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웅 목사, 홍천동면교회 담임

이야기 하나 ::: 웃으며 찡한 시간 속에서 배우는 우리들

▲ 박순웅목사네 가족

그후 수요저녁예배를 마치고 십여 명 교우들과 함께 병원에 계신 할머니에게로 심방을 갔다.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할머니 왈, “뭐 하러 여기까지 왔수, 이 밤엡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하시기에 내가 쉽게 대답했다. “할매여! 십분 거리 밖에 안 걸려요. 걱정 마요.”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 할머니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르신네 분들은 형식적으로 하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일찍부터 몸에 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는 형식을 넘는 그 뭐라 할까 믿음과 진심어린 고마움, 신뢰가 있음을 또한 배운다.

병원 심방 가서는 특별히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여러 환우들과 함께 쓰고 있기에 나름대로 모두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할 수 있으면 같이 있는 모든 환우들과 어울리다가 오는 것이다. 이 날도 할머니에게 불쑥 ‘우리 노래 소리’를 부탁했다. 할머니는, “원, 참, 환자에게 소리를 들려 줘야지 글쎄 환자인 내가 소리를 해. 지기랄” 하시니, 옆의 어르신네 환우 분들이 빙그레 웃으시며, “할매! 한 소리 띠워 보소” 하시기에 우리 교우들이 재차, “소리 한 가락 부~탁해요” 했더니 한곡 뽑으신다.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질 때쯤 나는 나의 어머니께서 쓰고 계신 모자를 들고 여기저기 교우들에게 다닌다. 소리 감상 공연료다. 한 바퀴 돌고나서 모아진 것을 소리 없이 모아 노래 소리 끝날 때쯤, 할머니 베개 밑에 쑥 눌러 넣는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정성이다. 옆에 계신 어르신 환우분도 천 원짜리를 넣는데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우리보다도 병실에 계신 분들이 더 열광적으로 “하나 더” 라고 환호해 세 곡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소리의 노랫말 중 우리 모두를 찡하게 한 대목이 있어 적어 본다. “나이가 들어 어느새 머리카락에 백발이 다가오니 그것을 보고 웃는 이팔청춘의 아낙들이여! 우리 백발 보며 웃지만, 머지않아 이 백발 자네들에게도 꽃 피게 될 것이니 너무 그렇게 웃지 마소.” 순리대로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또 배운다. 하느님께 고맙다는 기도를 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모두가 기쁘고 행복한 심방이었다. 이렇게 살면 될 듯싶다.

“건강하이소 할매!”

이야기 둘 ::: 씨 뿌리기와 가을걷이에서 배우는 행복

어렸을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 3, 4학년때 쯤, 시골 목회하시는 아버지께 이런 말을 했단다. “이 다음 제가 목회를 하면 아버지처럼은 안 할래요.” 아마도 교우들이 먹여주는 것같은 인상을 받았기에 그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뒤 15년 동안 줄곳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긴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공부한 것은 농촌의 교우들 덕분임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도움으로 학업을 마치고 농촌목회의 첫 발을 내딛었다. 15년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아니 잃어버리고 살았던, “아버지처럼은 목회를 안 할 거예요”라는 말이 농촌의 목회를 하면서 실감나게 되살아났다. 아버지와의 약속임과 동시에 내 자신과의 첫 믿음이었기에 자신을 담금질했다.

농촌의 여러 교우와 이웃들의 가정을 이른 봄에 다녀 보면 나름대로 한 해 동안 먹을거리들을 자급 재배하는 것을 보았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익히니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자급을 위한 삶이 시작됐다. 그 첫번째가 바로 텃밭을 이용한 먹을거리를 생산해 내는 것이었다. 겨우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세 계절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 여겼다.

며칠 전에도 찰옥수수 씨앗을 모종했다. 햇볕은 한없이 생산하겠노라고 흩뿌리고 박새와 곤줄박이는 한없이 우리 주위에서 노래를 불러대는데 거기 몇몇 사람이 모여 함박꽃 웃음 피워내는데 행복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을 나눌 때 그 어떤 부러움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냥 씨앗만 뿌린 것인데도 이렇게 좋은 것은 스스로가 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일들이 하나, 둘씩 탄력을 받으면 그 어떤 것에서도 종속되거나 예속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서는 무엇보다도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다.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에 거짓 생명 즉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씨앗을 뿌려 본 자만이 이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볍씨를 뿌리고 자라나는 동안 못자리하기 위해 경운기로 논을 정리한다. 논 물 속에 잔잔하게 비추어진 앞산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상상해 보시라. 오늘도 그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디 뿌린 것뿐이겠는가? 거두어들이는 가을걷이의 만족도 또한 자본으로 산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하느님의 사람들이라 한다.

