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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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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9월 03일 (토) 18:52:03 [조회수 :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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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8-22절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

 

가. 믿음은 행함으로 보여져야 한다.

18절,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 본문은 믿음이 행함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추상적인 차원에 머무르면 이는 신실한 믿음이 아니다. 여기서 ‘보이다’(데잌뉘오)는 ‘증명하다’라는 말이다. 즉 믿음의 신실성은 행함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야 증명될 수 있다.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졌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며 약속하신 것은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고 온전히 따랐다(롬4:18-21참조).

*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다(요14:15). 계명을 지켜야 진정한 사랑이다. 야고보는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이 아니하는 그것”이라 하였다(약1:26-27).

 

나. 믿음은 종교적 차원이 아니다.

19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귀신들이 주님을 믿고 떠는 차원의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안다. 귀신들린 사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막5:7). 그러나 이러한 지적 차원의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또한 이를 근거로 한 교리적 차원의 믿음도 참 믿음이 아니다.

* 그리고 종교적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무속신앙도 참 믿음이 아니다. 신적 존재를 두려워하며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복을 비는 기복적 신앙은 참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종교적 차원 그 이상이다.

* 참 믿음은 거룩한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귀신들에게는 거룩한 두려움이 없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한 것이 거룩한 두려움이다(눅5:8). 그는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거룩한 두려움이 삶을 변하게 한다. 이사야가 경험한 거룩한 두려움을 참조하라(사6:5).

 

다.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하게 하라.

22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이 구절은 참 믿음을 얻는 방법을 제시한다. 즉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참 믿음을 얻으려면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 일하다’(쉰에르게오)는 믿음과 행함을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면 안 되며, 결국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는 원리를 보여준다.

* 일반적으로 행함은 믿음의 결과로 본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다는 말씀을 인용한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고 하였다(마12:33). 그런데 믿음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믿음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좋아지고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 웨슬리 목사는 루터의 영향을 받은 모라비안 교도들의 정적주의를 비판하였다. 이는 믿음이 좋아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는 가르침이다. 이에 반하여 웨슬리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은혜의 수단에 참여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악을 피하라, 선을 행하라, 그리고 은혜의 수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면하였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믿음이 온전해진다.

 

라. 온전한 믿음이 사람을 가치 있게 한다.

20절,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 이 구절은 온전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허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허탄한’(케네)은 ‘내용이 없는’ 또는 ‘쓸데없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라 하였다. 여기서 ‘헛것’(아르고스)도 ‘쓸데없는’ 또는 ‘무익한’이라는 뜻이다. 즉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데없고 무익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도 쓸데없고 무익한 사람이 된다.

* 예수님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이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냥 가지고 왔을 때 그를 ‘무익한 종’이라고 하셨다(마25:30). 결국 열매가 없는 사람 즉 행함이 없는 사람은 무익한 사람이다. 이는 반대로 행함이 있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가치 있고 유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에 야고보는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약1:25).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 즉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삶의 여정에서 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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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152.XXX.XXX.73)
2016-09-13 13:38:36
믿음에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행함을 수도 없이 강조했습니다. 성령의 열매, 육체의 소욕을 버려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 집사와 감독의 자격, 빛과 소금의 삶,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라.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구제하라, 혀를 재갈 먹여라, 손대접하기를 힘쓰라, 남의 유익을 구하라, 겸손하라, 선을 행하라, 경건하게 살아라, 돈을 사랑하지 마라, 탐욕과 탐심을 버려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기타 등등 수도 없이 많이 말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만 목사님들은 이런 설교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된다고만 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주입해 놓으니 교인들이 죄를 짓고 나쁜 짓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죄 지어도 회개만 하면 다 용서되기 때문이라고 목사들이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인들은 죄 지어도 교회가서 회개만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버젓이 무단횡단은 예사고 교회이름을 붙여 놓은 차량을 운행하면서 신호위반, 과속 등 교통법규위반(제가 재정을 볼 때 과속 스티커를 가지고 와서 교회에서 내라고 까지 하더라고요)을 예사로 합니다. 요즘은 목사와 장로, 교인들이 성추행, 사기, 뇌물수수, 횡령, 심지어 살인 등 온갖 사건에 연루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복음대로 바르게 살면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연스럽게 전도도 될 텐데, 기독교가 칭찬은 커녕 오히려 개독교 소리를 듣고 온갖 욕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 다닌다는 것이 정말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또 목사나 장로 등 교인들이 연루되지 않았나 신경이 쓰일 정도입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베푸는 것은 없고 대접받기만 좋아하고, 일은 적게하고 안하려고 하고, 양보는 없고 자기 권리와 이익만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님들은 헌금과, 교회 봉사, 교회 모이는 것만 강조하지 말고 행함을 강조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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