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혁세력의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면서 그 일환으로 감독회장선거에 뛰어 들었다. 
평소에 후배들에게 교단정치와 멀리하라고 이야기하던 내가 그 일선에 뛰어 들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교회개혁의 발걸음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 이었다.

추석 연휴에 아들과 같이 영화 '밀정'을 보았다.
영화 '밀정'은 최근 복잡해진 내게 여러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넌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으냐?
어차피 기울어진 배 아니냐?"
조선인 총독부 경부가 오랜 친구였던 의열단원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늘상 듣던 이야기처럼 들렸다.
영화 속에 있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2년 전 부턴가 내가 잘 부르는 노래가 바뀌었다.
한동안 전인권의 '걱정하지말아요 그대'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어느새 다른 노래가 내입에 븥어 버렸다.
그건 바로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였다.

신학입문 후 하나님은 내게 두 가지 소명을 주셨다.
"교회개혁과 농촌선교", 이 두 가지에 내 삶을 던졌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나아진 게 없었다.
30여년을 교회개혁에 뛰어들었는데 교회는 갈수록 더 타락하고 부패했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몰염치 해갔다.
30여년을 농촌선교에 몸을 담았건만 활성화되기는커녕 더 외면당하고 있고, 농촌교회와 농민들은 더 어려워져만 가고 있다.
그동안 난 무얼 한건가?
30여 년 동안 집안도 돌보지 않고 오직 한길로만 왔는데 난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 '아, 난 참 바보처럼 인생을 살았구나, 난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 왔다.
그래서 불렀던 노래가 '바보처럼 살았군요'였고, 곧 바로 이 노래는 내 18번이 되었다.

선후배들이 위로를 했다.
'그래서 이만큼이라도 된 거 아니냐고'
'더 나빠질 건데 그만큼이나 해서 그래도 이만큼 된 거 아니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이야기도 아니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이만큼'에 동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암살'에서도 조선인 고등계 형사가 의열단원에게 '몇명 죽인다고 조선의 독립이 오겠느냐?'며 조롱하는 듯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그만두고 안락한 생활을 하라는 거다.
독립운동을 그만두고 친일의 행열에 동참하라는 거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는 말이다.
그때 독립운동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이일을 계속하는가? 우리 동포들에게 독립을 위한 이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를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간에 내게 대한 사람들의 몇가지 반응이 있다.
'아직도 하니?'
이들은 내가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지식하다는 거다.

'당신은 늘 꽃마차를 탔지 않소?'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다.
평생을 월100만원 이상을 집에 가져다 주지를 못했는데 내가 늘 꽃마차를 탔다니, 관점이 다르니 이렇게도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타 본적이 없는 꽃마차를......
완장을 찬 거처럼 행동 했단다.
권력을 가져 본적이 없는데 무슨 완장이란 말인가?
권력주변을 맴돌았으면 아마도 나는 벌써 한자리 했을게다.

'형이 성공한 게 뭐가 있소?'
제대로 성취시킨 게 없으니 이제는 그만 하라는 거다.
이말이 제일 아팠다.
실제 성공한 게 없었기 때문이리라.

교회개혁과 농촌선교의 주변에  깊은 피로감이 맴돌고 있다.
해도 안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일에 뛰어들었을 때는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들도 피곤하단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계속하냐는 거다.
패배감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일을 멈추고 않고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내면서 계속하고 있는가?
신앙적으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이 일하셔서 나도 일했다.
그분이 일하시는 한 나는 일할 수 밖에 없다. 
그분이 내 귀를 열어 주시어 들어야 할 말을 듣게 하시고, 내 눈을 열어 주시어 봐야 할것을 보게 하시며, 내 마음을 움직여 그 마음에 닿게 하시어 새일에 뛰어 들게 하신다.
인간적으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식구들에게 그리고 내가 멈추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
어느덧 우리 안에 깊숙히 들어온 피로감과 패배감을 넘어가고 싶었다.
너희들이 한게 뭐가 있냐는 조롱과 핀잔을 이겨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농목을 하던 선배들이 도시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다. 
'버틸 수 있는 데 까지 버터랴, 후배들이 그 자리에 올 때 까지! '
'그래야 그 후배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그곳에서 시작하여 우리처럼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지 않고 우리가  서있는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씨 뿌리고 거름 줬다고 그 열매를 따 먹을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운동을 해 오는 과정에서 내가 씨 뿌리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따먹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씨 뿌리고 거름 준 것이 내대에 와서 꽃 피고 열매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이 일이 비록 인간적으론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후배들의 세대에 가서라도 꽃 피우고 열매가 맺어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때문에  지금 나는 '아직도 하냐'는 핀잔을 들으면서, '성공한 게 없지 않냐'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 교회개혁과 농촌선교의 길에서 돌아설 수가 없다.
내가 갈수 있는데 까지 가서 버티고 있어야만 후배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정'은 의열단장의 목소리로 다음의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우리는 실패를 하더라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가야 한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었던 어제의 수많은 실패들 때문에 오늘이 있는 게 아닐까?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그 외면당하고 있는 실패들 때문에 지금의 역사 속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내게 주어진 그 길을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