이런 것에 반해 인위적인 공산품은 멸망과 파멸로 몰고 가는 그야말로 유혹덩어리이다. 일시적인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많은 이들이 거기에 사정없이 빠져들어 가고 있으나 수렁에 빠지면 빠질수록 공허함과 허전함뿐이다. 물질문명이 산업 자본화 되어가고 다국적 기업들이 제3국가들을 식민지화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감히 생각해 본다. 분명한 지침은 각자의 삶 속에서 자립기반으로 살아가는 길 밖에는 그 어떤 길도 없다. 물론 그 가운데서 마을 공동체의 나눔 정도가 최고의 가치라 여겨진다. 국가로 넘어갔을 때의 문제는 심각해진다. 거기에는 나눔이 아니라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은 생명의 터전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가 되고 생명을 잉태해야 될 흙은 도로로 파여지고 아스팔트에 생매장되고 있다. 생명 지킴이인 농민들을 정부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선진국 국가의 대열로 앞서기 위해서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아일랜드가 영국과 같이 대 공업국이 되고자 한다면 결국 아일랜드도 망할 것이다. 진정한 독립과 행복은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른 봄 씨뿌리기와 늦가을 가을걷이에 있다”

오늘도 교우 집의 가정에 가니 온실 안에 여러 모종들이 가득하다. 농부님들의 뿌리고 거둠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배우니 행복하다.

이야기 셋 ::: 순리대로 사는 하늘과 땅의 사람들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1학년 교실에 갔더니 선생님과 아이들이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학교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친구들! 학교에 오고 가고 할 때, 학교 앞에는 자가용과 트럭이 많이 다니니까 우리 친구들은 어디로 다녀야 되나요?” 하고 물으니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잘 모르겠다는 뜻에 선생님은 재차 부연 설명으로 어디로 다녀야 하느냐고 다시 물으니 아이들 몇 명이 동시에 대답한다.

“흙길요. 흙길 아니예요? 흙길이죠.”

우리 모두는 뒤로 나자빠지게 웃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이 순리적인 삶의 대답에 희망을 가져본다. 시골이라고 해서 별 다르지 않다. 농로도 모두 시멘트 길인데 그래도 산과 논과 밭이  많은 지라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꼬~옥 껴안았다.

작년 연말에 우리 교회에서는 두 분에게 작은 상을 나누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환경상 같은 뭐 그런 거다. 엄만봉 집사와 민경희 권사이다. 두 분 모두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계 중에서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자전거로 예배에 함께 하신다. 비가 올 때만 빼고 언제나 자전거를 애용한다. 처음 자전거 타고 예배 왔을 때의 감격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하시는 두 분의 이야기에 가슴이 찡하다. 엄 집사님은 연세가 71이시고 민 권사님은 63세이시다. 예배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속에서도 평생을 자전거로 웬만한 거리는 다니신다. 엄 집사님은 겨울에 홀로 산에 가셔서 하루에 2시간씩 나무 보일러에 넣을 나무를 해 오신다. 평생을 농사의 순리에 맞추어서 살아가니 무병장수하신 듯하다.   

아프리카 침팬지의 어머니라 일컫는 제인구달씨의 《희망의 밥상》이라는 책이 나왔다. 순리대로 뿌리고 거두는 삶의 양식을 먹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이 책을 펴냈다 한다. 인간의 먹을거리가 얼마나 병들고 어긋났는지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멸망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다.

“여러분들이 먹는 식료품들은 대부분 슈퍼나 마트이고 또한 거의가 이국적인 농산물이다. 가까운 곳에서의 식료품은 극소수이며 대부분 10배, 100배, 심지어 10000배 이상의 거리에서 오는 것도 있다. 이는 식품 자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보다 밥상에 오기까지 운반되는 에너지가 더 크기에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신선도 보장을 위해 역 순리에 따른 방사선 쬐기, 착색포 살포, 방부제 살포 등등… 오래 보존하기 위한 유전자조작 농산물, 최대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 불을 안 가리는 다국적기업들의 물품들을 상상하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우리의 식탁은 생명의 순리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다. 분명 많고 다양하고 값싼 것임에도 불구하고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순리에서 어긋난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제인구달씨의 재미있는 연구가 있어 기록한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농약으로 키운 먹을거리를, 유전자로 조작된 농산물은 그들 스스로의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침팬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유기 농산물과 지역 농산물을 선택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밥상이 바뀌어야 한다. 소박한 밥상으로. 거기에는 육식이 아닌 채식으로 할 수만 있으면 소규모의 유기농가와 연계를 맺으라고 권하고 싶다. 순리적인 밥상뿐이겠는가? 옷과 집과 삶 모두가 단순 소박할 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