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의 시작이다. 여름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의 발걸음은 변함없이 분주하다. 세월은 기억을 덮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마냥 겉으로는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착시효과다. 감신의 속내는 깊이 곪고 있다.

시간표를 든 학생들마다 아우성이다. 선택의 폭은 지극히 좁고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친다. 국내 신학교 중 최고가의 등록금을 매 학기마다 내고 있지만 강의와 학내 인프라는 국내 교단 신학교 중 최저 수준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요즘 고등학교 교실은 정원이 30명 남짓이라는데 명색이 대학원인 감신의 강의실은 80명에 육박한 70년대 고등학교 교실을 연상시키는 강의가 수두룩하다. 물론 누구도 이런 모습을 대학원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누구도 책임지고 개선시킬 수도 없는 ‘슬픈 현실’이라는 거다. 리더의 부재, 무능력, 부패란 이렇게 나타나는 거다. 직무대행은 현상유지를 위한 잠정조치일 뿐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말이 현상유지이지 시나브로 침몰의 궤도로 들어섰다. 뜨거웠던 여름, 총대학원 학생회가 총장 선거에 주목한 근본적 이유다.

여섯 번이나 총장 선출에 실패한 이사회가 10월 6일 재개된다고 한다. 사실상 과거로의 회귀다. 그것도 불과 꼭 3개월 전인 5월 31일 상황으로 돌아간 거다. 도대체 그간 무엇을 한 것인가? 이사장은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도 흔한 ‘사과’ 한마디 없다. 이게 감리교의 현주소다.

얼마 전까지 현직 총장이었던, 지난 4년 간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총장 후보자는 학생들의 피 같은 등록금으로 채워진 학교 재정으로 자신의 영달(榮達)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시라 바쁘시다. 다른 두 후보에게 현재 상황은 자신들과 무관한 ‘남의 일’일 뿐이다. 누구도 피해자가 아니다. 오직 파편화된 학생들만이 고스란히 그 폐해의 수혜자다.

‘후. 안. 무. 치.’ 부끄러움을 모르는 원숭이의 얼굴. 총장선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stakeholders)를 보고 떠오른 단어다. 누구에게도 미안하지도 않은 상황 속에 당당히 한 몫 기다리고 있는 기득권들의 아귀다툼일 뿐인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이사장 세력 속에서 열릴 10월 6일 이사회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당당뉴스가 자세히 보도(8월 25일자)한 김인환 이사장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희망적 기대(wishful thinking)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게 만든다. 그의 주장은 공허하다. 해결역량도 의지도 없기에 책임전가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김인환 이사장의 주장은 딱 하나다. 이사회는 총추위 결정을 받아들여 그 범위 안에서만 선출할 권한 밖에 없다는 거다. 정말 그런가?

총추위와 이사회 규정 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저의가 뭘지 강한 의구심마저 남긴다. 심지어 사안을 정면 돌파하고자 제시된 대안-5인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총장후보추천 과정을 조사하자는 타협안-조차 거부했다.

총대학원 학생회는 이미 수 차례 총추위 규정을 직접 거론하며 이사회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총추위 규정 18조)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10월 6일 이사회에는 총추위원과 검증위원 전원을 출석시켜 의견을 청취하자는 걸로 폐회했단다.

그러나 이는 생선을 훔친 고양이에게 생선의 소재를 물어보겠다는 발상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수장을 둔 조직은 참으로 불행하다. 그 후과(後果)는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 작금의 모습이다.

무능은 게으름을 숙주로 한다. 그 끝은 고착화된 부패로 나타난다. 정작 당사자는 모른다. 그 고약한 무능과 부패의 고리는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의 발로다.

지금 이사회의 모습은 이 검은 카르텔과 그것을 깨고자 하는 이사들 간의 전쟁과도 같은 형국이 됐다. 이사장이든 ‘총장이 돼야 한다는 거룩한(?) 소명’을 받았다는 후보자들의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다. 모두 현직 감리교 목사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감신의 문제를 두고 정녕 얼마나 기도할까?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을 기억할까?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 아쉽게도 현직 목사 김인환 이사장의 행보는 야고보의 말씀과는 전혀 무관해 보인다. 총장 후보 3인은 여기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이사장, 이사, 감사, 총장후보자 이들은 학교의 정책을 결정짓는 핵심 구성원들이다. 학생들에게 양질의 신학교육 서비스를 책임진 이들에게서 책임감이라곤 밀알만큼도 찾을 수 없는 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 학기는 새로 시작됐으나 “그리고 아무 말도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