운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군요. 그렇다면 과연 칼럼을 더 이상 쓸 수 있는 분인가요?
앞으로의 글을 읽을 가치가 있겠습니까!
"깊이 알면 다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하찮은 일이라도 깊이 알면 목숨까지 거는 것이어서 이런 말이 나오는 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살다보니 "애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어른이 그 모든 종말을 알면 분노할 일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글을 쓰신 분은 분명 감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교회가 농락되고 있는 진실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 감리회에 평상시 관심도 없는 분이 이런 글을 써도 되나요?
누가 싸우면 그 이유를 진정성 있게 듣는다면 누가 그 사람들을 탓 할 까요!
인생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는 분이 어떻게 칼럼을 쓰며 명쾌한 길을 제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는 자세가 안된 분이 함부로 글을 쓰니 글이 되겠습니까! 필자께서는 정의를 아십니까? 진실에 대하여 귀 기울이는 분입니까! 법을 준수해야하는 준법정신이 분명합니까!
남의 답답함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평상시 되어있습니까!
감리회와 감신대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까? 깊이 알면 다칩니다. 깊이 알지 못하니 다치는 바가 없는 세월 좋은 말만 하는군요.
글 꽤나 쓸 줄 모르는 분 같으면 그냥 지나쳤으나 글 재주가 아까워 일침을 놓은 것이니, 인생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 부터 배우고 다시 글을 쓰세요. 통절한 자아성찰과 비판 없이 다시 글을 쓰면 더 이상 글을 읽을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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