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감신대 교수 

인간의 의식, 인간의 정신부터 달라지자
머레이 북친의 논문 “사회 생태학 對 심층 생태학”

본 서평은 북친의 논문 중 하나이다. 비교적 두터운 본 논문 속에 북친의 사회 생태학적 입장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서평자는 북친의 의미와 한계를 직시하였다. 본 논문과 관계된 저술로 북친의 「휴매니즘의 옹호」라는 책이 있다.

북친에게 있어 ‘심층 생태학’은 자주 반인간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원시주의 등과 혼용되어 평가된다.

때로는 이것이 생태 파시즘으로 읽혀지기도 하며

종교 생태(영성)운동의 제반 시도들 역시 이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북친이 말하는 ‘사회 생태학’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심층’(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화와 생명계

전체를 존중하려는 자연주의라고 말한다. 서양철학 내의 유기적 전통에

근거하되 비판철학의 도움을 받는 학문이란 것이다.

북친에게서 우리는 다시금 서구적인 ‘강한 인간중심주의’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필자는 ‘심층 생태학’과 ‘사회 생태학’의 대안으로

다음과 같은 ‘약한 인간중심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이는 인간이 자연 존재와 내적으로 일치되기 위해

인간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는 동양적 수행론의 관점이다.

머레이 북친은 ‘사회 생태학’이란 이름을 걸고 생태계 복원의 문제를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이다. 그는 제도권 하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은 엘리트 그룹에 속한 학자가 아니다. 러시아계 노동자 출신으로서 오늘날 서구가 처한 생태계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고자 하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 중심주의를 생태계 위기의 핵심 요인으로 보고 세계관적 전이를 모색하는 소위 ‘심층 생태학’을 지나치리만큼 경계하며 오히려 휴매니즘을 옹호하고 있다. 인간 혐오주의로 치닫고 있는 극단의 성향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 할 수 있겠으나 종교적 역할을 부정하고 인간 이성에게 궁극적 희망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여하튼 북친의 ‘사회 생태학’은 최근 해방 신학자들의 생태신학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고 한국에도 사회 생태론의 철학을 비롯하여 본 연구소가 텍스트로 삼는 「휴매니즘의 옹호」와 같은 책들이 번역 소개되어 생태 담론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사회 생태학 對 심층 생태학”은 북친의 사유 단초를 잘 드러내주고 있어 북친의 주저 「휴매니즘의 옹호」를 읽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북친 역시도 1970년 이래로 인간 중심적 환경이해로부터 자연 그 자체를 중시하는 생태학적 담론이 시작된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비위계적인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을 위해 결정적 동인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자연을 주제로 하는 생태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바, ‘심층 생태학’이 주적(主敵)으로 설정되고 있다. 북친에게 있어 ‘심층 생태학’은 자주 반인간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원시주의 등과 혼용되어 평가된다. 때로는 이것이 생태 파시즘으로 읽혀지기도 하며 종교 생태(영성)운동의 제반 시도들 역시 이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북친은 자신을 아나키스트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다. 북친은 ‘심층 생태학’이 생태학적 난제가 사회 구조적 모순에 기인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이 비판하는 ‘인간 중심주의’는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제1세계와 제3세계간의 갈등과 모순을 ‘인간’이란 이름 하에 쉽게 망각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극단적 심층 생태학자, 빌 드벨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예로 들며 ‘심층 생태학’의 허구를 밝힌다. “…최선의 것은 자연이 그 자체의 평형을 추구하도록 그냥 놓아드는 것, 그곳(이디오피아)의 사람들이 그냥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지구를 먼저!” 라는 슬로건 하에 ‘심층 생태학’이 저지르는 이와 같은 오류에 대해 대적하는 것을 북친은 자신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북친이 보기에 ‘심층 생태학’은 피상적 자연예찬론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심층 생태론자들은 한 세기 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핵심 개념들, 탈중심화, 비위계적 사회, 상호 원조(협동), 공동체 주의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사색을 결여한 자들로 매도된다. 헨리 소로우마저 생태학을 종교로 환원시켜 버린 자유주의자로 이해될 뿐이다. 반휴매니즘, 생명중심주의, 창조 중심의 영성 그리고 범재신론 등을 표방하는 ‘심층 생태학’은 결국 개인적 자아를 유기체적 우주의 큰 자아 속으로 환원시켜 현실 변혁의 의지를 고갈시키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고 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우주적 자아 속의 자아’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의 소멸로 생각될 뿐이다. 인구 증가율을 염려하는 신멜서스주의 역시 사회적 요인을 간과한 사이비 자연주의 개연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받는다. 초자연주의와 바람피우는 無我의 영성이나 자연 정령을 강조하는 자연주의, 곧 ‘심층 생태학’은 여신을 숭배한 고대 이집트의 억압적 질서를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심층 생태학’은 인류의 사회적 성격과 생태적 위기의 사회적 기원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식으로 ‘심층 생태학’이 인류와 사회를 ‘자연화’해나가면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사실적 종말의 위기로 치닫게 하는 세계 경제체제가 무기력한 영성주의 속에서 증발될 것이라는 것이 북친의 생각이다. 종교의 경건성 훈련과 집단 감수성 훈련이 사회 경제적 분석을 대체하고 정치적 조직화 및 실천에 대한 필요성을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인구 감소가 생명계의 파괴 수준을 급격히 감소시킬 수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이해한다.

