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육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구별했다. 육적인 삶은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이고, 영적인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말한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는 사람의 말이나 행실 특히 도덕적 행위를 의미하는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잠 12:14-15; 히 13:15-16). 마태복음에서는 열매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면서 행함을 중시했는데(7:20),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열거하면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6:9)라고 말한 것을 보면 바울도 행함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전적으로 자기 시대에 살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종말의 때를 준비했다. 바울은 모든 지상적인 것이 그 의미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는 세계 종말의 때를 기대하면서 살았지만, 이러한 기대 가운데서도 세상을 외면하지 않았다. 바울은 세상 안에 사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윤리를 영 안에 있는 삶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영적인 삶에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관계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윤리적 삶이었다.

바울의 윤리

성령의 열매와 사랑을 강조한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손수 보여주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칭의론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울이 성령의 열매, 다시 말해서 도덕적 행위를 언급한 것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열거하면서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린도전서에서 그가 힘써 강조한 사랑 역시 성령의 열매와 같은 윤리적 차원의 것이다. 그는 윤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윤리를 체현하기 위해서 진력한 사람이다.

그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전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서 그 제물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과 다른 고기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우상에 대한 습관으로 인해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도 제물을 먹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이웃을 위해서 바울이 자신의 지식을 유보하는 것을 본다. 그는 지식을 지닌 사람이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사랑의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고전 8:1).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이와 같이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된다면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했다. 여기서 그의 행동의 원칙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웃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혼에 관한 문제에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강요하지 않았다. 종말의 때가 가깝다고 믿은 바울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신처럼 독신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이 하나님 일을 위해서 이혼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일이지만, 결혼하는 자도 잘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그의 태도를 우유부단하다거나 과단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의 사고의 유연성 혹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그의 윤리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했다(고전 10:23-4).

은사의 다양성을 언급하는 데서도 바울의 인간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사고의 유연성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로마교회와 고린도교회에는 자기가 받은 은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두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몸은 하나지만 여러 가지 지체가 있어서 각기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 다양한 은사가 있어서 유익을 끼친다고 말했다. 모두 사도일 수 없고 다 선지자일 수 없고 다 교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각양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협력할 때 교회 공동체가 온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롬 12:3-8; 고전 12:4-31). 이렇게 인간이 받은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바울은 획일주의자도 독선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온전히 복음을 위한 헌신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도 감내했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사람이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고자 했다. 그가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 같이 되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 같이 되었다. 그리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 같이 행동했다. 그리고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그는 독신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온갖 행동은 복음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 몸을 쳐 복종케 하면서 온 힘을 다 해서 하나의 푯대를 향해 달음질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려고 그 권리를 유보했다. 그는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신약시대의 사도들에게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용인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값없이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그는 값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천막을 짓는 고된 일을 자원해서 했다.

그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으로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교인들에게 권면하면서 열거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는 육체를 따라 사는 악한 삶과 대비되는 선한 삶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급한 사랑의 내용 역시 성령의 열매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가 이 두 서신에서 강조한 성령의 열매와 사랑의 실천은 우리가 의지적으로 힘써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윤리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와 사랑의 실천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바울이 특히 사랑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13:10)이라고 말하고 고린도전서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13)고 말했는데, 이 말은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40)이라는 예수님의 선포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바울의 삶을 통해서 그가 성령의 인도 안에서 사는 삶을 중시했지만, 그의 선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그의 삶을 힘든 달음질에 비유하고(고전 9:26)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고 말한 데서(빌 3:14) 나타나는 것처럼, 그의 영적인 삶은 목표에 달하기 위해서 힘써 노력하는 삶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영적 삶은 성령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힘써 노력하는 삶이었다.

바울을 본받는 삶

이렇게 힘써 노력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반복적으로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면했다(4:16; 11:1). 빌립보서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3:17)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은 온갖 환란을 견디고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전히 자기 삶을 바친 헌신적인 삶이다.

그러나 전도자로서의 투철한 사명완수 외에도, 그의 영적 삶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먼저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이웃을 위해서 노력하는 적극적인 윤리적 삶을 살았다. 윤리란 사람이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데, 바울은 그가 마땅히 행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자진해서 행하려는 적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진해서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그가 사례비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자진해서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에게 독신으로 지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독신생활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폭 넓은 인간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이 공동체를 위해서 유익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바울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인간 이해로 인해서 바울은 헌신적인 신앙인들이 빠지기 쉬운 독선적인 태도를 벗어날 수 있었고, 특히 임박한 종말의 때를 의식하면서도 세상을 외면하는 광신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영적 삶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그의 유연한 태도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지식이나 확신을 기꺼이 유보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특별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가 권세 있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했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에 지배자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반감을 살 만한 일이었지만, 세상의 권세자들이 심판의 날에 저주받을 것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유보하면서 질서와 화평을 위해서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했다. 그는 하나님이 질서와 화평의 신이라고(고전 14:33),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롬 13:1)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권세자들에게 복종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믿는 자들에게 유익하다고 보았다. 그는 항상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서 무엇이 유익한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다(고전 10:33).

마치면서

우리는 이웃과 교회를 위해서 자진해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바울의 태도와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심, 그리고 자기의 확신을 유보하는 그의 유연한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복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그가 때때로 상대에 따라서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유연한 태도에서 관용이 가능하다. 그가 로마서에서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14:1)고 말한 것은 관용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의 유연한 태도에서 나오는 관용이야 말로 경직된 교리에 함몰된 교회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바울이 보여준 복음을 위한 유연성을 결여할 때, 종교 간의 전쟁, 교파 간의 분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결과 신약시대의 고린도교회나 현실 교회에서 보는 갈등이 일어난다. 흔히 문제없는 교회가 없다고 말하는데, 현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확신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은 의로운 존재라는 독선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바울의 관용적인 태도를 외면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도 바울처럼 무엇이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교인들을 위해서 유익한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의 행동의 표준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것이 모두를 위해서 유익한가였다. 그럴 때 획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열거한 성령의 열매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강조한 사랑이 가능하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의 칭의론이나 전도자로서의 헌신에만 집착하고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한 그의 실제 삶을 외면해 왔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는데, 우리는 예수의 마음뿐 아니라 믿음의 선배 바울의 마음을 품을 필요가 있다. 바울의 가르침과 삶은 예수님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명하신 대로 예수님을 따르고 본받으려고 노력해 왔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부탁한 바울의 영적 삶을 우리 삶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