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영화를 보고 느껴 보라 권하고 싶다

“본 영화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지난 10일 개봉 첫날부터 박스오피스 순위 1위에 올라 지금까지 줄곧 그 자리를 내 주지 않고 있는 가운데 무서운 속도로 관객을 끌어 모아 개봉 12일째인 어제로(21일)로 524만 명을 동원한 영화 <터널>의 엔딩크레딧에 나온 문구이다.

이 영화의 감독 김성훈 씨도 “세월호를 염두해 둔 것은 아니다. 우리 영화는 소재원 작가의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일,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그런 관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느끼게 된 현실이 슬픈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엔딩크레딧의 문구도 감독의 말도 영화와 세월호 참사가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시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 같은 엔딩크레딧도 감독의 말도 굳이 필요로 할 게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엔딩크리딧은 세월호 참사라 말하고 있진 않지만, 그 ‘허구적으로 창작된’ ‘모두’라는 것들이 2014년 4월 16일의 참사와 너무도 닮은꼴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고 하는데,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 아닌가 한다. 많은 국민들은 그때의 일로 트리우마를 안게 되었는데, 그 ‘관성’이 영화에서 그때의 일련의 현상들을 연상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터널>은,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와 함께 올여름의 영화계 관객을 동원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4대 블랙버스터 가운데 막차를 탄 작품으로,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소시민이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은 정수(하정우). 아내(배두나)와 어린 딸이 하나 있고, 자동차 대리점 영업과장이다.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 가지고 차로 귀가 하던 중 전화로 한 건 올리고 기분 좋게 달리다가 붕괴된 터널에 갇힘으로 시작된 이야기이다.

그가 갇혀 있는 몸 하나 겨우 눕힐만한 공간으로, 간헐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콘크리트 조각들과 먼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추가 붕괴의 위험, 스마트 폰 하나가 외부와 소퉁할 수 있는 수단의 전부이고, 손전등만이 유일한 조명기구이다. 구출이 될지 어떨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구출이 된다 해도 그게 언제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먹을 것이라고는 케이크 하나와 500ml 들이 물 두 병뿐이다.

생존자는 또 한 명 있다. 미나(남지현)이다. 정수는 생존자가 자기 말고 또 있다는 것을 알자 죽을힘을 다해, 자기의 차 운전석에 끼어 운신도 못하는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떨어져 내린 환풍기가 통로 역할을 했다. 몇 차례 오가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는 인간의 인간됨의 인간애가 교류된다. 정수는 미나가 꺼져 가는 생명을 놓아 버리지 않도록 애쓴다. “지금 대한민국이 총동원되어 우리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터널 밖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언제라도 있을 법해 귀에 설지 않은 표현의 속보가 전파를 타자, 구조대도 기자도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관계자들도 사고현장으로 모여든다. 그러나 구조에 혼신의 힘을 다한 건 119 구조 대장 대경(오달수)을 필두로 한 몇 사람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구조차량을 막고 있는 언론사의 승합차, 생명줄 같은 정수의 스마트폰 배터리 소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에 의한 취재에만 몰두하는 기자, 그것을 말리는 대경에게 날아 온 말은 “생방송 중 무슨 행패냐”였다.

관계 장관을 포함한 당국자들은 현장상황을 점검하기보다 인증사진 찍기에 더 관심이 가고, 제대로 된 매뉴얼 하나 없어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당국자들은 “반드시 구하겠다” 말은 하지만 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어떤가. 우리의 현실에서 본 듯한 장면이지 않는가. 세월호 참사, 그래, 그때도 꼭 그랬다. 터널이 무너진 건 부실공사 때문이었지만, 세월호는 바다에 띄워서는 안 되는 부실한 배였다. 미흡하기 짝이 없는 사고 대처와 과잉 의전도 그랬다. 그때 해경은 어찌했고, 세월호 선장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가.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는 또 어찌하고 있었는가.

해경은 오히려 구조에 방해가 됐고, 선장은? 아예 말을 말자. 청와대는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시시각각으로 가라앉아 가는 배에서 꺼져 가는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런데도 영화 <터널>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게 이상한가. 영화에서의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영화 <터널>은 실제로 있었던 세월호 참사 때와 더 닮은꼴이 되어 간다.

“국민들도 이제 그만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정수의 아내 세현에게 한 어느 당국자의 말이다. 구조에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가고 희생자까지 나오자,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 터널 안에서는 정수가 “나 아직 살아 있는데…”라 하고, 터널 밖에서도 대경이 “지금 저 안에 있는 사람, 아직 살아 있다구요”라 안타까워하지만, 하나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가치를 지녔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통할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라는 대통령님의 지시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확실하게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얼핏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 사람의 생명은 그만큼 귀한 것이다. 예수께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김성훈 감독은 말한다. “<터널>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며, “생명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대경은 정수에게 오줌을 먹으라 하고는 미안한 마음에 자기도 오줌을 먹는다. 자기가 실제로 오줌을 먹는다 해도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정수에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아름다움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장면이 관객들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저 밑에 있는 건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라는 말도 커다란 공감으로 관객들의 가슴에 와 박히는데, 역시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라는 대통령님의 지시에 따라서 저희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터널>에서 관계 장관(김해숙)이 한 말이다. 이에 씁쓸한 웃음을 짓는 관객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어떠한 울림도 공감도 일으킬 수 없는 허울뿐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때의 현실에선 이에 못 미쳐도 한참이나 못 미치는 일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아직 채 피지도 못한 봉오리인 학생들이 수백 명이나 수장되어 죽어가는 골든타임의 7시간 동안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있고 9시간이나 지난 오후 5시 40분에 중대본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사고의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왜였을까.

