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가 지난 9일 서울에서 양국 외교당국 국장 간 협의를 열어, 지난해 12월 28일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이 약속한 10억 엔의 출연 시기와 용처 및 화해·치유재단의 사업 방향 등에 대한 이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외교부는, 12일 오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윤병세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작년 12월 합의에 따라 국내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을 신속하게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많은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확산되고 네티즌들도 뜻을 같이하여 인터넷을 달궜다. 일본이 돈을 내 놓겠다고 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까지 그 돈의 ‘출연 시기와 용처 및 화해·치유재단의 사업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 정부는 “배상적 성격이 있다”고 하지만 일본 측은 한결같이 ‘배상금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말을 계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하기야 양국 간 회담에서 당초에 ‘출연’이는 말을 등장시킨 것부터가 잘못이다. ‘출연’이 무엇인가. ‘어떤 단체 따위를 돕기 위해 내놓은 돈’이 아닌가. ‘배상’은 분명히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말하는 ‘배상적 성격’은 또 무엇인가. ‘배상’이면 ‘배상’이고 아니면 아니지 ‘배상적 성격’이라니 우리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일본돈 10억 엔에 이토록 구차하게 굴었다는 말인가.

피해 당사자 김복동(91)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내는 돈이 배상금도 아니고 위로금인가 뭔가라는데, 그 돈 몇 푼 받으려고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싸운 게 아니다. 아베가 나서서 ‘우리가 했으니 할머니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우리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그러고 나서 ‘법적으로 배상한다. 사죄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토로하여 분노를 드러냈다. 국민들이 분노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성격도 분명치 않은 돈을 받겠다고 덥석 약속을 해 준 것일까.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대한민국에 있어 10억 엔이 그렇게 대단한 돈인가.

일본 언론은 지난 연말의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회담이 있고 그 다음날인 29일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 문제에 대한 협의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조건을 꼭 넣어라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 말을 10억 엔과 관련하여 본다면 네티즌들의 말 맞다나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심산이 아니면 뭐겠는가.

10억 엔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10억 원이나 되니 일반 서민들로서는 선뜻 실감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큰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1위이로 1년 예산이 400억조 원에 가깝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있어 110억 원이 그리 큰가. 어느 변호사가 전관예우라는 무기를 가지고 벌어들인 부정한 돈에도 못 미치는 액수 아닌가.

“아바이는 징용 징병 끌려가서 피맺힌 목숨 바친 돈으로 새마을사업 하더만, 그 딸 아니라고 할까봐, 할매들 몸 팔아서 재단 만든다나? 그게 옳은 일이냐?” 김복동 할머니의 말로 원색적이기는 하지만 누가 이를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들여 온 대일 청구권자금은 굴욕적이긴 했지만 국가발전에 유용하게 쓰였다.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는 그야말로 마른입에 새우 한 마리가 아쉬웠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은 10억 엔 때문에 역사적 진실까지 묻어 두어야 할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한 네티즌은 이 10억 엔과 관례된 한‧일 양국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사안들을 꼬집어 “치유가 아니라 상처에 소금 뿌리는 행위”라고 말한다.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으로 해결하려 한다.” “위안부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등등의 반응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많은 국민들도 이에 반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광복적 기념사에서 “한·일 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만 말하여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한‧일 간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과정에서 불거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에 충실히 따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서 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는 한·일간의 역사를 굴절됨이 없는 시선으로 직시했는가. 직시했다면 일본이 왜곡에 왜곡을 거듭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해 왔는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이 문제를 10억 엔을 받고 끝내 버리려 한 사실이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한 번 더 김복동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는 아직까지 해방이 안 됐다. 일본하고 우리 정부가 서로가 합하려면, 과거 청산을 깨끗이 하고 난 뒤에 일본하고 손을 잡던지 해야지. 제대로 해결해주지도 않고 미국하고 일본하고 손을 잡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국가 간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는 역사를 왜곡하거나 덮어 두고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 대한민국의 딸들이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봉오리로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 그 우악스러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짓밟힌 사실부터 그들은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인내심을 갖고 그리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