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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천국신앙을 부러워하면서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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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9월 07일 (수) 22:28:23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7일 (수) 22:43:39 [조회수 :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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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순교유적지 답사가 있어서 전남 영광군에 있는 야월교회와 염산교회 그리고 신안군에 있는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을 다녀왔다. 증도에 가는 길에 먼저 들른 야월교회와 염산교회의 순교역사는 한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순교당했다는 면에서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와 달랐다. 그러나 이 세 곳에서 일어난 순교는 6.25 때 국군에 의해 수복되는 과정에서 1950년 10월 이후 궁지에 몰린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간 야월교회에서는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전 교인 65명이 순교당했는데, 이렇게 전 교인이 순교당한 것은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염산교회에서는 교인의 3분의 2인 77명이 순교당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순교자가 한 교회에서 나온 것 역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염산면에 위치한 이 두 교회의 교인들은 참으로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교인들을 목을 베어죽이거나 죽창으로 찔러서 죽이거나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땅을 파서 그곳에 몰아넣고 흙을 덮어서 산채로 묻기도 했다. 두 교회가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교인들의 등에 돌을 매달거나 여러 명을 굴비처럼 새끼로 엮어서 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했다. 그 참혹한 살해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한국 기독교가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별히 1950년 10월 7일부터 3개월 동안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염산교회 교인들의 순교는 그들이 철저한 천국 신앙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주었다. 야월교회에서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교회를 다니는 교인 전체가 무차별적으로 살해되었지만, 염산교회에서는 김방호 목사를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피하지 않고 개인의 신앙적 결단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찬송할 수 있었고, 그들을 죽이려고 끌고 가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리고 등에 업힌 아기가 칭얼대자 죽음을 앞둔 언니가 ‘울지 마라 우리는 곧 천국에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천국 신앙으로 무장된 용사들이었다. 염산교회 뜰에 순교자들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순교자들이 죽어가면서 믿었던 ‘우리는 천국 간다.’가 그 시비에 새겨진 시의 제목이었다.

그들이 철저하게 천국 신앙으로 무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정말 천국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면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육신적인 삶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는 육신적 삶은 헛된 것이라고, 육신의 삶에 집착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사모하라고, 그 천국에는 고통도 슬픔도 없다고, 그곳에서는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행복한 그리고 영원한 삶을 산다고 말한다.

그런 천국의 삶을 확신하면서 죽어간 순교자들이 부러웠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런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발달로 인해서 현대인들은 우주 공간의 어디에도 그런 천국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고 알고 있고, 땅속 어디에도 지옥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슈바이처는 1931년에 낸 그의 자서전에서 “우리는 오늘날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볼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21세기에는 슈바이처 시대보다도 우주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천국을 더욱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서울역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전도자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전도방법은 빛이 바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장례식장이 아니면, 천국신앙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이렇게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학자들은 그런 근본주의적 가르침이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약해진 한국의 교인들을 위해서 일부의 목회자들은 지상에서 받을 수 있는 복을 강조해 왔다. 구약에서는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을 강조하는 설교자들은 신약에서 삼박자 구원 신앙을 끌어댄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영혼이 잘 될 뿐 아니라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해달라고 새벽부터 열심히 기도한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예수님이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고,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주겠느냐고, 믿고 구하면 산이라도 바다에 던져질 수 있으니 열심히 구하라고 기도를 강조한다.

이렇게 복 받을 것을 확신하는 신앙을 일부에서는 기복신앙이라고 비판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기복적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집착을 버리려고 하는 그 자체가 집착이라고 가르치는 불교에도 기복신앙이 들어가서 절 뒤편에 산당이 세워져 있기도 하고 불자들이 절에 가서 복을 빈다. 그런데 구하면 주신다고 성경에 명시된 말씀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비는 것은 성경적인 일이다. 이것이 소위 번영신학이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쉽게 정착하고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샤머니즘적 기복신앙과 기독교의 기도가 상통하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기복신앙이 순교자들의 내세를 믿는 천국 신앙과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지상에서의 복을 구하는 기복신앙은 현세적인 것만을, 육신적인 안일과 행복을 강조한다. 현세적인 것을 중시하는 지상 신앙이 천국에 대한 확신을 잃은 현대인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런 지상 신앙은 영의 세계를 사모하고 육신적인 것을 멀리하라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상의 복에 연연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만한 신앙적 확신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기복신앙에는 그 나름의 이점이 있다. 복을 비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수 있는 전능자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으려고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힘써 전도하고 힘에 넘치도록 바친다. 무엇보다 열심히 기도한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하고 대형교회가 세워졌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간절히 매달리는 기복적 신앙은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었다.

이번 순교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에 없이 한국교회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이 많아졌다. 천국 신앙을 가지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확고한 신앙과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기복 신앙인들의 적극적인 신앙에는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런 신앙이 한국교회를 지탱해 왔고 부흥시켰다. 그런데 점차 그런 신앙이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그동안 많은 목회자들이 진보적인 신학을 접하면서도 목회는 보수적으로 해 왔다. 그래서 각 교파의 신학적 노선이나 교회의 정치체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장 목회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진보적인 신학 지식을 외면한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보수적인 목회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신학이 신앙을 약화시키는 것을 우려한 일부 미국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근본주의 신학을 내세우고 창조신학을 주창했다.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도 미국의 근본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근본주의 신학이 흔들림 없는 신앙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그 신학은 과학적 지식을 지닌, 분석적인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을 설득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부흥시켜 온 천국 신앙과 기복신앙 역시 설 자리를 잃었다. 천문학의 발달로 인해서 천국 신앙은 외면당하고 육신의 복에 치우치는 기복신앙에는 영적인 세계를 소홀히 한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신앙을 강조하면 좋겠는데 그것이 현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한국교회뿐 아니라 현대교회 전체가 당면한 딜레마다.

지금 한국교회가 움츠러드는 주된 원인이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에 있다고 하지만, 신학문제가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현대 신학자들은 땅 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만유재신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런 신학이 천국 신앙과 기복신앙이 낳은 순교적인 신앙이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을 낳을 것 같지 않다. 그러면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까? 이번 순교유적지를 돌아보면서 투철한 천국신앙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배들의 신앙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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