박 대통령의 말은 학생들이 배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로 뛰어들었다는 의미 아닌가. 배안에 갇혀 있는 것을 알았다면 구조원들이 안으로 들어가 구조 활동을 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는 사이에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하나둘 죽어 가고 있었다.

당시의 중대본을 들여다봐도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탑승객의 수조차도 파악을 못해, 사고 당일인 16일에 471명→477명→459명→462명으로 들쑥날쑥하게 발표를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그 다음날인 17일에도 475명으로 바꾸고, 18일에는 476명으로 다시 변경했다. 구조인원도 16일에 368명에서 175명으로 바꾸어 발표해 놓고는, 17일에 179명, 18일에는 처음보다 194명이나 줄여 174명으로 발표했다. 무능한 정부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로 오인하기에 딱 좋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오직 배우 하정우의 개인기에만 의존하여 만든 게 영화 ‘터널’?

어떤 기자는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나오는 배우 김해숙의 연기는 현재의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를 연상시킨다”며, “김해숙은 박근혜 대통령의 판박이처럼 얼굴과 말투를 재현했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듣고 보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기에서 정치평론가 이구진 씨의 <영화 ‘터널’은 왜 세월호 악용한 나쁜 작품인가>를 비교적 자세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데, 반면거울로서의 역할을 기대해도 좋으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국가와 정부를 의도적으로 흠집 위해 재난대책 장관을 하필 여자로 설정했다. 이 장치의 저의는 너무도 분명하다. 마치 세월호 때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과 대비 되도록 배치한다. 이것도 모자라는지 마지막 장면에 여성장관이 담화문 발표를 하는데 그 시점에 개가 짖는 소리를 절묘하게 오버랩 시키면서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행위를 개 짖는 소리로 만들어 버리는 비열한 '장난'도 친다.”

이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 각자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억지 상황 설정과 함께 국가와 정부를 드러내놓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린 끝에 오직 배우 하정우의 개인기에만 의존하여 만든 게 영화 ‘터널’”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해석을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그러나 그는 어느 기자를 향해, “명색이 보수언론의 최고라 자처하는 조선일보 기자의 영화적 무식함과 이념적 편향성에 놀랄 따름”이라고 한 악플 수준의 말도 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는 한국 영화계가 균형 감각을 잃어 버렸고 무식한 ‘좌파’와 ‘돈파’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음을 보여준다”고도 했는데, 어떤가, 유식한 표현이라고 생각되는가. ‘명색이’ 정치평론가라는 사람이 누구라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하여 막말을 하듯이 이렇게 인신공격성 말들을 쏟아내도 되는지, 그러고도 유식하다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는 <터널>의 시사회 후의 기자들의 평가에 대해서 “가관이다”라고 평가절하는데, <캠퍼스잡앤조이>의 지연주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3일,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터널> 언론시사회가 끝났다. 평소에는 엔딩 크레딧이 채 올라가기도 전에 바삐 걸음을 옮기던 기자들의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영화관 내 불이 켜지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는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그는 또 “무식한 영화계의 '돈파와 좌파'들이 영화로 국가체제 붕괴 시도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 될 거 같다”라 진단하고, “생계형 좌파들로 변신된 그들은, 건전한 양식을 가진 국민들이 퇴출 시켜야 하며 결국은 퇴출 될 것을 확신한다”며 자신의 이뤄질 수 없는 희망을 ‘확신’이라는 표현으로 강하게 드러내는데, 그의 ‘무식’타령은 여기에도 등장한 것이다.

‘돈파’라니 처음 듣는 말로 별로 유식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필자만일까 싶다. 종합예술이라는 영화를 함부로 좌파 우파로 편 가르기 하여 ‘국가체제 붕괴’ 운운하다니 그게 과연 ‘건전한 양식을 가진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 인용문 가운데 어법에 맞지 않거나 표현이 어색 부분이 있는데, 원문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음을 밝혀 둡니다.

‘터널’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다

긍정적인 것이 됐건 부정적인 것이 됐건 역사는 덮거나 지워 버리려 해선 안 되듯이 재난 또한 그게 어떠한 것이 됐건 원인이나 책임소재를 묻어 두려 해서는 안 된다. 설혹 불행했던 역사라 할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가운데 해결 가능한 것은 깔끔하게 매듭을 지어야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재난도 마찬가지다. 아프다 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 해서, 그리고 국론이 분열된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해서는 같은 재난이 언제 어떻게 또 다시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덮어 두고 가자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할 만큼 했다니 무엇을 얼마만큼 했다는 말인가. 진상이 속 시원하게 밝혀졌고, 책임 있는 사람들은 국민들이 납득할 만큼 책임을 졌는가.

우리는 보아 왔다. 입으로는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하면서 실제로는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누가 그랬는가. 거대 여당과 정부가 어떻게 해 왔는지를 힘없는 국민들은 속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으로 지켜봐 왔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터널’속에 갇혀 있던 정수처럼 어둠에 갇혀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실을 구출해야 한다. 우선 바로 한 달 전인 2016년 7월 27일, 조사 활동을 보장하라며 단식에 돌입했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요구부터 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1970년 4월의 와우아파트 붕괴, 1994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 1995년 6월의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부터 이어지는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와 작년 5월 20일에 시작된 메르스 사태와 같은 불행이 언제 또다시 우리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

‘터널’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다. 힘이 든다고 나가겠다는 의지와 노력을 버리면 언제까지나 어둠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리에 상처를 입어 못 걷겠거든 기어서라도 나가야 한다. 그래야 터널 밖의 신선한 공기와 눈부신 햇살의 영접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