북친은 ‘심층 생태학’이 언제든 자기중심적인 부루조아적 ‘자아’를 문제시해왔다고 이해한다. 자기 무화적 종교 영성을 생태학적 에토스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하지만 북친은 ‘자기 중심성’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권력, 초국적 기업 등에 의한 인간의 자기 굴종, 개성의 굴복이 더욱 문제라고 인식한다. ‘심층 생태학’이 말하는 자기 중심성은 대다수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이들을 수탈하는 대기업, 국가권력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비판이란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 문제해결을 위해 탈개성화가 아니라 사회를 재구성하는 실천가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재개성화 작업이 필요할 뿐이다. 개별적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대아(大我), 우주적 자아로의 변모를 강조해온 ‘심층 생태학’은 이제 멸종에 처한 천연두 균의 복원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북친은 조롱하고 있다. 생태계를 위한 세계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주장하는 ‘심층 생태학’의 입장에서 전쟁이나 에이즈, 조류 독감으로 인한 인류의 죽음은 긍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것은 북친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위험스런 에코 파시즘의 실상이다. 이점에서 거듭 말하거니와 북친은 ‘심층 생태학’을 신 맬서스주의의 시각에서 그 위험성을 본다. 인구 통계학은 모호한 이데올로기적 사회학이란 것이다. 오늘의 생태위기나 기아가 인구증가에서가 아니라 사회, 문화적 혼란에서 기원한다는 것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북친이 말하는 ‘사회 생태학’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심층(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화와 생명계 전체를 존중하려는 자연주의라고 말한다. 서양철학 내의 유기적 전통에 근거하되 비판철학의 도움을 받는 학문이란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것은 급진성(녹색)을 띠며 인간의 주체성, 이성, 미학적 감수성 등을 신뢰한다.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만큼이나 신비적인 자연에 의한 인간의 종속도 인정하지 않는다. 여신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생태주의, 에코페미니즘도 한사코 거부한다. 여신 숭배보다도 자연적 진화의 세계에 대한 성찰에 무게 중심을 둔다. ‘호모 사피언스’,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탈인간 중심주의, 반휴매니즘은 자연 진화 과정 속에서 독특하게 출현한 인간존재에 대한 모독이다. 인간 종의 탄생은 자연 진화에 결코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여 신비화된 ‘자연’과 ‘인류’를 대립적으로 만든 어떤 시도도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계급, 민족 차별, 제국주의 등과 같은 사회구조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인간이 만든 이차적 자연, 곧 문화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생태학의 과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에서 출원한 인간의 의사소통적, 지성적 의식이 생물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생태적 재난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존재라는 확신 때문이다. ‘인간만이 희망이다’라는 믿음이 과연 신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지만…. 여하튼 북친은 인간을 왜곡시키는 초자연적 영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치고 인간의 정신, 지성에 힘을 실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래서 ‘사회 생태학’이란 이름 하에 휴매니즘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심층 생태학’에 대한 북친의 부정적 견해가 의미하는 바를 일정부분 긍정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사회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타당하다. ‘사회 생태학’이 자연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회 내 위계질서의 타파를 목적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이 점에서 ‘사회 생태학’은 사회 비판적인 에코 아나키즘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환경문제가 보수적으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이다. 북친이 비록 근대 합리론의 부정적 결과(도구적 합리성)를 모르지 않으나 이성의 힘에 근거한 휴매니즘을 생태계 복원의 원동력으로 믿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이성 속에는 생명권에 대한 책임감, 공동체성 등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기에 인간이 달라지면 사회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북친의 기본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심층 생태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지나쳤다. ‘심층 생태학’의 유의미성까지 곡해하며 비판을 위한 비판을 반복하고 있다. 휴머니즘의 옹호로서 ‘이성의 재주술화’가 문명비판의 대안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사회운동가답지 않게 대단히 순진한 발상이다. 왜 서구의 이성이 의사소통적이지 않고 도구적이었는가에 대한 학문적 분석이 결여되고 있다. 종교 및 동양사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그것을 원시주의로의 퇴행이라 보는 그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의식의 전분별 단계와 초분별 단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범주오류의 소치이다. 종교 속에 함축된 초분별적 의식은 ‘오래된 새길’로서 전근대성과 근대성을 가로지르는 의식의 또 다른 차원을 일컫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선택이 인류의 선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된 현실에서 생태주의 사고를 이데올로기로 몰고 가는 북친의 시각은 편벽되었다. 북친에게서 우리는 다시금 서구적인 ‘강한 인간중심주의’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필자는 ‘심층 생태학’과 ‘사회 생태학’의 대안으로 다음과 같은 ‘약한 인간중심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이는 인간이 자연 존재와 내적으로 일치되기 위해 인간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는 동양적 수행론의 관점이다.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지적 능력 및 義를 추구하는 힘이 있다고 유교는 말한다. 수행을 통해서 자연의 원리와 인간(도덕)의 원리가 조화를 이루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의 지적 능력이 생태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독교 역시도 고통 중의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달라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