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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 글 읽기가 안 되는 개신교인들
박창진  |  5016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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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0월 11일 (화) 17:32:25
최종편집 : 2016년 10월 11일 (화) 17:36:28 [조회수 :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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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말씀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란 율법 준수를 통한 의다. 그들이 율법을 준수할 때만 의롭다함을 얻는다. 외식에 대해선 불의라고 하지 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 의보다 더 나은 의란 무엇인가? 어떤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리스도로 믿을 때에 주어지는 의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한다. 율법 준수도 어려운데 그보다 더 강화된 완전하게 된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와 비교 자체가 안 맞다.

그 앞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17절)고 하시고는 자신의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19절)고 말씀하셨다. 율법을 완전하게 한 자신의 계명은 그리스도의 (율)법이다(갈 6:2). 다르게는 성령의 (율)법(롬 8:2),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 1:25)이다. 그것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가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마 7:21)고 말씀하셨다. 어떤 개신교인들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씀(요 6:40)을 가져와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리스도로 믿었으면 이 말씀은 성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앞에서 예수님은 신자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 진술하셨고 열매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열매는 구체적인 삶에 관한 진술을 지키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앞과 완전히 단절된 얘기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암호가 되고 성경해석은 암호풀이가 된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같이 쓰인 것이 아니다. 같은 대상에게 동시에 주어지지도 않았다. 마태복음을 받았으나 요한복음을 받지 못한 신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청중들도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청중들에게 하셨다는 것이 된다. 그 말씀을 별도로 풀이해주시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매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히 6:4~6에는 배교에 대한 기술이 나온다. 배교자들은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 그들에 대해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은 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엔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 함께 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은 사람이 성령에 참여할 수 있는가? 없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이어서 위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한 땅에서 두 종류의 식물이 나오는 것에 대한 설명(7~8절)이 나온다.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어 복을 받는 경우와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불사름을 받는 경우이다. 샘 스톰스(Sam Storms)는 터프 토픽스에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땅이라고 주장한다(<터프 토픽스>(샘 스톰스, 장해영 역, 서울:새물결플러스, 2016), 301.). 그 구절 앞뒤 그 어디에서도 그렇게 볼 수 있는 내용이 없다. 한 밭에서 두 종류의 식물이 나온 것이다.

상식적인 글 읽기가 되면

율법 준수를 통한 의보다 더 나은 의란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된 율법 준수를 통한 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신자가 행하여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뜻도 산상수훈 전체 문맥에서 지속적으로 얘기된 삶과 관계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배교자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리스도로 영접하였던 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거기에서 얘기되는 밭과 식물들은 두 종류가 아니라 한 종류의 밭에서 나오는 두 종류의 열매에 관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산상수훈의 말씀 이해는 신자의 현재 삶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율법보다 더 강화된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된 율법 준수이다. 우리 힘으로 지킬 순 없다.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지키게 된다(갈 5:16). 바울 사도가 그렇게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현대의 어떤 개신교인들은 율법 준수보다도 훨씬 뒤쳐지는 삶 가운데 있다. 그럼에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 이상이 없단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리스도로 영접한 것은 분명하기에. 그렇다. 그들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읽으면 그 삶으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금과 같은 삶과는 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글 읽기가 안 되므로 인해 그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이들로 인해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도 최소화되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상식적인 글 읽기가 되어야 한다.

상식적인 글 읽기도 안 되는 이들에게서 무슨 가능성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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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99.234.12.117)
2016-10-16 03:02:04
이런식으로 까지 마시고, 성경을 새로 좀 써 주세요.
신학자로써 해야 할 의무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말씀을 접하고 이해시키도록 해야 하는데, 맨날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고, 이단이 될까봐 교단 눈치나 보고 있는 모습이 참 안스럽습니다. 이렇게 까실려면 주어, 동사 목적어가 분명한 독일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보라고 차라리 이야기 해 주세요.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둘째치고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교인들 멍청하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설교하는 내용 핸드폰으로 뻥인지 진짜인지 다 검색해 봅니다. 오히려 목회자보다 언어실력이 좋아서 원서로 직접 번역서 읽지 않고 보시는 분들 많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성도들에게 어떻게 삶속에서 적용해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배워야 목회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목회자, 박사라고 하는 타이틀에 연연하신 모습이 안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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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4.42.152.229)
2016-10-17 11:04:05
그 역할을 하실 분들에게 요청하시면 됩니다.
위 글이 이해하기 어려우시면 좀 더 묵상을 해보시고요.

삶 속에 적용에 관해서는 저 말고도 잘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그분들께 들으시면 됩니다.

타이틀 연연은 저와는 아무 상관 없네요.
그러니 안스러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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