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지성수 칼럼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6년 08월 18일 (목) 13:22:20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8일 (목) 01:49:06 [조회수 : 253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요즈음 지구촌 사방에서 무차별 공격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원한을 가지고 사건을 벌이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살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만큼 내몰고 있을까? 그것은 증오일 것이다. 경찰에 대한 증오, 백인 사회에 대한 증오 등이다.

심리적 극한상황은 어떤 것일까? 사랑의 극한상황은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미움의 극한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즉, 누군가를 죽여 버리고 싶은 때일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수 있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차마 내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는 생각은 할 수가 없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혹시 사고라도 당해서 죽어주지나 않나 하는 바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만 20 세기 후반에 와서는 제 6 계명은 케케묵은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살해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죽음의 포로수용소, 핵폭탄 투하, 인종 청소로 점철된 현대사에서는 이미 답변 거리를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그렇게 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온 것이 드론에 의한 공격이다. 이 쪽에서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체 소리도 흔적도 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다. 드론에 비하면 내가 죽을 각오를 하고 상대방을 공격을 하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고 용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죄 없는 민간인이 희생 당하는 것은 드론이나 자살폭탄테러이나 같다. 그렇다면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맹인과 벙어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맹인이 이긴다. 왜? 뵈는 게 없으니까?’

물론 이 이야기는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말해 주는 농담이다. 그러나 목숨을 아까와 하는 놈과 아까워하지 않는 놈과 싸우면 결과는 뻔한 거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졌다 한들 목숨을 아까워하는 놈이 목숨을 버린 놈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는 십대 때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하는 행동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하는 행동이  용감(무모) 하지 않을래야  안을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했다. 아마도 그 시절 교회에 푹 빠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소년원 신세를 졌을 것이다.

‘절망에서 울어 나오는 용기’ 라는 것이 있다. 바로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하는 생각인 것이다.

2005년에 개봉했던 영화 <시리아나>의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개로 나뉜다. 그 중 하나는 먼지만 풀풀 날리는 파키스탄의 겁나 깡촌에서 태어나 중동 부자 나라로 일하러 왔는데 사람 대접 죽어라고 못 받다가 이맘(lmām : 이슬람교 교단 조직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하나의 직명)의 가르침에 빠졌던 청년이 고속 보트에 RPG를 달고 유조선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대체로 테러를 저지르던 이들은 절망 속에서 살던 이들이었다.

국제분쟁전문PD인 김영미 PD가 2011년에 쓴 책이 <세계는 왜 싸우는가?>이다. 이 책에서 다뤘던 분쟁지역은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탈레반, 체첸, 카슈미르, 이라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에라레온, 소말리아, 콜롬비아, 미얀마... 그리고 무슬림의 한 종파인 시아파, 중동에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를 소개했다. 사실 지구상의 테러는 이 지역과 연계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지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IS 출현 이후 테러리스트도 트렌드가 바뀌어 가고 있다. 소위 Home grown terrorist의 경향이다.

요즘 호주도 무슬림 때문에 난리다. 아니? 왜? 무슬림 동네 젊은이들이 이 집 저 집에서 슬그머니 사라져서 시리아로 이라크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청년들은 그곳에서 죽기도 하고 IS 유튜브 선전물에 살벌한 모습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바람난 동네 처녀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까지 사라져서 시리아 등지에서 총을 들고 나타난다. 바야흐로 호주를 비롯한 무슬림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들은 지금 호떡집에 불이 난 형편이다.

영국 정부가 특히 당혹스러워 하는 점은 유난히 IS에 가담한 영국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영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영국인 약 500명 정도가 시리아에 들어가 IS에 동참하고 있다. CNN은 "시리아에 들어간 미국인이 100명 정도이고, 영국의 인구 규모가 미국의 5분의 1이라는 점에서, 인구 비율까지 고려하면 IS에 가담한 영국인이 미국인보다 25배나 많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CNN은 시리아에서 IS의 투쟁에 가담하는 유럽인들의 출신국가별 규모에 대해 "현재로서는 가장 권위 있는 추정치"라면서 영국 정보기관의 통계를 인용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출신 700명, 독일 400명, 벨기에 300~500명, 네덜란드 130명, 덴마크 100명 이상, 오스트리아 100명 이상, 스웨덴 80명, 스페인 50~100명 등이다. 캐나다인 100명도 테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캐나다를 떠났으며, 대부분이 시리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250명의 호주인들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투쟁에 가담하고 있으며, 약 100명의 호주인들이 호주 내에서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영국 안보 및 대테러국의 이 통계에 따르면, 공식 추정치만으로도 2620~2870명 정도의 서방권 시민권자들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살 테러범과 서구 세계의 IS 지원병들은 출발점이 다르다. 대부분의 자살특공대는 현실에서 가로막혀 희망이 없는 이들의 자포자기식 죽음을 종교적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IS 지원병들은 현실에 불만족한 이들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의미가 심장한 것이다.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미국이 아프칸과 이라크를 침공해서 수 백만의 무슬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IS로 향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행동 때문에 자기와 같이 서방 세계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이 엄청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난다.

자기들이 누리던 안락한 서구 세계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불을 향하여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위험한 상황으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단순논리로 무장한 원리주의 신앙이다. 본인 스스로는 절대로 그것이 잘못된 줄 모르는 신앙의 맹목성은 무섭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상품은 ‘공포’이다. 그 상품을 제조해서 파는 측은 테러리스트들이고 소비자는 정치권들이다. 테러는 완전히 비즈니스화 되었다. 죽음의 비즈니스.

고명한 베트남 승려인 틱낫한이 이런 고상한 말을 했다고 한다.

“테러리즘의 뿌리는 몰이해, 공포, 분노와 증오입니다. 그런데 군인들을 이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미사일과 폭탄은 테러리스트를 제거할 수도 없고, 그들에게 도달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흔히 ‘정의는 살아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나는 ‘정의는 죽는다’고 말하고 싶다. 정의는 멋있는 장식품, 액세서리일 뿐이다. 싸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반드시 폭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 행사하는 무력으로 생산하는 공포가 멋있어 보이는 재벌들의 상품이라면 테러리스트들이 생산하는 공포라는 상품은 불량제품일 일뿐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예수가 세상과의 싸움을 가르친 것이다. 나는 예수에게서 세상과 싸우는 방법을 배운다.

지성수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9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